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8)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7화(18/377)
< 17편 >
“웬만한 황무지보다 심한데.”
아프간에서는 보기 힘든 인종들이 차를 타고 달리고 그나마 주요 도로라고 할 수 있는 곳을 달리고 있었다. 차는 현지에서도 보기 쉬운 도요타 계열의 트럭이었는데, 사실 처음에는 아프간 사람들은 평생을 일에 종사해도 쳐다볼 수 없는 비싼 독일산 외제차를 타려다가. ‘강도질 당하는 은밀한 취향이 있다면 마음대로 해보쇼!’라는 군사 고문단의 비꼼을 듣고 현지에서 적당한 중고차를 구매하고 시트에 쿠션을 하나 더 덧대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트럭 뒤에는 한참 기초 군사 훈련을 받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정규군 몇 명과 미군이 한 명이 동행했는데, 인종만 다를 뿐 사용하는 무기나 장비는 미군의 장비인지라 군복에 붙어있는 패치를 일일이 보지 않으면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황무지가 차라리 나았다. 적어도 황무지는 평탄하기라도 하지 않은가. 나라 전체가 어딜 가나 산이었고 그나마 평탄한 곳이 있긴 한데, 거기가 바로 사막이었다. 사막도 굴곡이 심하다, 심하다 노래를 부르지만, 적어도 진짜 산보다 심하지는 않지 않은가. 당장 이 나라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수도인 카불만 해도 해발 1,791m에 있었다.
산, 산. 그리고 산. 하도 가용 면적이 개판이다 보니까 최초에 기획할 때는 휘황찬란한 마천루라도 지어볼까 싶었지만, 생활 수준 개선을 위한 정수시설이나, GDP 개선을 위한 공장 하나가 아쉬웠다.
“뭐, 사실 마천루보다는 공장이 더 구미가 당기긴 하는데.”
대금을 지급해주는 곳이 아프가니스탄 신정부이긴 했지만, 결국 그 돈은 미국에서 보내준 원조금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하청업체들이면 몰라도 그들이 공사비를 떼먹힐 일은 만무했다. 다만 신정부에서도 머리 깨나 굴러가는 놈이 있었는지, 하청에 제한을 두어 2번 이상 내려가지 못하도록 규제했기 때문에 이곳에 투자하는 것이 적자인지 흑자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요컨대 꼭 여기다 투자하지 않아도 다른 곳에 투자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이곳이 안정적이니까. 선행투자로 생각해도 나쁘지는 않은데.”
앞으로 이곳은 친미 국가가 될 예정이었고 아마 이번 기회에 기반을 잘 다져 놓는다면, 그때는 정말로 마천루를 수주받게 될지도 몰랐다. 거기다 카불은 기본적으로 동서양 문명의 십자로였기 때문에 관광지로서 아주 적합했다. 몇몇 유적은 테마파크로 바꾸게 될지도 모르지. 그것까지 생각하면 미리 아프가니스탄 재건사업에 투자하는 일은 아주 탁월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일단은 카불만 어떻게 해보는 게 좋겠어. 일단 카불로 돌아갑시다.”
시간에는 여유가 있었다.
* * *
“시간에 여유가 없어! 빨리 움직여!”
탈레반이 꼭 카불에 모여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본래대로라면 카불이 미군에게 격멸될 경우 여느 때와 같이 무자헤딘의 일환으로 게릴라 전을 시작할 요량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체에 얇게 탈레반 지지자들과 민병대를 뿌려놓았었다. 문제가 있다면, 충격과 공포가 그들의 무의식에 심어져 버렸으며, 이제 카불을 지키는 것은 미군이 아니라 신정부의 군대였다.
탈레반 정권기에 너무나도 가혹했던 세월을 보낸 주민들이 그나마 배는 곪지 않았던 옛날을 그리워하며 대부분 왕정 복고파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폐위된 옛 왕이 왕좌를 대통령이라는 형태로 되찾아 신병 모집을 하니 반백의 노병들이 일제히 몰려들었고 무자헤딘의 사령관이었던 압둘 하크가 신정부의 사령관을 자처하니 보급해줄 총기가 모자랄 정도로 사람이 몰렸는데, 그 모습이 가히 이미 꽉 찬 물컵에 드럼통으로 물을 때려 박는 듯했다.
물론 숭고한 이념만으로 군에 들어간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당장 배 곪지 않을 수 있고 작은 상처가 나더라도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입대를 선택한 이들도 충분히 있었다. 어쨌거나 영양 상태가 점차 개선되어 제대로 된 신체조건이 갖춰지고 선진국의 무기로 정규 훈련을 받은 정규군은 게릴라들을 점차 격멸하기 시작했다.
게릴라의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이자 치명적인 점이 무엇이겠는가? 침략자들에게 적의를 품은 현지민들 아니겠는가? 현지민의 협력이 없으면 게릴라의 가장 기초적인 전술인 테러나 잠복조차 힘들었다. 일단 게릴라도 사람인지라 밥은 먹어야 움직일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게 다 저 빌어먹을 미군 때문이다.”
2시간 27분? 지랄하고 자빠졌네. 카불 제압에 2시간 남짓이 걸린 것은 사실이지만, 어찌 수도만 제압하고 끝이라고 선언할 수 있단 말인가! 저딴 건 전형적인 프로파간다형 선전일 뿐이었다. 당연히 지금도 알라를 위한 국지적인 싸움이 아프가니스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상대가 미국이 아니라 신정부의 군일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군의 싸움은 끝났다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탈레반의 귀에는 개소리로 들리긴 매한가지였다.
“아프가니스탄이여.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다오.”
비통한 심정으로 저 멀리 카불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는 이 사내는 탈레반 주요 간부쯤 되는 인물이었다. 조국이 서방세계에 침탈당하고 이슬람 억압의 시대가 찾아왔으니. 이 어찌하여 통탄을 금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나 그럴 시간이 부족했다. 한 명이라도 더 국경 밖으로 동지들을 내보내어 무자헤딘을 이어가야 했다.
알 카에다는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큰 별을 알라의 곁으로 떠나보내야 했지만, 다르게 말하면 고작 지도자가 죽었을 뿐이었기 때문에 ‘머리’만 바꿀 수 있다면 그 기능을 온전히 보존하여 무자헤딘을 이어갈 수 있었다.
탈레반 또한 마찬가지였다. 잔당이라고 할 만큼 세가 줄기는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아프가니스탄 안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당장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까지만 가면 그곳에서는 북부 동맹을 상대로 성전을 이어가고 있는 동포들이 있었다.
“나는 다시 돌아오리라!”
* * *
“이제 파하드는 돌아오지 않겠죠?”
차남인 하산이 항상 친구인 파하드와 가지고 놀던 공을 매만지고 있었다. 공기가 빠지고 가죽이 부르터 반쯤 걸레의 형상을 띈 축구공은 하산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것은 하산의 것이 아니었다. 파하드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면서 주고 간 선물이었다.
파하드와 하산은 매일 매일 이 축구공을 가지고 놀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집이 가난하다고 하산의 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언젠가는 축구선수가 되어 집을 부양하고 싶었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하산의 부모님이었다!
하산은 축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하루 죈 종일 공만 차야 하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시발. 진심으로 도대체 누가 365일 24시간 공만 차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하산이 요즘 들어 재미를 붙인 건 자동차였다. 하산은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 있는 자동차를 신문지에 열심히 그렸다. 때로는 신문지에 있는 자동차의 모습을 바로 옆면에 스케치해보기도 했다. 그 안의 작동 방식을 상상해보기도 했고 때로는 친한 아저씨한테 묻기도 해봤다. 그 아저씨의 말대로라면 하산은 재능이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축구에도 그만한 재능이 있었다는 거지만. 단순히 동내라면 그 누구도 하산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달리면 모두가 뒤로 처졌고 발을 굴리면 골대 안으로 축구공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어느새 자신도 흥이 생겨 유명한 축구선수의 세리머니를 따라 하곤 했다. 그렇기에 부모님의 생각이 썩 틀리지만은 않았다는 점이 한층 더 질이 나빴다.
그건 그거고 취미랑 일은 영역이 다르지 않나.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매일 먹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차 차이보다는 시원한 콜라가 마시고 싶었다. 부모님은 젊은이들은 전통을 잊어가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지만, 전통이 젊은 세대에서 사라지고 잊혀 가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적어도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전통이라면 없어져 마땅해야 했다.
“너도 가고 싶으냐?”
“아니요. 아버지.”
“그래, 옳은 선택이다.”
옳은 선택. 그것참 듣기 좋은 소리다. 하산은 이제 막 12살에 접어든 소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마냥 거부할 수만도 없었다.
아버지가 굶는 날에도 하산은 배 터지도록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며, 어디서 모셔왔는지 모를 백인 의사에게 백신까지 접종받았다. 백신이 뭔지는 잘 이해할 수 없었으나 살고 싶으면 입을 꼭 다물고 있으라 하여 그리하고 살고 있다가 우연찮은 기회에 백신이 뭔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탈레반 귀에 들어가면 총 맞아 죽겠다 싶었다.
어쨌거나 부모님들은 마냥 강요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하산에게 베풀고 계셨다.
하산을 기대치라는 올가미로 더 옥죄는 인물은 비단 그 자상하신 부모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남인 에마드는 공장에서 버는 돈을 꼬박꼬박 모아서 못난 동생에게 비싼 축구화를 사주었다. 안타깝게도 축구화는 친구들에게 자랑할 사이도 없이 온갖 검댕을 칠해 싸구려 신발로 위장해야만 했다.
총 맞고 빼앗기기 싫으면 파키스탄에서는 상식이었다. 참으로 총 맞을 일이 많은 동네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기에서 안주하고 있을 수가 없구나. 탈레반의 동향이 심상치 않단다. 너도 슬슬 준비해두렴.”
그 말은 집을 옮긴다는 소리였다. 하산은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3번이나 이사했다. 마지막으로 했던 이사는 어린 하산의 기억에도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그때도 많은 친구가 뿔뿔이 흩어졌다가 종종 이 도시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곤 했는데 파하드도 그중 하나였다. 다만 이번에는 국내에서 국외로 나갈 뿐이지. 자기 보물이었던 축구공까지 주고 간 빌어먹게도 착한 친구였는데. 이제 도시에 이어서 나라까지 갈렸으니 만나기는 글렀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이라크로 간단다. 이라크에 네 삼촌이 자리를 잡았거든.”
“이라크?”
최소한 들어본 적은 있는 나라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신문이나, 어른들이 하시는 소리를 들어보면 썩 좋은 나라는 아니었다. 적어도 파키스탄보다는 안전하다고 듣긴 했다만.
“이라크라.”
삼촌이 터를 잡고 훌륭하신 부모님이 정했다면, 그곳은 분명 나쁜 곳은 아니리라.
* * *
이라크는 쓰레기 같은 나라다. 시궁창도 이런 시궁창이 없을 거다. 시궁창에도 급이 있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나라 타이틀은 따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외국인에게 ‘난 이라크인이다! 내가 바로 그 이라크에서 나고 자란 토종 이라크인이라고!’라면서 자랑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사거리에는 주인 없는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2층에는 그렇지 않아도 빛이 들어오는지 들어오지 않는지 헷갈릴 정도로 굵직한 창문이 있었는데, 그 창문에는 두꺼운 암막 커튼까지 한층 더 쳐져 있어 ‘여기에 무언가 있소!’라고 온몸으로 광고하고 있었다.
그것과는 별도로 그 암실은 사제로 설계한 것 치고는 방음 성능이 뛰어났는데, 그 방에는 몇몇 사람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다만 무단점거자들이 이 건물 컨샙에 감동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교환되고 있는 의견들이 다른 사람들이 듣기라도 하는 날에는 고문실에서 정모 파티를 해야 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거론하고 있는 것은 ‘이라크 혁명’에 대해서였다.
그들의 공통점은 인생의 일부분을 외국에서 보냈다는 점에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유학파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형성된 일종의 혁명 네트워크라고 봐도 좋았다. 그래서인지 중동에서는 매우 드물게도 종교색이 몹시 희박해진 사람들이었다. 다른 말로는 그들을 배교자라고 불렀고 그들 또한 서로를 배교자라고 불렀다.
물론 몇 명은 그 배교자라는 단어를 몹시 꺼렸다. 직설적으로 한 사람은 ‘무슨 사춘기 걸린 애새끼가 만든 단어도 아니고 이게 뭐람.’이라며 투덜거렸지만, 이미 정해진 다음이었다.
“그럼 나부터.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 앞으로 몇 년 안에 큰일이 벌어질 거야. 저번에는 구공산권의 무기를 대량으로 밀수하는 걸 직접 목격했어.”
“루트가 너무 많아. 그 정보만으로는 어떤 나라인지 추측할 수 없어. 혹시 중국제 무기 아냐?”
“그것까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그건 AK였어.”
“중국에도 AK는 있어. 다시 알아봐. 요즘 들어 신식 소총으로 바꾼다고 하더라. 암시장에 물량이 나왔을지도 몰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95식 소총은 AK의 불법 복제품인 81식 소총을 대체하기에는 물량이 턱없이 부족했고 한동안은 현역으로 쓰일 예정이었다. 차라리 이라크의 불화를 원하는 ‘익명의 기부자’가 주고 갔다는 이야기가 더 현실성 있었다.
“저번에 출장 나간 이란에서 예상대로 동조자를 몇 명 찾을 수 있었어.”
“조직이 점점 더 커지는군. 슬슬 보안에도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니야?”
“언제까지고 서로 배교자라고만 부를레? 제대로 된 조직 이름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니야?”
“틀렸어.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름을 가지게 되면 오히려 보안에 불리해져. 게다가 당장 지금은 유명해져서 좋을 게 없어. 거기다가 우리 꼬리를 못 밟는 이유도 이렇게 외국에서 어쩌다 한 번씩 만나니까 걸리지 않는 거야.”
그랬다. 여기는 이란이었다. 사실 아예 서방권 국가에서 모이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될 수 있었지만, 거긴 아랍인이 여럿 모이면 특수팀을 파견해서 납치 감금할 국가들이었다. 국가가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언론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뿐이었다.
어쨌거나 다들 그의 말에 수긍했다. 사담 후세인에게 잡혀서 죽을 때까지 고문만 당하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그럼 다음은 나. 체첸 혁명군 잔당이 조지아로 유입되는 걸 봤어. 그들과 협력해보는 건 어떨까?”
“체첸? 그들이 우리를 먹었으면 먹었지, 우리가 그들을 이용할 수는 없을 거야.”
“아, 그렇기는 하네.”
“무엇보다. 그들의 방식은 너무 과격해. 거기다 독재 타도라는 우리의 방식과는 이념과는 전혀 다른 이념을 지지하고 있어. 그들이 지지하는 건 그냥 민족주의일 뿐이야.”
“다음은 나네. 저 멀리 옆 동네 아프가니스탄을 보고 이라크에 서방 민주주의 지지자와 과격한 혁명파가 늘어났어. 거기다 특히 브로커 쪽에서 변동이 있었는데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미 많은 사람이 빠져나갔어. 아마 순식간에 무너지는 탈레반 정권을 보고 지대공 미사일을 대량으로 구매하느라 식량 배급을 최대한 줄이고 세금을 7배로 올린 것 때문인 것 같아. 특히 집마다 군인들이 들이닥쳐서 연료를 전부 빼앗아간 게 컸어. 일시적이라고 주장하고는 있는데, 얼마나 갈지 누가 알겠어.”
초거대 세력인 알 카에다의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과 한 국가의 지배 정권인 탈레반이 삽시간에 붕괴하는 것을 본 사담 후세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는 소문은 이미 거리에 파다했다. 특히 후세인이 더 기겁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조지 H. W. 부시. 즉, 현 미합중국의 대통령의 아버지를 암살을 시도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자비한 보복을 본 이후로 이라크는 군비 증강을 위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징병 제한을 대폭 낮추고 더 많은 중화기와 벙커를 제작하고 있었다. 문제는 정작 늘리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정비가 제대로 되질 않아 총이 불량이거나 포탑이 휜 경우가 부기지수였다.
“그건 위험한데.”
“위험하지.”
이라크는 지금 사담 후세인이 근 22년간 독재를 이어가고 있었다. 국회 연설 도중에도 작은 의심만으로 의원을 사살하고 기립박수를 받는 인간이 토끼 때가 하는 평화 시위를 보고 사냥을 나서지 않을 턱이 없었다.
아니, 사실 그동안 사냥 시즌이 되지 않았다고 따분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모두가 확신하고 있었다. 아마 실제로 시위가 나면 하루가 채 되지 않아 느릿하고 하품 나오는 경찰 진압에서 남녀노소 모두가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유혈 진압이 시작될 것이 틀림이 없었다!
무작정 사담 후세인의 치세만을 보고 확정하는 게 아니었다. 이미 1991년 당시 시아파 봉기에서 무력 진압으로 10만 명이나 개죽음을. 아니, 개보다도 못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 꼴을 2번이나 보라고? 그것만큼은 절대로 사양이었다.
“미국이나 유럽 쪽은 어때? 우리가 도와달라고 하면 과연 순순히 도와줄까?”
“글쎄. 도와준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동서고금을 따져봐도 외세를 끌어들여서 좋은 꼴 본 역사가 없는데.”
“그건 그렇지. 하지만 원조만이라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원조? 무슨 원조? 뭐 설마 무력항쟁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필요하다면.”
그 순간 생기가 반쯤 빠져나간 눈에 불이 들어왔다.
“이봐 호샹! 무력항쟁이 나쁘다는 게 아니야! 하지만!”
“우선 첫 번째로, 이름 부르지 마. 두 번째로, 나는 책임지라고 한다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어.”
“이런 개새끼가! 네깟 목숨 하나로 퉁 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네 목숨이 두 사람 이상 몫이라도 해?”
“그럼 언제까지고 저 사담 좆같은 새끼의 공포정치에 놀아나야 하는 건데? 우리가 선동하지 않아도 터질 시위고 시위가 터지면 죽을 시민들이야! 그렇다면 차라리 그들의 손에 무기 하나라도 쥐여줘서 반항이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총까지 들면 그건 쿠데타야! 국제사회에서도 큰소리 내기 힘들어진다고! 그걸 빌미로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갈 수도 있어! 희생당할 10만 명이 100만 명으로 늘어날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쿠데타를 해주마! 아프가니스탄을 봐! 진짜로 무언가 바뀌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력이 필요해! 평화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그들은 미군이었지! 미군! 시민이 아니라 세계 제일 최첨단 정규군! 민병대로 뭘 할 수 있는데!?”
“젠장! 빌어먹을! 그럼 이렇게 가만히 있으라는 거야? 그들이 개죽음을 당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멍청하게 이렇게 자료나 수집하고 있어야 하는 거냐고!”
“모든 걸 격하게 감정에 모든 걸 맡기는 놈이 잘도 하겠다! 자료 수집이 헛된 일이라고 생각되면 빠지던가! 우리는 착실하게 중동의 동향을 그 누구보다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기회를 기다리자는 것뿐이잖아!”
“이런 매국노 새끼! 너 때문에 머잖아 봉기한 시민들이 전부 죽을 거야! 이 이상의 기회는 없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 * *
“그건 바로 제가 미합중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재해에 뛰어드는 여러분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는 것을! 보십시오! 지금 미합중국은 더 많은 영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워, 사람 참 많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엉클 샘이 군인을 모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군인이 아니라 소방관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소방 관련 인원 및 예산을 확충하는 법안을 의회에 건의할 것을 여기서 맹세합니다!”
무너진 세계무역센터를 배경으로 추모식이 거행되고 난 뒤. 그 자리에서 바로 소방인력 확충과 예산 확보를 공론화시켰다. 애당초 진행할 예정이었기도 했고 9.11이 일어났으니 국외적으로도, 국내적으로 무언가 보여주긴 해야만 했다.
국외를 보여줬으니, 이젠 국내. 즉, 내정을 다질 차례였다.
미국의 소방서. 그중에서도 시골이라고 할만한 지역은 대부분 자원봉사자가 운용하는 의용소방대가 소방 조합을 수립해 운용하고 있었는데, 소방 조합이란 게 결국은 조직이다 보니까 예산으로 돌아가는 순리를 그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회비를 내지 않은 이들에게 필요한 이상으로 가혹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회비가 밀린 집에 불이 나자 일단 신속하게 소방관이 도착했지만, 집주인이 불판 위에서 머리를 박아가며 애걸복걸해도 ‘어림도 없지!’라면서 불구경 삼매경인 경우가 아주 일상다반사였다. 강대국인 주제에 땅만 드럽게 넓어서 미국의 소방 조건은 타국과 비교하면 몹시 열악했다.
물론 타국에 비하면 그렇다는 거고. 실질적으로 규모나 예산 면에서는 언제나 1위를 고수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걸로도 커버가 안될 정도로 돈이 부족해서 그렇지.
어쨌거나 여기저기에서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고, 괜히 머쓱해질 정도로 모두가 목소리 높여 내 이름을 외쳤다.
“좋아. 다음 일정은 뭐지?”
조지 부시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 캐딜락 원의 시트가 익숙해지고 있었다. 처음 이 차에 탔을 때는 정말로 어떻게 되나 싶을 정도로 불안했지만, 지금은 그 불안은 거의 저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처럼 씻은 듯이 소멸해 있었다. 국지전은 일어나고 있겠지만, 소수의 군사고문단을 제외하고 다신 미군이 저 땅을 밟는 일은 없으리라. 불안이 사라진 이유는 역사가 내가 이끄는 방향으로 순탄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확신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언제 나비가 돌풍을 일으켜 내가 쥐고 있는 역사의 고삐를 풀어버릴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너무 오만해지거나 확신을 가져 나 스스로 푸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조지 W. 부시의 임기는 고작 8년. 혹시 4년일지도 모르지만, 8년 정도라면 정신만 바짝 차리고 네오콘 같은 짓만 안 해도 세계는 아주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리라.
‘뭐, 그렇지 않더라도….’
만약 세계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그 중심에는 언제나 미국이 우뚝 서 있을 것이었다. 그게 선역이든 악역이든 간에 말이다.
미국이 움직이면 세계도 움직인다.
그리고 그 미국은 조지 W. 부시. 바로 내가 움직이는 미국일지니.
나의 힘, 미합중국의 빛을 두려워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