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03)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02화(203/377)
< 202화 >
가장 멀쩡할 것 같았던 서수단에서 내분이 난 것은 전적으로 땅이 척박하기 때문이었다. 서수단의 특수한 사정을 아는 이가 아니라면 ‘아니, 도대체 땅 척박하다는 사실 하나로 어떻게 분쟁이 날 수 있나?’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서수단은 기본적으로 국토 대부분이 고산지대이며, 작물을 기를 수 있는 평야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일부 지역에 밭이 있긴 하지만, 그걸로 서수단의 모든 인구를 먹여 살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땅이 척박하면 국가 단위로 이웃 국가에 여기저기 손 벌려야 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돈만 있으면 전 세계에서 인류 전체가 다 소화해내지 못할 정도로 넘쳐나는 작물을 수입해올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돈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하면, 돈을 가진 자가 서수단의 밥줄을 지배하는 자라는 것과도 같았다. 투표를 통해 독립한 뒤 민주 정부가 들어서긴 했지만, 그들은 당장 민간에 식량 사서 풀기보다 이 쥐꼬리만 한 세금을 몇 배로 불릴 생각을 했다.
사실 이게 완전히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해외에서 곡물을 수입해서 먹이면 국민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어도 정부는 죽고 만다. 지금 당장은 살아갈 수 있지만, 미래가 없다. 결국에는 다른 국가나 단체의 후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릴 것이다.
국가를 어떻게든 부흥시켜야겠다는 직선적이고 고집스러운 사고방식만을 가진 정치인들이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관료들의 숙련도도 절대적으로 낮은 신생 정부의 몇 되지 않는 장점을 꼽자면 다른 국가에 비해서 부패도가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사람이 있고 이익이 걸려 있는 일이면 부패가 없을 수는 없지만, 오래된 정부보다는 한참 나았다. 물론 이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제법 보편적이라고 봐도 좋으리라.
미국으로부터 받은 지원금과 세금을 지하자원 개발 및 수출에 집중투자하여 단시간 내에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일단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인프라 자체는 열악하긴 하나, 수단 시절에 깔아놓은 것이 있었기에 유지보수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었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의 사활을 건 국가사업에 모든 역량을 원활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거기다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지만, 세계의 자원봉사단체에서 식량이나 생필품을 지원하고 있었던 덕분에 일부 도덕적 책임까지 뒷전으로 밀어놓고 미래를 위한 희생이라며 지금 상황을 애써 포장했다.
그런데 이게 악순환이 되어서 국민은 굶고 정부는 부유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모든 것이 단 1년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국가는 독립했으나 바뀌는 것 하나 없는 인생에, 날이 가면 갈수록 턱없이 모자란 식량에 각지에서 작은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다고 해도 본디 이곳 사람들은 총으로 대화하기를 즐겨 했던 사람들이다. 비록 투표를 통해 평화적으로 독립하긴 했으나, 본디 피를 피로 씻는 무장 투쟁을 이어가던 사람들이었다. 절대로 그들이 조금만 불만을 품으면 총을 들고 봉기하는 야만적이라거나 난폭한 사람들이라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진 ‘힘’이 아직 다 해체되지 않았기 때문에 삶이 각박해지면 언제든지 그 힘을 행사할 의향이 있었다. 작은 불만이 점점 무시되어가면 인내심이 고갈되어 그들이 가진 힘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표출될 수 있었다.
서수단은 아직 법보단 주먹이 가까운 곳이었고, 수단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미래를 위해서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사태이며, 아직은 ‘국가를 위해서’라는 선전만으로 찍어누를 수 있는 불만이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가 개요다. CIA 수단 지부 소속 크루거는 무언가 제대로 된 조치가 없다면 군벌이 생기고 서수단이 전쟁통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짧으면 내일 모래라도, 길게 버티면 6개월.’
군벌이 형성될 듯 말듯 정치적 균형 자체는 굉장히 묘할 정도로 아슬아슬하지만, 그건 금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간 댐이나 다름없었다. 댐이 무너지면서 그 뒤에 갇혀 있던 압도적인 질량이 해방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설명 한번 더럽게 길군. 이대로 올렸다간 제대로 한 소리 듣겠어. 요즘 따라 왜 이리 일하기가 힘든지 원.”
차라리 예산이 삭감되기라도 했으면 예산 탓이라도 하지, 예산이 작년의 2배나 늘었다고 하면 과연 믿어지나? 상부에서는 자신들의 노고가 드디어 보답을 받았다며 감동의 물결 안에서 아주 별 지랄 생쇼를 다 했다고 들었는데, 크루거가 봤을 때 도리어 일이 제대로 안 돌아가니까 그냥 돈으로 때워볼 요량으로 늘린 거였다.
현 대통령인 조지 부시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었다. 이 대통령은 뭐든지 돈으로 후려갈기기를 즐겨한다. 1억으로 안되면 2억으로 그것으로도 안되면 20억으로 그것도 안 된다면 200억을 투자한다. 공통점은 정말로 안될 것 같은 것도 어떻게 돈으로 후려쳐서 해결한다는 점이었다.
예산이 2배나 갑자기 늘어난 것도 자기 뜻대로 돌아가질 않으니 혈압이 올라서 어디까지 하나 보자고 늘린 게 틀림이 없었다. 뭐가 그렇게 안 풀리는 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크루거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선배. 끝났어요.”
그 사건 해결을 통해 보너스 받아서 해외여행을 갈 거라던 그녀는 명목적인 근신 처분을 받았다. 근신 처분이라고 해도 이 칙칙하고 눅눅한 대사관 지하에 갇혀서 일하는 게 전부였다. 그 화재 사건 이후로 스프링클러가 달리게 되었다. 다시 말해 크루거는 이제 일하다가 함부로 담배조차 태울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남수단 동향 조사 보고서요.”
“아니, 넌 왜 자꾸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거야.”
“뭐 해오면 시키지 않은 일이라고 하고, 안 하면 알아서 해와야 할 것 아니냐고 하고. 어떻게 해! 선배 혹시 어디 아파요? 그때 비행기에서 고산병 걸린 거 아니에요?”
요약하면 ‘뇌가 없냐’라고 비꼰 거였다.
‘이 년이 진짜.’
2년 정도를 허물없이 부대끼고 사니까 아주 선배한테 못 하는 말이 없었다. 솔직히 심적으로 바꿔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녀가 필요했다. 정확히는 그녀의 우수한 업무능력이 이 미친 업무량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크루거는 월급 이상으로 일하는 것을 정말로 싫어했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기간 안에 맞출 수가 없었다. 기간 안에 맞추지 못하면 승진의 꿈도 물거품이 되리라. 크루거가 그 비행기 납치 사건에서 얻은 게 오직 근신뿐만은 아니었다.
현장과 사무실에 양면으로 구르는 사람은 좋든 싫든 그만큼 발언권은 강해지기 마련이다. 정치에 민감하고 위로 올라가기를 평생의 목표로 삼는 크루거는 이 발언권이 상당히 강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실 나날이 강대해지는 미국 첩보 기관의 아프리카 젊은 지부장 정도면 나쁘지 않다. 훗날 위로 올라가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경력이다.
“엄매, 코피 터졌네.”
다만 가끔 그 경력을 가꾸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서 인생의 단 한 번뿐인 청춘을 이렇게까지 태우고 희생할 필요가 있을까?
“이젠 대수롭지도 않군.”
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마땅히 그럴 가치가 있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알 수 있는 줄 알지만, 돈도 어차피 ‘정보’를 아는 극소수의 사람들의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크루거는 정보의 정점이 되리라.
“아프리카 첩보 네트워크는 거의 완성이 되었군. 내가 만든 작품이지만, 세상에 이렇게나 멋질 수가.”
CIA 지침대로 움직이긴 했지만, CIA의 일반적인 지침은 일부 선진국에서나 먹히는 거고,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제3세계 국가에서는 그게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중동이든 아프리카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실상 아프리카 네트워크는 처음부터 끝까지 크루거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예산이 밖으로 지출된 덕분에 이 빌어먹을 사무실에 앉아서 고작 20명이 컴퓨터 화면을 교대로 돌아가며 보고 있어야 한다는 점 정도였다.
20명 말이다. 20명. 정상적이라면 200명이 처리해야 할 업무량을 크루거 포함 20명의 용사가 해내고 있었다. 미친 짓이었지만, 그들 모두가 자발적으로 이 일을 해내고 있었다. 크루거가 직접 뽑은 인선이었다. 그들 전부가 커리어 쌓기에 미쳐있었다.
자신을 더럽게 비꼬는 저 여자 한 명만 빼면.
“알 게 뭐야. 일만 잘하면 그만이지.”
말은 잘 달리면 그만이고 소는 밭 잘 갈면 그만이다. 그녀가 가진 그녀만의 직업 윤리관이나 동기까지 전부 신경 쓸 필요는 없으리라.
크루거의 손에 의해서 최종 수정이 된 보고서가 미국의 CIA 본부에서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로 올라갔다. 이젠 웬만한 대형견만큼 커진 하얀 고양이가 태연스레 서류를 밟고 지나갔다.
실로 신묘하고 기묘한 것이 덩치는 산만큼 큰데 고양이가 지르밟는 서류들은 미동조차 없었다.
“아니, 오늘따라 얘가 왜 이래. 야, 좀 비켜봐.”
화이트는 부시의 열정적인 손짓에도 요지부동이었다. 다만 화이트는 자신의 꼬리를 양옆으로 흔들어 나지막하게 불만을 표할 뿐이었다.
“아마도 너무 관심을 주지 않은 게 원인이지 않을지? 당연하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겁니다만. 애완동물이란 언제나 관심이 고픈 법이죠.”
비서실장의 말은 어디까지나 정론이었다. 다만 이건 평범한 고양이한테 통하는 거였고, 화이트는 결코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사실 고양이인지부터가 실로 의구심이 드는 흥미로운 사안이었지만, 수의사가 고양이라니 고양이라고 알고 있을 뿐이었다.
“으음, 관심이 고프다고 이럴 애가 아닌데.”
어쨌든 더럽게 묵직한 화이트를 내려놓고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부시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 했던 서수단에 대한 보고서가 있었다.
혹시 너무나 평화롭다는 보고서가 아닐까 잠시 상상해봤으나, 곧이어 평화로운 나라의 보고서가 햄 열 장은 들어간 샌드위치처럼 두꺼울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한순간에 그렇지 않아도 피곤으로 인해 음영이 드리운 얼굴에 절망감이 아른거렸다.
‘완전히 돌아버리겠군. 미치겠어. 임기만 마치면 진짜로 정치계하고 영원히 안녕이다. 나는 돈 많은 구단주가 되어서 살아갈 거야. 암! 그렇고말고!’
부시의 솥뚜껑 같은 손에 보고서가 한 장 한 장 넘어갔고 이윽고 보고서의 마지막 장에 다다랐을 때 서수단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략적인 개요를 파악한 부시의 대답은 이러했다.
“쟤들 살기 싫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