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07)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06화(207/377)
< 206화 >
“그래서 여긴 소돔입니까. 고모라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스보임? 아드마?”
상상조차 못 해본 혼돈의 도가니를 접한 칼 로브가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대통령 집무실을 이렇게 쓰는 사람은 미영전쟁 시절 백악관을 불태워 먹은 제임스 매디슨과 해리 S. 트루먼 시설 재건축 이후로는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기록이 오늘 갈아 치워졌다.
“구태여 따지자면 연옥이지.”
지옥이라기엔 정적이며, 천국이라기엔 동적이다. 그렇기에 이 집무실은 연옥이 제격이리라.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세상의 파괴자가 될 수도 있고, 수호자가 될 수도 있다.
“감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그 아들에게 맹세하건대 대통령 집무실이 이렇게 더러웠던 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칼 로브가 평소에도 업무량이 많아 대통령 집무실이 그리 깔끔하지 않은 곳이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넘어가지 않고 구태여 지적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아무리 바빠도 적어도 서류 한가운데에 당당하게 발자국이 찍혀 있는 집무실이나 사무실은 없다.
“접시에 바다를 담으려고 하면 생기는 일이지.”
당연하겠지만 칼 로브는 어지러운 집무실을 꾸짖는 게 아니다. 정말로 순수하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면 ‘이 지경이 되냐’는 뜻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반듯했던 서류의 산을 기억하고 있다. 아무리 당혹스러운 사태에도 침착했던 그의 대통령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집무실이 이 정도로 개판이 되었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아, 그렇지. 뭐부터 알고 싶나?”
“전부요.”
도저히 초췌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피로해 보이는 대통령의 입에서 그동안의 이야기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죽으면서 내건 유언이 꽤 충격적인 덕분에 북한 상태가 영 좋지 않게 변했다는 것부터 시작하지. 서수단에서 내전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이라는 건 어떤가? 쿠르드족이 곧 독립할 예정인데 땅 문제로 이란과 터키 정부가 눈을 부라리고 있다는 건 유명하지 하지만 끝내 이란 정부가 공식적으로 종교차별을 넘어서 인종차별 발언을 하는 건 못 들어봤을 거야. 중국 애들이 검증도 안 된 치료제를 뿌렸다는 것도 있군. 일본 애들이 헌법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는 건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지. 우리 구축함 하나가 화물선과 충돌하는 바람에 거의 폐함 수준으로 대파했다는 소식은 5분 전에 들어왔네. 1분 전에는 임기 초에 지시한 가스파쇄법이 드디어 빛을 보았다는 소식을 접했지. 그 외에는 이 허연 맹수가 오늘따라 귀찮게 군다는 사소한 일도 있군.”
나열해놓고 보니까 참으로 길었다. 사실 하나하나 따로 떨어뜨려 놓고 보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문제는 이것들이 단 하루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었다. 관련 자료와 보고서가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정리하라고 명령을 내릴 시간조차 모자랐다. 정리를 시키려면 사람을 불러야 하는데, 그 시간조차 없어서 이러고 있었다.
“이 자리는 이런 자리일세. 정말로 탐나지 않나?”
부시는 그렇게 말하며 집무실을 정리할 사람을 호출했다. 드디어 일시적으로나마 보고의 연속에서 벗어난 것이다. 정말로 미칠 것 같은 하루였다. 그런데 아직 퇴근 시간은 멀고 멀었다. 애당초 퇴근이 가능한지조차 의문이긴 했지만.
“믿으실지 믿지 않으실지는 자유지만, 저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훗날 누군가가 천만금을 주면서 출마하라고 해도 안 할 겁니다. 출근 첫날에 심장마비 걸려서 죽을 자신이 있습니다.”
“뭐, 업무량이 좀 많긴 하지. 그래도 한 10년 전이면 농담으로라도 하겠다고 했을 텐데. 아니 그런가?”
정치가 중에서 대통령 자리에 야심 없는 정치가를 찾는다는 건 그야말로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도 같았다.
“글쎄요. 적어도 대통령님의 정신 나간 업무량이 제가 그 자리를 기피 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하겠군요. 그것 말고도 또 이유가 있긴 있죠. 말씀하신 대로 저도 이제 나이가 제법 들었다는 거 말입니다.”
그런데 그 바늘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것도 둘씩이나 말이다. 옛말에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대통령이기 때문에 특정한 누군가 밀어준다고 해서 어떻게 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만약 시켜준다고 해도 싫다는 거다.
“그래도 사생활을 버리면 할만하다네.”
“사생활이 사라지는 시점에서 썩 그리 좋은 직장은 아닌 거 같습니다. 이거 위법 아닙니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시죠.”
“그 근로기준법을 만드는 자리가 바로 이 자리라네.”
“그것참 끔찍하군요.”
부시의 얼굴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초췌함이 가시고 제법 여유가 보였다.
“좋습니다. 이제는 좀 괜찮아 보이시는군요.”
“자네를 부르려고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해줘야 할 일이 있어서 그렇다네.”
“중동행은 아니면 좋겠는데요.”
지금은 멀게만 느껴지지만, 눈을 감으면 생각날 정도로 아주 가깝게도 느껴졌다.
“그거 덕분에 훈장도 받지 않았는가.”
부시의 말대로 훈장은 칼 로브 집안 트로피 전시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려 있었다. 칼 로브 말년에 세운 자랑스러운 업적 중 하나였다.
“그게 두 번 성공할 것이라는 장담이 없어서요. 대통령님 말씀대로 저도 나이를 먹은 거죠. 한 20년 전이었으면 말로 해결 안 하고 몸으로 뛰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으로 뛰었을 것이라는 건 비유가 아니었다. 진짜로 육탄전을 벌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이야기에 끝이 없군. 걱정하지 말게나. 국내 여행일세.”
“그것참 다행이군요. 걱정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니까요.”
사실 중동으로 가라고 했어도 얌전히 가긴 했으리라. 이렇게 장난스레 이야기하고 있긴 있어도 그들의 직책은 한 국가의 대통령과 부비서실장이다. 대화에 다소 장난기가 끼어들 수는 있어도 오가는 내용만큼은 진지했다.
“동남부 화재 현장에 좀 다녀와야겠네. 어차피 나도 한 번 가긴 갈 건데. 이 보고서의 수치를 좀 보게. 이게 정상적인 수치인가?”
칡은 칡대로 제거하고 불타오른 나무를 다시 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실 나무를 심는다고 해도 거의 생태계 재조성에 가까운 수준의 작업 환경이었다. 길을 잃은 동물까지 구해와 다시 방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작업 속도가 너무나도 이상적이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일들은 보고서가 조작되었을 때 나오는 수치였다.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지만, 심각할 정도로 이상적이군요. 마치 딱 이 정도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대로 숫자로 옮겨 놓은 듯한 보고서입니다.”
“정말로 현장이 이대로라면 기쁘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그러니까 좀 믿을 만한 사람이 다녀와 주면 고맙겠네만.”
“알겠습니다. 기꺼이 다녀오겠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납치될 걱정은 없겠죠.”
“납치라. 그렇게 납치가 걱정되면 전투기라도 타보겠나? 생각보다 탈만 하다네. 가속하면 G가 좀 버티기 힘들지만, 마치 깊은 바닷속과 같은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초월적인 감상이 들면서 속세의 걱정거리들은 아주 작은 먼지처럼 느껴지지.”
“대통령님이 그러시면 그건 중대한 문제 아닙니까?”
“농담이야. 나는 그 하늘을 보고 우주 진출에 대한 꿈을 꾸었다네. 내가 퇴임할 때 즈음이면 우리 미국이 달에 기지를 착공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
“재선은 확정이군요.”
“그렇지. 재선은 솔직히 확정이라고 생각하네. 민주당에는 그냥 나올만한 사람이 없어. 나온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내가 다시 뽑히고 말겠지.”
“대단하신 자신감이로군요. 혹시 모르잖습니까? 민주당에서 비밀병기라도 준비하고 있을지 누가 압니까?”
“나는 알 수 있다네. 알 수 있는 이유가 있어.”
그건 물론 본래 역사에서 부시가 첫 임기에서 미국을 거의 말아먹다시피 했지만, 이를 대적할 후보가 없어 다시 뽑혔기 때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단한 자신감이시군요. 지금 당장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되겠군. 일주일 정도 공들여서 천천히 조사해주면 되네.”
신속한 정보보다는 확실한 정보를 원한다는 뜻이었다. 비리 하나만큼은 모조리 때려잡겠다고 벼르고 있는 만큼 억울한 이나, 놓치는 사람이 없도록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칼 로브는 필요한 서류를 챙겨 집무실에서 나갔다.
“어디 보자. 부비서실장도 나갔으니까. 이 안건에 대해서 마무리를···.”
“대통령님은 어쩐지 비리에 굉장히 민감하신 것 같습니다.”
비리에 민감하지 않을 지도자가 어디 있겠냐마는, 부시의 그것은 상상을 초월했다. 미국이 혹법(酷法)으로 유명하지만, 부시는 거기에서 한술 더 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했던가? 정치인에서 비리가 나오면 적용할 수 있는 법에 온갖 작은 범죄까지 모조리 붙여서 철저하게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이게 정치적으로 좋을 리 없었다. 부자병(富者病)이나 부자법(富者法)이라는 단어가 왜 있겠는가? 정치인들이 서로 봐주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중세시대에 전쟁이 나면 귀족들이 서로 죽이지 않고 돈만 받고 풀어주던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다 서로 좋고 좋자고 물고 빠니까 그러는 것 아니겠는가. 그 커뮤니티에서 눈 밖에 나면 좋을 것이 하나 없었다.
“혹시 이유라도 따로 있으신 겁니까?”
“···흠, 그렇군.”
부시는 서류 위에서 손을 놀리다 말고 무릎 위를 점거하고 있는 화이트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풍성한 털이 양복에 가득 묻어났다.
“자넨 못 믿겠지만, 난 대전략 게임(War Game)을 아주 좋아했다네. 그것도 아주아주 많이.”
이는 이 몸의 주인이 아니라, 이 몸의 반절을 차지한 동양인의 이야기다.
“흠, 보드게임 같은 건가요?”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형편상 자주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끔 공부하기나 뉴스 찾아보기가 질리면 그럭저럭 즐겼다네.”
“대통령님의 취미를 운동 이외에서 처음으로 들은 것 같습니다.”
부시는 자신의 개인 취미 활동이 운동밖에 없을 정도로 삭막하다는 사실에 씁쓸하게 웃었다.
“게임에서는 인권이 필요가 없다네. 사실 인권이 있는 전략 게임이 더 드물지.”
사실 전략 게임 대부분이 전부 그렇지만 말이다. 당장 국민 게임이랍시고 있는 것도 가장 처음에 하는 일이 일꾼을 정찰 명목으로 적진으로 보내서 죽을 때까지 적을 괴롭히는 것 아닌가?
“현실도 비슷하다네. 스탈린의 5개년 계획, 중국의 도광양회 등 세상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국가사업 및 과학의 발달. 전부 다 인권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듯한 사업들이었지. 인권을 무시했기 때문에 욕 좀 먹고 있지만, 성과와 효율만은 고평가받는다네.”
쉽게 말하면 인권을 무시하면 어마어마한 효율을 낼 수 있다는 거다. 기계가 왜 효율적이겠는가? 기계에는 인권이 없기 때문이다. 고장 나지만 않는다면 24시간 굴려도 된다. 기계는 급여도 받지 않는다. 휴가도 없다. 식사라고 할 만한 건 전기뿐이다. 반대로 말해서 인간을 기계처럼 굴리면 좋든 싫든 엄청난 효율을 뽑아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인권을 챙겨야 한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비서실장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기본권이니까요.”
“교과서적인 대답이군. 하지만 정답이야. 맞아. 인권이 없다면 자네나 나 같은 노인은 다 죽어야지. 가식도 아니고 위선도 아닐세. 인류가 수천 년이라는 숙성 기간을 거쳐 드디어 손에 넣은 보물이야.”
부시는 껄껄거리며 크게 웃어 재끼다가 갑자기 정색하더니, 손에 들린 서류를 향해 눈을 흘겼다.
“문제는 이게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나라가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거야.”
부시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나라인 미국을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