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26)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25화(226/377)
< 225화 >
“What the Fuck?”
아무것도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 나라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초원과 들판. 험준한 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밭과 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신병은 기름 냄새가 나는 새 M1 개런드를 양손에 꼬나쥐고 태평양 너머 한반도라는 곳에 투입되었다.
그가 알고 있던 사실은 지난 전쟁에서 그렇게 박 터지게 싸웠던 일본 열도 바로 위에 있는 작은 나라라는 사실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안에는 자유에 대한 존중과 멸공에 대한 갈망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간신히 참호 위로 고개를 내밀어 한 명을 잡을 때 무려 다섯의 빨갱이를 잡았던 명사수였던 그는 이제 안경이 없으면 눈앞의 연필조차 찾을 수 없는 나이 지긋한 노인이 되었다. 다만 안경이 필요하다뿐이지 사냥 솜씨는 여전했다.
그는 50년 만에 다시 찾은 나라에서 제법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전쟁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찾아간 이유는 죽어도 이 자리에서 죽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사실 젊었을 적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다신 이쪽으로 쳐다보지도 않고 오줌도 싸지 않겠다면서 벼르고 벼르긴 했었다.
그대로 잊고 다 늙을 때까지 살다가, 돌연 일주일 전에 이혼하게 되었다. 늦바람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당한 것이, 그 바람난 상대가 노환으로 사망하더니, 바람난 마누라도 심장마비로 사흘 전에 사망했다. 이 무슨 막장 드라마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노인에게 자식은 없었다. 자식놈들이 하나 같이 부모보다 먼저 가는 불효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손녀나 손자도 없었다. 그 불효자들이 독신주의를 고수한 덕분이다.
연이고 미련이고 다 없어진 그 노인의 행동 원리는 간단했다. 가장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곳으로 가기로 했다. 가장 빠른 길은 책상 서랍 안에 있었지만, 별로 자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장소가 필요했다. 심상이 복잡해진 사람에게 합리적인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반도가 전쟁이 끝난 이후로 그의 인생에서 자발적으로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할 때는 오로지 그의 빨갱이 때려잡는 실력을 자랑하는 무용담을 떠벌릴 때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공항에서 내렸을 때 그에게 다가온 충격은 상상을 불허했다.
다만 충격과 다르게 감상은 매우 짤막했다.
‘내 젊은 시절이 헛되지는 않았군.’
딱 이 정도였다. 근 한 달간 일련의 사건을 통해 감정이 모조리 소진되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했다. 감정이 차분하면, 평소보다 주변이 더 잘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쟁 도중인 건 맞나?”
정말로 전쟁 도중이긴 했다. 그런 것치곤 국민의 일상이 다른 국가보다 좀 활발하긴 했지만, 전쟁 발발 초기에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사람들이 공항에 몰려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벌써 빠져나갈 사람들은 알아서 다 빠져나갔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남은 사람들은 한마디로 ‘불안하지만, 국군을 믿는다.’라고 생각하고 일상생활에 종사했다. 회사원은 회사에 가고, 학생들은 학교에 간다. 지나치게 저학년이거나 몇몇 민감한 학부모들은 아예 학교에 보내지 않기도 했지만, 고등학생부터는 어림도 없었다. 어쨌든 상황을 고려하여 선생 임의대로 학생들에게 숙제를 많이 주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었지만, 당장 전쟁이 난 국가치고는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물론 그 안정적인 건 정말로 눈에 보이는 껍데기뿐이었지만, 전쟁이 났을 때 껍데기라도 안정적인 국가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점을 상기했을 때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공항에 설치된 TV에는 검은 연기가 올라오는 평양이 보였다. 한국어는 잘 몰랐지만, 평양이라는 단어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뉴스에서 보여 주는 것은 위성사진이었는데, 하도 미국 뉴스에서 떠들어대서 평양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 대동강 물이 마실만 했는데.’
식수를 바로 강에서 떠다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거의 신세계였다. 물론 미국에서도 그런 곳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전장 전체에서 그런 물이 나온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물론 국토 면적으로 비교하면 비교조차 되지 않을 터였지만, 어쨌든 그런 ‘전장’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마실 수 없을 듯하군.”
비행기 창가 너머로 보였던 서울의 광경을 상기하면, 강물은 대부분 마실 수 없게 되었으리라. 급격한 산업화의 여파로 폐수 등으로 오염되었을 것이 틀림이 없었다.
뉴스는 아예 평양에서 일어나는 내전과 한국의 북진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지만, 평생 영어 하나 가지고 살아온 미국 노인이 이를 알아들을 리가 만무했다.
“그럼 평양은 갈 수 없는 건가?”
사실 평양으로 가려면 사실 한국이 아니라 북한으로 직행해야 했지만, 한반도에 대해서 한국 전쟁 시절에 완전히 지식이 정체되어있는 노인이 그걸 알 리가 만무했다.
거의 한 일곱 발을 쏘면 그중 한 번은 무조건 걸리는 듯했다. 얼마나 노리쇠가 뻑뻑해졌는지, 손가락으로는 도저히 움직이질 않아 어디 물건의 모서리 같은 곳에 억지로 내려쳐서 장전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다 가끔 다치기도 하고 아예 무기가 고장 나기도 했다. 무기고에는 무기가 잔뜩 쌓여있었지만, 무기고까지 접근할 수가 없었다. 사실 무기고가 어디인지도 잘 모른다. 쌓여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간부도 아니고 사병이 그것을 어찌 안다는 말인가? 다만 보급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가 들렸다.
– 다리를 전부 폭파했다!
‘아무래도 충성의 다리나 양각교가 터지는 소리였던 모양이군.’
다리가 무너지는 굉음은 평양역에서도 아주 잘 들렸다. 그러나 귀가 먹먹하여 얼마나 큰지는 가늠이 잘 되질 않았다. 이미 평양 시내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날림으로 공사한 건물들은 전투의 여파로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 이미 개전 동시에 눈먼 포탄을 맞고 터진 평양화력발전소에서는 한 마리 검은 흑룡이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었고, 대동강 한가운데 있는 두루섬과 양각도에서는 이미 수비군이 철수한 지 오래였다.
솔직히 이 남부 전선을 제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얼핏 무전에서 개선문이 함락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거 같기는 한데, 금수태양궁전과 조선중앙동물원에서는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니 밀렸다가 밀어버린 건지 아니면 그냥 잘못 들은 것에 불과한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끔찍하기 짝이 없군.”
통신병도 아닌 주제에 일개 사병이 무전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간부가 죽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간부가 사망하면, 바로 간부가 수행하고 있던 임무를 수행하게끔 했는데, 솔직히 그딴 건 알 바 아니었고 죽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그가 소속되어 있던 소대의 소대원은 다 죽었고, 그만이 남아 모든 직무를 이양받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가 이 낡아빠진 무전기와 전우의 총기. 그리고 장비를 소지하고 있더라도 문제가 될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남부 전선은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이었다. 이 내전 자체도 거의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었고 이 고물이나 다름없게 변한 총을 들고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들이 구체제에 환장한 광신자들이라곤 하나 마지막 한 명까지 전부 옥쇄할 수는 없었다. 피가 눈에 보이고, 잔혹한 광경이 눈에 들어오면 사람의 반응은 보통 둘로 갈린다. 과할 정도로 흥분해서 이성을 완전히 잃거나, 삶에 대한 소중함을 깨우치고 발에 땀이 나도록 도망치거나.
아마도 보통은 후자다. 근대에 화력의 발전으로 인해 전열보병에 의한 라인전이 한참 발전하던 시대에 러시아에서 밀집 보병을 고수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군대는 사기가 떨어지면 도망가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음에 다시 오든 말던, 지금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고 봐도 좋으리라. 더는 오감을 곤두세우지 않고 한숨 돌릴 수 있다는 게 어찌나 행복하던지, 자리에 앉자마자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때였다. 무전기로부터 황당한 이야기가 들려온 것은.
– 남조선 아새끼들이 북진하고 있다!
“애미.”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전쟁에 대한 대책이 그야말로 남산만큼이나 쌓여있었지만, 아쉽게도 이것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대로였다면 그야말로 피를 피로 씻는 전쟁이었다. 서울을 비롯한 남한의 주요 도시는 가루가 되어 있을 터였고, 온갖 생화학 병기로 인해 그야말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으리라.
전쟁은 삽시간에 끝났을 것이며, 완전히 박살 난 인프라와 경제. 그리고 국민의 마음에 처참한 상처만이 남았을 터였다. 그러니까 이건 ‘만약 전쟁이 난다면 가장 이상적인 상황’에 해당했다. 서로 간의 포격전도 없고, 생화학전도 없다. 사실 꼴이 이러지 평양이 아니면 제대로 싸워보기나 할까 의문이었다.
“방금 저희 군이 북한의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문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국방부 장관이 이 사실을 대통령에게 전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것으로 전쟁 같지 않은 전쟁이 시작되었다.
“38선을 넘었다는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위에서는 ‘절대로 교전하지 말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답니다. 국경선에서 많은 병사가 귀화했습니다. 이걸 지금 시점에 투항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귀화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전시임으로 ‘투항’이었다. 다만 전선에서 한국군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나, 투항한 북한군이 한국군을 대하는 태도나.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투항보다는 귀화에 가까웠다. 거의 포로 취급이 아니라 귀화한 국민 취급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걸 전선이라고 부르긴 해야 하나?’
그 누구도 이런 전쟁을 상정해본 적이 없기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해야 하는 일은 바뀌지 않았다. 각 지역을 점령하고, 평양을 점령한다. 비록 죽여야 하는 적의 수괴는 없어졌지만 말이다.
그렇다. 본래대로였다면, 항공 병력이 제공권을 장악하고 대공 병기를 파괴한 뒤 바로 헬기와 수송기 등을 통해 공수 병력을 투입하여 평양을 점령한다. 이것이 개전 시 벌어질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하는 건 제공권 장악이고 나발이고 그냥 요즘 유행하는 실시간 전략 게임에서 공격 명령 하나 내리듯 새롭게 짠 계획대로 진군 명령을 내렸을 뿐이었다.
심지어 몇몇 지역은 기존의 ‘쌀 부대’로 점령된 상태였다. 점조직처럼 얇게 퍼져서 게릴라에 가까운 양상을 띠긴 했지만, 어쨌든 현지의 협력 덕분에 잘 넘어갈 수 있었다. 참으로 황당했지만, 현실이 그러한데 어쩌란 말인가?
어쨌든 지정학적 특성상 군축 없이 세를 불려온 한국군의 규모는 완전히 낙후된 북한의 치안 유지를 하기에 너무나도 적합했다.
“돈 좀 깨지겠군. 예산이 깨지고 내 머리통도 깨질 거야. 자칫하다간 재선은 꿈도 못 꾸겠군. 그래도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났지. 평양에서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