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82)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81화(282/377)
< 281편 >
“이런 젠장!”
레몽은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다른 전우들을 찾을 정신머리는 증발한 지 오래였다. 단지 늦기 전에 엎드리고, 2차 포격이 시작되기 전에 멀쩡하게 도망쳤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잘못 쏘면 100m도 우습게 빗나갔던 옛날과는 달리 야포의 명중률은 고작 1m의 오차만을 허용했다. 현대전에서 포격이란 그런 것이었다. 머잖아 1m는 1cm가 되리라. 어쨌든 표적에서만 멀어지고 나니, 이 높은 명중률이 도리어 레몽을 살렸다.
그야 서이라크 반군도 이 사실을 알고는 있겠지만, 병영 주위까지 포격하기에는 몇 가지 제한이 있었다. 우선 이곳이 민간인이 사는 대도시이자 수도였고, 동시에 그럴 만한 여력도 없었다. 단번에 많은 곳을 타격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화력이 분산되어 충분한 화력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가 따로 없었으니 말이다.
‘서이라크군에서 이상할 정도로 많은 자주포와 야포를 요구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머저리들.’
물론 그 머저리 안에는 레몽 본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영웅이라고 불리면서 부사관으로 승진할 예정인 몸이라지만, 고작 병장 계급을 달고 있는 레몽이 그걸 미리 알았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멍청하게 이 불타는 병영 안에 있지는 않았으리라.
“파비앙! 우리 분대는 멀쩡한가?”
바닥에 주저앉은 파비앙이 몇 번 콜록거리더니, 몇 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사실 휴게실에 같이 있던 친구들 말곤 잘 모르겠습니다.”
휴게실에 있던 사람은 대부분 다른 분대원들이었다. 게다가 그런 말을 하는 와중에도 뒤늦게 불타는 병영 안에서 생존자들이 이리저리 기어 나오는 것이 보였는데, 팔이나 다리를 잃은 사람이 심심찮게 보였다.
그중에는 알고 있는 얼굴도 심심찮게 보였는데, 건물 밖으로 나오다가 쓰러지는 꼴을 보거나 2차 포격에 맞고 다음에는 그저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지금 여기 있는 사람만 빨리 추슬러서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
레몽은 포격 안으로 사라진 부상자들을 애써 무시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전부 병이었고, 간부급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병장 레몽이 최선임자라는 소리였다. 병장 주제에 혼성부대 최고 선임이라니!
‘이런 빌어먹을. 정말로 다 죽은 모양이군.’
그렇게 모인 잔병은 무기는커녕 제대로 옷조차 입지 못한 빈자의 군대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군대의 군인들 꼬락서니는 완전히 산적 나부랭이였다.
거의 네 자릿수에 육박했던 부대는 남아 있는 사람 중 사지 멀쩡하게 달린 경우가 총합이 12명이었고, 그마저도 3명은 폭음에 고막이 터져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더 짜증 나는 건 인종도 언어도 다른 12명이었다는 거다. 무엇을 숨기랴. 이 병영은 유럽 통합군의 제일보라고 불리는 병영이었다. 유럽 통합군에 소속된 군대를 모조리 때려다가 박아서 억지로라도 일원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본토에서 해야 할 것이 왜 외국인 이라크에서 이뤄지고 있었느냐고 물으면, 복잡하고 알기도 싫은 정치적인 사유와 압력이 여럿 작용한 결과였다.
그래도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이유였다.
“환경이 낯설면 유럽인끼리 서로 알아서 뭉칠 거라고? 엿 같은 레이시스트 새끼들. 지랄하고 자빠졌네. 언어도 제대로 통일 못 하면서 통합군은 무슨 얼어 죽을 통합군이야.”
그들의 손에 총은 들려 있지 않았지만, 아마 그들이 멀쩡하게 모두 장비를 가지고 나왔어도 하도 제각각이라 골머리를 싸매야 했을 터였다. 위에서는 조만간 모든 보병 장비를 통일하겠다고 야심 차게 차세대 모듈식 제식 화기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었지만, 알게 뭔가.
가장 중요한 건 노력하는 모습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 적용이 되었느냐다.
“병장님, 보는 눈이 많습니다.”
“그래, 병장이지. 병장이 망언 좀 한다고 누가 신경 써. 심지어 세 놈은 귀까지 먹어 버린 마당에. 게다가 내가 프랑스어로 백날 지껄여 봤자 알아듣지도 못할걸?”
그리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레몽처럼 교류하는 특정한 업무가 없으면 그들은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물론 몇몇 정도는 충분한 흥미를 느끼고 배우는 경우가 있긴 있었지만, 기껏 해 봤자 영어 정도였다.
“그야…… 레몽 병장님은 그냥 병장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실상 원사까지 진급이 약속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그들이 항의한다고 해서 레몽의 입지가 흔들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하긴 지금 죽으면 입지고 나발이고 천국으로 가겠지만, 레몽은 적어도 이곳에서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파비앙이 불안한 듯이 말했다. 입고 있는 건 국방색 민소매에 군복 바지요. 신고 있는 건 검은색 슬리퍼였다. 근데 손에 쥔 거라곤 몸에서 나온 소금기뿐이니 불안하지 않을 턱이 있나.
“글쎄. 적어도 본래 우리 임무대로 병영을 수비할 수 없는 건 확실하지.”
본디 전쟁 발발 시 레몽의 분대는 병영의 일각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지만, 새로 편성되었던 분대는 뭘 해 보기도 전에 산산조각이 났고 그렇다고 레몽 단독으로 뭘 해 보려고 해도 이미 사태는 경각을 내달리고 있었다.
“임의로 분대를 재편성하고 다른 부대와 접선해야지.”
“분대는 그렇다고 치고, 임무 변경이라고요? 매사에 훈련받은 대로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은 예외로 치지. 초소란 초소는 모조리 박살 난 병영에서 곧 들이닥칠 서이라크 반군과 한판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든가.”
그래도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건 탈영 아닌가?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중대가 집결할 집결지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다른 작전에 배속되긴 하겠지만, 탈영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게 올바른 선택일까? 서이라크 반군이라곤 하지만, 실상 서이라크 정규군이다. 그토록 합을 맞췄던 그 정규군 말이다. 그들이 유럽 통합군의 집결지를 모를 리가 없었다. 만약 매복이라도 하고 있다면? 아니, 그럴 확률이 농후했다. 반드시 매복하고 있거나 이미 점령 중일 터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여긴 그들의 홈그라운드니 말이다.
모든 방면에서 최적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 레몽이 머리를 굴리는 동안, 파비앙이 뜬금없이 무언가를 건넸다.
“병장님, 이거 받으십시오.”
생긴 건 길쭉하고 강철로 만들었다. 상아로 강철을 둘렀으며, 금박을 입혀 고상한 무늬를 그려 냈다. 그것은 샴쉬르라고 불리는 중동 칼이었는데, 딱 봐도 실용성을 완전히 배제한 장식용 물건이었다.
“칼이잖아?”
칼집에서 살짝 꺼내 보니 날이 예리하게 살아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쓰인 적이 없다는 듯 마모된 부분이 없었고 건 오일(Gun oil)과 비슷한 도검유(刀劍油)가 충분히 골고루 칠해져 있었다.
“글쎄요. 발치에 굴러다녔는데. 아마도 그전에는 어떤 병사의 개인 소지품. 그러니까 기념품이었겠죠. 그리고 놀랍게도 그게 저희가 지금 가진 유일한 방어 수단입니다. 저기 보시다시피 무기고가 불타오르고 있으니까요.”
그 순간 참으로 절묘하게도 2차 포격에 맞은 무기고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작은 버섯구름을 형성했다.
“그래. 그래도 사람만 찔러 죽일 수 있으면 훌륭한 무기지. 손바닥만 한 총검만 있어도 감지덕지한 마당에 칼이라니! 세상에!”
레몽은 이 열악한 상황에 알게 모르게 비아냥거렸다. 클레이모어나 대전차무기 같은 강한 화력은 바라지도 않으니 적어도 소총이라도 있으면 여한이 없겠는데, 기껏 가진 게 칼이라니! 그것도 시대착오적인 중세 시절 설계를 따른 중동 칼이라니!
“근데 저 친구는 멀쩡하게 무장하고 있군.”
레몽이 가리킨 인물은 유일하게 제대로 군복에 군화를 신고 손에 소총까지 들고 있는 군인이었다. 장비를 보아하니 독일군 출신이었는데, 레몽이 손가락질하는 그 순간에도 무어라 지껄이고 있었다.
레몽의 업무가 업무인지라 독일어를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그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횡설수설하여 알아듣기 어려웠다.
“뭐?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 봐. 젠장, 독일어는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단 말이야.”
독일 군인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이내 G36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내뱉은 말이 ‘이 총은 못 써먹을 고물, 쓰레기!’라는 것이었다.
“아하, 구식이구먼?”
결론만 말하자면, 독일군은 G36을 열심히 개선하고 있었고 이미 그 개선된 G36을 일선에 보급하고 있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보급하고 있는 ‘도중’이었다는 점이었다. 실전에서 증명된 G36의 성능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고, 도리어 그렇게 욕을 배불리 먹던 L85A2가 호평을 받았다.
“그래도 총알은 나갈 텐데 그렇게 홀대하면 쓰나.”
주워 들며 더듬거리면서 독일어로 말했더니, 독일 군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낄낄 웃으면서 하는 말이 ‘불에 노출되었으니, 이제 MAC처럼 나갈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열 문제가 있다는 건 알았는데, 그 정도인가?”
과장이라고 생각한 레몽은 무어라 더 물어보려다가 시간만 끈다는 사실을 깨닫고 움직이기로 했다. 이대로 그냥 아무렇게나 움직이면 실상 그냥 작전 이탈에 가깝긴 했지만, 그래도 탈영이 여기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다.
그리고 정신을 추스르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인데, 하늘에서는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수송 헬기와 전투 헬기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차세대 대공 체계와 우수한 제공권 장악 능력은 유럽 통합군이 만들어 낸 결정체였다.
순수한 공군력만으로 서이라크 영공 진입은 실상 불가능했다. 이론상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온몸으로 체감하게 되니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완전 살충제 앞의 벌떼구먼.”
솔직한 감상이었다. 서이라크의 대공 방어 체계는 해군 근접 방어 시스템인 CIWS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차세대 방공 시스템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1세대인 만큼 허점이야 수도 없이 발견될 터였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는 거의 무적을 자랑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공군은 이미 다 땅에 떨어지거나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고 당했을 거고. 육군은 보다시피 기습 공격에 초전 박살이 났다. 해군은 솔직히 아는 것이 없어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본대가 오면 상황이 좀 나아질 것이라는 게 레몽에게는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저희 진짜로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 빌어먹을 땅에서는 확실한 게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게 두루뭉술했고, 레몽의 선택으로 인해 그나마 좀 멀쩡한 12명도 장애인이 되거나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무거워졌다.
애당초 작전 목적은 무엇인가? 이라크 탈출? 아니면 본대와의 접선? 혹은 서이라크 반군에 대한 유격전이나 시설 파괴?
“좋아…….”
그래도 레몽이 생각하기에 딱 하나는 확실했다. 그건 이 빌어먹을 거지들을 그래도 좀 군인처럼 바꿔 놓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레몽은 칼집을 버리고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하니 행색이 완전 사막의 도적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하려는 일도 어차피 도적과 비슷하긴 했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짓을 하러 간다.”
엘랑 나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