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80)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79화(280/377)
< 279편 >
2001년의 중동과 2005년의 서이라크는 천지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번화가라고 칭할 수 있는 거리에서 2층이나 3층짜리 벽돌 건축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하늘을 가리는 빽빽한 콘크리트 빌딩 공사 현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서방세계에서 주도하는 재개발이니 뭐 그런 게 아니었다. 테러리스트들은 재개발을 시킬 수밖에 없게 만들어 줬다. 하루가 멀다고 탈취당한 미사일이나 사제 로켓이 날아왔고, 무수히 많은 자폭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도 서이라크는 차차 안정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군대와 자본의 힘이었다. 생계가 나아진 국민은 현 상태에 대해서 그리 큰 불만을 지니지 않았다. 설령 불만을 느꼈다고 한들, 목소리만 높일 뿐 어느 날 손에 수제작 된 AK-47이 들리게 되는 일은 없었다는 거다.
문제는 멍청이들이 동이라크가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고 가정하고, 무너지지 않는 것을 전혀 상정하지 않고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정확히는 동이라크 통합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비했지만, 이대로 분열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대처할지는 아무도 대비하지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사실, 생각해 보라. 현대 문명의 심장이자 혈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발전소도 자신들의 손으로 파괴하는 이들이 국정을 제대로 이어 갈 수 있으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해 봤겠는가? 그들이 간과한 것은 국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일단 나라는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것이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그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탈레반이나 북한을 상기하면 앞으로 수년. 최악의 경우에는 수십 년은 더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 못한 탓이다.
아직 서방세계 전체가 주변국이 부유하면, 이웃국은 적극적인 개입 없이도 자연스럽게 무너지리라는 막연한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유효했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의 사례에서 전 정권의 대통령이 정치 생명을 이어 가기 위해 내건 유화 정책이 대성공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이를 제지한 사람은커녕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던 덕분에 유럽 사회에 잘못된 인식이 점점 녹아들었다.
합동 훈련을 통해 차차 파악해 간 서이라크 군부는 점점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다. 군부는 가진 힘을 강력했으되, 문민정부의 설립으로 인해 그들이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권한은 거의 거세당한 수준이었다.
EU의 모든 신경은 중동 서방 질서 정립에 몰려 있었고, 서이라크에서 행해지는 유럽 통합군의 모든 군사작전은 본토의 압도적인 지원을 통해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군사 활동 이외의 모든 것은 적당히 보통 수준에 맞춰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실로 필연적인 일이었다.
-깨끗하게 세척-! 한번-!
치직.
-쇼쇼쇼! -하는! 나와 주셨-.
치지직.
-우-절대로-! ……서-! 중동 질서를 위-!
피잉.
“이런 육시랄. 하나도 못 잡는군.”
유럽으로부터 넘어온 최신식 TV가 지직거렸다. 기업 브랜드 광고 차원에서 군에 공여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광고 대상이 되어야 할 군인들에게는 악감정만 심어 주고 말았다. 빌어먹게도 TV로서 가장 중요한 기능인 전파를 잡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탓이다.
“어느 나라 제품이라고?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이 TV가 포르투갈이든 어디 듣도 보도 못한 동남아에 붙어 있는 나라든, 심지어는 북극이든 남극이든 제조처는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 TV가 방송을 멀쩡하게 잡아서 들을 수만 있게 해 주면 상관없었다.
레몽은 우악스러운 손바닥으로 휴게실의 TV를 연거푸 쳐 댔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히 이명을 발생시킬 것만 같은 불쾌한 잡음과 회색 노이즈뿐이었다.
“제가 한번 고쳐 보겠습니다.”
서이라크로 파견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일병 하나가 열심히 TV의 안테나를 건드렸다. 무덤덤하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목소리에서는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 좀 드셔 보십쇼.”
파비앙이 차갑게 식은 탄산음료를 레몽에게 던졌다. 그는 파견 초기부터 함께 자살 특공에 가까운 돌격에 돌격을 거듭했던 전우였다. 나머지는 대부분 다른 곳으로 갔으나, 그만큼은 아직 레몽의 소대에 남아 있었다.
“애들 내일도 굴립니까?”
레몽은 어느 순간부터 파견된 모든 군인의 훈련을 담당하고 있었다. 사실 훈련이라기보다는 현장에 적응 좀 시켜 보겠다고 굴리는 거지만, 이것도 중대급이면 모를까 그냥 파견 오는 유럽 통합군 대부분은 레몽의 손을 적어도 한 번은 거치게 되어 버렸다. 이는 레몽에게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일개 병장이 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중대장이나 해야 할 일이지.”
“그만큼 신임 받고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어차피 진급 예정 아닙니까?”
몇 가지 조건만 갖추면 하사가 아니라 중사 계급장을 달게 될 예정이었다. 경력 있고 실적 있는 병사가 부사관이 되는 일은 프랑스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레몽의 진급 속도는 특별했다.
“그건 그렇고 매번 하는 말이 있잖습니까. 그거 그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그것이 뭔고 하면, 국적을 불문하고 으레 하는 그 소리였다.
‘훈련소에서 배운 것을 절대로 잊지 마라. 훈련소에서 배운 것이 현장에서 통용되지 않는다는 건 머저리들이나 하는 말이다! FM대로만 따르면 십중팔구는 사지 멀쩡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거다.’
“그게 왜?”
“그런 거짓말을 해도 되는 겁니까?”
“내가 무슨 거짓말? 솔직히 작전 내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 ‘FM’대로라면 말이야. 그리고 멋대로 움직여 봐야 좋을 거 하나 없지. 그래도 파견씩이나 나온 걸 보면 다들 기본은 하던데, 뭐.”
“그래도 우리 부대에서 FM하고 가장 동떨어진 게 레몽 병장님 아닙니까?”
그렇긴 했다. 이는 전적으로 파비앙의 말이 맞았다. 딱 재작년까지는.
“아니꼬우더냐? 그럼 네가 FM을 새로 쓰거나, 새로 쓰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나는 했지.”
프랑스군의 야전교범 일부가 공격적으로 변한 건 오로지 레몽의 탓이었다. 큰 틀은 파괴하지 않았지만, 특히 게릴라전의 교리는 좀 더 안전보다는 속도를 중시하게 변했다.
“솔직히 저희가 하는 짓이 일반 부대가 하는 짓입니까? 완전 특수부대지.”
“특수부대는 우리처럼 허접하지 않다.”
분대원 대부분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레몽의 분대는 따지자면 특수부대로 분류할 수 있긴 있었다. 게릴라 방면으로 말이다. 세상 그 어떤 정규군이 보급이 고갈되었을 때 후퇴해서 재보급을 받을 생각이나 탈취해서 돌파구를 뚫을 생각을 하지 않고, 적을 전멸시키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한단 말인가?
레몽이 상기하기에 그것은 분위기에 취해서 저지른 짓으로, 솔직히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산개 착검 돌격 및 탈취 재보급’은 비시 프랑스 시절의 레지스탕스나 할 법한 전술이었다.
기본적인 골자는 ‘속도’를 생명으로 한 ‘혼란’이었는데, 마치 전격전이라도 보는 듯한 속도와 분대 간 의사소통을 통해 전장을 혼돈으로 몰아가는 방식이었다. 이는 시가전에서나 먹히는 것이었으며, 적이 아군의 규모 및 화력을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착각을 심어 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분대원의 숙련도와 능력이 출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저 파견 나온 땡보병 주제에 특수부대에 맞먹는 작전을 소화해 내야 했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실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모든 일이 잘 풀렸던 건 분대원들이 전부 뛰어났기 때문이지, 전술이 뛰어났던 게 아니었다.
“솔직히 그렇게 맨날 돌격만 하다가 언젠가 대가리에 구멍 뚫려서-.”
“이 새낀 선임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레몽이 장난스레 던진 빈 캔이 벽에서 한 번 튕기더니, 정확히 파비앙의 머리를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다행스럽게도 내용물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거 수류탄이었으면- 읍!”
“새끼 입을 막아 버려야지.”
레몽은 진짜로 파비앙의 입을 알루미늄 테이프로 막아 버렸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붙인 게 아닌지라, 레몽이 붙이자마자 파비앙은 테이프를 떼어 내고서 더 많은 수다로 응수했다.
“아니,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착한 후임의 입을 막다니!”
-우리는 절대로 서방을 믿지 않는다!
“아니, 젠장. 고치라고 했더니 왜 이 나라 방송이 나오고 있어?”
당연하겠지만, 각자의 병영에는 각국에서 들여 온 채널이 있었다. 파견을 나와도 고국의 TV프로를 거의 실시간 수준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TV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이제야 좀 알 것 같은 아랍어였다.
아까 TV를 고쳐 보겠다던 일병 하나가 울상을 짓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게 아니었다.
“레몽 병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그들은 지난날 우리에게 벌어진 비극이 민주혁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가 당시 들고일어났던 것이 진정 서방세계 체제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던가? 우리가 굶주림 끝에 고심하여 시작한 행진이 서구를 위함이었던가?
“뭐야?”
“조용히!”
매우 소수에 불과했지만, 아랍어를 알아듣는 이들이 심상찮은 내용에 고물 TV 앞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놀랍게도 이라크 정부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현 서이라크 정부라고 자처하는 수치심 없는 자들은 이 굴욕적인 발언을 전부 수긍하고 있다! 그들은 서방의 개다! 형제를 팔아넘긴 EU의 앞잡이다!
EU군 또한 이라크가 안정되면 순차대로 나가겠다고 했건만, 날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되레 규모를 늘려 가고 있다. 이라크에는 이미 반영구적인 주둔을 위해 더 많은 훈련장과 병영이 건설되고 있다! 이라크와의 약속을 단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단 말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소수민족 독립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 아래 이 중동을 마음대로 쪼개려고 하고 있다! 한때 그들을 위협하고 동경하게 했던 동방의 힘을 상기해 내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잘게 찢어 버리려고 하고 있다!
국가 발전을 위해 우리가 피땀을 모아 낸 혈세 중 무려 3분의 1이 그들의 저열한 군수산업을 지탱하기 위해 쓰이고 있다. 이는 실로 비정상적인 일이다! 세상에 이런 국가가 어디 있단 말인가?
더불어 현재 정부는 어린아이가 봐도 무모하고 초보적인 수준의 경제개혁으로 이미 무능함을 보인 바가 있으며, 현재 국정은 실상 이라크인이 아닌 유럽인의 손에 이뤄지고 있다! 이것이 정부인가? 이것이 우리의 운명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라크의 국민이여! 이라크의 진정한 주인들이여! 일어나라!
우리는 서구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될 것이다!
이라크군의 대령으로 보이는 자의 연설이 끝나자 화면이 전환되었다.
“시발.”
TV 화면에서는 레몽이 있는 병영을 향해 포격이 시작되려는 장면을 송출하고 있었다.
“엎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