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16)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15화(216/377)
< 215화 >
소비에트 정권이 무너지면서 같이 무너진 러시아의 위상은 차차 회복되고 있었다. 러시아의 경공업 수준이 많이 떨어지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뒤처진 기술은 예산을 투자하여 개발하면 충분히 다른 나라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개발이 아니더라도 협조적인 다른 국가에서 배워오면 됐다. 심지어는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산업 스파이를 통해 훔쳐 오면 그만이다.
비록 지금은 러시아의 광대한 토지에서 나오는 천연자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긴 했지만, 러시아의 부흥을 위한 도약에는 충분한 재료였다. 구체적으로는 약 1년만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러시아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그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다시금 부흥하기까지는 앞으로 단 한걸음. 러시아가 다시금 전 세계를 상대로. 또 냉전 시절처럼 미국을 상대로 천하를 양분하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러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저게 뭔지 나한테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나?”
러시아의 회의실에 시베리아의 혹독한 북풍이 불었다. 진짜 북풍과 같은 점은 사람들을 얼려버렸다는 것이었고, 다른 점은 이 바람은 몹시 예리하여 자칫하면 사람 목도 자를 수 있었다.
“정말로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으면 좋겠군.”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최초에는 그저 보리스 옐친을 대신할 대통령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정말로 공공연하게 차르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카리스마와 무소불위의 권세를 자랑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해서.
진노한 젊은 차르 앞에 감히 누가 나서고 싶겠는가?
‘제기랄.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지 모르겠군.’
그러나 정말로 불행하게도 나서야 할 사람이 있긴 있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이제는 총리가 된 러시아의 명실상부 이인자였다. 그는 적당히 권력욕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목숨이 위험한 것도 싫고 무시 받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렇기에 이런 일을 가장 싫어했다. 입만 열어도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한 일에 총대를 메는 일 말이다.
“예전에 보고드린 셰일 가스입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이인자 자리는 전통적으로 해먹을 자리가 아니었다. 항상 위험하고, 험난하고. 일인자를 대신하여 모든 질책을 받아야 하는 자리였다.
“그걸 누가 몰라서 묻나? 제대로 된 시추 시설을 갖추는데 최소 3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째서 그게 지금 본격적인 시추 시설을 갖추고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고 있느냐는 말일세.”
그의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흥분한 것과는 대조되게 말은 나름 논리정연하고 침착하긴 했지만, 마치 끓는 냄비에서 뚜껑이 들썩거리며 수증기가 새어 나오듯 분노로 부들거리는 손은 차마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는 메드베데프는 식은땀이 흘렀다. 오늘 말을 잘못하면 내일 당장 ‘체렌코프 현상이 일어나는 홍차가 배달되지는 않겠지?’라며 당분간 노심초사해야 할지도 몰랐다. 물론 말실수 한 번에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진 않겠지만, 훗날 책임을 지게 될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오늘 총대를 멘 사람이리라.
“자네들을 그 자리에 앉혀 놓은 게 이것들을 방지하기 위함이 아닌가?”
러시아가 바보도 아니고 셰일 가스를 모를 리가 없었다. 애당초 부시 정부가 매번 대대적으로 광고하던 것이 ‘약속된 땅’ 아니었던가? 다른 나라와는 달리, 다른 대륙에 개입하지 않고도 현재 미국이 가진 토지 안에서 뭐든지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쇄국정책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었지만, 미국 땅에 막대한 양의 셰일 가스가 묻혀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 발언이 무한한 힘을 얻었다.
러시아는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석유와 가스 시세 폭락을 준비하고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망하기 전에 억지로 예산을 투입하여 미래 먹거리를 만들자.’라는 거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시기에 대한 추측이 완벽할 정도로 어긋났다는 거다.
“자, 어서 설명해보게. 1, 2년도 아니고 3년이나 어긋난 이유를. 물론 내가 납득할 수 있게 말이야.”
정보 부족은 핑계고, 추론은 러시아의 기술자들이 내놓은 대답이었다. 더 정확히는 가스프롬에서 내놓은 대답이었다. 그리고 가스프롬은 세계 굴지의 정유 회사였다.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그런 회사에서 연구와 고심 끝에 내놓은 대답인 만큼 신뢰도는 상당했다.
사실 이것 말고는 알아낼 방법이 없기도 했다. 산업 스파이를 사용하는 방법은 어느 순간부터 묘할 정도로 끼어들기 힘들게 되었고, 미국의 행정부에 침입하는 방법은 거의 대놓고 차단되어 있었다. 이는 CIA의 예산이 대폭 늘어난 탓이었다. 가깝게 접근할 수는 있어도 주위를 맴돌게 되었다.
이 정보를 종합했을 때도 앞으로 3년은 더 개발해야 정상이었다. 단순 기술 개발과 상용화는 엄연히 별개이기 때문이다. 가스프롬 연구진이 3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추론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미국이 셰일 가스 시추에 가장 간단한 방법인 수압파쇄법을 환경문제로 사용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시선으로 이를 보았을 때. 이는 현 세계 최강국이라는 오만에 절어 조금쯤은 늦어져도 된다는 안일한 사고방식이 부른 아주 어리석은 오판이었다. 그 사이에 러시아는 회복세를 타고 미국의 목덜미에 예리한 단검을 들이댈 수 있을 터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정작 그 오판이라는 걸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가 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미국의 석유에 대한 갈망을 잘못 판단한 것 같습니다.”
미국만큼이나 석유에 미친 나라도 없었다. 세상에는 종종 이미지와 실제가 다른 일이 있지만, 미국이 석유에 미쳤다는 이미지만큼은 가감 없이 완벽히 진짜였다. 소비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이었기에, 미국인의 소비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석유가 상시 필요했다. 이는 지하에 묻혀있는 석유 마지막 한 방울이 연소 되어 지구상에서 석유라는 자원이 박물관이나 각종 기록 매체에서나 볼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도 바뀔 일이 없었다.
어쨌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미국인들의 석유에 대한 갈망이 기술 개발과 상용화 및 양산의 절차를 초고속으로 진행하게 했다. 이는 부시의 재선이 확실하리라는 점. 그리고 미국이 더는 중동으로 확장하지 아니하기로 했다는 점이 유효했다.
정유 회사들은 해외에서는 유럽 정유 회사에 밀리고, 내부에서는 괴팍한 대통령 하나 때문에 제대로 된 수익을 찾을 수 없으니 정말로 미쳐 날뛰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세상 모든 거래가 꼭 상호 간의 이익만으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정치질에 사기 계약이라는 단어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래도 아직은 다행입니다.”
“다행? 뭐가 다행이라는 거지?”
푸틴의 눈에서 그가 진정으로 분노했을 때만 볼 수 있는 차가운 불길이 차츰차츰 일어나고 있었다. 혹자는 안광이라는 단어가 비유로 쓰이는 줄로만 알지만, 이 사내와 알고 지내다 보면 그것은 비유가 아니라 현상을 표현한 단어라는 사실을 깨달으리라. 푸틴의 눈에서는 마치 시퍼런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제아무리 미국이 석유를 시장에 마구잡이로 푼다고 한들 1년 내외로 갑자기 폭락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산 단계에 들어간 건 맞지만, 아시다시피 시추 시설을 생산하여 배치하는 건 어떤 나라나 회사라고 해도 꽤 시간을 녹여야 하는 일입니다. 사업이란 수지 타산이 맞아야 돌아가니까요.”
조금만 더 지체했다간 큰일이 날 것만 같아 메드베데프는 급하게 변명하듯 대답했다. 메드베데프에겐 몹시 다행스럽게도 그 말을 들은 푸틴의 눈에서 이채가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것도 그렇군.”
메드베데프의 설명은 푸틴이 충분히 납득할만했다. 시장이 하루아침에 뒤바뀌지는 않으리라. 물론 대부분의 주가는 마치 쓰나미라도 덮친 듯 이리저리 요동치겠지만, 당장 러시아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럼 우리는 그동안 대비해왔던 것을 좀 더 가속하면 되겠군.”
푸틴은 메드베데프의 논리정연한 설명에 안심했고, ‘저유가 시대 대비 프로젝트’를 가속할 장관들과 관료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부서가 사실상 연장 근무에 연장 근무를 거듭하던 참이었는데, 이젠 아예 집도 가지 못하게 생겼으니, 이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각하. 가스프롬으로부터의 연락입니다.”
“허가하지.”
가스프롬 또한 지금 메드베데프가 중요한 회의 중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바. 그러니 지금 걸려온 전화는 필시 그 회의 시간에 긴급히 전화해야 할 만큼 분명 중요한 일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나까지 곤란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한 메드베데프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으러 살얼음 같은 회의장에서 아주 잠시지만 탈출할 수 있었다.
“따로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 있나?”
계획 자체는 부서마다 꿈에서 일할 정도로 복잡했지만, 이것들의 공통점은 저유가를 기반으로 도리어 제2차 산업과 제3차 산업으로 약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반드시 저유가 시대가 오기 전에 기반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미 대규모 공단이 계획되고 부지를 확보한 뒤 공장 건설에 들어가고 있었다. 국영이 아니라는 점이 좀 껄끄럽긴 했지만, 가스프롬처럼 주식을 확보한 뒤 국영처럼 운영하면 그만이었다. 기업으로부터 반발이 있긴 하겠지만, 다음날 변사체로 발견되고 싶지 않거든 아마 순순히 따르리라.
그러니까 지금 푸틴이 말하는 ‘아이디어’는 이것들을 좀 더 매끄럽게 할 수 있는 윤활유 같은 아이디어가 없느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있을 리가 없었다. 있더라도 이미 그렇게 하고 있거나, 대통령 앞에서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들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말실수는 본인의 신상이나 앞으로의 정치 생활에 큰 걸림돌로 성장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불편한 침묵에 푸틴의 심기가 다시 어그러질 무렵, 문이 열리고 메드베데프가 복귀했다. 정확히는 복귀가 아니라, 푸틴의 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급하지만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메드베데프는 푸틴에게 귓속말을 청하였다.
“각하.”
그리고 메드베데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사우디에서 비축해뒀던 석유를 시장에 대거 풀고 가격을 담합하여 가격을 대폭 내렸습니다. 지금 당장 그나마 준비된 계획들을 실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푸틴의 입에서 나온 말도 푸틴 스스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씨발(Блять).”
이날 푸틴이 내뱉은 욕설은 푸틴이 대통령직에 부임하고 나서 연기나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첫 욕설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