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7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78화(279/377)
< 278편 >
“아뇨, 아닙니다. 제가 아는 ‘어르신’도 같은 말씀을 하시길래.”
아베가 말하는 그 어르신의 신원은 알 수 없었지만, 차기 총리가 어르신이라고 할 정도면 적어도 현재 혹은 과거에 주요 요직에 있던 인물이리라.
부시가 원한다면 그 어르신의 신원을 알아내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정보 조직을 움직일 것도 없이 지금 물어보면 그만이다.
“여하간 중요한 건 원전입니다. 이미 현 총리인 고이즈미와도 이야기를 마쳤습니다만.”
그러나 솔직히 그 어르신이라는 분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썩 궁금하지는 않았다.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궁금하지 않았다기보다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는 게 맞았다. 실상 자국도 아니고 해외인 일본에서 원전 사고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건 아집이나 고집이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맞다.’
도대체 뭔 짓을 해야 원전 사고가 나더라도 소극적인 피해에서 끝낼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부시와는 달리 아베는 그 이야기가 뭔지에 대해서 잠시 유추했다가, 이내 대답은 실상 하나밖에 없음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원전입니까.”
“맞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나는 차후 당신이 원전에 사고가 났을 경우 신속하게 대응해 주기 바랍니다.”
지적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아베는 애당초 부시가 도대체 왜 원전에 대해서 이리도 집착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싶었다. 그래도 구태여 최대한 추측해 보건대, 아마도 그 원전이 터짐으로 인해서 유출된 방사능 때문이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방사능이 유출되어 봤자 얼마나 유출되겠는가? 일본의 방사능 차단 기술이나 제거 기술은 사고가 나더라도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 우수했다. 제때 움직이기만 한다면 큰 문제가 없으리란 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게 다름이 아니라 내정간섭이라는 것이었다.
“저희 문화와는 제법 상충됩니다만, 내정간섭 아닙니까?”
“저는 지금 총리가 아니라, ‘차기’ 총리와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만 놓고 보면 그다지 내정간섭이라고 볼 만한 요소는 없죠.”
완전히 궤변이었지만, 아주 썩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솔직히 다른 사람이 했다면 논리가 개판이라면서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도 상관없을 정도의 폭언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 앞에서 미국인 특유의 오만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사내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궤변은 어디까지나 궤변.
“저는 민간인이 아니라 현재 공직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아베는 자신의 양복에 걸려 있는 의원 배지를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아베는 조금 아차 싶긴 했다. 자신의 가슴팍에 달린 배지는 일본 내에서만 의미가 통용되는 물건이었던 탓이다. 의원이랍시고 가슴에 배지 달아 주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부시는 아베의 행동을 대충 알아들은 듯싶었다.
“적어도 원전 사고가 났을 때 직접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지도 않죠. 그러니 그저 덕담으로 들어 주시면 됩니다.”
“덕담이라. 그것참 좋은 울림입니다.”
덕담으로 끝낼 수 있다면 차라리 그냥 덕담 정도로 듣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베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게 그저 듣기 좋은 덕담이나 충고가 아니라 실상 ‘협박’에 가깝다는 사실을.
아베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나오는 대답은 도대체 ‘왜 이리도 집착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번복할 뿐이었다.
‘요즘 마약 단속에 힘을 쏟고 있다더니, 압수한 마약으로 아야와스카라도 만들어 마셨나?’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마약과는 달리 한 입만 먹어도 토악질을 할 정도로 역겹고 중독성도 없다던데, 심심풀이 삼아서 눈 딱 감고 한 번 해 보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물론 아베라면 하진 않겠지만.
어쨌든 부시라는 양반이 해외 원전에 이리도 집착하는 이유를 알아내야, 아베가 얻어 낼 수 있는 것과 얻어 낼 수 없는 것을 쉬이 판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치라는 게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자기 능력껏 선을 만들고 지키는 게 정치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에서 편찮은 듯이 일본주를 연거푸 들이켜고 있는 저 사내는 아베의 롤 모델이라고 할 만했다. 제 손으로 선을 주무르듯이 만들어 내고 때로는 밀고 당기면서 권력을 공고히 만들지 않았던가?
‘때로는 위법 행위까지.’
여기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위법 행위다. 위법 행위를 국민을 위해서라고 포장하는 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원래 만인으로부터 공감을 얻는 위법은 위법이 아니다. 그가 자칭 자유의 나라에서 해 낸 독재만 해도 도대체 몇 개란 말인가?
이제 남은 건 오로지 3선 개헌. 혹은 그 비슷한 무언가 뿐이었다. 권력이라는 건 본디 성질이 모래알과도 같아 잡을 땐 쉽지만, 오래 보존하려고 하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꽉 붙잡고 싶거든 모래알에 물을 뿌려야지.
중세 봉건사회에서는 그나마 그것이 쉬웠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물을 뿌리기는커녕 그 물을 뿌릴 동안 모래알을 쥐고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러고 보니 나도 매달리고 있는 게 개헌이었지.’
이렇게 보니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거, 시발 문화는 얼어 죽을. 가만히 방사능으로 샤워하다가 뒈지는 게 문화인가.’
문화란 것이 기간을 정해 두고 숙성되는 게 아니라 갑자기 피어나는 것이라지만, 적어도 부시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방사능으로 샤워하는 문화는 한 50년 전쯤에나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무슨 아토믹 복고 열풍도 아니고 뭐가 일본 문화랑 맞지 않는다는 건가? 혹시 할복 문화를 말하는 것인가? 하긴 할복 문화는 유럽에 큰 충격을 주긴 했었다. 그마저도 본인이 아니라 부하들이 배 가르는 거였지만.
할복도 세세히 뜯어보면 참으로 웃긴 것이 주야장천 부하들 배 가르고 목만 잘라 냈으니 이 어찌 졸렬한 문화가 아닐 수 없단 말인가?
‘민주주의의 탈을 쓴 중세 봉건제 놈들.’
이렇듯 이야기가 헛도는 이유 자체는 별것 아니었다. 서로 같은 말을 해도 다르게 이해하고, 다른 것을 원하고 있으니 그냥 겉만 빙빙 도는 것이지.
부시가 원하는 건 그냥 말뿐만이라도 입 닥치고 ‘아, 당연히 국민을 위해서 신속 대응해야죠.’라는 대답을 듣는 것이었고, 아베는 ‘그럼 미 대통령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해 주시겠답니까?’라고 말하고 싶어 했다.
물론 이게 당연히 입 밖으로는 나올 리 없으니 이야기는 그저 열심히 다람쥐 쳇바퀴 타듯 돌고 돌았다. 은근한 협박이 섞인 덕담과 그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세기의 대결이었다.
이렇게 약 1시간 동안 고급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분류되는 일본주를 물 마시듯 홀짝이며 부시는 안전에 대해서 논했고, 아베는 권력에 대해서 논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이야기가 통하질 않아 답답함에 마셨다는 점이었다. 아베는 지금 자신이 하는 게 혹시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가 아닐까 고민했고, 부시는 미국 억양은 일본에서는 좀 다른 의미로 들리나 고민해야만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미적지근하게 끝나려던 차였다.
“제가 졌습니다.”
술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던가? 무엇이 술을 세상에서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물질 중 하나로 몰고 가느냔 말이다.
“뭐가 말입니까?”
그건 바로 취한다는 단점 때문이다.
“도대체 저한테 차기 총리라는 직함까지 달아 주면서 다들 원하는 게 무엇이랍니까?”
이는 비단 부시에게만 묻는 것이 아니었다. 아베를 가지고 놀기라도 하듯 희롱하던 나카소네에 대한 불만도 같이 있었다. 나카소네는 그 대답을 개헌이라고 내놓았지만, 그깟 개헌 때문에 아베를 차기로 밀어줄 사람이냐? 하면 그건 또 가슴 한구석에 의심 암귀가 만개한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취하면 사람이 솔직해지게 된다. 뇌에 이상이 온 탓이다. 자신은 술을 마셔도 자제심으로 버틴다니 뭐니 하는 것들은 죄다 허상이다. 그냥 그런 사람들은 술에 덜 취하는 유전자가 박혀 있는 거다.
“원하는 것이라.”
반면 부시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속에서는 당혹감이 파도치듯 휘몰아쳤다. 그야 차기 총리라고 판단한 건 다름이 아니라 고이즈미는 이제 내려올 때가 되었고, 아베의 대항마 아닌 대항마라고 할 수 있는 아소 다로는 능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지도자가 아니라 정치가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이는 적을 만들지 않는 능력도 아니고, 친구를 만드는 능력도 아니다. 이는 무기가 될 수 있지만, 하나의 궁극적 목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건 바로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그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소나무처럼 요지부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누름돌을 만드는 일이다.
수단은 무엇이 되더라도 좋다. 그저 누름돌의 무게를 늘릴 수만 있다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아소 다로는 정치가로서는 우수했으나, 지도자로서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게다가 복합적인 측면이나, 비공식적인 정보로 알아낸 표면이 아니라, 일본 정계 내부의 진짜 정세.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시가 가지고 있는 미래 지식까지.
아베는 분명 장기 집권에 집착하기 전에는 제법 우수했다.
장기 집권이란 한 자루 칼과도 같다. 처음에는 잘만 베이지만, 쓰면 쓸수록 둔해지고 이가 빠져 어느 순간에는 더는 먹히지 않게 된다. 그 순간이 바로 장기 집권이 끝나는 순간이다.
장기 집권은 독재와도 비슷하지만, 독재의 경우 극단적인 방법으로 날을 되살릴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물론 그 극단적인 방법이 실패하면 대부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겠지만, 장기 집권은 욕은 좀 먹을지언정 죽지는 않는다.
여하간 결론을 논하자면, 부시는 아베를 지금은 그럭저럭 ‘유능한 정치가’이자 ‘가장 유력한 차기 총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긴급한 사태에는 무능하지만, 평시에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이것이 부시가 생각하는 아베였다.
“나는 이미 말한 것으로 압니다.”
이 미친 핵분열 동아시아에서 유사시에 편성될 일본 지부 소방수 역할.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부시가 바라는 것이었다.
그냥 한마디로 ‘방사능 뿌리지 말라고.’라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그건 자국민을 재교육하라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이 있습니다.”
아베의 입에서 나온 것은 실로 터무니없는 말이었지만, 이것이 일본의 현주소이기도 했다. 국민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국회는 혈통으로 구성되어 있고, 국민은 이에 전혀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다.
그야 어쩌다 한두 명 정도는 불만을 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국민의 무응답 속에서 절망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변절하고 만다. 메이와쿠 문화니, 뭐니 이 모든 것은 오로지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일본만의 방식이 있다. 그렇다. 옛 시절부터 무엇 하나 변하지 않은 일본식 민주주의 말이다. 나카소네가 부르짖는 것도 이해는 갔다. 일본은 바뀌지 않았고, 따라서 패배하지도 않았다. 패배 같은 것이 있었을지언정 그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한 잠시간의 머뭇거림에 불과했다.
“그럼 내 방식도 알고 있겠군.”
조지 W. 부시의 방식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일단 어떻게든 멱살을 잡고 흔들어 보는 그 방식은 너무나도 유명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고 보니 조금 무섭기는 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아베가 아니라, 일본 그 자체가 흔들리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자신의 감정보다는 계산된 이성을 우선시하겠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토대로 치밀한 계산을 쌓아 올리는 인간이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곤란하여 아베가 우물 쭈물거리는 그 순간, 뒤에서 망부석처럼 서 있던 비서실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부시의 옆으로 다가와 꺼림칙한 소식 하나를 전했다.
“대통령 각하, 중동에서 큰일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