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8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88화(189/377)
< 188화 >
리가에서 크리스마스의 시작을 알린 것은 정각을 알리는 공영 방송도 아니고, 상업 중흥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아니었다.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몇몇 구역에는 전기가 더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젠 생존자가 되어버린 핵심 인프라나 공공시설에 근무했던 공무원들이 말하길 전선이나 변압기 부품을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했다. 수도관은 아직 멀쩡했으나, 이것도 전기처럼 언제까지고 멀쩡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더도 덜도 말고 속된 말로 ‘씹창’이 났다. 국가, 인종을 불문하고 어딘가에 모이기를 지양했고 크리스마스임에도 통상의 비수기보다도 호텔이나 모텔 예약률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무정부 상태로 돌입한 리가의 거리나 눈부실 정도로 번영하고 있는 뉴욕의 거리나 거기서 거기라면 믿어지는가?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다.
종교적인 거룩함도 가정적인 평온함도 아닌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만이 크리스마스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리가에서 크리스마스의 시작을 알린 게 뭐냐고?
그건 00시에 딱 맞춰 터진 리가 도심부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발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난 폭발인지는 건물 자체가 무너지는 바람에 나중에도 자세하게 밝힐 수는 없었지만, 관측된 폭발의 크기로 미루어보아 가스 폭발이라는 점만은 확실하게 추측이 가능했다.
폭발이 거대하긴 했으나,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했던가? 폭발 자체는 허풍선이와 같아서 고작 건물 한두 채 불을 붙이는 것으로 끝이 났다. 구체적으로는 소방차가 출동해서 물 몇 번 뿌려주면 끝날 수준에 불과했다.
다만 그걸 끌 수 있는 사람과 장비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사람들은 고독 제조 항아리나 다름없게 변해버린 리가 안에서 투쟁에 투쟁을 거듭 중이었고, 소방 장비는 생존을 위해 해체되거나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였다. 사람들이 제 살길을 궁리하는 사이 불은 야금야금 세를 늘려 나아갔다. 그렇게 화재가 시작된 지 1시간조차 되지 않아 불은 어느새 서부 절반 이상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화마로 진화하였다.
그리고 불이 상상 이상으로 강해지자, 이것을 무시할 수 있는 집단은 없었다. 모두가 도망치거나 맞서 싸워야 했다. 대부분은 처음에 후자를 택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으로 인해 배급은커녕 자급자족하던 생존주의자들마저 유일하게 도시 바깥과 연결되어있는 배급 게이트로 몰렸으며, 강에 배를 띄웠다.
이런 말을 알고 있는가?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을 말이다. 이것에 과할 정도로 충실한 사람이 리가에는 너무나도 많았다.
“이야, 잘 탄다.”
리가의 유서 깊은 건물이 하나둘씩 불타오르고 있었다. 불은 단순히 옮겨붙기만 한 건 아니었다. 처음의 불은 단순 사고였을지 모르나, 그다음부터는 의도적으로 불이 붙고 있었다. 민병대인가, 연합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저 혼돈을 바라는 종말론자들인가?
“고기가 먹고 싶긴 했지만, 그게 사람 고기는 아니었는데.”
누군지 알 수 없으나, 불을 놓은 자들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알 거 같았다.
“총소리다!”
총소리가 들리자 어김없이 또 한 사람이 엎어졌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하다가, 이내 자신의 허벅지에서 피가 새어 나오는 걸 목격하고 양손으로 부상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근 몇 달간 이 도시에 갇혀서 이 총소리를 질리도록 들었다. 시뻘건 공산주의 파열음에 볼트액션 특유의 간격까지 모신나강이 틀림없었다. 리가에서 들리는 총소리는 크게 셋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불법, 합법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손에 넣은 사냥용 소총이나 권총이 그 첫 번째. 두 번째로는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 군용 돌격 소총이다. 이것은 흔하지 않다. 마지막으로는 구식 머스킷이다. 박물관에서 약탈했거나 개인 소장품이 대부분이었는데, 현대식 소총이나 머스킷이나 머리에 맞으면 죽는 건 매한가지였다.
이런 제한된 환경과 시가지라는 특수성은 열병기가 상상 이상으로 위력을 발휘하게 했다. 이런 화기는 대부분 자기방어보다는 강도질과 약탈에 쓰였다. 삼일 정도 굶고 있으면 멀쩡한 사람도 강도질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데 총이 있는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도둑질도 한 번이 힘들지, 자주 하게 되면 무감각하게 변한다. 총을 든 사람은 전부 약탈자라고 봐도 무방했다. 역설적으로 총이 없는 이들은 강도들에게 물자를 만나는 족족 내어줘야 했다.
그러나 이 격차가 절대적이라는 건 아니다. 재래식에서 때때로 압도적인 기술적 차이는 사람의 숙련도에 의해서 격차가 매워지거나 상하 관계가 손바닥 뒤집듯 뒤바뀌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이 버러지 같은 자식들!”
현을 당기고 손을 놓으면 카본으로 만들어진 화살은 어김없이 목표를 향해 정확히 박혀 들어갔다. 이를 태면 약탈자들의 대가리 같은 곳 말이다.
“내 활로 쏜 총알맛이 어떠냐! 이 개자식들아!”
그리고 딱히 총알이라는 게 꼭 총으로 쏴야 하는 건 아니었다. 특수하게 제작된 화살만 있다면 활로도 얼마든지 총을 쏠 수 있었다. 화살촉이 있어야 할 부분에 개조한 총알을 부착한 것으로, 착탄 하는 즉시 뇌관을 건드려 영거리 사격을 재현하는 물건이었다.
총솜씨보다는 활이 더 낫기에 궁여지책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파이프 총기는 도저히 못 써먹을 물건이라서 그런 것도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세기말이 있다면 바로 여기로군.”
황폐하게 변한 불타오르는 도시, 총기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대규모 총격전, 열병기와 냉병기가 교차하는 전장에 오토바이를 탄 기병이라니!
“그것도 아니면 판타지인가? 제목은 리가의 몰락쯤이 좋겠군.”
이젠 열쇠고리가 되어버린 고든에게 구시렁거리는 와중에도 그의 예리한 눈은 일렁이는 적의 그림자를 뒤쫓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긴 했다. 이 빌어먹을 열쇠고리 말고 진짜 친구들의 행방 말이다. 리가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야 이미 죽었거나 리가에는 없었고, 외국 친구들이 궁금했다. 외국에 사는 친구들이 아니라, 정말로 외국인 친구들 말이다.
랜덤 채팅에서 만난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중에서는 자기 혼자 적군 다 죽이고 다닌다고 허세 부리던 프랑스 군인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랑은 어쩐지 마음이 맞아 사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자주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리가 사태만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 즈음 만나서 술이나 한잔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그는 활시위에 마지막으로 남은 화살을 걸고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살아남아 주겠다고, 진짜배기 세기말의 이야기를 그 친구한테 들려주겠다고.
* * *
세상에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으며, 해결할 수 없었다면 돈이 부족하지 않은지 생각해보라는 명언은 언제나 옳았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말이다. 절대로 막지 못할 것 같았던 대화재는 돈으로서 진압되었다. 물을 퍼부었는지 돈을 퍼부었는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돈이 들어가긴 했으나, 정치에 있어선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상정했던 자연재해는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소방력을 강화했기에 그나마 이 정도 출혈에서 끝났다.’라는 것을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부시는 날이 가면 갈수록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로서 이미지를 굳혀갔다.
옛말에 될 놈은 된다고 하더니, 때와 시가 적절히 맞아 위기마저 호재가 되었다.
사실 불 끄는 것보다는 전후처리나 복구작업에 돈이 더 들어갈 판이었다. 불과의 사투도 격렬했지만, 이 자연도 장기간에 걸쳐서 복구해야 했다. 복구 계획 자체에는 이미 불이 난 시점에서 시동이 걸려 있었고, 작업에 들어갈 인원도 준비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그랬지. 세상에 강력한 주권 국가가 존재하는 한 서류 작업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것들을 결제하는 것은 온전히 대통령의 몫이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죠.”
“어디 보자, 시작은 그놈의 CIA부터로군.”
결과가 좋았기에 몽땅 어영부영 넘어가긴 했지만, 실로 엉망진창이었다. 공항도 아니고 기내에서 비인가 총기 소지 및 발포라니, 이건 완전히 국제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거 하나 때문에 프랑스가 노발대발하고 있어 시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우선 공식적으로 CIA 개인의 일탈로 해두긴 했지만, 그럴 리가 있나. 이는 공식 지침이었다. 일단 눈이 돌아간 프랑스의 눈치를 봐서 근신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긴 했지만, 그마저도 서류상이고 멀쩡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훈장까지 달아줄 예정이었다.
다음으로는 자국민이 아니라 외국인들이었는데, 그 첫 타가 공교롭게도 한국인이었다.
‘국정원 끄나풀인가. 애들 요즘 왜 이러지? 설마 제2의 코리아게이트라도 일으키려는 건 아니겠지?’
코리아게이트란 박동선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1976년 대한민국 정권이 미 의회에 행한 불법적인 로비 활동을 까발린 것이다. 의회에서는 프레이저 위원회를 구성하여 청문회를 열었고, 이를 기반으로 프레이저 보고서가 작성되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대한민국 정부가 돈을 통해 미국을 조종하려 했던 사건이다.
‘설마 아니겠지. 지금 와서는 돈 좀 뿌린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미 의회가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미 기존 로비스트가 물샐 틈 없이 포진해 있는 탓에 더는 들어올 틈이 없다는 것에 가까웠다. 물론 만들려고 하면 만들 수야 있겠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터였다.
그리고 대통령이 바뀌어서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완전히 그대로다. 아니, 더 많아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딱히 CIA가 깨끗하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좀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CIA에서 청와대를 감청한 적도 있었다. 정보기관이라는 게 국가의 존망 그 자체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다 보니, 폭주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음에도 어째 이것만큼은 건드리기가 힘들었다. 그저 과하다 싶으면 자제하라는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
세상에 깨끗한 정보기관 따위가 존재할성싶은가?
‘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지.’
CIA에서 아는 건 워싱턴 D.C에 파견한 국정원 요원들의 정보력이 오로지 부시 대통령의 사생활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뿐이었다. 무언가 하려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무엇인지 만큼은 전혀 모르겠다.
“치울까요?”
“아니, 내버려 두지. 아직은 시기상조야. ‘무엇을 하려는지 파악하고 난 뒤라도 늦지 않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부시의 말에 비서실장은 몹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말입니까? 기다려 줄 필요가 있을까요?”
“이놈들을 쳐내고 돌려보내봤자 그걸로 끝이야. 분명 어떤 식으로든 또 보내겠지.”
가지를 열심히 쳐내봤자 핵심을 파악하지 않으면 근본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프랑스인은 프랑스에서 알아서 하겠고, 서이라크···. 우리가 관여할 게 아니고. 아프가니스탄인 여럿. 이쪽은 공유가 좀 필요할 것 같고.”
그런 식으로 서류를 넘기고 넘기다 갑자기 어느 시점에 부시의 손이 멈추었다.
“허, 범인들의 이력이 상당히 독특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