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75)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74화(175/377)
< 174화 >
“끔찍하군.”
칡으로 뒤덮인 숲을 마주한 뒤 내뱉은 첫마디였다. 마치 고향을 보는 듯했다. 나무의 둘레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두껍고, 어디에나 쓰이던 대나무가 없다는 점이 차별점이었다. 어찌나 만능인지, 윗동네는 아예 아파트에 쓸 정도였다.
뭐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대나무는 나무조차 아니지만, 어쨌든 결국 다루기 쉬운 나무 비슷하게 쓰인다는 점에선 나무로 분류해도 문제가 없으리라.
“그래서 이거 언제 다 자르지?”
장웨이는 지급된 도끼로 칡넝쿨을 열심히 내려찍고 있었다. 칡은 질겨서 잘 잘리지도 않는 주제에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도록 자르고 잘라도 끝이 없었다. 나름 어린 시절은 농민인지라 장작 패는 일이나 나무를 베는 일은 질리도록 해봤고, 커서는 농민공으로 살아서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힐 대로 박혔는데도 이렇다.
사실 이렇게 수작업을 하는 곳과 약품을 쓰는 곳으로 구역이 따로 나뉘었는데, 구역이 나뉜 이유나 복잡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나무를 타고 올라간 줄기를 제거하고 난 뒤 뿌리에 약품을 주입하느냐, 아니면 일일이 삽질을 해서 뿌리까지 드러내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말로는 이게 참 쉬운데, 나무를 타고 올라간 게 그냥 올라간 게 아니라 칭칭 동여매면서 올라간 주제에 나무도 거의 빌딩만 한 높이다 보니까 참으로 골이 쑤셔왔다. 차라리 골만 아프면 좋겠는데 고생하는 사람이 바로 본인이었다.
무엇보다 온갖 언어가 오가니 귀가 복잡했다.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익숙한 중국어부터 중동어로 추정되는 언어. 그리고 베트남어도 들렸고 어디에선가는 스페인어도 들려왔다. 하지만 가장 많이 들리는 언어는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영어였다. 다만 가장 크게 들리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연의 언어였다.
“빌어먹을!”
사내는 도끼질을 하다 말고 어깨를 기어 올라오고 있는 이름 모를 벌레를 기겁하며 털어냈다. 벌레도 아는 벌레여야 가만히 놔두던가 하지, 알지도 못하는 벌레가 기어 올라오면 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찌 가만히 두겠는가.
일에 높고 낮음이 없다지만, 적어도 불쾌지수만큼은 최악이었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땀으로 절어서 그런지 야외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습도가 높았고, 온갖 벌레가 엉기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암녹색이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녹색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숲이라면 적어도 나무의 갈색이나 바닥의 흙이라도 보여야 정상인데, 이 칡이 정복한 숲은 위부터 아래까지 전부 암녹색이었다.
그러나 딱 하나 이 암녹색의 세계에서 유이하게 색채를 가지는 게 있었는데, 바로 이 빌어먹을 칡을 제거하고 있는 노동자들이었다. 유일이 아닌 이유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노동자들 뒤에서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것들은 도대체 뭐람.”
웬 미국인들이 거대한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었다. 심지어 본인들 옆에는 거대한 스피커까지 두고 클래식 음악을 틀고 있었는데, 영어 학원에서 속성으로 배운 덕분에 단순 영어 회화 정도는 가능했지만, 복잡한 단어를 읽는 건 아직 무리였다.
“‘바르고 푸른 환경을 지키자.’, ‘인간 개입 금지’ 환경 보호론자들이군.”
야구모자에 서양 낫(sickle)에 톱을 들고 있던 노인이 플래카드에 적혀있는 영어를 읽어주었다. 그는 중국 태생이지만, 세월의 절반 이상을 미국에서 보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이른바 화교인 셈이다.
“환경보호?”
“태어날 때부터 뭐가 좀 잘못된 모양인지 대가리 꽃이 핀 족속들이지.”
솔직히 도대체 어디가 환경보호라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질 않아 손까지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나,
“사실 환경 보호론자들이 다 저런 건 아니라네. 그런데 저건 멍청이들이야. 재들은 칡이 뭔지도 모르고 대규모 식물 제거 작업이 있다고 해서 헐레벌떡 달려온 이들일걸.”
“아마 모르긴 모르되 저 매가리 없는 시위가 끝나면 뒤풀이로 대자연을 배경 삼아 맥주도 마실 거다. 바비큐 파티나 안 했으면 좋겠군.”
그 순간 딸꾹거리는 소리가 칡 끊는 소음을 뚫고 여기까지 들렸다.
“어쩌면 벌써 마셨을지도 모르지.”
어떻게 왔겠는가. 당연히 차를 끌고 왔다. 차가 무슨 차일까. 가솔린을 먹고 움직이는 차다. 가솔린은 무엇인가. 단언컨대 환경오염 일등공신 아니겠는가. 이런 이중적인 놈들을 보았나. 거기까지 생각한 장웨이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미국에는 음주 단속 없어요?”
“글쎄. 어떻게 생각하나. 없을 것 같나?”
없을 리가 있나. 죄다 불법이었다.
“환경론자들이 죄다 저 머저리들이라고 생각하지는 말게 지금 당장 칡 제거 작업에 투입된 환경 보호론자 자원봉사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자네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고꾸라질걸.”
실상 정부에서 지정한 감독역인 미국인들을 제외하면 이곳에 자원봉사로 나온 미국인들은 대부분 환경 보호론자들이었다. 원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고들 하지 않던가? 저들은 그런 부류였다.
“영감님하고 다르게 저는 돈이나 벌겠다고 들어온 입장이라서요.”
장웨이는 그렇게 말하고선 손도끼로 칡을 내리찍었다. 전력을 다해 내려찍었지만, 칡에는 그저 흠집만이 났을 뿐이었다. 장웨이는 칡이 가진 탄성에 혀를 내둘렀다.
“외화벌이인가?”
“개인적인 거죠. 주변 사람들이나 정부에서는 미국을 껄끄러워하지만.”
알게 뭔가. 장웨이는 전형적인 농민공이었다. 공사장에서 채소볶음과 만터우를 꾸역꾸역 밀어 넣고 밤낮으로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일하는 농민공 말이다.
혹자는 농민공들이 묵묵히 도시에 공헌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지랄하지 말라지. 묵묵히 일하지 않으면 농민으로 돌아가야 하니 닥치고 있을 뿐이었다. 농민과 농민공은 소득이 심하면 다섯 배까지 차이가 났다. 어떤 고전소설에서 ‘입이 없지만, 그런데도 비명을 질러야 한다.’라고 했던가?
속으로는 어찌나 몇 번이고 비명을 지르고 싶던지. 일은 고되고 힘들었다. 일이 힘들면 노동자들 사이에서 불평불만이 팽배하리라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만약 노동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온다면 나름 괜찮은 직장이다. 진정으로 힘들면 불평은커녕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공사장에서 먹는 만터우의 개수와 채소볶음에 들어가는 채소의 가짓수가 줄어들고 전염병이 잠잠해질 무렵 정부가 돌연 정책을 바꾸었다. 정확히는 원점으로 회귀했다는 말이 맞았다. 해외로 중국 노동자들을 대대적으로 방출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고갈된 국고를 채우기 위해서 말이다. 이대로라면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고꾸라질 판국이었다.
‘덕분에 비자까지 탈 수 있었던 거지만.’
나라가 정상이었으면 이제 막 영어를 알기 시작한 한낱 농민공한테 해외 취업 비자 따위 날 리가 없다. 나라가 비정상이니 장웨이 같은 농민공한테도 드디어 기회가 돌아온 거다.
거기까지 생각한 장웨이는 괜히 서러워 습관처럼 입에 담배를 꼬나물었다. 연기를 한 모금 마시자 그제야 좀 정신이 맑아졌다.
“영감님은?”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깨달았는데, 지금 보니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돗대였다.
“난 그런 건 피지 않는다네.”
장웨이는 돈 굳었다며 속으로 낄낄거렸다. 돗대 앞에서는 장유유서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담배를 피웠던 게 아마 6살 때부터였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죄다 들어내면 토양은 어찌 관리한답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어차피 돈 받고 고용된 입장인 장웨이가 알 바 아니었지만, 고된 노동 속에서 한줄기 호기심이 피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고되긴 했어도 농민공 시절보다는 덜 고되긴 했다. 이런 식으로 담배를 피우면서 잡담할 시간까지 있는데 이걸 어찌 고되다고 할 수 있을까? 원래 사람은 상대적인 생물이라고 하지 않나? 그 시절에 비하면 노는 거나 다름없을 지경이었다.
“나중에 예산을 투입해서 다른 것을 심을 모양이더군.”
노동자들이나 자원봉사자들은 몰랐지만, 사실 이미 칡 제거가 끝난 구역에서 어떤 식물이 가장 잘 맞는지 실험 중이었다.
“그런가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담배를 떨어뜨리고 발로 비벼 껐다. 솔직히 마음만 같아선 막말로 산불이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적어도 나무 위까지 기어 올라갈 필요는 없잖은가. 그러나 이렇게 상상해봤자 눈에 들어오는 건 여전히 녹색으로 물든 지옥이었다.
“아, 제기랄.”
장웨이는 치밀어오르는 욕지거리와 짜증을 함께 담아 도끼를 내려찍었다.
“생각보다 진행이 빠른데?”
부시는 펜으로 도대체 왜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보고서 한 장을 내려찍었다.
“중국 노동자가 대거 들어온 탓이죠.”
“솔직히 중국에서 절대로 수출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건 정말이었다. 중국 정부는 자존심을 빼면 시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미국으로 노동자를 보내지 않을 줄 알았다.
“인해전술 하나는 대단하군.”
이번 ‘제모 작전’의 거의 3할은 중국인이었다. 제모라고 하니 좀 뭣하긴 한데, 작전명을 입안한 건 정말로 놀랍게도 국민이었다. 사실 정식명칭도 아니고 말이다. 정식명칭은 ‘국토 수복 작전’이었다. 다만 입에 착착 달라붙는 게 전자인지라, 공공연하게 제모 작전으로 불릴 뿐이었다.
“중국 정부가 방침을 바꿨습니다. 일단은 살고 봐야겠다는 거겠죠. 어쩌면 저희가 관측한 것보다 상태가 심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용케 배 째지는 않는군.”
중국 정부는 정말로 용하게도 꼬박꼬박 빚을 잘도 갚아왔다.
“조만간 모라토리엄 정도는 선언할지도 모르죠.”
중국이 이걸 갚든 말든 어느 쪽이든 미국엔 이득이었다. 갚으면 예산이었고, 갚지 못한다면 당분간은 제기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일 터이니 말이다. 게다가 모라토리엄이나 파산선언을 했다고 해서 갚지 않아도 될 만큼 미국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거 서류상으로는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어떤 구역은 시범적으로 제초제 등의 약품을 쓰고 있고 어떤 구역은 수작업으로 일일이 제거하고 있다곤 하는데, 그게 수작업으로 어떻게 제거하고 있다는 건지는 도저히 알기 힘들었다.
“아, 마침 생방송으로 진행 중이군요.”
「약 4만 7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번 제모 작전에는 중동에서 찾아온 난민들이 대거 동원되었으며-.」
친 공화당 성향의 FOX의 뉴스였는데, 헬기에 탄 리포터가 실시간으로 뉴스를 전달하고 있었다. 수만 명의 사람이 칡 제거를 위해서 대대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다만 부시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화면 모퉁이에 잡힌 무언가였다.
“저거 뭐야?”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중심은 노랗고 밖으로 갈수록 시뻘겋다. 담배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양의 흰 연기를 내뿜는 이것의 이름은.
“불이야.”
산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