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76)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75화(276/377)
< 275편 >
어떤 방식으로든 마치 지구촌 전체가 압력밥솥처럼 들썩이며 끓고 있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나라가 어디인가 하면, 그건 바로 일본이었다. 미국은 수 시간 전에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다른 나라에서 보여 주는 방식과는 좀 다른 방식이긴 했지만, 그 틀은 기존 마약 대응 정책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약 공급책이 되는 갱들을 잡고, 마약 소지자를 잡아서 민영화된 감옥에 박아 넣는 그 방식 말이다.
단지 좀 이번에는 예전과는 달리 소위 말하는 높으신 자제분들도 구분 없이 잡혀갈 정도로 진지했다.
“그 막 나가는 대통령답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예전 같은 승리를 거머쥘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베는 최대한 정갈하게 처신했다. 다신 만나기 싫었으나, 정신을 차리니 다시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앞이었다. 일 때문에 바쁘다는 둥 핑계를 대서 오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오지 말자고 다짐했을 때는 저도 모르게 나카소네의 자택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아베 신조여.”
“예.”
나카소네는 아베에게 있어서 몇 되지 않는 ‘껄끄러운 사람’ 중 하나였다. 도대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불렀단 말인가? 게다가 정치에서는 손 놓겠다고 했지만, 실상 그는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장막 정치 따위가 실존하는 나라였다. 예를 들면 지금 앞에서 낄낄거리는 나카소네 같은 사람 말이다. 혹자는 고이즈미가 밀어냈다고 하지만, 실상은 밀어낸 게 아니라 알아서 밀려 준 것에 불과했다.
그 외에도 극우단체 이사장 같은 사람들이나, 정치 야쿠자들. 이들은 에도 말기부터 이어지는 막부의 가문이 이름을 바꾸거나 그대로 유지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런 태평양 건너의 이야기를 하고자 자네를 부른 게 아니라네. 단지 선배로서 후배의 마음을 확인해 보고자 불렀을 뿐이야.”
그런 거라면 전화로라도 가능하지 않나 싶었지만, 이게 옛날 사람이라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나카소네의 눈으로 시선을 옮겼다.
“게다가 일이 있으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만. 자네는 오고 말았지. 자네도 나에게 무언가 바라는 게 있는 모양인데. 내가 틀렸나?”
어쩌면 자신은 답을 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이 늙은이로부터가 아니었다. 이자는 강하다. 지금의 자신과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강하다. 먼 훗날이라면 아베가 찾아가는 게 아니라, 그가 찾아오게 할 정도로 권세를 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만. 그때까지 나카소네가 살아 있을지 자체가 의문이었다.
“아니, 맞습니다.”
그러나 수긍했다. 아베는 스스로 지금 자신은 설득되었다고 강요했고, 강제했다.
“고이즈미 녀석. 남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아마도 중의원 기간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것이 2006년에 끝난다. 그렇게 되면 고이즈미도 결국 내려올 수밖에 없게 되리라. 그러나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그래 봤자 임기 끝나면 내려오는 건 그냥 전통에 불과하고, 법적으로 권력만 온존하다면 일본 총리는 본인이 원하는 이상 이론적으로는 무한정 연임이 가능하다.
그리고 아베가 판단하기로는 지금의 고이즈미는 절대로 권력을 놓고 내려올 리 없었다. 게다가 손에 쥐고 있는 권력 또한 여전히 견고해 보였다.
“무슨 노망난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표정이군.”
“아뇨. 당치도 않습니다.”
아베는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쩔쩔맸다. 마치 마음이라도 들여다본 듯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정말로 요괴라도 된다는 말인가?’
애당초 요괴란 게 별것이던가? 사람의 인지를 벗어난 괴력난신이면 그게 바로 요괴지. 도대체 무엇이 요괴란 말이던가?
“단순히 감이야, 감. 교체 주기가 왔다는 거지.”
나카소네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두들기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카소네 전 총리씩이나 되면 감도 그렇게 썩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다.
“최근 들어 너무 언론만 챙기고 있어. 머잖아 어떤 방식으로든 사달이 나겠지. 물론 언론에 너무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문제지만.”
“그래 봤자 잘 보여야 하는 건 다수의 힘없고 책임감도 지니기 싫은 국민이 아니죠. 소수의 강력한 국민입니다.”
“저번에 했던 문답과 별로 다르지 않군.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지?”
아베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내뱉었다.
“그게 민주주의니까요.”
“그렇지. 민주주의다. 일본식의.”
그야말로 정답이라는 듯 그는 낄낄거렸다.
“이건 조금 심한 말이 되지만, 솔직히 우리 국민은 머저리들밖에 없다. 자네가 말한 대로 책임감이 없어. 정치란 뭔가 대단하지만 고리타분한 늙은이들이 큰 건물에 모여서 뭐라고 지껄이는 것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아.”
나이에 맞지 않게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더니, 아니나 다를까 연거푸 기침해 댔다. 아베가 품에서 손수건을 건네려 했지만, 아직은 건재하다는 것을 내비치고 싶었던 모양인지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제지했다.
“목소리 좀 낸다는 놈들은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거나, 죄다 피해망상에 걸린 놈들이지. 그래도…… 그렇군. 하나 동의하는 게 있다.”
극우단체들 말이다. 그들이 목청이 나가도록 주장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란 교육이라는 것이 없으면 이리도 멍청한 영장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단지 하나만은 같았다.
“우리 일본은 지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졌던 적은 없어! 전쟁에서 졌을지언정 ‘일본’은 지지 않았다!”
정신 승리 따위가 아니라 그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설령 비참했던 적은 있어도 다시 위대한 나라가 되어 세계에 우뚝 서지 않았던가?
“내가 염원했던 ‘개헌’ 자네라면 가능하리라고 믿네.”
아베는 그것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반사적으로는 지금 당장 ‘원하시는 대로.’라고 말할 뻔했지만, 이성이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무엇도 약속할 수 없다고 외치면서 아베는 간신히 자신의 입을 단속할 수 있었다.
“고이즈미 아들놈 말이야. 상당히 영리하더군.”
“신지로 녀석입니까?”
“그래. 그 녀석. 아가리를 터는 솜씨가 제법이야. 재작년이었나. 꽤 아플 것 같은 주제로 질문했더니 묘하게 논점을 흐리는 고등화술을 사용하더군. 정치인으로서는 제격이야. 관심이 있나?”
“사람보다는 그 아플 것 같은 주제에 관심은 있습니다.”
남의 약점은 양손 가득 가지고 있어도 언제나 부족한 것이다.
“무얼. 숨길 법한 것도 아니지. 여자관계에 대해서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독신주의자더군. 모르고 있었나?”
“아무리 저라도 그런 것까지는 모릅니다. 이미 정치계에 발을 들이고 있는 인물 정도면 모를까.”
그 말을 들은 나카소네가 흥미롭다는 듯 입가에 호선을 띄웠다.
“자네도 언젠가 내 입장이 되겠지만. 이 자리에 앉게 되면, ‘유망주’의 신상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알고 있게 될 걸세.”
다시 말해서 신지로는 나카소네. 더 나아가 큰 손들이 점찍은 유망주라는 의미였다. 도대체 어떤 면이 그들의 기대를 자극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 아베가 신지로를 경계하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세상은 만만치 않아서 아무 연고도 없는 길바닥보다는 광산에서 원석을 발견하기 마련이지.”
당연한 말이었다. 사람들이 기를 쓰고 광맥을 찾는 이유가 다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가문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명문은 명문인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증명하는 게 이 일본이라는 정치판이고, 아베 신조라는 사내는 살아 있는 증거품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길바닥에 원석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야. 길바닥에서 원석을 찾는 일은 다른 이들의 일이지만, 다듬는 건 우리 일이지. 마치 프로페시아처럼 말일세.”
때아닌 탈모약 발언에 아베는 자꾸만 심장을 비집고 표정으로 나오려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탈모약이 왜 나온다는 말인가?
아니, 의도 자체는 알 것 같긴 했다. 확실히 그 약이 개발된 건 정말로 우연이었으니 말이다. 마치 페니실린처럼 말이다. 정확히는 그 약이 개발되는 원인을 찾아낸 것 자체가 우연이었지만, 많고 많은 예제 중에서 하필 탈모약이라니.
“드시고 계신 겁니까? 프로페시아.”
나카소네는 자신의 광활한 이마를 몇 번 만지더니, 이내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애통하고 비통한 표정으로 작게 읊조렸다.
“이 병 앞에서는 두 손으로는 다 잡을 수 없는 부도, 차기 총리를 무릎 꿇릴 수 있는 권세도 다 소용없다네.”
아베는 은근슬쩍 자신을 차기 총리로 점찍었다는 점에 대해서 모른 척 넘어갈 만큼 멍청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들뜰 정도로 나이가 어리지도 않았다.
“탈모는 병이 아닙니다만.”
“병이 무엇인가? 모종의 이유로 신체에 기능장애가 온 현상을 의미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멀쩡한 머리털이 빠지는 것이 병마가 아니라 무엇이란 말인가?”
그의 말을 들은 아베는 입을 다물었다. 필요 이상으로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아베에게 요구는 되는 건 눈치 빠른 똘똘한 후배 노릇이지, 입 바른 선비 노릇이 아니었다.
“의도를 알고 싶으셨다고 하셨는데, 대답이 좀 된 것 같습니까?”
결국에 아베는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했고, 솔직히 아베가 생각하기에 나카소네는 아베의 반응이나 보면서 즐긴 것 같았다. 무슨 광대놀음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지. 아베는 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건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추호도 그런 생각 따위는…….”
아베의 대답을 듣던 나카소네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나이에 맞지 않게 방이 떠나가라 폭소했다. 찻잔에 들어 있는 찻물에 파동이 생길 정도로 자지러지더니, 이내 눈에 맺힌 눈물을 닦곤 인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는 임기응변이 모자라. 그게 자네 경치 경력을 끝낼 약점이 될 거야.”
“이것도 감입니까?”
“그래, 전 총리의 감이지. 아니면 연륜이 만들어 낸 기형적인 감각이라도 해도 좋네. 그리고 나라면 차라리 수긍했을 거야. 그렇지. 자네가 느끼기에는 시간 낭비겠지.”
‘나카소네라는 인물 자체는 분명 대단하다. 그러나 결국 감은 감. 어차피 이 정계에서 임기응변씩이나 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그땐 필시 이미 몰락하고 있을 때겠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슴 한구석이 찝찝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아무리 일개 필부가 으레 정치인들에게 내뱉는 저주가 정치인에게는 전혀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대놓고 듣고 난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마음이 술렁거리지 않던가?
아베는 이게 그것과 같은 연유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혹여 내가 자네를 아무 이유 없이 놀리고 괴롭혔다고 생각하지는 말게. 나는 정말로 자네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었으니까.”
고작 차 한 잔 마실 시간이었지만, 나카소네의 머릿속에서는 앞으로의 ‘세계정세’ 그 자체가 대략적으로나마 가늠된 지 오래였다. 완전히 파악하는 게 목적이었다. 나카소네가 그리 마음먹은 이상 아베는 절대적으로 차기 총리였다.
‘한국은 당분간 허리를 펼 수 없고. 중국은 움츠러들었다. 러시아는 불투명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일본에 제대로 신경 쓰기 힘들겠지. 그리고 미국.’
상쾌한 차향이 나카소네의 코를 올라타 뇌에 끼어 있는 잡념을 청소했다.
‘미국이 걸어 둔 족쇄는 헐겁기 짝이 없다. 개헌이다. 개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건 사양이지만, 적어도 불쾌했던 과거를 완전히 내쳐 버리기 위해서는…….’
“차 한 잔 더 할 텐가?”
저 얼빠진 표정을 지은 남자가 제격이었다.
“그렇군. 자네 싫은 소리만 너무 한 거 같으니, 말해 두겠네. 자네는 오래 갈 거야. 어쩌면 일본 역사상 가장 긴 집권 기간을 자랑하게 될지도 모르지.”
나카소네는 진심이었지만, 아베가 듣기에는 실로 공허한 아부였다. 아부라고 하기에는 입장이 이상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느껴졌다.
“그것도 감입니까?”
“그렇다네.”
찻잔에 새로운 찻물이 차올랐다. 그곳에는 앞으로 일본을 이끌어 갈 아베 신조가 비치고 있었다.
“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