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38)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37화(238/377)
< 237편 >
“치료제 지원을 해주든지 말든지.”
제대로 되먹은 진단검사 키트 하나도 없이 다짜고짜 아프리카의 슈퍼 사스 치료제 수요량을 조사해서 바치라고 하니 참으로 빌어먹을 일이었다. 외교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질 않으니, 각국에 자율로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수요 조사를 CIA에 주문한 건 이해가 가긴 하는데. 고작 외교조차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 주제에 뭘 지원까지 하시겠다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실 뭐, 아프리카에 영향력이 투사된 이후로 외교 자체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동안은 대서양이라는 대양이 천연 경계가 되어 먼나라 이웃나라였기 탓에 외교에서 유럽에 비하면 다소 소홀했던 건 사실이다. 그것이 미국이 되었든 아프리카 대륙의 나라가 되었든 말이다. 다시 말해 양방으로 소홀했다는 소리다.
그러나 미국이 수단을 통해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투사하기 시작하며 아프리카 대륙의 상황은 일변했다.
– 저 죽이게요?
“엄밀히 말하면 네가 걸린 게 그 병인지 아닌지도 모르지.”
그녀는 병마로 인해 본국에 있었다. 잠시 업무로 돌아간 것이었으나, 거기서 병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에서 걸리는 병이라. 참으로 웃겨 죽을 지경이었다. 하긴 의료 부분에서만큼은 끔찍할 정도로 낙후되긴 했다.
– 검사 결과 나왔어요. 그 병이 맞네요. 이걸 어쩌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기침을 토해냈다. 기침치고는 상당히 컸는데, 크루거의 머릿속에서 그녀가 휴대전화에 대놓고 밀착해서 기침하는 모습이 빤히 보였다.
걱정? 걱정되긴 얼어 죽을. 그녀 몫의 서류에 깔려 죽지나 않을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깔려 죽는다는 건 비유가 아니었다. 정말로 저것에 깔리면 비명도 못 지르고 죽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책상 하나가 서류 무게를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는 바람에 온종일 서류 분류를 다시 해야 했다.
물론 부하들을 시키긴 했지만, 이대로라면 손도 쓰기 힘들 정도가 될 게 눈에 너무나도 선해서 그렇지 않아도 슬슬 크루거 본인이라도 직접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올라오던 참이었다.
‘이거 큰일 났구먼.’
– 저 없으면 부서 안 돌아가죠?
“내가 아프리카는 다 키워냈구먼, 뭘.”
– 어머, 혼자 키워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염병 지랄 나셨다.’
그놈의 자존심을 접고 백 보 정도 양보하면 절반은 그녀가 키워냈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녀의 조력이 없었으면 아프리카의 정보망을 장악한다는 건, 그야말로 꿈에서나 가능할 일이었으니 말이다. 쉽게 말해서 그녀가 소화해낸 업무량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겉으로는 이렇게 말은 해도 속으로 당장이라도 그녀가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저걸 처리하고 있으면, 원래 크루거가 맡던 일에 지장이 생긴다. 그럼 그 지장을 없애기 위해서 다시 본인의 업무를 처리하면, 그 아주 잠깐 사이에 또 쌓이고 있다.
결국엔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려막기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어도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정확히는 실력보다는 ‘직급 문제’라는 게 맞았다.
– 그래도 그렇게 큰일이라고 떠들어대더니, 이거 결국 별일 아니었네요?
“아, 그렇다면 각국이 펼친 위장이 아주 잘 먹힌 거지. 저번에도 강조했지만, 전 세계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떠들고 있어도 정보 다루는 사람한테까지 감출 수는 없지. 이거 생각보다 큰일이란 말이야.”
특히 지금 긴급으로 처리해야 하는 치료제 수요 집계 같은 것 말이다.
검사할 수가 없으니 집계할 수도 없었다. 진단검사 키트? 그런 건 애당초 아프리카에서 개발조차 되지 않았다. 축소하기 위해서 모조리 다 건너뛰고 치료제 개발부터 시작했으니, 이 시국 자체가 일종의 도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진단검사 키트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미국에 모조리 몰아준 치료제와는 다르게 여유가 있는 나라에서 알아서 생산하고 있을 뿐.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아프리카에는 그런 국가가 없었다. 구태여 따지자면, 아프리카에서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인 가봉 정도가 이제 막 다른 국가들의 협력을 받아 개발을 끝내고 양산 체제에 들어간 정도였다.
– 그래도 일주일 뒤면 끝날 일이잖아요.
“정확히 말해서 이주 뒤지. 여기까지 배송이 오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말이야. 그래도 본국에서 파견 나간 사람까지 꼬박꼬박 챙겨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부시는 CIA를 굴리는 만큼 대우도 개선해줬다. CIA라고 하면 최고의 대우를 받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높은 봉급에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세상에 날로 먹는 직업이 하늘에서 떨어진 낙하산을 제외하면 어디에 있겠는가? 크루거를 위시한 몇몇 CIA 요원들은 높은 봉급과 높은 노동강도가 전혀 비례하지 않았다.
‘지랄 맞군.’
– 아까부터 왜 자꾸 욕이에요?
“내가 언제.”
– 뻔하죠. 속으로 대답할 때마다 구시렁거렸을 거면서.
실로 정곡이었다. 크루거가 이토록 찔려본 적이 몇 번이나 되던가? 유년 시절 하루에 1개로 제한된 아이스크림을 냉장고에서 다섯 개나 약탈하고 난 뒤 어머니에게 현장 검거를 당했을 때 정도였던가? 그녀가 크루거의 속을 이렇게나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건 그녀와 일선에서 너무 오래 알고 지낸 탓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전화가 끊겨 있었다. 아직 업무상 해야 할 말이 있었던 탓에 의아해하고 있으려니, 그녀가 필요한 건 메일로 보냈다는 문자가 와있었다. 메일을 열어보니, 과연 병상에 누워서도 일만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런 젠장. 국제 전화 요금이 내 통장에서 나는 게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는 입에 담배를 꼬나물었다가. 도저히 필 맛이 나지 않아 반도 태우지 못하고 그대로 비벼 꺼버렸다.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 세계 지도를 펼쳤다.
‘맨날 디지털 타령하면서 이런 거나 좀 디지털화 시키지.’
엄밀히 말하면 존재는 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아프리카 지부에까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거지. 조만간 아프리카 지부에 대한 지원이 확대된다고는 하지만, 그 조만간이라는 게 1년 뒤가 될지 3년 뒤가 될지 누가 안단 말인가? 하긴 신설 지부가 여기까지 지원을 받는다는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긴 했지만, 장차 아프리카의 핵심이 될 지부치곤 좀 초라하긴 했다.
사실 지금 앞에 펼친 세계 지도도 구식이었다. 남북한이 통일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앞에 놓인 세계 지도에는 남한과 북한이 38선을 끼고 여전히 분단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딱히 다르진 않겠지.’
통일이 되긴 했으나, 그렇다고 딱히 달라진 건 없다. 북쪽은 여전히 빈곤했고, 남쪽은 여전히 부유했다. 그러나 자본이 들어가고 나면 10년만 지나도 한반도는 크게 달라져 있을 거다. 그게 좋지 않은 의미든, 좋은 의미든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10년 사이에 다시 분단되는 일은 없겠지.”
분단이라는 게 일단 하고자 마음을 먹으면 그만큼 그 세력이 힘을 가져야 하는데, 힘이 실릴 턱이 있나. 아무리 개판이 되어도 먹고 사는 게 개선되고 나면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거다. 물론 그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아주 극소수에 불과할 터였다. 그리고 유구한 인류 역사에서 극소수에 의해서 국가가 전복된 사례는 존재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런 생각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크루거는 눈을 다시 아프리카로 돌렸다. 제국주의 시절에 침략자들의 편의대로 그어진 직선으로 가득한 끔찍한 국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빌어먹을.’
게다가 치료제 수요 조사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했다. 어떤 나라에서는 뭐가 유명하고 뭐가 맛있는지 그런 홍보용에나 필요한 정보가 아니라. 어떤 곳은 위험하고 어떤 곳은 위험하지 않은지 그런 정보를 요구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유명한 관광지 외에는 전부 위험해! 알아들었으면 당장 꺼져!’라고 일축하고 싶었지만, 이게 대통령 직할 명령이었던 탓에 대충 좆이나 까라면서 반려할 수도 없었다.
국민이 자신이 ‘잘살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데에는 이런 비교가 가장 빨랐다.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살아가면서 꼭 한 번씩은 듣는 소리가 있다. ‘그래도 이런 국가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히 여겨라.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으면 어쩔뻔했느냐?’ 같은 소리 말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하지 않은가?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목도해야만 비로소 감사를 느끼게 된다니?
일이 이거까지만 있어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다 못해 질질 짜면서 땅에 입을 맞출 지경인데, 그가 맡은 일만 해도 크고 작은 것까지 전부 합치면 도합이 183개였다. 이건 절대로 일반적인 업무량이 아니었다.
출세하고자 하는 욕심에 자청했다지만 이건 너무했다. 일반인이라면 하루에 하나를 소화해내기 힘든 분량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능력에서 한참 벗어났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여유가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고, 크루거 본인이 가진 능력을 총동원해도 업무 처리량은 정상 범주에서 간신히 턱걸이 중이었다.
“내가 모셔본 상전 중에선 조지 W. 부시. 당신이 최고요.”
크루거는 서류를 툭 소리 나게 던지며 중얼거렸다. 당연히 반어법이었다. 아버지 되시는 분께서도 CIA를 이렇게 어디 시정잡배처럼 막 굴리지는 않았다. 사실 이쯤 되면 CIA인지 아니면, 어디 뉴욕 빌딩에 박혀 있는 사실 탐정 사무소의 고급 인력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하긴 나 정도면 그 일을 해도 잘 나갔을 거야. 돈도 지금보다 더 벌고 있겠지. 하지만···.’
그런 민간 직업에서 이 정도의 권력은 결코 맛볼 수 없으리라. 아,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마음만 먹으면 콩고 민주 공화국 대통령의 속옷 색깔까지 알 수 있는 정보력과 고작 편지 하나로 그 대통령까지 움찔하게 만들 수 있는 권력이란.
‘내 끝이 아프리카 지부장은 아니겠지.’
그럴 리는 없었다. 아프리카와 미국 사이의 많은 유착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 무서워서라도 크루거가 그럴 마음이 들었다면 순순히 본토로 돌아가도 위로 보내주리라. 설마 암살당하지는 않겠냐 싶으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워지는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이번 정권에서는 최대한 청렴하게 사는 수밖에 없겠군.’
가장 안전한 방법은 한통속이 되는 거였지만, 지금 대통령 아래에서 부정한 부를 착복하고 나서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본보기로 목이 잘릴지도 몰랐다. 물론 목이 잘린다곤 해도 진짜로 잘리지는 않겠지만, 권력과 명예욕 하나로 살아가는 인물에게 좌천이란 그냥 목이 잘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도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상태에서 다음날 찬란한 아침 해가 뜨고 나면 행맨(Hangman)으로 발견될지도 몰랐다.
“아, 오늘따라 더 애틀랜타로 돌아가고 싶군.”
이렇게 구시렁거리는 와중에도 손은 착실하게 선전용 다큐멘터리에 쓰일 나라 후보를 끼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