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41)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40화(241/377)
< 240편 >
“음, 귀가 간지럽구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사람 정도 되면 말하는 입도 늘어나는 게 당연한 거겠지.”
부시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뭔가 좀 아닌 거 같아서 괜히 헛기침했다. 정작 그걸 옆에서 듣고 있는 비서실장은 질린듯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 않습니까. 애당초 대통령 중에 매일 같이 입방아에 안 오르는 사람이 있긴 했습니까?”
그것도 그랬다. 다만 그냥 자기 입으로 말하려니까 좀 그랬던 것뿐이지. 정치인의 가장 당연한 덕목인 ‘뻔뻔함’이 다소 결여되어 있었다. 정치인이 가지는 일반적인 뻔뻔함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철면피를 말함이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뻔뻔함이란 보통 잘못을 두고도 염치가 없다는 걸 말하지만, 이 경우에는 본인 업적에 뻔뻔해질 수 있는 면역이 없다는 말이 맞았다. 그렇다고 전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라면 모를까 개인적인 자리에서 뻔뻔하게 ‘하하! 본인이 이렇게 잘난 사람입니다!’라고 이빨을 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치료제 배급 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해볼까.”
부시는 말을 돌리려는 듯 서류를 뒤적였다. 공공연하게 논의되고 있는 새로운 제식 소총 개발 계획이라던가, 기술 축적을 목적으로 꾸준히 개발이 진행 중인 랜드 워리어와 퓨처 솔져 프로젝트 보고서 등을 옆으로 치워버리자 시카고 피자를 수십 개 겹쳐놨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두꺼운 서류 뭉치가 나왔다. 사실 뭉치라기보다는 탑에 가까웠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계획이다 보니까 치료제를 양산해서 옮기는 데에만 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갔다. 그나마 그 금액이 온전히 국고에서 나온 예산이 아니라, 각국에서 차출해서 모았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문제는 각국의 이해도가 얽히고설키고 보니까 부시 본인이 처리해야 하는 양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최근 들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아진 탓도 있고, 대통령 본인이 벌여놓은 일이라던가, 국내에서 집권 초기에 밀기 시작했던 인프라 개선 계획도 슬슬 중후반부로 진입하는 바람에 집무실 꼬락서니는 차마 눈 뜨고 보고 있기 힘들 정도였다.
집무실은 온통 차곡차곡 쌓아 올린 서류가 반이었고 화이트에게서 빠진 하얀색 고양이 털이 반이었다. 평소의 정확히 3배 늘었다. 대통령 집무실을 전시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이렇게 쓴 사람이 없었지만, 부시는 이것이 일상이었다.
게다가 전시라면 전시였다. 항시 서류와의 전쟁 중이었으니 말이다.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서류의 건수가 나날이 늘어가긴 했지만, 적군은 그 이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거기다가 그래도 몸만 움직이면 되는 단순 노동도 아니고, 머리를 굴려서 국민의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방향을 결정짓는 일인지라 요령을 피울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앞으로는 내가 할 일을 좀 줄여야겠군.”
“지금 와서 말입니까?”
“효율 문제야. 효율 문제. 무엇보다 이런 문제는 내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도로 설계 문제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올리라곤 했지만, 설마 이렇게나 자세하게 올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용 절감을 위해서 과감하게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을 채택해서 그대로 사용한 모양이던데, 이게 처음에 시공할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막상 시공해 놓고 나서 시간이 지나니 고열에 기존 아스팔트보다 지나칠 정도로 취약하다는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비용 절감을 위한 부실 공사 같은 문제나, 미국의 고질병이던 횡령 문제도 아니었고 그냥 신기술을 너무 성급하게 적용한 게 문제였다. 시공 업체의 잘못이긴 했지만, 그걸 받아들인 정부도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결국 직면한 문제는 예산 문제였다. 신기술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전후 조사가 마흔 장하고도 일곱 장이었고. 본론인 예산 문제는 딸랑 두 장이었다.
‘그래도 도로 하나라서 다행이군.’
하나라고 해도 한국과는 비교조차 불허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길긴 했지만, 그래도 기존 예산 안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마지막 두 장만 필요했던 것 같은데. 앞에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부시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결재했다.
“그래서 이것 좀 정리해보게.”
부시는 만년필로 ‘일만 이천 팔백 장’ 정도 되는 서류를 툭툭 건드리며 비서실장을 꼬나봤다. 부시의 손에 들리는 문서 대부분은 비서실장을 한 번 거쳐서 오기 때문이었다. 이게 비서실장이 대통령 집무실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락거리는 이유이기도 했고 말이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설마 하는 건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게 맞나?”
“그렇습니다. 그게 반 정도 줄인 겁니다.”
‘이런 미친.’
“대상이 전 세계 아닙니까. 거기다 투자도 전 세계에서 야금야금 받아왔고. 저도 많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국내 이익과 이해관계가 얽히다 보니까 이런 꼬락서니로···.”
비서실장은 말을 흐렸다. 시간 관계상 더 줄일 수는 없었지만, 시간 만 좀 더 넉넉했다면 저기서 절반은 더 줄일 수 있었던 탓이었다.
‘하긴 비서실장이 일일이 봐가면서 줄인 것 아닌가? 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그래도 이걸 전부 보고 있을 수는 없어. 국무부에 좀 더 힘을 실어줘야 하나?’
국무부의 자율적인 외교 기능은 반쯤 거세되어 있었다. 외교 부분은 반강제적으로 너무 작은 것만 아니면 대통령이 전부 맡고 있었다. 그동안 이것을 문제 삼는 이들이 적었지만, 이제는 슬슬 이것도 한계였다.
“이런 제길. 국무부로 보내서 알아서 처리하게 하게. 그렇지 않아도 국무장관이 불만이 많은 모양이던데.”
“예, 뭐. 그렇지 않아도 동아태국만 일 시킨다고 말이 많았습니다.”
‘국정은 생각보다 별로 어렵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기다가 세금 물리고 금지 때리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그 후폭풍과 부작용을 견뎌내는 일이다.’
예를 들어서 미래의 자손들에게 지금의 푸른 지구를 물려주고 싶다면, 탄소세 등을 책정하면 된다. 정부에겐 세금도 먹고 환경도 지키는 일석이조나 다름없는 정책이니 예뻐 보일 수도 없을 거다.
탄소세로 인한 산업 위축과 자본주의자들의 불만. 그리고 경쟁력 저하. 요동치는 연료 가격. 그리고 그 여파로 인한 전문 인력 유출과 GP 밑도 끝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래프 하락을 무시한다면 말이다.
‘이걸 조율하는 게 결국 내 일인데···.’
사실 정치인들은 저런 부작용보다는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정치인이란 결국 태생부터 뼛속까지 권력 유지를 위해 지지세력의 의견을 국회 등에 투사하는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족속들이다. 그렇다고 언제나 지지세력의 의견만을 투사하는 양반들은 아니지만, 어쨌든 기본이 그렇다는 거다.
‘솔직히 지금 와서 인기 같은 건 상관없고.’
이번 재선만 마치면 이 드높은 지지도도 별로 필요 없었다. 3선 할 것도 아닌데 뭐 어떤가.
‘어차피 해야 할 일은 변함이 없으니 결국 거기서 거기인가.’
거기까지 생각한 부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부로 자네 짐을 좀 덜어주려고 하네.”
“예?”
“각 부처에게 정당한 권한을 돌려줄 때가 되었다는 거지. 그렇지 않아도 마침 권력을 다시 분산해야 할 때였어.”
“어쩌면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내가 재선 못 할 수도 있지 않겠나?”
“천재지변이 벌어지면 도리어 대통령님 지지도가 오를 겁니다.”
이건 아첨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그러했다. 당장 어디 지진이나 허리케인이 와서 어디 시가지 하나가 모조리 박살이라도 났다고 생각해보라. 그럼 당연히 준비해둔 구호품을 뿌리고 재건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자, 그동안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재난 방비를 철저하게 추진했던 사람이 도대체 누구던가? 바로 부시가 아니던가? 자, 그렇다면 누구의 인기가 오를까?
“혹시 어쩌면 암살당할지도 모르지.”
“그 검은 책상에다가 클레이모어에 기관총까지 달아놓으신 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암살은 무슨. 차라리 암살자 신원이나 밝힐 수 있을지를 걱정하십시오.”
그건 또 그러했다. 게다가 다음 대통령이 이 집무실 책상을 그대로 쓸지도 궁금했다. 과연 이 검은 무기고를 그대로 사용할까?
“여하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 권력을 손에 넣으면 어떻게 될지 너무나도 눈에 잘 보이지 않나?”
“그거 좀 독재자 선민의식 같은 거 아십니까?”
“알고 있어. 그런데 사실인 걸 어떻게 하나?”
참으로 뻔뻔했다. 비서실장은 정작 칭찬에는 정색하면서 왜 그렇게 이런 부분은 당당한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부시는 이걸 자랑거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한 것이었다.
“나도 내가 상당히 독특하고 특이하다는 걸 알고 있네.”
“그건 그렇죠. 특히 예전하고 확 바뀌셨으니. 그래도 대통령 임기 초기 때는 안 그러셨는데.”
그 말에 괜히 찔린 부시가 서류로 눈을 돌렸다. 9.11 테러 이후로 태도나 정책이 전부 바뀐 것은. 그야말로 부시가 반쯤 다른 사람이 된 탓이었지만, 이것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은퇴해서 국정에 개입하지나 마십시오. 그게 더 민폐입니다.”
부시는 재미있다는 듯이 낄낄거리더니, 서류에 사인이 그려졌다. 일을 제시간에 맞추려면 대화를 나누면서도 일을 해야만 했다.
“나중에 언론에서 내 얼굴이 이야기가 나와 봤자 야구 선수가 어떻다 정도겠지. 국정에 개입할 생각은 없네. 내가 그럴 이유가 어디 있나?”
“벌써 은퇴계획까지 있으십니까? 전처럼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 하기?”
“뭐, 아마도 그렇게 살겠지.”
“글쎄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만.”
“뭐가 말인가?”
부시는 의아하다는 듯이 비서실장을 흘겨봤다. 비서실장은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까 말까 하다가 그냥 꺼내지 않기로 했다. 이걸 피력해봤자 돌아올 대답이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이다.
‘은퇴해서 다음 대통령이 실수하면 아주 개판이라면서 언론으로 쥐어팰 것 같은데.’
지금까지 인터뷰에서 의문이나 부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전 대통령은 있었지만, 이 양반은 워낙 직설을 좋아해서 욕만으로 인터뷰를 채울지도 몰랐다. 십중팔구는. 아니 확실했다. 비서실장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서류를 다시 분류해서 각 부처로 돌려놓겠습니다.”
“그리하게.”
비서실장이 전화를 걸자 사람들이 들어와 서류를 각 부처로 옮기기 시작했다.
‘옮기는 데만 해도 한참 걸리겠군. 다시 돌아오는 데에는 더 걸리고.’
그래도 지금이 다시 과도할 정도로 집중된 권력을 다시 풀어줄 적기이긴 했다. 이때를 놓치면 부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리라 예측했다.
“그리고 그렇지. 그거 어떻게 되었나?”
부시가 ‘그거’라고 하면 후보군이 수백 가지가 넘어갔지만, 비서실장은 용케도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직감적으로 부시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거라면, 혹시 그놈의 구호물자 확충 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