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46)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45화(246/377)
< 245편 >
“대통령님은 정말이지 미친 사람 같습니다.”
새삼스럽다는 수준이면 그럭저럭 넘어갈 법도 한데, 새삼이 아니라 거의 매일매일 새롭게 미쳤다고 생각하게 되니 실로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이젠 하다 하다 이동 시에 아예 마린 원도 아니고 무장헬기와 흡사한 민간기를 쓰겠다고 했으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사유는 다음과 같았는데, “아니, 내가 그냥 그러고 싶다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심지어 무장헬기 비슷하게 만든다더니, 무슨 오토바이 폭주족처럼 화려하게 도색까지 해놓았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 정도면 미쳐도 적당히 미치지 않았나? 원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치고 미치지 않은 사람 찾아보기 힘들지 않은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무언가에 전부 미쳐 있는 사람들이었다. 보통은 그게 ‘일’이 되는 바람에 그다지 부각되는 일은 좀처럼 없었지만 말이다. 요컨대 전 대통령 되시는 분들은 모조리 은밀하고 근면하게 미친 인간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저 좀 뻔뻔할 뿐이라네.”
“아마 하늘에서 보면 인간의 뻔뻔함이 도를 넘어섰다면서 불벼락이라도 내릴 것 같습니다만.”
“미국을 소돔과 고모라로 만들기라도 할 셈인가?”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버텨낼 것 같지만 말이다. 정말로 지구 표면을 뒤덮는 유성 따위가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면 모를까 불벼락 따위로 지금의 미국을 어떻게 해보기에는 너무나도 늦었다.
“뻔뻔한 게 싫다면 이기적이라고 하지 뭐.”
“아무리 그래도 이기적이라고 보긴 힘들죠.”
이만한 권력을 휘두름과 동시에 그 무게를 자각하고 있음에도 그 흔한 부정부패 한 번 저지르지 않았다.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이타적이라고 할만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비서실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비서실장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맞겠군.’
부시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저 이기적이라는 개념을 부시에게 적용했을 때 작용하는 방향성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이기심이라는 것이 결국은 본질만 따지자면 자신의 이익을 꾀한다는 단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부시가 해온 것들은 분명 이기심에서 발로된 것들이었다.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이기심. 자신이라면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이기심. 자신은 고작 공사장 십장에서 머물 인재가 아니라는 오만함으로부터 비롯된 이기심. 굶주리고 헐벗은 이나, 온갖 차별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게 하겠다는 이상론을 현실에 욱여넣어 구현해보려는 이기심. 합법적인 로비를 제외한 부정부패를 어떻게든 줄여보겠다는 이기심. 세계 최강의 군대를 아예 기술, 전술적으로 한 차원 더 위로 올리겠다는 이기심까지.
다만 이런 식으로 따지면 이기심과 이타심의 경계가 허물어진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시가 가진 것은 분명 이타심이 아니라 이기심이었다. 도리어 이타적이었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이 자리는 그런 자리였으니까 말이다.
21세기에 만들어진 깔끔한 해골왕좌였다. 비록 대중의 눈에는 해골 하나 보이지 않겠지만, 왕좌의 그림자에는 알려지지 않은 시산혈해만이 가득했다. 진실로 이타적이었다면 그동안 감춰진 미국의 만행을 고발하고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을 자신의 입맛대로 주물렀다. 자신이 상상하는 유토피아 미국을 만들기 위해서 이기적으로 굴었고, 그 과정에서 충분히 이기적으로 굴었다. 다만 그 스스로 정한 선이 있었을 뿐이었다.
예를 들면 부시가 원하는 데로 바로바로 이행되지 않고 반드시 의회를 거쳐서 승인해야만 하는 답답함에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게 없었던 건 아니었다.
‘행정명령으로 의회의 입법절차 없이 모든 것을 진행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생각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독재이며 강요이고 선민사상이다. 부시가 생각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제일 가치인 민주적 절차를 짓밟는 것에 불과했다.
이것이 부시가 마음속에서 정한 선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지 않을 것.’ 같은 것 말이다. 몸 주인이야 착하지. 욕 들으면 욱하며 삽부터 휘두르던 십장 김갑환이 완전히 감화될 정도로 더럽게 착했다. 아마도 이기심이 건설적인 부분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마도 이것 탓이리라.
막 나가는 건 김갑환 본인의 것이고 말이다. 그나마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막 나가는 것은 부시 본연의 것이고 말이다. 김갑환으로서의 마지막이 ‘내가 더 잘할 수 있다.’였는데, 아마도 김갑환만이라면 별 시행착오를 거쳤을 것이고. 종국에는 온갖 이유로 몰락했으리라. 지금의 부시에게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드디어 본선이라.’
미국의 대통령 경선 과정 6개월, 본선 과정 6개월로 나누어져 있으며, 경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은 대의원을 뽑는다. 대의원은 당원 자격의 코커스와 일반 자격의 프라이머리로 나뉘며, 경선 주자들은 엄밀히 말하면 유권자들이 아니라 ‘대의원’들을 확보하는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의원들만이 아니라 유권자도 신경 써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본선의 ‘승자 독식 구조’ 때문이다. 본선에서 각 주를 돌아다니며 이때 한 표라도 더 받은 후보가 선거인단을 독식하게 되는데, 그래서 미국에서는 유권자 총득표수가 적더라도 선거인단 수를 더 많이 확보하는 쪽이 다음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이미 이긴 싸움에서 이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러니까 요점을 다시 정리하자면, 다른 나라와는 달리 미국의 경선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과정에서 이미 결과가 나와버리고 마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일반적인 경우’에나 해당하는 일이지. 과정은커녕 시작하기도 전부터 결과가 보이는 선거라니.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이번 선거는 실로 귀찮은 것이었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선거보단 지금 집중하고 있는 권력 분산이 더 시급했다.
그렇지 않아도 원 역사에서 잘못된 법 해석으로 그토록 강력했던 대통령 권한이었다. 미국이 몰락하던 모습은 강력한 중앙집권 전제군주 국가에서 군주가 멍청하면 생기는 모습과도 매우 흡사했다. 물론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자 법치 국가인 만큼 다소의 차이야 있겠지만, 당시 부시 대통령이 가진 권력은 ‘완벽하게 초법적인 권한’이었다.
도리어 부시의 성격이 그나마 선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몰락 수준이 아니라 망국의 길에 들어섰을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서 현재 부시가 가진 권력은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 가지기에는 너무나도 도를 지나친 것이었다. 그나마 독재가 되지 않았던 것은 부시 본인이 그렇게 자제했다는 점과 민주당이 지나칠 정로도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부시는 오히려 몇몇 부분에서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을지언정 탄압하거나 약화하지는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였으나, 반대로 말해서 막으려고 하고 부수려고 했다면 완전히는 아니어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반죽음 낼 수도 있는, 그런 권력이었다.
원 역사에서 부시 대통령은 그 ‘개판’을 내놓고도 재선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부시는 어떠할까?
“대통령님. 연설 준비가 끝났습니다.”
누군가는 ‘이솝우화처럼 느긋하게 있다간 토끼와 거북이처럼 추월당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경선은 확실히 아이들 자기 전에 읽어주는 이솝우화 따위와는 명백하게 다르다.
이건 일반적인 경주라기보다는. ‘달’까지 도착하는 경주에서, 날 수 없는 거북이와 우주까지 갈 수 있는 우주왕복선의 경주 같은 불합리 그 자체였다. 한낱 거북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우주까지 갈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이번 경선은 그러했다.
러닝메이트인 부통령의 말이 끝나고 부통령이 박수와 함께 부시를 호명하자, 부시는 느긋한 걸음으로 단상으로 가는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에는 자신감이 붙어 있었고, 한편으로는 결과를 이미 알기에 적당히 이완되어 있었다.
임기 초기와는 완전히 달라진 거한의 사내가 연설용 단상에 섰다. 좌석은 그를 지지하는 이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아직 바이러스의 위험이 있어서 그럭저럭 거리가 꽤 있음에도 마치 코앞에 있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들이 외치는 것은 오로지 하나의 단어뿐이었다.
“부시! 부시! 부시!”
이 연설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 모두가 그를 외치고, 원하며, 열광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은 오직 격양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뿐이었지만, 그 안에는 공통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선거 승리의 자축이었다. 본선은 시작은 하지도 않았건만, 이미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터럭만 한 의심이나 미혹 따위는 없었고 오로지 믿음만이 존재했다.
인기도 인기였지만, 경쟁 대상이 되는 후보들 또한 이름 없는 후보뿐이었다. 본래 나올 존 케리가 승산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출마하지 않아 포커스가 재선을 노리는 현 대통령인 부시와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밀어주는 오바마로 맞춰지긴 했지만, 이번 경선에 딱히 부시와 오마바만 있는 건 아니었다.
부시는 진정으로 듣도 보도 못한 2명이 더 있었다.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마 들었더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이라는 말이렷다. 이들은 진지하게 출마했다기보다는 경력에 대통령 후보라는 기록을 한 줄 더 넣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부시가 손을 들어 사람들을 제지 시키자. 연설장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말은 사그라들었으나, 대신 수만 명의 열정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시작과 앞서, 다음과도 같은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아마 다른 후보들은 소위 ‘정치 혁명’ 같은 것을 말하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지금 미국의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 정치 부분이니 말이다. 그것 말고는 딱히 아플 만한 곳이 없었던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이것이 아니더라도 연례적으로 선거철마다 국가, 직급을 불문하고 일단 정치계 선거면 일단 꼭 한 번씩은 나오는 문구였다.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해야겠군요. 미국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언제나 위대하고 강력할 것이며, 추락하는 일 없이 나아질 것입니다. 지금처럼 말입니다.”
부시가 한 박자 쉬기 위해서 말을 끊자 고막을 찢을 듯한 갈채가 이어졌다. 사람이 아무리 잘났든 간에, 설령 그 사람 입에서 나온 것이 우주 불변의 진리라 할지라도 듣고 공감하는 이가 없다면 그것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저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제 말이 아니라 제 경력을 믿어주십시오! 임기 동안 제가 만들고자 한 나라가 어떤 것인지 여러분이 직접 평가해주십시오!”
실로 투박한 단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투박하다는 게 결코 단점은 아니다. 본디 연설이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대중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전달되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억지로 심금을 울릴 필요도 없다. 심하면 감동을 자아낼 필요조차 없다.
“위대한 미국을.”
부시의 질문에 대중은 기립 박수로서 대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