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94)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93화(194/377)
< 193화 >
“아티스. 우, 우리 고향이···! 삼대가 살아온 우리 집이!”
“닥쳐! 이보! 나도 알아!”
아티스의 어깨너머로 불타오르는 리가의 풍경을 보며 이보가 흐느꼈다. 아티스는 자꾸만 붉어지는 눈시울을 억누르며 자꾸만 뒤처지는 이보를 잡아 이끌었다. 아티스도 슬펐지만, 특히 이보는 더더욱 그럴 만했다.
이보는 남들 다 가는 여행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 직장도 집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었고 심지어 그가 태어난 것도 리가의 한 병원이었다. 이보에게 여행이란 ‘집 밖으로 나서는 일’ 그 자체였다.
그런 이보가 리가를 벗어나 소문으로만 듣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구공산권 시절에 만들어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저질 콘크리트 포장도로. 이젠 회색보다는 녹색이 더 많은 포장도로를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콘크리트 가루가 으스러지는 느낌이 고스란히 신발의 밑창을 통해 올라오는, 그런 유적이나 다름없는 길이었다. 짙지는 않지만, 제법 ‘안개’가 끼어있어서 마치 모험이라도 나서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연기가···.”
연기다. 리가 방면으로부터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시발! 시발!”
수십 년의 추억, 몇 달간의 사투가 하룻밤의 꿈으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사태가 벌어지고 정부에서 리가를 폐쇄한 지가 고작 반년 조금 되지 않거늘, 그 반년이 리가에서 보냈던 평생만큼 길게만 느껴졌다. 이보다 긴 것은 아티스의 무거운 발걸음밖에 없었다.
리가로부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리가의 염(念)이 어깨를 잡아끄는 듯 점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아니,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건 착각이 아닌가?’
그들은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지쳐 있었다. 이보나 아티스나 하루도 빠짐없이 리가의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해왔다. 그렇기에 이 둘에겐 녹초라는 표현이 잘 어울렸다.
매 끼니는 연합이나 민병대한테 얻은 구호품 통조림과 빗물로 이루어졌고 민병대에 지불할 돈이 떨어지자 그때부턴 약탈자가 되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 따위가 느껴졌지만, 절박한 생존 경쟁 앞에서 순식간에 희석되고 그 뒤로는 적어도 굶는 일은 없어졌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아직 닐스도 못 묻어줬는데.”
원래는 절친한 친구 셋이서 꾸린 팀이었다. 아티스는 겁이 없어 과감하게 돌격할 수 있었고, 겁쟁이 이보는 움직이는 건 못하지만 머리가 좋았고, 닐스는 다른 건 다 못 하지만 귀신같이 엽총을 잘 다뤘다.
그 삼총사가 둘로 줄어들게 된 건 바로 엊그제 일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리가가 폭삭 망하고 모든 이들은 총력을 다해 도망치거나 맞서 싸웠다. 이 삼총사를 비롯하여 모든 이들이 처음에 택한 것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모두가 게이트로, 강으로 도망쳤다. 이 리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강은 모르되 통제 게이트는 썩 그렇게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탈출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사이에서 대치 상태가 불이 바로 코앞까지 번질 무렵에도 지속하고 있었다. 방역을 목적으로 만든 플라스틱 페트병 방독면은 열기에 녹아 피부에 눌어붙었고 탈출하려던 많은 사람이 제대로 불에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했다.
하늘에서 제한적으로 항공기들이 물을 열심히 퍼 나르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는 심각하게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직접 리가의 강물을 온갖 방법으로 퍼담아 화마와 맞서 싸우기로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장비 없이 양동이만으로 불을 끈다는 건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강 근처까지 번졌을 때 즈음에는 모두가 포기하고 각자 제 살길을 찾아 온갖 방법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중 삼총사는 더는 쓰이지 않는 하수도를 통해 이 리가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전에 크게 한탕 하려고 했던 게 독이 되어서 도리어 당하고 말았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잔인한 ‘활잡이’한테 모든 약탈자가 당했다.
화살 정도라면 어떻게 될 줄 알았는데, 세상에 총을 쏘는 활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다. 화살을 맞는 족족 즉사하거나 이 열악한 환경에서는 도저히 살릴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닐스도 마찬가지였다.
맞기는 배에 맞았는데 총탄 탓에 장기가 엉망진창으로 파쇄되었다. 차라리 그냥 총알이라면 박히거나 뚫고 지나가고 말 터인데, 화살에도 온갖 오물이 묻어 있었다. 이건 절대로 살릴 수 없다고 판단한 닐스가 자신을 희생해서 활잡이를 상대로 질질 끄는 동안 두 명은 도망칠 수 있었다.
“그 활쟁이 자식!”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다.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닐스가 만들어준 목숨이다. 닐스가 상대할 수 없었다면, 아티스도 같다. 이보는 더더욱 그렇다.
닐스가 마지막에 분명 ‘남의 것을 빼앗으며 살아서 받은 천벌.’이라고 했던가? 그딴 걸 믿을까 보다. 그렇게 되뇐 아티스는 손에 쥔 엽총을 땀이 나도록 강하게 쥐었다. 닐스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지만, 아티스는 이것을 유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진정한 유품은 아티스와 이보의 존재 그 자체였다.
아티스는 습관적으로 뻑뻑한 노리쇠를 당겼다가 다시 전진시켰다. 마음이 너무나도 불안했다. 마치 뒤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받는 것이 아니라 받을 수밖에 없는 거다.
“젠장. 뭔가 불안한데. 그걸 잘 모르겠어.”
아티스는 직감적으로 느꼈다면, 이보는 이성적으로 깨달았다. 이보는 행동이 좀 굼뜨긴 해도 잔머리 하나만큼은 리가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이상해. 도대체 왜 이런 흔적들이 남아 있는 거지?”
먼지 쌓인 길에는 발자국이 쉽게 났다. 등산화가 아닌, 명백히 군홧발이 지나간 자국. 무언가 무거운 것이 질질 끌린 듯한 자국. 총탄이나 카본으로 만든 화살도 있었다. 처음에는 사냥꾼이 지나간 자국이라고 여겼지만, 가면 갈수록 이것들이 비교적 최근에 난 자국이며, 인간이 사냥당한 자국이라는 확신이 섰다.
“특히 이 부분이 이상해! 어째서 ‘멀쩡한 물건’들이 흩뿌려져 있는 거야!”
지금까지는 누군가가 선행하면서 떨어뜨렸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적어도 돈이 잔뜩 들어 있는 지갑을 몇 명이고 떨어뜨릴 리는 없다. 적어도 누군가는 주웠어야 했다.
“젠장. 재수 없기는!”
앞장서던 아티스가 지갑을 발로 차버렸다. 지갑은 찰진 소리를 내며 숲 안 어딘가에 떨어졌다.
“아티스! 조심해! 그 지갑은 덫이야!”
이보가 경악했지만, 아티스는 성질이 난다는 듯 지갑이 있던 자리를 지근지근 짓밟았다. 애꿎은 풀들이 뜯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니! 덫은 없어! 그렇기에 짜증 나는 거야! 도대체 목적이 뭔지 모르겠어!”
“아니, 덫은 있어. 바로 그 자리야! 그 자리에 오는 것 자체가 덫이야!”
이보가 급하게 자신이 깨달은 사실을 덧붙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보가 입을 여는 그 순간이었다. 아티스가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진 것은. 카본으로 만들어진 검은 화살은 정확히 아티스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우와아악!”
“그래! 그 자리에 오면 충분했던 거다!”
누군가가 안개 낀 숲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나라도 총은 조마조마했지만. 그걸로 끝이다.”
아르투르스 레비츠. 리가에서 제일가는 활잡이였다. 동시에 모든 약탈자의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민병대에서 그는 뒤틀린 질서의 표상이었다. 연합에서는 악몽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둘로 줄어든 삼총사를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니!
이보가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을 때는 이미 발을 놀려 도망치고 있었다. 본인조차 놀랄 속도로 도망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잔머리는 둔해지지 않아 숲 안으로 들어가 최대한 사각이 나오도록 나무 사이사이를 내달리고 있었다.
‘제아무리 신묘한 활 기술을 가졌다 한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쏠 수는 없겠지! 안 그래?’
“약탈자는 그 누구라도 심판받아야 한다. 피클 하나 때문에 이웃을 살해하려던 그 아줌마처럼! 정부는 물론, 전 세계 그 누구도 리가 안에서 벌어진 일 따위는 아무도 알 수 없지!”
레비츠는 아티스의 가슴에서 화살을 뽑았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아티스가 집념을 가지고 손으로 레비츠의 팔을 부여잡으며 저항했지만, 약해빠진 힘으로는 그것을 저지할 순 없었다. 아티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산은 붉은 손자국이었다.
“그렇기에 ‘법’은 심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심판하겠다!”
그렇게 뽑아낸 화살은 다시 화살집으로 들어갔다.
“뭐? 나도 심판받을 거라고?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고든!”
이번에는 양말로 만든 인형이었다. 양말에 신문지를 넣고 모양을 낸 양말이었는데, 얼굴을 피로 그려놓았다.
“그것보다 놈이 도망치잖아! 쫓아야지!”
레비츠는 땅을 박차고 내달렸다. 운동화를 신고 있음에도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이보와는 달리, 군화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얕은 발자국이 났다. 그의 기세는 마치 날랜 고양잇과 생물과도 흡사했다.
그리고 때때로 발자국은 ‘더 큰 발자국’에 의해서 지워지는 법이다. 이보의 발자국은 레비츠의 군홧발에 겹쳐 사라졌다.
같은 시각, 백악관에서 드디어 보고서를 찾아낸 비서실장의 입이 열렸다.
“리가는 수복되고 있다고 합니다. ···언론에 의하면 말입니다.”
“그럼 실제로는?”
두꺼운 보고서를 보여줬다. 아직 제대로 갈무리 되지 않은 보고서였는데, 억지로 가져온 것이어서 쓸데없는 정보가 너무 많았다. 리가 안으로 잠입한 요원들이 작성한 것이었는데, 그곳에는 누가 누굴 죽이고 누가 집단을 이끄는지까지 적혀 있었다.
“아직 리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라트비아는 군이 극단적으로 적으니까요. 규모를 임시로나마 늘리고 싶어도 바이러스 탓에 어디에 대병력을 모아두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죠. 계속 방역이 돌아가야 하니까요.”
“그럼 라트비아 정부는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방법 내에서 언제나 최선을 택했죠. 역량이 역부족이었을 뿐입니다. 가장 큰 문제라면 공권력이 비교적 중국보다는 약한 라트비아가 중국을 벤치마킹한 게 문제긴 했지만.”
사실 원래대로였다면 이렇게 극단적으로 도시 하나를 폐쇄하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중국이 이 방법으로 효과적인 전염병 차단율을 보이자 이것을 벤치마킹했을 뿐이었다. 사실 한 500년 전까지만 해도 전염병이 났을 때는 이러한 방법이 성행했었다.
“그 외에는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갔습니다. 출렁였던 라트비아 경제는 이제 멀쩡합니다. 그리고 도시 외곽과 중심부터 천천히 복구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 기세대로라면 후대로부터는 ‘리가의 기적’이라고 불리겠군요. 긴급 복구 대책 본부에서 내건 슬로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재에서 다시 태어난다.’라 마치 피닉스 같군요.”
“이 속도···. 러시아가 개입했군?”
“맞습니다. 구공산권 대출이라는 명목으로 빌려주고 있긴 한데, 사실 무이자에 가깝습니다. 머잖아 라트비아가 러시아에 흡수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렇게 되지 않게 막는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