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90)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89화(190/377)
< 189화 >
크리스마스. 예수의 생일이다. 정확히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지만, 기독교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알고 있다. 매일 서류에 파묻혀서 사는 부시조차 이날만큼은 다 집어치우고 칠면조를 갈아 마셨다. 그렇다. 이 인간은 칠면조를 뜯어서 먹은 게 아니라 푸드프로세서에 갈아서 마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바뀐 것은 서류가 평소의 2배에 가깝다는 것, 복용하는 피로회복제와 음용하는 커피의 양이 몇 배는 더 늘어났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 아래로 진한 다크 서클이 진을 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서이라크에 영향력을 비집고 들어갈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군.”
서이라크도 결국에는 EU의 품에서 독립할 터였다. 그때 지금처럼 EU의 대변인이 될지 아니면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마치 냉전 시대의 한국처럼 제1세계를 뜯어먹을 만큼 뜯어먹고 국제사회의 한 축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이든 서이라크 정부에 미국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는 심어놓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이 노인이 나타났다.
이 노인은 이름이 없다. 정확히는 행정상에 등록된 이름이 존재는 했다. 그러나 그것이 본명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명칭은 있어야겠으니 CIA에서 코드명을 붙이길.
‘서이라크 존 도(John Doe)라’
영미권이라면 흔히들 신원미상에 붙이는 이름이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신원미상의 사체에 붙이는 이름이고.
‘그야말로 악취미로군. 어쨌든 이 사람이 서이라크 정계에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리라는 건 확실하다.’
이쪽으로 포섭할 수만 있다면,
“대통령님. 리가가 망했습니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느긋한 크리스마스가 엉망진창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비서실장의 한마디로 인해서였다.
“뭐?”
그 왜, 드라마에서 가끔 있지 않은가. 차나 커피 등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서 음료를 뿜거나 떨어뜨리는 장면 말이다. 부시는 이것을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바닥에 커피잔을 떨어뜨리지는 않았으나, 사레 정도는 들려서 한참을 콜록거려야 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리가가 망했습니다. ‘리가의 모든 건물이 불타올랐고, 아름답던 구시가지는 폐건물이 되었습니다. 강에서 순찰하던 군함에도 불이 붙는 바람에 하나를 고철로 만들어야 했습니다.’라고 합니다. 고철이라고 말하고 있긴 한데 사실 아직 인양하지조차 못했겠죠.”
“불이? 대규모 폭동이라도 벌어진 건가?”
솔직히 폭동이 난다고 해도 날 법해서 났다고 생각했다. 다짜고짜 몰아넣고 격리한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폐쇄한 게 하필 리가였던 탓에, 라트비아는 심각한 예산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고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의 전적인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여기까지도 문제가 없었다. 발트 3국은 하나 같이 경제 강국이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때문에 좀 위축이 되긴 했으나, 소련에서 나온 이후부터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륙하고 있었다.
그렇다. 과거형이다. 성장하고 ‘있었다.’ 문제는 라트비아처럼 중동 인종을 대거 들여온 부분부터 시작되었다. 사스를 비롯한 병균의 발병지는 중국이었으나, 중동에서 새로운 병으로 진화했다. ‘슈퍼 사스’ 말이다.
바로 이 점이 문제였다. 이 병이 무슨 병인지 밝혀졌을 땐 이미 이 병은 나라에 깊숙이 침투한 뒤였다. 공사장 인부는 물론이거니와, 국회의원 절반이 병에 걸려 병상에 눕게 되었고, 어떻게든 수습해보려고 했을 때 이미 행정은 대규모로 무너지고 있었다.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는 그야말로 패닉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는 해냈다. 절차에 따라 몇몇 건물을 징발하고 병동으로 개조한 뒤 순차에 따라 모든 환자를 격리 및 수용하였고, 병을 완전히 사회에서 떼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병으로 죽어가는 것보다 과로사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아질 무렵,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행정적인 부분이나 경제적인 부분이나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정상이라는 말에 다소 어폐가 있지만, 어쨌든 모든 것이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정상이다. 적어도 리가처럼 무정부 상태나, 사람들이 공권력의 말을 듣지 않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를 보고 라트비아 여론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폐쇄를 풀면 우리도 끝장이 나겠구나.’ 폐쇄를 무기한으로 유지한 것은 여론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정부였고, 동시에 리가에 살지 않는 모든 이였다.
모두가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라트비아는 충분히 좁은 나라였고, 리가에 친인척이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도 완전히 리가를 폐쇄하자는 여론이 정부를 장악했다. 정부 관계자 중에 탈출할 사람은 이미 다 탈출한 지 오래이니 그럴 만도 했다.
정부도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러나 예산이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있는 돈 없는 돈 모조리 쥐어 짜내었음에도 이미 수십만에 가까운 감염자들을 모두 분류하는 일은 그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격리했다. 그것이 라트비아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럼 우리가 지원했던 건 어떻게 되었지? 아니, 그보다 EU는?”
“그렇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EU라뇨?”
발트 3국은 EU 소속 아닌가. 물론 발트 3국끼리 운명 공동체 수준으로 단단한 동맹 체제를 가지고 있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나, EU 소속인 만큼 독일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줘야 맞는 거 아닌가? 무엇보다 그 병이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기 시작하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라트비아로 가는 지원이 멀리 떨어진 미국만큼이나 영 심심찮았다.
“아니, 라트비아는 EU···. 아, 이런. 젠장.”
부시는 거기까지 말하고 깨닫고 말았다. 자신이 착각해도 정말로 단단히 착각하고 있음을 깨달은 탓이다.
라트비아가 EU라는 건 맞으면서도 틀렸다. 정확히는 2004년부터 동유럽권 국가들이 대거 EU에 가입하게 되는데, 라트비아도 그중 하나였다. 부시의 기억상으로는 라트비아는 EU 회원국이 맞았지만, 지금은 아직 2003년이었다. 따라서 라트비아는 EU가 아니다.
‘국내에만 집중한 게 문제였나?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 진즉 알아봤어야 했는데.’
본디 지식이라는 건 언제까지고 영원한 게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히고 왜곡되는 거 아니겠는가? EU가 잠잠하다는 거에서 눈치챘어야 했다. 지금 미국의 모든 역량은 동남부 화재 복구와 국내 방역. 그리고 중동 및 아프리카 방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중동이나 이집트는 힘들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효험을 보였고 터키는 EU의 전폭적인 협력을 받고 있었다. 중국의 경우 국외로 나간 자국민들을 다시 중국으로 잡아들이고 있었다. 그동안 우수한 방역체계로 어떻게든 전염병을 관리해왔던 대한민국도 이번만큼은 피해갈 수 없었다. 부산과 서울에서 많은 슈퍼 사스 감염자들이 발생했으며, 북한에서도 평양에서 몇몇 감염자가 나타났다.
다만 남한과 달리 북한은 그 감염자들을 진짜로 영구히 격리처리 해버릴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몇몇 상태가 좋지 않은 인민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생매장되었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더러운 일을 지양하는 리커창의 의지와는 별개로 공산당은 어떻게든 주요 도시가 뚫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아니, 이미 늦었나.”
부시는 궁지에 몰렸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차마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구길 수는 없던 탓이었다.
“백신 개발을 가장 우선순위에 둘까요?”
“뭐? 그래. 아니. 아니야. 그래. 맞아. 백신이 가장 우선이지.”
하나가 꼬이니 머릿속으로 세워왔던 계획들이 도미노처럼 연달아 무너져 엉망진창으로 망가졌다. 어차피 이 사태도 1년 내외로 해결해볼 생각이었다. 전염병이 세계를 오래 잠식하고 있으면 잠식하고 있을수록 곤란해지는 건 미국이었다.
‘이게 어떻게 만든 경제인데 바이러스 탓에 엿을 먹는다고? 중국의 고혈을 뜯어먹은 인과응보인가? 중국으로 흥했으니 중국으로 망하리라?’
웃기지 말라지. 가만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부시는 이가 부러지도록 바득바득 갈았다. 혀에 자극적이고 비릿한 철 맛이 느껴졌다. 잇몸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는 게 틀림없었다. 머리에 몰렸던 피가 한번 빠져나가니, 더러운 흙탕물 같았던 사고가 맑아지면서 죽었던 논리가 되살아나 헤엄쳤다.
‘아니, 계획이란 원래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것. 지금껏 계획대로 움직이는 게 더 이상했던 거지.’
“알겠습니다.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비서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도 상당히 머릿속이 혼잡했다. 빠져나갈 예산과 늘어날 서류를 상상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그런 인간들을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 한 놈을 보고 있으려니 ‘지금 내가 뭐 하는 거지? 모든 것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3개월.”
그렇게 잡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대통령의 말을 듣고는 그가 의아한 듯 반문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예?”
“3개월이다. 3개월 이내에 백신을 만들어보라고 하게.”
“3개월? 아무리 문외한인 저라도 3개월은 너무 짧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3개월이라뇨?”
그 말대로다. 어디 백신이 볼펜처럼 억만금을 주고 닦달한다고 바로 개발되어서 공장에서 나오는 물건이던가? 사실 볼펜이라고 해서 그냥 뚝딱 만들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백신에 비하면 개발, 생산이 쉬운 것임은 틀림없다.
어쨌든 백신이라는 물건이 인류가 지금껏 만들어온 물건 중에서는 가장 복잡한 절차와 민감한 보관법. 그리고 긴 시간을 요구하는 물건임은 틀림없었다. 특히 바이러스는 배양해야 실험이든 뭐든 할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너무 ‘빨리빨리!’만 추구하다가 잘못된 백신이 나오기라도 하면?
애당초 백신은 경우에 따라선 개발에만 수십 년이 걸리는 인류 의학의 결정체였다. 그렇기에 3개월은 말도 안 되는 폭거. 일부 문외한들의 망상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6개월. 그렇습니다! 6개월은 기다려야 합니다. 아니면 적어도 전문가의 의견을···.”
“아니!”
그런데도 부시는 3개월을 고집했다. 비논리, 비상식! 어떻게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 비서실장이 당황할 정도니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드디어 ‘대통령이 미치셨구나?’ 할 터다.
“무조건 3개월이야.”
그러나 부시에게도 3개월을 밀어붙이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 백신이 이미 ‘개발 중’에 있다는 점이었다. 개발 중이기에 실험에 쓸 표본은 충분할 터였다. 다음으로는 일반적인 백신과는 달리, 이번 슈퍼 사스에는 ‘전 세계’가 달라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미 돌아가고 있긴 하겠지만, 전 세계 모든 연구소에 협력을 구하도록 하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3개월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당장 오늘만 해도 크리스마스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이란 영화관은 모조리 적자를 보고 있는 판국이었다. 머잖아 거리는 점점 한산해질 게 분명했다. 그렇게 위축된 경제가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슈퍼 사스 자체는 이미 4개월간 전 세계가 달라붙어 있었지. 나는 거기에 가속도를 더 할 뿐이야.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더 나아가서는 세계가 공황 상태에 빠져들 거야.’
이렇게 돈을 남발해대면 다소 후유증은 남겠지만, 경제 공황 상태에 빠져드는 것보다는 한참 나았다.
“알았나! 3개월이다! 무조건 3개월!”
그렇게 부시의 선전포고는 전 세계로 퍼져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