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3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38화(239/377)
< 238편 >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예기치 않은 통일로 인해 갑자기 늘어난 입. 불완전한 상태의 행정 및 탁상공론 수준의 절차. 50년 차이의 문화가 뒤섞이면서 벌어진 크고 작은 다툼. 모든 것이 핵분열이 일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기어코 김정일이 죽으면서까지 염원의 핵폭탄을 한국에 심어놓았다고 자조하는 이도 있었다.
아마 미국의 꾸준한 투자가 없었다면 한국판 고난의 행군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 땅과 국민을 소화해내는데 진실로 막심한 부작용을 겪어야 했으리라. 그 과정에서 국민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터였다.
“염병. 맛 대가리가 없어!”
그러나 통일의 부작용은 아주 의외의 부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서울의 가장 한복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민족 염원의 통일이 이루어졌음에도 대구 시장 주민들의 낯빛은 어둡기 그지없습니다. 슈퍼 사스로 인해 중국의 현지의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값싼 중국산의 물류가 끊긴 탓입니다.
뉴스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긴 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이는 전적으로 정부의 입김이 들어간 뉴스였다. 언론사들은 하나를 일부러 빼먹고 보도했는데, 그건 바로 그 중국으로 들어온 그 작은 물량이 북쪽으로 빠지고 있다는 정보였다.
본격적으로 복지를 시작하고 인권을 챙기기 전에 복구부터 시작해야 할 것 아닌가? 복구라고 하면 전쟁이 난 평양 복구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실은 이게 단순히 평양에 그치지 않고 ‘북쪽 전역’에 걸친 복구였다.
기존에 지어진 모든 건물, 인프라는 심각하게 구시대적이거나, 당장이라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종잇장 같은 건물들이었다. 그렇다고 북한이었던 땅에 멀쩡한 게 하나도 없느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는데, 그게 하필 벙커였다.
경제에는 도움이 하나도 안되는 그 벙커 말이다. 공군이 평양 전역을 폭격했음에도 평양에 설치된 벙커만큼은 멀쩡했고, 당장 국군이 주둔지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효율적인 설계를 자랑했다.
그렇다고 정말 벙커만 있는 건 아니었고, 땅속 깊은 곳에 위치한 지하 노선. 다시 말해 지하철은 멀쩡하긴 했다. 문제는 이건 제정신이라는 게 박혀 있다면 도저히 써먹을 수 없는 구식. 아니, 구식을 넘어서 굴러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는 녹슨 고철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한 고깃집의 사례를 보자.
“이런 시발! 마늘이 없어! 아니, 고기 먹는데 마늘이 없다는 게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고기에 술이 빠져도 마늘이 빠지면 안 되지!”
이는 비단 고깃집에서만 나오는 장면이 아니었다. 마늘 공급이 완전히 끊기자 마늘이 들어가는 메뉴는 전부 가격이 올라갔다. 마늘 정도야 향신료 따위로 취급하는 외국이었다면 상관없었겠지만, 한국에서는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 메뉴를 찾아보는 게 더 힘든 형국인지라 전체적인 물가가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가 살인적일 정도로 출렁이는데 통일까지 겹쳤으니 환장할 노릇이 아니면 도대체 뭔가?
그래도 이 정도는 그냥 개인의 불만이나 꼬장으로 그쳤다. 그저 일시적으로 물류 공급에 암운이 드리운 사회적인 시류를 이해하는 분위기였고, 이런 사람들은 원래부터 난동부리기 좋아하는 부류로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다.
올라간 물가도 정부의 필사적인 대처로 그래도 그럭저럭 살만할 정도로 유지되고 있었고, 하루에도 수십 건씩 시시각각 불거져 나오는 문제들을 오로지 애국 물결 하나로 일단 무마하고 있었다.
“이모! 이, 이거. 이거 국밥 맛이 왜 이래?”
“이게 뭐야! 아무리 그래도 ‘김치’가 없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한국인 밥상에 김치가 어떻게 빠질 수가 있어! 김치가!”
통일이라는 사기급 애국 물결에도 불구하고 통일 이후 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파업이 열렸다. 파업이 열린 곳은 공사판. 다시 말해 건설 업계들이었다. 이 업계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타격을 받은 이유를 알고 나면 기가 찼다.
파업 사유가 고작 ‘맛’ 때문이라니.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실로 사소해 보이지만, 공사판에서 노다가 뛰고 있는 사람들 눈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공사장의 사기는 함바집의 맛으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급여가 아니라 식사의 질 말이다.
급여도 노동 의욕에 영향을 주긴 하겠지만, 밥맛이 떨어지면 급여가 2배 올라가도 일할 맛이 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의욕을 내지 못하니 일 진척이 더디게 흘러갔다. 일을 할당량만큼 채우지 못했으니 일당이야 깎이는 건 깎이는 거고 노동자들 이상으로 발등에 불이 붙은 건 건설업체였다. 차라리 자신들이 대우라도 잘못한 거면 고치면 그만이지, 공사판 밥집에 마늘이 떨어져서 노동 의욕이 상실되다니?
현장에서 굴러본 사람이라면 모를까. 책상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 못 할 일이었다. 이 상황이 좀 개 같기는 해도 그럭저럭 참을 수는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중국에서 물자 유입이 좀 줄어든다고 휘청거릴 대한민국 경제가 아니었다. 그동안에도 정부가 이 사태의 장기화를 예측하고 다방면으로 대응하여 물가는 좀 올라갔지만, 공급 자체가 흔들리는 법은 없었다.
그런데 하필 준비 없이 ‘통일’이 되는 바람에 상당히 곤란해졌다. 한국 정부는 북쪽 재건을 위해서 상당량의 물자를 북으로 보내야 했다. 물자 자체를 남쪽에 묶어놓는 게 가장 상책이었지만, 그랬다간 약속과 다른 대우에 북에서 들고 일어날지도 몰랐다.
행동력 있는 인간들은 전부 산으로 숨어들어 빨치산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다시 한번 다른 곳에서 들고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대규모로 군을 투입하여 사전에 마을과 도시를 점거한 덕분에 내전에 참여한 사람이 사회로 다시 숨어드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물론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
다시 마늘 이야기로 돌아와서, 마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본 이들이 또 있었으니 군부대였다.
“이런 젠장! 원래부터 짬밥은 맛 대가리가 없었지만, 이젠 더 없어졌어! 이딴 걸 먹고 무슨 작업을 뛰어!”
민간도 웃돈 주고 마늘을 사들이는 마당에 군부대라고 해서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었다. 국산을 사고 싶어도 물량이 없어서 사들이지 못하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물가의 상승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야금야금 월급이 올라가는 와중에도 병사의 월급은 동결 상태였다. PX에 들어오는 물건들은 세금이 붙질 않아 싸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물가가 오른 이유가 재료 수급의 불안정함인지라 PX의 물건 가격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쥐 꼬리 만한 월급으로 사제에 접할 기회는 점점 사라져갔다.
“죄송? 죄송하면 군 생활이 끝나나! 당장 마늘을 구해오란 말이다! 어떻게 이렇게 맛대가리 없는 걸 먹으란 말이냐!”
“아니, 최병장님. 그걸 어떻게 구해옵니까. 민간에서도 못 구한다는데. 애들 탈영이라도 시킬까요?”
‘이런 씨. 김병장 사라지니까, 이젠 최병장이 지랄이네.’
최병장의 분노는 어찌 보면 정당했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병장들이 누리던 특권들이 사라지다시피 했다. 실탄을 장전하고 경계를 서야 했고 얼굴에는 위장 페인트가 마를 날이 없었다. 신병 이병부터 말년 병장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FM’대로 돌아갔다.
평시와는 비교조차 불허하는 진짜배기 FM에 반대급부로 말년 병장들의 꼬장은 전국적으로 나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젠장! 도저히 용서 못 해! 말년에 근무라니! 말년에 짬밥이라니! 이런 개 같은 일이!”
김병장의 소대는 전쟁 초기부터 말기. 심지어는 그 말기를 지나서 종전이 오고 나서도 국군이 올라올 때까지 그 마을을 지켜야 했다.
고장 난 무전기를 고치러 간 간부들은 남한과는 비교조차 불허하는 북한의 원시림에 현혹되어 조난되었다가, 뱀과 나무뿌리를 캐서 먹으며 전진하다가 기적적으로 아군 물자 수송 헬기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대대적으로 하사관의 확충이 필요했고 김병장은 그대로 하사관에 지원하여 경계 서던 마을 근처 부대에 부임하는 것으로 전설이 되었다.
“이걸 어쩌지.”
백악관으로 돌아온 부시는 보고서를 읽어내리다가, 이내 딱딱해진 표정으로 혀를 찼다.
“최대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이 이상은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라고 언론이 돌아설 수 있습니다.”
중국이 점점 줄어가는 물량과 인력을 서서히 국내로 돌리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에서 많은 공장이 문을 닫거나 업종을 변경해야만 했고 이건 미국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현대 사회에서 ‘중국산’ 없이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중국산을 대체할 수는 있지만, 대체할 것들은 하나 같이 너무나도 비쌌다.
‘염병. 내가 아는 지식으로는 도저히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이 없구먼.’
그나마 체급이 되어서 이 모양이지, 그거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게다가 참으로 빌어먹게도 감염 확산을 막겠다는 정당한 사유가 아니던가? 수출 제한 명분이 너무나도 깔끔해서 어디 하나 걸고서 넘어질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그래도 오래 그러진 못 할 거야. 자기들도 파멸에 이르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중국이 지금까지 체급을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광대한 땅에서 나오는 자원과 인력 때문이었다. 이것들은 국가의 기본이자 기틀이기도 했지만, 발전에 있어서 더없이 중요한 요소였다. 중국은 그것들로 값싼 중국제를 만들어냈다. ‘중국산 제품, 중국산 인력.’ 이 두 가지가 오늘날의 중국을 만들어냈다.
반대로 말해서 이 두 개가 없어지는 날이 중국이 진실로 무너지는 날이라는 거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거세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죽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사는 길이었다.
물론 중국도 1년 정도 수출을 금지하고 나면 완전히 망가지고 말겠지만, 그래봤자 아주 잠깐이었다. 다만 중국이 아주 잠깐 반짝일 정도로 수출을 멈춘 것만으로도 세계가 휘청이고 있으니, 이것이 참으로 실소가 나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일이었다.
‘염병할. 어떻게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더니, 이런 식으로 보복을 하시는구먼.’
보복이라기보다 최소한의 구명 조치였지만, 부시의 시선으로는 드디어 중국이 미국에 한 방 먹여준 모양새가 되었다.
“그래도 덕분에 국내 제조업이 좀 더 활성화되는 것 같군.”
중국에서 얻을 수 없으니,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국내에서 충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보니 국내에서 모든 것을 수급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정도라는 점과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얻을 수 있는 위안거리였다.
“그래도 중국산이 경제에는 더 이롭죠. 이것도 한때입니다.”
고작 일주일이었지만, 시간은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치료제가 모든 양산체제를 갖추고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이는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