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45)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44화(245/377)
< 244편 >
“글쎄요.”
아버지 부시로서는 의외이게도 아들놈에게 돌아온 반응이 실로 시큰둥했다. 부시의 반응이 시큰둥할 것이. 이미 그런 사람이 주위에 ‘한 사람’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부시가 도중에 죽으면 진짜로 대통령이 될 사람이 부통령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이번 러닝메이트 또한 딕 체니였다. 딕 체니가 가진 가장 뛰어난 재주는 그럴싸하게 말하는 재주였는데, 이를 다르게 말하면 선거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막기야 하겠지만. 그건 아마도 제 몫이 아니겠죠.”
후계자라도 기르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한 아버지 부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이를 먹으면 좀 현명해진 것 같더냐?”
“아뇨. 아니. ···어쩌면?”
부시로서는 굉장히 드물게도 더듬거렸다. 부시의 근간과 관련된 탓이었다. 현재 부시는 2명이 융화되어 2배의 삶을 산 사람 아니던가? 그러니까 다시 말해 나이를 2배로 먹은 셈이기도 했고, 온전하게 산 건 또 아니어서 맞는다고 하기에도 좀 뭣하긴 했다.
그렇다고 평범하게 ‘나이를 먹으면 편견만 늘어난다.’ 따위의 정론을 말하자니, 아버지 부시가 원하는 대답은 이것이 아닌 듯싶었다.
아버지 부시는 아들 부시의 반응이 좀 시원찮긴 했지만, 곧 이어진 침묵을 긍정으로 이해하고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천재는 머저리가 될 수 있고 머저리는 천재가 될 수 있다. 신동이라 불린 인간들이 나이를 먹고 나면 범재가 되는 것과도 같다. 진화는 긍정이 아니고 퇴화는 부정이 아니지.”
요컨대 나이 좀 먹는다고 무조건 지혜로워지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난해하군요. 굳이 그렇게 어렵게 꼬아서 말씀하셔야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건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이겠지. 너도 이 나이가 되어봐라.”
찌가 은근슬쩍 요동치며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숙련된 손길로 릴을 감아올리니 팔뚝 크기의 물고기가 올라왔다. 힘이 어찌나 좋았는지 펄떡일 때마다 조각배가 요란스럽게 요동쳤다.
“개인적으로는 단순명료한 게 좋습니다. 행정 명령을 모호하게 했다가 몇 번 의도를 벗어난 적이 있어서.”
그리고 그것들 대부분이 CIA가 멋대로 폭주한 사건들이었다. 특히 사람을 납치해서 남미에 가둬뒀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주 아찔했다. 동시에 부시는 자신이 가진 힘이 어떤 힘인지 다시금 제대로 자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의외로 스스로에게는 엄격한 모양이군. 그게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최대 8년밖에 못 해 먹는 자리였다. 이제 남은 건 고작해야 4년인데. 4년으로 성정이 삐뚤어지거나, 갑자기 본인 말고는 죄다 더러운 무언가로 보이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선민사상이라는 게 나타나는 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강도의 차이일 뿐이지. 애당초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선민사상이나 엘리트주의가 정치에 개입하게 되면. 아니, 개입하는 것 자체는 상관이 없다. 당장 미국 정계만 해도 그런 인간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니까.
다만 그것이 주류가 되거나 정치계에서 으뜸 되는 인간이 가지게 되었을 경우 중대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대서양 건너에 파시즘과 히틀러라는 완벽하게 일치하는 표본이 있었다.
“그 자리에 4년이나 앉아 있으면서 용케도 인간 혐오에 걸리지 않고 있군.”
아버지 부시의 경우 CIA 국장으로 지내면서 충분히 각오할 시간이 있었다. 기껏 해봐야 주지사나 구단주 같은 자리에나 있었던 아들 부시와는 달리, 국가를 굴리기 위해서 생겨나는 필요악을 자청해서 접할 시간과 기회가 아버지 부시에게는 있었다.
“이 자리가 그런 자리 아닙니까? 인간을 혐오하고 싶어도 무한한 아가페 정신으로 사랑해야만 하는. 사실 내가 감싸준다기보다는 국민이 나를 감싸주는 거지만 말입니다. 그냥 상부상조에 공생관계라는 셈으로 치죠.”
부시의 손에 들린 낚싯대의 찌가 아래로 깊게 들어갔다가 위로 튕겨 나오더니, 이내 매가리 없이 수면 위를 노닐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런 빌어먹을.”
부시가 욕지거리와 함께 릴을 감으면, 릴은 힘없이 낚싯줄을 감아올렸다. 낚싯바늘에는 약간의 살점만이 처량하게 달랑거렸다. 아마 물고기의 아가리가 찢어지는 과정에서 남겨졌으리라.
“하하! 이게 바로 연륜이라는 것이다!”
아버지 부시는 팔뚝만 한 물고기가 들어간 아이스박스를 호탕하게 두들겼다. 아이스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물고기가 마치 층간소음 항의라도 하듯이 온몸으로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벽을 두들겨댔다.
‘이 양반이. 방금까지만 해도 나이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고 설교하고 있었으면서.’
고기를 잡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한 입으로 두말하는 언행 불일치 탓인지. 그것조차 아니면 둘 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시는 괜히 심통이 났다.
“권력을 다 내려놓은 삶은 좀 살만합니까?”
“그럼. 아주 살맛 나고말고.”
아버지 부시는 많은 사람이 꿈꾸는 은퇴 생활의 표본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실 권력을 전부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한때 이 나라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또한 온갖 요직에 있었던 사람이 은퇴했다고 해서 권력이 증발하듯 사라지겠는가?
무엇보다 전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가지는 무게는 상당하다. 그것도 현 대통령의 아버지라는 직함까지 추가로 달고 있으면 더더욱. 그래도 현역에 비하면 그냥 가끔 어쩌다가 한 번 있는 소일거리나 다름없었다. 이 정도면 도리어 귀찮다기보다는 한적한 은퇴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아버지 부시만을 위한 이벤트였다.
“우리 부시 가문이 어디까지 가는지 나는 봐야겠다.”
아버지 부시는 은연중에 조지 W. 부시 다음으로, 젭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머리를 흔들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이는 결코 젭 부시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의 시선을 벗어나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행정 능력은 그럭저럭 봐줄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도 다음 대통령으로 젭 부시를 부정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다음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도리어 시대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미국은 황금기를 누리고 있지만, 머잖아 그 황금기에 금이 가리라고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갔으니, 이제는 정상적으로 내려올 일만 남았다. 만약 젭 부시가 이 시기에 집권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하느님이 젭 부시의 곁에 같이해야 만이 그 시기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으리라.
반대로 말해서 하느님이 곁에 없다면 처신에 따라서는 미국은 끝없는 암흑기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과거 세계를 지배하던 룰 브리타니아처럼, 오늘날 미국의 패권을 상징하는 단어인 팍스 아메리카나도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이 갑작스럽게 근 10년 내외로 사라질지 말이다.
‘그렇다고 정말로 10년 내외로 물거품처럼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가정사가 특수하지 않으면 아버지 마음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아버지는 항상 아들이 잘되길 원한다. 이건 아버지 부시도 마찬가지였으니, 둘째 아들놈이 암흑기를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그렇고. 정말이지 일에 중독이라도 된 모양이구나. 모처럼 낸 휴가인데, 기간이 고작 이틀이라니.”
“선거철에는 원래 모두가 바쁜 법이죠. 저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사실 이러고 있다는 것도 다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만.”
선거철에는 모든 행적이 탄환으로 변해서 돌아올 수 있었기에 매사에 조심해야 했다. 이 기간에 휴가를 간다는 행위는 동서고금을 통틀어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사실 이것도 명목상으로는 전 대통령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받고 있으니 명목상이라고 하기에도 좀 뭣하긴 하죠.”
“어차피 다 끝난 게임이야. 민주당은 젊은 흑인 친구나 밀어주고 있으니. 흑인 후보라는 점에서 손 패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하필 시기가 좋지 않아. 차라리 다음번에 나왔어야 했는데. 아마도 민주당 권력 싸움에서 권력과 경력 부족으로 밀려난 모양인데. 맞나?”
“정확하십니다.”
너무나도 정확해서 지적하거나 보충할 것도 없었다.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일단은 전 대통령이었다.
“그러니까 그 친구 이름이···.”
“오바마.”
“아,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버락 오바마.”
아버지 부시는 기억났다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며 릴을 감아올렸다. 낚싯바늘에 웬 겁도 없이 자기 몸만 한 미끼를 입에 반쯤 넣고 있는 송사리 하나가 딸려 올라왔다.
아버지 부시는 오바마가 민주당이라는 사실이 정말로 아쉬운듯했다. 시대가 맞지 않았을 뿐. 그 사내가 가지고 있는 패들은 정말이지 강력한 패였다. 그것이 몇 년만 더 완숙해지길 기다리면 되는데, 고작 그놈의 정치 싸움 때문에 밀려나다니?
아버지 부시 본인이 정치 싸움의 정점을 찍은 사람이긴 해도. 하면 할수록 정말이지 쓸데없다는 감상이 가끔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긴 정치 싸움이 없어도 그건 그것 나름대로 중대한 문제였다. 정치 싸움이 없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더는 ‘양당’이 아니라는 증거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 싸움이 없어진다면, 그건 인류가 멸망하고 난 뒤의 이야기일 터다. 인간은 그렇게 설계된 생물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렇게 네가 한가롭게 낚시나 하고 있을 만큼 압도적이라는 사실이지. 지금이 우리 부시 가문의 부흥기자 황금기로구나. 그래서 선거 활동은 진짜로 어떻게 할 생각이더냐?”
“형식적으로 해야죠.”
“형식적이라. 나쁘지 않구나.”
실로 무난하다면 무난한 선택지였다.
“몇몇 지역은 아예 전투 헬기 비슷한 거 타고 다니면서 선거 유세할 겁니다.”
“방금 그냥 형식적으로만 한다고 하지 않았나?”
전투 헬기라니? 잘못 들은 게 아닐까도 생각해봤지만, 아들 부시가 집권한 이후 벌어진 기행을 상기하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인지했다.
“전투 헬기 비슷한 거라니까요. 전투 헬기처럼 보이게 대충 비슷하게 꾸미는 거죠. 남부같이 애국주의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제대로 먹힐 겁니다. 극렬 평화주의자들에게 비난 좀 받겠지만. 하라면 하라죠.”
“흠, 선거 형식이 최근 좀 바뀐 모양이군.”
형식적인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형식을 바꾸면 그만이라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별 이상한 퍼포먼스를 다 보여주고 나면, 법적인 문제나 비용 문제가 발목을 붙잡겠지만. 하필 지금 앞에서 낚싯대와 씨름하고 있는 인간이 그걸 바꿀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래, 어디 마음대로 해봐라.”
아버지 부시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