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74)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73화(174/377)
< 173화 >
“아야야.”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허리가 빠개질 것만 같은 고통을 느껴야 했다. 단순히 부서지는 것과는 다르다. 말 그대로 척추 사이사이를 누군가가 잡고 벌리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특히 그중에서 최악인 것이 경추 부분이었는데, 그 부분은 일어나 있든 누워있든 완전히 바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이고.”
이라크 혁명군 편에 서서 황금사단인지 황금 똥파리인지 하는 놈들 대가리를 날려 버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빌어먹을 자식들이 설마 시내에 포격을 날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건물에 지하수로로 통하는 길이 있었기에 간신히 포격을 버틸 수는 있었지만, 지상으로 탈출하다가 그만 추락하고 말았고, 그 뒤로는 전전긍긍하던 신세다.
차라리 등에 메고 있었던 SR-25만 아니었다면 등이 이 정도로 으스러지지는 않았으리라. 차라리 그 애송이가 지원해준 총 말고 예전부터 손에 익숙했던 모신나강을 들었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서야 탄 수급이 되질 않으니 그야말로 본전 말도였다. 게다가 지금 와서 이것을 불평해봤자 박살 난 척추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왜 왔다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노인의 온몸에 흘렀다.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에게 노인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단순히 침대에 앉아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노인이 손님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의 예우였다.
그래도 마음먹고 억지로 몸을 이끌었을 때 이렇게까지 움직일 수 있는 것을 보면, 정말로 척추가 으스러지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찌 이렇게나 오래 아픈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병원? 병원에 가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갈 것 아닌가?
노인이 침상에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바깥에서는 이라크가 반으로 분단되고 세금이며 물가가 오르락내리락하며 대환장 파티를 벌였다고 하는데, 신문을 보아하니 지금은 세금이나 물가가 어느 정도 진정된 듯싶었다.
진짜 물가가 정상화되었는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건 현 정권인 서이라크에서 발행한 신문이 아니라 영국에서 발행한 신문이었으니까 말이다.
“이건 저희가 생각한 것과 다릅니다.”
분명 자신에게 총을 보급해 줬던 애송이였다. 혁명군을 일으키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요직에 책정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정상적인 사고가 박혀 있는 사람이나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금방이라도 판단할 수 있다. 저건 혁명가의 눈보다는 야심가의 눈이었으니 말이다.
“뭐 그래서 이 불쌍한 늙은이가 다시 한번 전장으로 나가기라도 바라는 건가?”
다소 생뚱맞은 대답일 수도 있지만, 달리 말하면 지금 정권을 한 번 더 뒤집겠느냐는 뜻이었다. ‘호샹’이라는 남자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남자였다. 무엇보다 쿠데타를 가장 염려해서 이것저것 감시했던 그 후세인 정권에서조차 그렇게 대량으로까지 무기를 준비하는 동안 꼬리조차 잡지 못한 남자니까 말이다.
물론 무기를 공급해준 배후가 있긴 있겠지만, 잡히지 않은 건 순전히 그의 힘이리라. 아니면 운이거나 말이다. 솔직히 운이라고 믿고 싶다. 왜냐면 죽은 척을 위장하려고 전차포를 상대로 지프로 꼬라박다니, 그 증거로 호샹은 평생 휠체어에 앉은뱅이 신세인 데다 팔과 다리에 하나씩 의족과 의수를 달고 있었다. 심지어는 눈 하나도 의안이었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노인은 무자헤딘 시절에 의안을 끼고 있는 놈이 너무나도 많아 의안과 진짜 눈을 구별하는 특기를 지니고 있었다.
“아뇨. 그럴 리가요. 머잖아 국회의원 선거가 열릴 겁니다. 그때 공식적으로 저를 지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외부로부터 바꾸는 시기는 끝났습니다. 이젠 안에서부터 바꿀 때죠.”
반신불수의 국회의원이라!
“헐헐헐, 지랄허구 자빠졌네.”
어찌나 웃겼는지 그것까지 말하고 나서 실수로 헛기침을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온몸에 전기가 내달렸다. 그게 치명타였다. 노인은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인지 다시 자리에 누워버렸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는데, 그게 척추 때문인지 아니면 눈물이 날 정도로 웃겼는지는 노인만이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샹더러 구태여 추측해보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후자였다. 저 노인이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그다지 잘 상상이 가질 않았다.
누워서 숨을 고른 노인이 좀 진정이 된 모양인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지지한다고 치자. 그걸로 뭐가 좀 바뀔 것 같나?”
“EU의 압력과 외신을 의식한 모양인지 이번만큼은 매번 더러웠던 선거도 투명합니다. 당신은 언제나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국민 영웅 아닙니까? 그런 영웅이 지지해준다면···.”
“애송이. 세상에는 말이야, 인지도라는 게 있지. 내가 지지해준다고 뭐가 좀 달라질 성싶더냐?”
무자헤딘 시절부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역전의 용사이긴 했으나 그래봤자 대중에겐 무명의 노인에 불과했다. 그 포화에서 살아남아서 뭐가 좀 있을 줄 알았는데, 솔직히 실망했다. 이래서야 그저 이상주의자 애송이가 아닌가. 회삿일도 그렇지만 정치 부분은 특히나 이상주의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곳이었다.
총이 쏘던 한낱 노인 주제에 어찌 정치를 논하느냐 하면, 일단 나이 탓이라고 말해두겠다. 노인들이 말하는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를 무시하던 자들은 다 죽었다. 그런데도 자세하게 말하라고 하면, 나이를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연줄이 있다고만 말해두겠다.
다만 그것은 전 정권이고, 지금 정권에는 그다지 연줄이 없었다. 알랑방귀를 뀌고 있는 애송이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마저도 확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결과가 어떻든 저를 지지해주시면 다시 걷게 해드리겠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까?”
이렇게 되니 절대로 노인한테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밥이나 축내다 죽을 인생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노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내가 한 말을 제대로 안 들은 것 같은데?”
“인지도는 제가 만듭니다. 유명인이 지지하는 건 불법이지만, 유명인이 되기 전에 지지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흠.”
거기까지 듣자 그에게 노인이 알지 못하는 묘책이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대로 해라.”
“지지 선언 이후에 검사와 수술 날짜를 잡아드리겠습니다. 수술이 정 힘들면 편안한 노후라도 보내드릴 수 있게 해드리죠.”
거기까지 말하고 나니 이야기가 끊겼고, 자연스레 호샹 뒤에 서 있던 수행 비서가 호샹의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아, 그렇지.”
“허브티 잘 마셨습니다.”
“흥, 멀리 안 나간다.”
호샹은 장애인 전용차를 쓰고 있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게끔 개조했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많은 돈이 들어갔다. 그러나 가장 중시한 것은 이런 자잘한 기능이 아니라 외부와의 차단이었다. 간단하게는 방음부터 심지어는 전파까지 차단했다. 호샹에게 적이 많았던 탓이다.
“회장님. 저 괴팍한 노인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호샹의 충직한 수행 비서가 불만을 토로했다. 충직한 것까지는 좋은데, 때때로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것이 좀 흠이었다. 무릇 비서라면 자기주장보다는 모시는 사람의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거늘.
“저 할아버지한테는 신세를 좀 졌거든.”
혁명군 조직을 위해서 전직 무자헤딘 모집했을 때 가장 먼저 수락한 사람이 바로 저 할아버지였다. 그래서 가장 좋은 총을 들고 갔는데, 설마 그게 허리를 박살 내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스코프는 방해만 된다느니 할 때는 의심이 갔지만, 간부급 인사를 일곱이나 사냥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무렵에는 의심이 씻은 듯 사라졌다. 아마 그 양반이 전쟁 시작부터 말기까지 죽인 사람만 해도 일백하고도 마흔이 넘어갈 거다.
저격수 성향이 강하긴 했지만, 꼭 저격수라고 저격만 하란 법은 없잖은가. 그를 잡으려던 황금 사단은 온갖 사제 폭발물과 마주해야 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도드라지는 전과는 성형작약의 원리를 이용한 사제폭탄으로 전차를 셋이나 잡은 것인데, 그것 덕분에 황금 사단이 시위대 쪽으로 더는 전진하지 못했다.
전쟁이 좀 더 지속했거나, 그날 허리만 다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전과를 세웠으리라. 이러한 전과를 내세우면 유명인으로 만드는 거 즈음이야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시위대에 참가했던 이들은 그에게 큰 은혜를 느낄 거 아닌가.
더불어 원래 독립 직후엔 전쟁영웅이라는 직함은 어중이떠중이 연예인보다 한참 더 인기가 많은 법이다. 이번에는 그를 발판삼아 호샹이 올라가겠지만, 다음에는 그를 국회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협력자가 되길 바랐다. 할아범이라면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패한 정치인들을 총으로 저격해서 죽일 것 같으니까 말이다.
아마 허리만 안 다쳤어도 세금이 널뛰기하는 꼴을 봤으면 분명히 감옥에서나 그를 볼 수 있었을 거다. 아니면 그를 잡으려던 사람은 다 죽었거나.
“신세를 졌으면 응당 갚아야 하지 않겠나.”
거기까지 말하고 담배를 꼬나물었다. 오랜만에 들어간 니코틴이 몸에 돌면서 뇌가 깨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EU의 입김이 닿고 있는 서이라크에서 장애인이라는 점은 상당한 장점이자 이점이지.”
신정권이 들어오면서 그다지 별로 실용적이지 않았던 기존의 장애인에 대한 정책이 사라지고, 서구식 장애인 정책이 유럽으로부터 수입되었다. 유럽식은 확실히 배려가 좀 많이 과하다 싶을 정도긴 하지만, 활용만 할 힘과 지혜만 있다면 이런 반신불수 장애인이라도 얼마든지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과함을 깨닫는 이들이 나오긴 할 테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게다가 혁명전쟁으로 인해 청년층에 장애인들이 참으로 많이도 생겼다. 다시 말하자면 호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진짜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대변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게다가 그 양반이 유일하게 장애인이야.”
나머지는 다 죽거나, 아니면 사지가 멀쩡했다.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마침 저 할아범이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상기했듯이 갚아야 할 빚도 있으니 말이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유세 기간에 참전 용사 단체로 지지 선언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 뒤에 그 할아범을 회사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유명인사 반열에 올려놓을 거다. 그 뒤에 은근슬쩍 정보만 흘려줘도 충분하다. 가십거리 냄새만 맡아도 발정하는 언론이 알아서 물고 뜯고 해줄 거다. 그거면 충분하다.
“장애인 혁명전쟁 출신 전쟁영웅 둘이라, 이번 선거는 이겼군.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아메르 후보는 발밑에도 미치지 못할 겁니다.”
‘아아, 아메르. 한때 동지였던 자여.’
동료 여섯 명이 폐쇄된 작은 건물 안에 모여서 나라의 미래를 논했던 그때가 그립구나. 그러나 그중 넷은 죽고 너와 나 단둘만이 남았으니.
‘이번에야말로 누가 옳았는지 정의를 겨루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