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54)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53화(254/377)
< 253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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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도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비서실장은 커피를 내리면서 남몰래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이나마 업무에서 해방되나 싶었는데, 권력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탓이다.
권력의 중심 바로 곁에 서 있는 인간이 비밀로 어딘가에 숨지라도 않는 한, 비서실장이 꿈꾸는 여유로운 오후는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아닙니다. 설마 휴가 기간에 사적으로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올리버. 미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름에 걸맞게 국적은 완벽하게 미국 태생이긴 했지만, 인종으로 따지자면 그는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미국의 최대 로비 단체 중 하나인 AIPAC의 회원이기도 했다.
이를 부시가 들었다면, 아마 ‘이 듣도 보도 못한 인간은 도대체 누구인고?’ 할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최근 3년 내외로 갑자기 올라온 신흥 졸부였다. 다만 단순히 졸부라고 칭하기에는 그가 거머쥔 부가 너무나도 거대했던 덕분에 이름은 유명하지 않아도 그가 미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거대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역사’가 뒤바뀌면서 수면 위로 올라온 존재였다. 그가 처음에 가지고 있었던 땅은 황무지나 다름없어 실로 볼품없었으나, 부시 정부의 정책으로 고속도로 신설 계획이 공표되고 나서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그것을 목돈 삼아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그는 고작 3년 만에 거대한 대기업의 총수가 되었다.
“에스프레소?”
대놓고 축객령을 내리거나, 엿이라도 먹이나 싶어서 자신의 손에 들린 커피와 미합중국의 비서실장. 아니, 휴가를 내고 아주 잠시지만 직무를 내려놓은 앤드루 카드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보았다.
“아, 이런. 근래 들어 커피라고 하면 이미지가 에스프레소로 굳어 버려서 그만. 아메리카노로 바꿔 드릴까요?”
이는 한 치 거짓 없는 사실이었고, 그 증거로 비서실장은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만 이것이 고의가 아닌 실수라고 한들 앤드루 카드가 실례를 범하였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그 천하의 앤드루 카드가 손님 대접에 있어서 실수하다니! 부시가 알면 비서실장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한참을 폭소할 터였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이건 대통령 각하께서 마시는 에스프레소와 같은 에스프레소라고 생각해도 좋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관합니다.”
‘보통이라면 서론이 좀 더 길더라도 충분히 참을 수 있었겠지만.’
제아무리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고 한들, 다른 사람과 지내다 보면 성격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오는데, 본래부터 남 이야기 잘 들어 주는 사람인 비서실장이 변하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특히 그것이 직선으로 모조리 부수고 나가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나는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을 말하란 말입니다.”
“Oh-. 휴가에 시간이 없다니. 비서실장은 참으로 힘든 일이군요.”
그가 꺼내 든 건 대화의 기본인 공감이었지만, 정작 공감의 대상인 비서실장은 전혀 공감받고 싶지 않았다.
그 바빠진 원인이 바로 제임스 올리버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공감은 사뭇 비서실장을 약 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뭘 어떻게 도와주길 바랍니까? 시답잖은 잡담이나 하자고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역시 화끈하십니다. 과연 그 대통령에 그 비서실장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대화가 유연하게 이뤄지려면 약간의 대화가 더 필요하지 않을지. 그리고 오늘 저는 미합중국의 비서실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앤드루 카드 개인을 만나러 온 겁니다.”
그는 오해라는 듯 과장된 몸짓으로 손사래를 쳤지만, 그것이 도리어 비서실장의 마지막 남은 인내심을 확실하게 짓밟았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도대체 세상 그 어떤 머저리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에 속아 넘어간다는 말입니까. 그러니 어서 말씀하십시오. 내 안에 있는 모래시계에 남아 있는 잔여물이 전부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실로 직설적이었다. 압박이라고 해도 다를 건 없었다. 그러나 대화에는 한 톨의 망설임도 없었다. 검은 수면 위에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이 그려졌다.
“비유가 싫으신 모양이군요. 그럼 이렇게 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서랍에서 진짜 모래시계를 꺼내더니 뒤집어 보였다. 제임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래는 중력에 의해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비서실장의 경고는 심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제임스를 확실하게 옭아맸다.
“너무하시는군요. 수사로 꾸민 2장짜리 A4용지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지 않습니까.”
“만약 대통령님과 만날 일이 있거든 그런 건 준비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워낙 빙빙 돌리는 걸 싫어하셔서.”
“오, 조언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요즘 바쁩니다. 9.11 테러쯤이었나, 그때부터 정말이지 눈코 뜰 새조차도 없을 정도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조국의 미래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는 계속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정치가 사이에서는 결단코 있어서는 안 될 실례 그 자체였지만, 이 자리는 사적인 자리였다. 다만 오고 가는 대화가 좀 정치적일 뿐.
“더 해야 합니까?”
“아니요. 충분합니다. 말씀드리죠.”
그는 대화를 이어 가며 커피 잔을 들었다. 마치 커피 잔 안에 있는 에스프레소가 마치 푸딩처럼 출렁였다.
“우리 AIPAC. 아니, 이스라엘은 대통령 각하의 진의를 알고 싶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원래는 이리저리 찔러 보면서 알아볼 생각이었지만, 뭐 보다시피.”
그는 말을 마치고 에스프레소의 향기를 음미하더니, 이내 음미한 향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에스프레소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한 모금 억지로 삼켰다. 그것은 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이나 쓰고 걸쭉했다.
눈으로도 보이는 심각한 걸쭉함에 설탕을 과하게 섞은 줄 알았는데, 설마 반대로 설탕이 들어가기는커녕 1g도 추가하지 않은 주제에 이렇게나 걸쭉한 줄은 차마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한이었다. 제임스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하긴 취향 차이라고 생각하면서 급하게 통에서 각설탕 두 개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비서실장 또한 그렇게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천대하거나 홀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의 의도대로 전혀 움직이지 않았을 뿐.
‘AIPAC인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참 늦게 찾아왔군.’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도 영향력이지만, 필시 이스라엘이 대놓고 말할 수는 없기에 그를 보낸 것이렷다.
심지어 대통령이 아니라 휴가 중인 비서실장인 이유도 비슷하리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라고 했다지만, 설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망설임 없이 직설적으로 말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직설적이군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라고 하길래요. 무엇보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으실 분으로 판단했습니다.”
과연 신흥 대기업의 회장이라더니, 자리를 단순히 운이나 포커로 딴 건 아닌 모양이었다. 확실히 그는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
몇 년 전의 비서실장이었다면, 이런 직설 따위는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겠지만, 맨날 돌리지 않고 직설만 내뱉는 누군가 덕분에 그의 성격도 이렇게 바뀌어 버렸다.
‘자, 대통령님이라면 여기서 어떻게 대답하셨을까.’
눈을 감으니, 절로 조지 W. 부시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지워 버렸다. 그가 내놓을 대답은 상상하기도 전에 이미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로비의 나라라곤 하지만, AIPAC 혹은 이스라엘의 의도를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더 정확히는 ‘시발 뭔 상관이야. 조까.’였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을 풀이하자면 이럴 터였다. 아마도 그럴 터였다. 적어도 비서실장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최근 들어서나 좀 얌전해진 거지.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폭격기 타고 싶다고 찡얼거렸던 인간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또한 충분히 우대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제로 그러했다. 부시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썩 그렇게 좋은 인상을 지니고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우방국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부시가 제아무리 막 나간다고 한들 그동안 이어져 온 국가 정책 기조를 단순히 그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완전히 무시하진 않았다.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 F-22나 기타 전략 자산을 제외하면, 모든 최신 무기는 아낌없이 헐값에 이스라엘군의 손에 쥐어졌으며, 외교적으로도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아마도 제 말을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저희는 로비에 대해서 추궁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비판할 생각도 없고요. 단지 아까도 말했듯이 어디까지나 대통령 각하의 의도가 궁금할 뿐입니다.”
비서실장이 판단하건대 할 말이 궁해서 말을 돌리는 건 아닌 듯싶었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의도라. 솔직히 그걸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장 곁에서 모시는 주제에 그분의 생각은 저도 잘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곁에서 지켜보면서 의도를 추측할 뿐이죠.”
거짓말이었다. 부시의 의도는 정말로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하루에 열 번이면 아홉 번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그 극히 일부가 좀 천재인지 광인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발상이라서 그렇지. 썩 그렇게 독특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스라엘과 척을 질 일은 없을 겁니다.”
제임스에겐 그것만으로도 대답이 되었다. 겉치레나 허울 좋은 거짓말일지도 몰랐지만, 긍정적인 대답을 얻어 냈다. 애당초 이건 외교 업무도 아니고 그냥 정치와는 무관계한 사람 둘이 이야기를 나눈 것뿐이었다. 이 둘이 지금 나눈 대화가 정세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럼 이건 완전히 개인적인 호기심입니다만. 여쭤봐도 될까 고민입니다.”
“말씀하시죠.”
거기까지 말하고 비서실장은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대화는 길지 않았고 모래시계는 이제 막 마지막 모래알이 바닥에 도착했다.
커피 잔은 아직 따뜻했다. 제임스는 그 광경을 질린 듯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지만, 비서실장은 개의치 아니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정말로 이중인격입니까?”
그 말을 듣고 잘 마시던 슬라임. 아니, 에스프레소를 뿜을 뻔했다. 그러나 그 조지 W. 부시 옆에서 수년간 단련된 몸인지라 감정을 겉으로 내보이지 않고 속에서 잘 추스를 수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대통령님께 정신병 같은 건 없습니다. 정신뿐만이 아니라 몸도 아주 건강하십니다.”
“대외적으로는 말이죠.”
“예, 대외적으로는.”
사실 비서실장이 열심히 정상이라고 설파하곤 있지만, 정작 비서실장 본인은 부시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예를 들면 가벼운 우울증을 동반한 광증 같은 것 말이다. 조울증이라고 부르는 그것이었다. 그러나 검사 때마다 정상으로 나오니 그저 정상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 ‘조지 W. 부시 이중인격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까닭도 있었다. 유럽에서 내놓은 연구 결과라고 했던가? 그 연구 결과가 실로 설득력 있었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다음에는 아메리카노로 드리겠습니다.”
“……그건 꼭 좀 부탁드리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