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12)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11화(212/377)
< 211화 >
“남조선 아새끼들 담배 아까운 줄 모르고.”
주워서 한입 펴보니 자본주의의 구수한 단맛이 뇌 신경을 자극했다. 놀랍게도 사내의 계급은 대좌였다. 대좌라고 해도 전임자가 강제 전역당해서 끼워 맞추다 보니까 반쯤 억지로 대좌 계급을 달게 된 것이었다. 통일되면 어차피 사라질 계급이라며 충분한 심사 없이 실적이나 짬밥 위주로 마구잡이로 달아주다 보니 생겨난 일이었다.
그렇기에 실권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얼굴을 모르거나 친하지 않은 부대에서는 거의 대놓고 무시할 정도였다. 딱히 그만 특별한 것은 아니었고, 현재 평양을 제외하면 다 이런 느낌이었다.
“남조선 수괴하고 미제 수괴 놈하고 판문점 방문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는 그때 GP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하전사였다. 하전사라고는 해도 이미 준 간부나 다름없었던 이였는데, 이젠 아예 단순 간부를 넘어 한 지역의 책임자였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진급 속도였지만, 뭐 어떠한가. 몇 개월 뒤면 사라질 계급이다.
“남조선 군인들이 대대적으로 쌀을 뿌리고 있습네다. 우리 부대에도 쌓아놓고 가고 있습네다. 너무 오랜만에 본 쌀인지라 경계고 나발이고 다 허물어졌습네다.”
사정이 좀 나아졌다곤 하지만
남한은 군인을 동원해 마구잡이로 쌀을 풀고 있었다. 정확히는 쌀과 생필품이었지만, 어쨌든 가장 많은 건 쌀이었다. 그들은 실상 막대한 쌀을 구호품으로 푸는 것만으로 총 한 발 쏘지 않고 평양을 제외한 북한의 모든 지역을 순조롭게 점령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재개발이 한창인 신의주나 남포항 또한 포함되었다.
사실 남포항의 경우 한국군과 미군과 만나 MRE 등을 교환해서 먹거나, 열심히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우린 뭐하네, 우린 개같이 구르네 되지도 않는 신경전 또한 벌였다. 정확히는 신경전보다는 노예 사슬 자랑하기에 가깝긴 했지만, 어쨌든 신경전이라면 신경전이었다.
“이런 작전은 듣도 보도 못해봤습네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이 한 번이라도 있었습네까?”
“와 없갔디? 무혈입성이라는 단어가 와 있갔어?”
그래도 확실히 총칼 대신 쌀 포대로 무혈입성한 경우는 들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일본에는 어려워하는 적에게 소금을 팔았다는 고사는 있지만, 아예 군대까지 끌고 와서 인민들에게 쌀을 뿌렸다는 기록은 없었다.
“몇몇 주민들은 김정일의 저주가 무서운 모양입네다.”
김씨 일가의 그림자 아래 짓눌려 살던 인민들은 정말로 세상의 종말이라도 올 것처럼 굴었다.
“거, 지랄하지 말라. 고것이 참말이라면 당장이라도 사방(四方)에서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장엄하게 날아오르고 김일성, 김정일 부자 둘이서 유리관 부수고 나와서 축지법으로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면서 손수 솔방울로 만든 수류탄으로 남조선 아새끼들과 반동분자 대갈통을 단번에 갈아버리지 않갔어?”
실로 장엄한 개소리였지만, 문제는 이걸 진지하게 믿고 있는 인민들이 실존한다는 점이었다. 북한에서 김씨 일가란 단순히 종교 같은 게 아니었다. 백두혈통이란 단순한 성골(聖骨) 같은 게 아니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차라리 종교라면 모순이라도 지적하지, 그냥 광신도나 다름없었다. 아니, 차라리 정신 나간 광신도면 쏴 죽이고 진압이라도 하지 그들은 인민 그 자체였다.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조국의 독립과 인민을 위하여!”
대좌는 현실과 공산당을 비웃으며 품에서 담배를 꼬나물었다. 대좌 계급장을 달았으나, 여전히 그는 GP에서 몰래 남한 병사와 망원경으로 서로 장난치며 경계 서던 하전사였다.
덜커덩. 실탄으로 무장한 병력을 태운 두돈반이 마을로 진입하며 마지막으로 흔들리며 그 길었던 여행길의 종점을 고하였다.
두돈반이 멈추고 체인이 풀리자 김지훈 병장은 잔뜩 긴장한 채로 두돈반에서 인생에서 가장 신속한 속도로 내렸다. 평생 그렇게 신속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학창 시절 학교에 지각하여 개근이 깨질 것 같았을 때도, 심지어는 신병 때 부득이하게 휴가 복귀가 늦을 것 같았을 때도 이렇게까지 신속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만 같았다.
간부 인솔하에 바닥에 비닐을 한층 깔고 그 위로 쌀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은 창문에서 알짱거리며 머뭇거리다가도 쌀을 보더니 반강제로 경계를 풀고 주변에 와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경계를 푼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쌀의 유혹에 이끌린 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사람을 처음 본 동물들처럼 기웃거렸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광경이긴 했으나, 이것이 김지훈 병장을 비롯한 군 장병들의 마음을 풀어낼 수 있었다.
쌀 포대의 높이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쌀 포대 주변을 기웃거리는 북한 주민들은 더 많아졌다. 사실 정상적이라면 김씨 일가 추종자들이 이를 막을 법도 했는데, 그 추종자들이라는 인간들은 죄다 평양으로 진군 중이었다. 덕분에 이것을 막을 인간들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 말로 해도 알아듣겠지?”
문제는 이걸 나눠주는 일이었다. 계획대로 일차적으로 마을 광장 비슷한 곳에 쌓고는 있는데, 이걸 개별로 나눠주려니 문제가 되었다. 그게 되려면 일단 소통이 되어야 할 거 아닌가. 남북이 분단한 지 고작 50년이지만, 50년의 세월은 남과 북의 언어를 아예 외국어 수준으로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영화에서는 잘만 알아듣지 말입니다.”
어차피 진짜 외국어라고 해야 할 수준의 방언을 가진 제주도에서도 표준어는 잘만 알아들었고, 북한에서도 남한 매체는 충분할 정도로 접하고 있다고 하니 중대장은 그냥 표준어로 말하기로 했다.
“북한 주민 여러분! 남한에서 쌀 나눠드리러 왔습니다! 이 마을의 책임자가 있으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내래 이 마을의 가장 높은 사람이디.”
책임자라고 나온 인물은 누추한 외팔이 노인이었다. 더러운 흙투성이 옷을 입고 있었는데, 한쪽 팔이 없어서 팔 한쪽이 바람에 휘날려 마치 행사장 스카이댄서(skydancer)처럼 나풀거렸다.
“원래는 다른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평양으로 갔디. 이 마을에서는 내가 가장 연장자이니. 내게 말해보라.”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쌀에 눈이 먼 사람들이 무슨 좀비가 사람 습격하듯 쌀로 몰려들었다. 몇몇 포대는 심지어 터지기까지 했다. 다행인 점은 남한에서 수송해온 물량이 그렇게 쌀 포대 몇 개 터졌다고 손해를 볼 정도로 적은 양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지금도 호위하던 민간 차량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표정은 가히 볼만했다. 이것이 어느 정도였냐면, 평생 절대로 못 볼 걸 본듯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청난 물량의 쌀, 쌀, 쌀이었다. 논에서 몇 개에서 나올 수 있는 분량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북한 전체에서 나오는 산출량을 긁어모아 놓은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표정들을 표현하자면, 참으로 기이하기도 했고 아예 침이 떨어지도록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만화나 영화에서만 보던 반응을 목격하니, 남한 병사들은 뿌듯하다나 다행이다 등을 넘어서 아예 낯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북한 주민들도 남한이 아주 유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았지만, 이런 변경의 마을에 이만큼이나 쌀을 가져다줄 정도일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남한에서도 이건 좀 특이한 경우였으니 말이다.
현 대통령은 정말로 쌀을 전부 다 풀어버릴 생각이었다. 단 한 톨조차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어차피 쌀은 지금도 새로 쌓이고 있었다. 시장 문제와 의무수입 때문에 나라가 사들여야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라는 그 쌓이는 쌀이 너무나도 골칫거리였다. 대북지원 이전에는 쌀을 이용한 별의별 이상한 음식까지 만들어서 배포했으나, 이제 그것도 한계인지라 이번 기회에 싹 처리하기로 했다.
“줄 서세요! 줄! 줄 서라니까!”
처음에는 죽어도 서지 않을 것 같았던 줄도 사람들이 당장 먹을 쌀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나니 잘 서기 시작했다. 군 장병들이 도와 집으로 직접 옮겨 놓고 나서는 몇몇 주민들이 미안했던 모양인지 채소 등을 바구니에 담아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도 마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오병이어처럼 쌀이 산더미처럼 남아 마을 창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인공기 옆에 태극기가 휘날렸다.
“누가 이 문 좀 열어봐!”
그런데 그 창고란 게 굳게 잠겨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김지훈 병장이 자물쇠를 개머리판으로 내려찍어서 부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아까 그 책임자라는 외팔이 노인이 다가왔다.
“내가 열지.”
“영감님?”
“문이란 벽과도 같지, 하지만 나는 그 벽을 허물 수 있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네.”
길쭉한 쇠막대로 몇 번 깔짝이면, 그리도 굳건해 보였던 자물쇠가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두 손 멀쩡해도 힘든 일이었는데, 세상에 그걸 한 손으로 했다. 그의 말대로 기술이 아니라 마법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나는 반평생을 외노자로 살았네. 거기서 별 희한한 재주도 익히고 그 값으로 팔도 하나 지불했어. 나는 일이 잘 풀려서 그나마 솔거노비처럼 살았지만, 내 아들놈은 지옥도를 실시간으로 체험했지.”
노인은 녹슨 창고의 문을 온몸으로 낑낑거리며 열며 말을 이어갔다. 그의 힘없는 말은 대부분 쇳소리에 묻혀 공허하게 사라졌지만, 실로 신묘하게도 김지훈의 귓속에 쏙쏙 들어왔다.
“국적도 없고 뭐도 없고. 거기서 건져주겠다고 해서 아프리카로 따라갔다네. 그 끝이 어땠을 것 같나?”
김지훈 병장은 문뜩 눈치챘는데, 이 노인의 말이 조금 어색하고 어눌하긴 해도 남한 표준어임을 알아차렸다. 김지훈 병장의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긴 했지만, 아마도 본래 남한 출신인 듯싶었다. 나이가 지긋한 것을 보았을 때 아마도 6.25 전쟁까지 겪었으리라.
“어땠는데요?”
“뭐긴 조졌지.”
노인은 거기까지 말하고 허탈하다는 듯이 껄껄거렸다.
“아들놈 행방은 아직도 몰라. 죽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지금쯤 오체분시 되어 전 세계에서 여행이라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고.”
거기까지 말하고 나니 창고 문이 전부 열려 있었다. 창고 안에는 놀랍게도 먼지밖에 없었다. 다만 문명 물건이 있었던 자국만이 선명하게 바닥에 남아있어 창고 안은 마치 북한의 현재를 보는 듯했다.
“자네들이 새롭게 만드는 세상에는 그런 일은 없는 거지? 제발 그렇다고 말해주게.”
노인은 벅차오르는 무언가를 토해내듯 절박하게 흐느꼈다. 북한에 충성했지만, 돌아온 건 오로지 외노자 딱지에 외팔이. 그리고 나이 70이었다.
“노인네가 너무 떠들었구먼. 해야 할 일을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