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88)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87화(188/377)
< 187화 >
중국에서 옮겨간 신종 병균이 가장 먼저 창궐한 것은 ‘제3세계 국가’들이었다. 충분히 발달한 선박과 비행기는 지구상 고립된 문명이 사라지게 했고, 남아메리카 아마존에서 벌목한 나무가 프랑스에서 가구로 가공되어 아프가니스탄의 한 가정에서 쓰일 수 있게 되었다.
병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 발병한 신종 병 중 하나인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은 급속도로 인류를 잠식해가고 있었다. 1, 2년 사이에 박멸되리라 예상했던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퍼져 스스로 진화하고 형태를 변화해갔다. 전문가들은 좀 다르게 불렀지만, 언론이나 일반인들은 전부 이렇게 불렀다.
“Super SARS.”
비서실장은 제법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담담한 입과는 다르게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슈퍼 사스라, 그것참 무시무시한 이름이군.”
“이 바이러스 때문에 리가가 폐쇄되었습니다.”
“리가?”
“라트비아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입니다.”
라트비아는 북쪽으로는 발트해와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국경에 접해 있는 나라였는데, 그중에서도 리가는 발트해에 붙어 있는 약 7~80만 정도의 인구를 자랑하는 항구도시이자 무역도시다. 발트 3국의 도시 중에서는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도시가 폐쇄되었다는 건 실상 라트비아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 그동안 병이 퍼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
“쉬이 기존 사스와 혼동되었으며, 잠복기가 길어서 잡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최근 대규모 취업비자를 발행한 적이 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을지.”
리가는 소련 붕괴 이후로 갖은 이유로 인구가 점차 줄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중동이 유럽과 더욱이 긴밀하게 변하면서, 몇몇 특정 국가에서 노동력을 싼값에 충당할 수 있게 되었고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 취업비자를 발행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중동이다. 이란, 사우디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몇몇 중동의 국가는 사정이 나았다. 나라가 안정되고 물가가 안정된 뒤로부터 현지인의 인건비는 몇몇 기업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그런 기업들은 해외에서 노동력을 들여왔는데, 보통은 중국이나 베트남 아프리카에서 받아왔다. 여기서 한 번 교차 감염이 일어나게 된다. 중동에서 퍼지기 시작한 감염은 다른 중동 국가로 퍼졌고, 그 퍼진 감염을 라트비아가 다시 수입하게 되었다.
“우리 쪽으로 들어온 노동자들은 멀쩡한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래 입국 심사부터 엄격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벌써 조사 중입니다. 비용은 좀 들겠지만. 리가처럼 폐쇄해야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비용을 논할 때 급격하게 표정이 어두워지긴 했지만, 곧 회복했다. 이는 어떤 사태라도 돈다발로 후려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이나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했다.
“보통 영화에서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다가 삽시간에 무너지던데. 만전을 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님?”
“농담일세. 농담. 그래도 만전을 기하라는 건 진담이야.”
부시는 양면지에 몇 번 끄적이면서 방역에 들어갈 예산 견적을 내보더니,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 신나라. 예산이 남아나질 않겠군.”
“국방 예산을 약간 삭감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는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었다. 국방이 진실로 무너지는 순간은 사람을 지켜야 할 국방이 국방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보다 국방을 우선시되는 순간이다. 이것을 총력전이라고 부르고 다르게는 인민을 갈아 넣는다고 표현한다. 그렇기에 때때로는 상황에 따라 국방 예산 감축이 필요했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부시는 이를 단칼에 부정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본디 불어야 했을 군축의 바람은 중동으로 인해서 불지 않았다. 도리어 군축은커녕 점점 덩치를 불리고 있었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의 군축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물론 무슨 일이 있어도 유럽이 갑자기 미국을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더는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남지는 못할 터였다.
“그리고 군축을 해야 할 정도로 몰리지도 않았어. 도리어 이번 기회에 쓸데없이 나가는 예산을 바로 잡았지.”
거기까지 말하고 부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백신은?”
“이제 막 연구에 들어간 참입니다.”
“인질은?”
“아프리카로 가던 한 기는 선처를 조건으로 항복하고 서이라크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한 기는 스리랑카 인근 해역에서 불시착했습니다.”
“아, 효과가 있긴 있었나 보군.”
폭격에 쓰인 돈이 헛되이 쓰지 않았다는 말이렷다.
“전부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부시 앞에 놓인 모든 서류에는 어김없이 대통령 사인이 들어갔다.
시간은 흐르고, 리가는 완전히 폐쇄되었다.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는 최대한 협조를 약속했으나, 그들도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다. 대도시에 병이 창궐하는 건 가까스로 막았으나, 그렇다고 확진자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스 자체는 확진자 자체가 1만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적었으나, 슈퍼 사스는 달랐다. 벌써 전 세계적으로 3만의 확진자가 나타났으며, 그 감염성은 사스와는 비교를 불허했다.
쉽게 말해서 에스토니아나, 리투아니아나 자기 코가 석 자라는 소리였다.
리가는 거대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장벽 안에 갇혔으며, 강철로 만들어진 관문마다 전차를 동반한 군인들이 배치되었다. 전차라고 해도 소련 시절에 쓰던 T-55 3대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들에게는 충분한 위협이 되었다.
리가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다우가바 강에는 징발한 선박에 기관총을 거치한 순찰선이나 해안경비대의 군함이 돌아다녔고, 리가에 갇힌 모든 국민은 만성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도시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왔고, 생존자들은 굶주렸다.
리가는 무정부 상태에 돌입했다.
달그락, 달그락.
가방에 걸린 스테인리스와 양철 냄비가 서로 맞닿으며 사람이 없어진 삭막한 거리에 울려 펴졌다. 거리는 인적이 없긴 해도 어딘가에는 반드시 사람이 숨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어버렸을 뿐이었다.
아마 처음 일주일간은 괜찮았던 것 같다. 같은 아파트 동 사람들끼리 물자가 부족하면 나눠주기도 했고 음식을 나누기도 했었다.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머잖아 깨지고 말았다.
전부 ‘피클’이 없어서다.
오이를 절인 피클 맞다.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단언컨대 피클 내놓으라고 식칼 휘두르던 옆집 아줌마다. 식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다 제풀에 지쳐 칼을 놓치고 창백해져서 도망갔다.
“고든, 정말로 웃기지 않나?”
케이크도 아니고 치즈도 아니고 심지어는 베이컨 통조림이나 정어리 통조림 때문도 아니고 피클이다. 피클. 그깟 피클 한 병 탓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니.
“뭐? 무슨 소리야 고든! 잘 들어! 나는 너를 피클 때문에 버리지 않을 거야! 무엇보다 너는 뭘 먹지도 못하잖아!”
그는 호통치며 지푸라기 인형의 목을 졸랐다. 그런데 힘이 너무 들어간 모양인지, 아니면 이제 갈 때가 된 모양인지는 모르겠으나 지푸라기 인형의 목이 떨어져 나가고 말이다.
“안돼 고든! 빌어먹을! 내가 무슨 짓을!”
떨어져 나간 머리와 몸을 손으로 어떻게 붙여보려다가, 전에 구해둔 합성수지가 떨어졌음을 깨닫곤 잠시 신음을 흘리다가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강으로 던져버렸다.
“아, 괜찮아. 다음 고든은 더 잘해주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곤 리엘루페 강 너머를 보았다. 그곳에는 빛이 찬란했다. 다리가 폐쇄된 지금은 갈 수도 없지만, 저 멀리 보이는 슈퍼마켓은 아직도 분주하게 물건을 퍼 나르고 있었다. 그마저도 쌍안경을 사용해야 보이긴 하지만. 강 너머는 그야말로 별세계였다.
이 저주받은 도시 리가에 발목이 잡힌 모든 사람이 굶는 건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굶는 사람만 굶는다.
극한 상황에 몰린 사람들은 진짜 뭐든지 해야만 했다.
공권력이 무의미하게 변해버린 이 리가를 지배하고 있는 그룹은 크게 다섯으로 나뉘었는데, 가장 첫 번째는 공권력이었다.
공권력이 무의미하게 변해버렸다면서, 세력으로는 존재하다니, 이 무슨 모순되는 소리냐고? 엄밀히 말하면 공권력을 행사하는 집단. 즉, 경찰은 아직 존재했으나 소수의 경찰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공권력은 있으나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이들은 도시 바깥에서 들어오는 보급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 폐쇄된 도시에서 유일하게 밖과 안을 드나들 수 있는 자유인이기도 했다.
두 세력은 갱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난폭했다. 하나는 그들 스스로 ‘리가 민병대’라고 불렀고, 동시에 이러한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존재했던 불건전한 토착 세력이었다. 경찰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총기를 가지고 있는 세력이기도 했다. 항구도시인지라, 불법으로 총기 구하기가 생각 외로 손쉬웠기 때문이다. 이들은 라트비아인 말고도 러시아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또 하나는 전부 외국인들이었는데, 대부분이 중동 계열이었다. 리가가 폐쇄된 근원이자 원인이었기에, 이들은 이들 나름대로 어떻게든 뭉쳐야 산다고 믿었고 사태 초기에 하나의 민족주의 단체로서 거듭났다. 일단 조직도 자체는 노조의 형태를 하고 있었고 그들 스스로 ‘중동 연합’이라고 불렀다.
민병대와 중동 연합은 주로 보호비라는 명목으로 돈과 물자를 수금하고 다녔으며, 리가 민병대는 서부를 중동 연합은 동부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어째서인지 이 두 세력의 활동 영역이 겹치지는 않았다.
또 하나는 생존주의자 집단이었다. 이들은 이전부터 생존주의에 크나큰 관심을 가지고 평소에 틈틈이 물자를 비축해뒀으며, 온갖 창칼은 물론 사냥용 컴파운드 보우 등의 냉병기로 무장했다. 사태 초기에 온갖 물품을 사재기한 이들이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세력이라는 것이 생기고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금세 하나로 통일되었다.
마지막으로는 개인적으로 생존하는 이들이었다. 지금 지푸라기 인형 고든에게 말을 걸다가 던져버린 ‘아르투르스 레비츠’처럼 말이다. 이들은 단순하게 ‘생존자’라고 불렸고, ‘거지’라고도 불렸고, ‘약탈자’라고도 불렀다. 그래도 보통은 생존자라고 불렀다.
“이제 정어리랑 콩은 지긋지긋해. 사람은 잡식 동물이란 말이야. 고기가 필요해.”
베이컨 통조림은 사태 한 달 만에 사라졌고, 어쩌다 가끔 접할 수 있는 보급품은 레토르트 식품투성이였다. 개와 고양이는 이미 누군가의 뱃속에 들어간 지 오래였고, 사람이 사람을 먹을 정도는 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때 유네스코에 등록될 정도로 아름다웠던 이 구시가지 절반은 불타서 사라졌고, 그만큼 물자도 더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줄 서서 배급을 받자니, 함부로 몸을 노출했다간 민병대한테 총 맞고 뒤지게 생겼다. 그 주변에는 약탈자들이 쫙 깔려 있었다. 배급을 받아도 그 자리에서 다 먹어 치우지 않으면 어김없이 약탈을 당했다. 이곳에서는 약자는 어떠한 세력의 도움 없이는 살아 있을 수가 없었다. 역설적으로 혼자서 다니는 사람은 강자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힘보다는 돈이 더 강해진 현대에 강자니, 약자니 하는 게 우습기는 했지만, 돈이 절대적 안전을 보장하지 않게 된 리가에서는 힘이 우선이었다.
‘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고기를 먹겠어.’
크리스마스까지는 단 삼일. 아르투르스 레비츠는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