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78)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77화(178/377)
< 177화 >
현대의 전통 가옥이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돈 먹는 괴물과도 같아, 부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잔에는 진귀한 일본주가 가득 차올랐고, 벌레 우는 소리를 벗 삼아 시시오도시가 규칙적으로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가길 반복하며 청명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는가.
“돈이다!”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느낌을 살리라는 지시로 디자인된 이질적인 방에서 백발의 노인이 책상을 내리쳤다. 종심(從心)을 넘은 지는 오래였고 이제 여든과 아흔 사이에 있건만, 노인의 눈은 젊은이의 그것과도 같았다.
이 노인이야말로 일본 총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다.
“돈이야말로 지금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나카소네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자리에 양반다리(胡坐)를 하고 앉아서,
“그러나.”
시큰둥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그렇기에 나는 믿으면서도 돈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그러나 시큰둥한 표정 아래 새어 나오는 흥분은 차마 감추지 못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체를 달궈놓은 술기운이 나카소네의 가면에 미세한 틈을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아베 신조는 그 답을 알고 있음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아베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정계에서도, 나이로도 가장 높은 어르신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아베도 아베 나름대로 일궈온 정치 경력이 있기에 몇 마디 하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으나, 여기에서는 정석대로 행동하는 게 가장 안전했다.
상대가 평생 현역으로 불리는 요괴라면 더더욱.
끝끝내 꿋꿋이 입을 다물고 있는 아베의 모습은 이윽고 커다란 실망이 되어 나카소네의 눈을 어지럽혔다. 그러나 그 실망은 ‘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늙어서 세상이 흐리게 보인다지만, 사람 보는 눈까지 흐려지지는 않았다.
“겸손은 되었네, 교토 사람도 아니고. 아마 고이즈미 다음에는 자네겠지.”
거기까지 말하고 숨이 차올랐는지 술을 들이켰다. 마음이 정열적으로 불타오른다고 해서 몸까지 불타오르는 건 아니다. 그의 몸은 명백히 황혼기였고 죽음을 천천히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4명의 덴노를 섬겼으며, 2번의 세계대전을 겪었지. 한 번은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지만, 한 번은 총칼을 들고 직접 제국 해군으로 싸웠다네.”
적당량의 술은 몸의 고통을 잊게 만들고 사람을 쉬이 흥분하게 만드는 약이다. 약주(藥酒)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나카소네는 잔 안에 진수부에서의 추억을 담아 들이켰다.
“그때 일본과 나는 패전을 겪었네. 그때 참으로 많은 돈이 하루아침에 가치가 없어진 거야. 물론 곧 다시 회복하기는 했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베의 잔에 술을 채웠다. 아베는 그것만으로도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돈 좋지. 돈 좋아. 아마 내가 일본 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휘둘러본 사람일 거야.”
이때만큼은 노망난 노인네처럼 낄낄거렸다. 인생의 황금기가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며 향수를 자극했다. 그러나 이는 실로 찰나였다. 나카소네는 곧 현실로 돌아왔다.
“단, 그걸 지킬 힘이 있다면 말이지.”
“옳으신 말씀입니다.”
“아베여, 지금의 일본은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안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대답을 들은 나카소네의 눈에 이채가 스치듯 들었다가 사라졌다. 어쩌면 그가 자신의 평생 숙원을 이루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노래까지 만들어서 부르짖었던 헌법 개정 말이다.
그의 입은 철저히 부정을 말하고 있지만, 그의 성향은 이미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카소네로부터 물려받은 지금의 일본이 약해졌다는 걸 부정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이는 나카소네의 위신과도 어느 정도 직결되니 아베가 과감한 발언을 주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아베 신조는 확실히 과격파였다. 나카소네가 절대적으로 신용하는 눈이 아니더라도, 아베가 밟아온 그동안의 정치적 행보로 개헌에 꽤 많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나카소네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군. 이건 이쯤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지. 당의 개혁 조치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그러니까, 51석 확보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걸세. 간사장으로서.”
이 말을 들은 아베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충분히.”
나카소네는 속에서부터 원자폭탄처럼 터져 나오려는 폭소를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간신히 누그러뜨렸다. 숨기려는 듯 술을 한 잔 더 들이켰다. 아베라는 안주가 워낙 자극적이라서 그런지 목구멍으로 술을 넘길 때마다 매회 색다름이 있었으며, 술의 맛 또한 몇 번이고 즐겨도 질리지 않는 맛이었다.
“나쁘지 않지. 나쁘지 않아.”
도대체 뭐가 나쁘지 않다는 건지는 몰라도, 썩 좋은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언젠 교토 사람처럼 굴지 말라더니.’
그러나 속으로 투덜거려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카소네는 뭐가 좋은지 여전히 혼자서 실실 웃으며 낄낄거리고 있었고 아베는 술잔이 마르는 법이 없도록 처신해야만 했다.
“좋다! 자네라면 가능할 거야.”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눈으로 임하였다.
“요즘 자네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하다지?”
“그렇습니다.”
“호! 이건 순순히 인정하는군.”
나카소네는 실로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계처럼 부정만 하던 남자가 드디어 진정한 의미로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으니 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게 제가 간사장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니까요.”
‘정계라는 복마전에서 갈고 닦은 결과물인가. 아직 미숙해 보이는 부분이 여기저기 보이지만, 몇 년만 더 숙성시킨다면···.’
“지난 10년간 3선. 드디어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실로 흡족하군. 그러나 남발하지는 말게. 원래 인기몰이라는 건 유통기한이 있는 법이야.”
나카소네는 거품경제가 터져버린 지금이야 평가가 절하되고 있긴 하지만, 집권 당시에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총리였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온갖 정보 매체를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 적절히 활용했다. 그런 그가 하는 말은 절대로 가볍지 않았다. 같은 말이라도 담긴 뜻이 다르고, 같은 뜻이라고 심도가 달랐다. 그렇기에 짐작 가는 바가 있음에도 아베는 구태여 한 번 더 물어보기로 했다.
“유통기한이라 하심은?”
“자네 인기는 북풍(北風) 아닌가?”
“그 말대로입니다.”
아베는 부정하지 않았다. 중학생이라도 알 수 있을 만큼 너무나도 공공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중국. 미국 등으로 국민의 시선을 분산할 생각이기도 하고.”
“정치의 기본 아닙니까. 그건 다른 나라의 정치도 똑같을 터입니다. 당장 미국만 해도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으로 국민의 눈을 돌리고 있죠. 미국인 절반 이상이 백악관은 물론이거니와 상하원의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를 겁니다.”
“바로 그거야. 그 기본기에 유통기한이 있어. 내가 봤을 때, 자네는 장기 집권할 상이야. 한두 번이면 모를까. 계속해서 번 갈아가면서 쓰다간 자네는 저도 모르게 몰락할 거야.”
아베의 인기는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멀쩡한 민간인 다섯을 납치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동안 일본의 반환 의사를 무시해온 북한의 태도에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정말로 감정에 기대 분노한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 공공연하게 북한에 대한 강경책을 여러 번 설파하였고, 이는 북한에 고이즈미 총리와 직접 북한에 방문하여 그 다섯 인질을 해방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웬만한 중견 의원조차 누리지 못할 대단한 인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단단한 기반은 있었으나 뛰어오를 발판은 없었던 아베에게 이는 단순히 발판 정도가 아니라, 트램펄린 수준의 도약력을 제공했다.
그 도약력으로 고이즈미 총리의 신임을 샀다. 신임보다는 서로 이해타산이 맞아들어갔다는 표현이 맞지만, 본디 정치라는 건 이해타산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애당초 신임을 좀 샀다고 고작 3선 의원이 간사장을 맡는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이는 아베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의원들에게 있어서도 실로 의외였다.
사실 겉으로는 의연한 척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고작 3선짜리 의원이 간사장이라니. 어쨌든 경력이 짧으니 짧은 만큼 그 거리감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정치적 무기가 필요했다. 지금은 그게 바로 북한이었다. ‘북한 개새끼!’만 외치면 인기에 절로 살이 불어나니, 북한이란 정치의 명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크하핫! 그건 당연히 자네가 풀어야 할 숙제지.”
웬 노인네가 그렇게도 힘이 좋은지 당차게 웃어댔다. 나이도 80이 넘으면 뼈가 부러질지도 몰라서 크게 웃는 행위 자체를 삼간다던데, 이 노인네는 부러져도 좋다는 건지 부러질 염려가 없다는 건지 아베가 무안해질 정도로 그저 계속해서 웃었다.
“알겠습니다. 전 총리대신의 고견 감사했습니다.”
아베는 마지막 잔을 들이켰다. 뜨거운 기운이 돌기 시작한 모양인지, 아니면 정치적 토론 때문인지. 그것조차 아니면 둘 다인지 알 수는 없으나,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베는 달아오른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직접 바래다줄까?”
그 말을 들은 아베는 농담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식겁했다. 젊은 의원 따위가 여든이 넘는 나카소네를 움직인다니, 사회적으로 규탄을 받아도 모자를 일이었다. 취기가 한 번에 사라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카소네는 걸렸다는 듯 다시 한번 낄낄거렸다.
“멀리 안 나간다네.”
아베는 나카소네의 집에서 나와 자신의 차에 탔다. 그리고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갑자기 불러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술을 마시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일거리가 잔뜩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이라.’
아베는 나카소네와 나눈 대화를 몇 번이나 곱씹었다. 그 대화에서 아직은 발견할 수 있는 게 더는 없는 것 같았다. 이는 본인이 미숙했기도 했기도 했으나, 그의 진심을 알기 어려운 탓도 있었다.
‘좋다! 나쁘지 않지. 나쁘지 않아! 라니, 진심으로 모르겠군.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지?’
다만 대화에 숨겨진 뜻과는 별개로 아베 개인적으로도 수확은 있었다. 그 거물이 자신을 고이즈미 다음이라고 평가했다. 도대체 자신에게서 무엇을 보고 고이즈미 다음 총리라고 평가한 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입에 발린 말이던 놀리려고 한 말이던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늘따라 젊은 날에 끊었던 담배가 자꾸 손에 잡히려고 했다. 사실 담배도 담배였지만, 아베는 술도 그리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판단으로 마신 것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밟히는 게 있었다.
“중동과 아프리카인가.”
과거 고이즈미 내각은 미국에 아프가니스탄전 파병 의사를 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나머지는 EU가 독식했으니, 덕분에 중동에서 일본이 힘쓰기는 실로 요원해졌다. 아프리카도 그렇다. 그곳은 별로 관여되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안정만 된다면 상당히 매력적인 곳임은 틀림이 없었다.
“예?”
아베의 혼잣말에 운전기사가 반응했다.
“아무것도 아닐세.”
아베는 오늘 대화에서 단 한 가지 결론을 냈다.
정치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거다.
“집으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