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64)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63화(264/377)
< 263편 >
“대통령님의 로비에 좀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
평화협정이 정말로 현실로 다가오니 뚝 끊겨 버렸다. 그렇다고 정말로 끊긴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미국 내에서 갑자기 급격하게 유대 자본이 빠져나가는 일은 없었다.
“알 게 뭔가. 그리고 누군가는 국가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적절한 부패가 필요하다고 했지. 나는 그것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네. 다만 그게 우리나라여선 안 돼. 무슨 뜻인지 알고 있겠지?”
“군대와 경찰을 제외한 공무원들의 지지도는 땅을 기고 있습니다. 봉급과 일의 강도가 평행을 이루지 않은 탓입니다.”
“그래 봤자 1시간 정도 더 일하는 거겠지……라고 하고 싶지만, 하긴. 나라도 봉급은 그대로인데 어느 날 근무시간이 1시간 늘어나면 지랄 발광하겠지.”
어떻게든 전전긍긍하면서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아 가정을 꾸려야 하는 공무원들은 돈도 넘치고 본인 의지와 의욕도 화산처럼 폭발해서 자발적으로 개같이 일하는 부시와는 성격이 다르다.
세상에 돈도 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 존재는 한단 말인가? 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대개 돈 대신 뭔가 대가를 약속받은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물론 말 못하는 금수에 이르기까지 생물이라는 것들은 절대로 대가 없이는 일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자원봉사자들도 ‘보람’이라는 걸 대가로 받으며, 단세포조차 영양분 섭취라는 목적이 있고 영양이라는 보상이 있다.
보통 대가보다 더 많이 일하는 것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노예라고 부른다. 그리고 부시도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봉급을 인상해 주면 그만 아니더냐? 아니, 그게 말처럼 어디 쉬운 일이던가? 봉급이라는 건 한 번 올리면 다신 내려가지 않는다. 만약 공무원 월급이 내려가는 날이 있다면, 그건 정말로 나라가 망했을 때 정도였다.
그리고 부시 본인도 충분히 이해하는 바였다. 솔직히 노가다 십장 시절에도 딱 정해진 만큼만 일하지 않았던가? 그 이상 일하면 추가금을 받든가 말든가 하고 말이다. 고용자가 피고용자에게 정당한 보수를 주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하물며 그게 미국이라면 더더욱.
물론 깊게 파고들면 무늬만 자유의 나라라는 사실을 쉬이 알 수 있지만, 무늬만 자유의 나라라 할지라도 언제나 무늬는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명분을 만드는 보호색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 저런 것 다 제외하더라도 일하고 나서 제값 받지 못하는 것만큼 화가 나는 일도 없긴 하지.’
“안 될 거 뭐 있나. 월급을 올려 주면 그만이지. 좀 시기가 늦긴 했지만.”
어차피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물가도 올라가는 마당에 안 올려 줄 건 또 뭐란 말인가? 하긴 하려면 재취임과 동시에 이루어졌어야 하겠지만. 사실 매년 올려 주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매년 인상되었다. 다만 그동안 해 왔던 것과 별로 다를 것 없이 진짜 쥐꼬리만큼씩 올려서 그렇지.
“정치와는 무관하게 올려 줄 때가 온 거지.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이스라엘이야. 그것들이 진짜 받아 버렸단 말이지.”
부시가 새로 올라온 보고서를 펜으로 툭툭 쳐 대면서 중얼거렸다. 모든 게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그런지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질적이었다.
이스라엘인들은 독하디독한 이들이었다. 나라를 잃고 나서 무려 제 땅을 되찾겠다고 무려 3000년간 칼을 갈아 왔다. 민족 자체가 돈 한번 없어 본 적 없었고 동시에 가나안 땅을 잊은 적이 없다.
해외 유대인들이 제아무리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한들 유대인이라면, 결국 인생 최후의 순간에 기댈 곳은 유대교의 품이었다. 그래서 제아무리 무신론자라고 한들 죽을 때가 되면 기독교든 불교든 사후에 대한 두려움에 그렇게 부정하던 신 같은 존재에 기대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아주 소수였다. 적어도 아직은 말이다.
‘팔레스타인을 통해 저 땅에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면 간단하지. 이스라엘만큼이나 독해지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이 땅의 균형을 맞추겠으니 딱 ‘30세기’만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부. 가장 중요한 건 부였다.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성립된 이유를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부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스라엘이 성립된 원인을 천문학적인 부라고 여겼다.
‘이게 문제란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이런 말을 하면 다소 기분이 언짢아지지만. 미국이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미국을 선택한 것이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버리면, 이스라엘은 다른 후견인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30세기라는 아득한 시간 동안 날을 갈아 왔다. 칼날이 완전히 닳아 없어지지 않게 관리 또한 실로 철저했다. 그런 독함으로 만들어 낸 현대의 유대 왕국은 주변국을 전부 적으로 돌리고도 거침없이 승리를 향해 도약하는 예리함을 세상에 유감없이 선보였다.
‘이게 문제란 말이지. 왜 순순히 받아들인 거지?’
부시는 보고서를 넘기면서도 이 의문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부시가 그들이 절대로 화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이 협정을 받아들일 이유나 사유가 하등 없었기 때문이다.
부시는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 동안 아리엘 샤론이 드디어 미쳐 버렸거나, 약을 하고 온 게 아닐까 의심해 봤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 생각은 다음 보고서를 받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괜히 부시가 협정 최후의 순간에 ‘이게 되네?’라고 생각한 게 아니었다. 정말로 추호도 이 공허한 평화협정이 성립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평화협정이 몇 년 가지 않을 것이라는 건 확실하지. 적어도 눈과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딱히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건 누구나 동의하는 바일 거다.’
아무리 그래도 부시가 재임하고 있는 동안에는 깨지지 않겠지만, 내려가기 무섭게 협정을 파기하고 다시 공격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마저도 지금 저 양반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받아들였는지 모르면 말짱 꽝이었고, 차후 대책도 대비하기 힘들었다.
부시에게 ‘모르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까지 이루었던 업적은 미래 지식과 부시 본연의 능력을 최대한 조합한 결과물이었다. 그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고 있으니 솔직히 꽤 불안했다.
그렇다고 임기가 아직 3~4년이나 남아 있는데, 이걸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도대체 뭘까?’
부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 내에서 깊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럴싸한 답이 나오질 않아. 그저 전문가라고 한껏 거드름피우고 있는 이들을 닦달할 뿐이었다.
설마 그것이 있지도 않은 너무 먼 미래를 본 나머지 최소 반세기는 더 유지될 팍스 아메리카나 패권에 편승하여 중동 전체를 집어삼키고자 한 유대인의 헛된 꿈이 적용된 결과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 * *
“국민의 갈망은 정책이 되고 정책은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이 빌어먹을 나라도 똑같아.”
문제는 그 국민이라는 놈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재자의 배에 깔려 신음하던 이북 인민들이라는 거다. 이젠 이북조차 아니게 되었지만, 그들의 사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사상이 위험하다는 게 다름이 아니라, 그들은 환상에 필요 이상으로 젖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한반도 북부에서 많은 사람이 꿈을 찾아 남하했다. 모양새만 보면 잘 꾸며 놓은 코리안 드림 그 자체였다. 다만 그것은 단번에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드림이 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성공이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울 리가 없었다. 성공(成功)이 괜히 성공이겠는가? 본디 이루기 어렵고, 그렇게 이루고 난 뒤에는 보람이 느껴져 성공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아주 짧은 기간 사이에 경제민주주의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남쪽 사람들 상대로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노동법은 정말로 단 하나도 모르는 이들에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북쪽 사람들을 천대했다.
취업이 어렵지는 않았다. 막상 그렇게 취직해 보니, 남쪽에는 그렇게 많은 일자리가 없어서 다시 발걸음을 북쪽으로 옮기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어디에 취업해도 전보다는 더 나은 삶을 구가할 수 있었다.
남한으로 발걸음을 옮긴 북쪽 사람 중에서 남한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극소수에 불과했다. 남한에 정착한 사람은 대다수는 나이 지긋하게 먹은 노인들이었다. 이는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는데, 한국 전쟁이 불과 약 50년 전이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60대 말에서 80대 사이인데, 이들은 평균 연령이 과거와는 비교조차 불허하게 올라간 현대에서 자연사나 병사로 사망하기엔 너무나도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나이였다.
다르게 말하면, 그들은 정말로 한 명도 빠짐없이 이산가족이라는 소리였다. 먼저 내려온 가족 중 한 명이 큰 성공을 거두고 가족 전체가 내려온 경우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다음으로는 당연히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직장과 더 나은 삶의 질을 찾아 내려왔다. 그리고 부려 먹혔다. 그들 중에는 분명 성공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게 다수가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성공하는 자들은 대부분 평양에 적을 두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평양에 살고 있던 고위 자제들은 비록 부분적으로 비틀렸다곤 하나, 충분한 교육을 받았고 의욕도 제법 충만했다. 게다가 남한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접하고 있었고 적응도 썩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더불어 공산당이 무너지기 전에 당 의원들과 한국 국회의원 사이에서 이루어진 비공식적인 로비들은 그들을 한결 더 쉽게 정착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들은 남쪽으로 내려와서도 여전히 부유했다.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달라져야만 했다. 이대로 사태가 장기화로 변모하는 순간, 한국은 그저 중진국의 함정에 갇혀 경제성장이 멈춘 국가로 비칠 것이 틀림없었다.
“무식한 양키 새끼들!”
실상 새롭게 재편된 통일부 북한인권센터에서 한 직원이 제 분을 못 이겨 욕설을 내뱉으며 오늘도 새로운 삼색 펜을 하나 부러뜨렸다.
‘그래, 축구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미식축구 말이야. 어떻게 축구가 그렇게 변형될 수 있지? 그렇게 야만적인 스포츠라니!’
사실 미식축구는 축구가 아니라 럭비에서 파생된 것으로 다소 간접적인 상관관계밖에 없었지만, 만일 그게 이것을 알고 있었어도 결과는 똑같았다. 알게 되었다면 그저 그땐 미식축구가 아니라 다른 소재로 욕할 뿐이었다.
급격한 통일 이후 업무 강도가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살인적으로 바뀌었다. 과로로 쓰러져 가는 전우들이 점점 한 손으로 꼽기 힘들어지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양손 양발 다 동원해도 모자랄 정도가 되었고, 오늘은 기어코 100명을 찍었다.
그렇게 과로로 쓰러진 사람 중에서 정동원 통일부장관이 있다는 게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들은 일단 갑자기 수십 배 정도로 많아진 기존 업무와 함께 대규모로 들어온 신입 교육에 더불어 북한인이었던 사람들을 교정하느라 이중으로 고통받아야 했다.
말이 이게 인권센터지 그냥 북한인 교화부로 재편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하나원이 아니라 왜 인권센터에서 이 짓을 하고 있느냐면, 그건 너무나도 간단한 대답이었다.
컵에 주전자를 따르면 넘쳐흐르지 않겠는가? 주전자의 내용물을 전부 흘리지 않고 컵에 담고 싶거든, 다른 컵을 가져오면 그만이다. 그렇다. 바로 그거다. 그 또 다른 컵은 인권센터가 되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데이비드 캠프에서 극적으로 평화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실무와 행정 절차를 위해서 임시 국경을 확정 짓고…….
“미국에서 뭐 어쩌고 어째?”
그는 제 분에 못 이겨 또 볼펜 하나를 부러뜨렸다. 이번에는 모나미 볼펜이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가 이렇게 화를 내는 와중에도 업무는 쌓여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