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84)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83화(284/377)
< 283편 >
폭음, 섬광.
“이게 무슨 소란이야!”
급히 재판장을 나가 재판소의 창문을 보니 그 너머로 거대한 버섯구름이 올라가고 있는 게 아닌가? 창문에는 폭발의 진동 탓에 얼떨결에 미끄러져 내려온 한 SAS 대원의 군화의 끄트머리가 보였지만, 그런 사소한 점 따위는 버섯구름의 웅장함과 빛에 가려졌다.
애당초 버섯구름이 무엇의 상징이던가? 그 가능성에 몰두하게 되면, 그 누가 다른 곳에 신경 쓸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저 폭발이 핵폭발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아낸 탓이다.
“다행스럽게도 핵은 아니군. 설마 EU가 드디어 미쳤나 싶었는데.”
아바스 대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핵이었으면 우리는 이미 죽었겠지. 아마도 위치를 가늠해 봤을 때 제3무기고 같은데.’
제3무기고는 특정한 무기고를 지칭하는 명칭이 아니라 EU의 감시를 피해서 만든 무기고였다. EU의 느슨한 감시망 속에서 꽤 많은 무기와 탄약을 축적하는 것에 성공했고, 이는 EU가 서이라크의 병력을 오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그중 지금 터지고 있는 무기고는 미사일 사령부 소속 무기고인가? 곤란하게 되었군. 정 힘들면 그걸로 진군이라도 막아 볼 참이었는데.’
대령은 입맛을 다셨다. 아마도 적군의 특수부대가 침투한 듯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보고조차 없을 정도로 은밀하다니. 어떤 나라의 특수부대인지는 몰라도 작전 능력이 상상 이상이군.’
미사일 사령부 소속 제3무기고가 보고조차 하지 못하고 폭발했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은밀하다는 건 완전히 오해였다. 도리어 고장 난 총이나 칼 따위나 든 산적단과 다름없는 무리에게 화려하게 폭파되었고, 제대로 보고할 틈조차 없이 박살 났다는 게 맞았다.
“전쟁이다. 계획한 대로만 움직인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법이지. 탄도 미사일이 조금 줄어들었을 뿐이야. 기존 전략에 큰 지장은 없다.”
그러나 대령이 그것을 알 리가 없었고, 상식적으로도 대령의 판단이 옳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형은 집행되어야 한다.”
본디 판결이 끝나면 사형장으로 이송했어야 했지만, 상황이 이 꼴이니 그렇게까지 하긴 글렀다. 대령이 고개를 까딱거려 의사를 표하자, 부하들이 대통령을 무릎 꿇렸다.
“따로 유언이 있소?”
대령 입으로 공정한 재판이라곤 했지만, 공정한 것은 그 무엇 하나도 없었다. 그는 고문을 당하고 두들겨 맞은 다음인지라 어질어질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짧은 사이에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향에서 쫓겨나 외국에서 취업문을 두드렸던 시절. 독재에 맞서 비밀결사 비슷한 조직에 몸을 담았던 시절. 그리고 혁명. 간신히 살아나 한때 동지였던 아메르와의 선거 경합.
그리고 끝끝내 대통령까지.
“아메르 상원 의원과 허리 부러진 이름 없는 노인에게 전해 주시오. 인간 호샹은 최선을 다했다고.”
진짜로 전해지리라곤 믿지 않았다. 단지 이 정도 유언이라면 알아서 어련히 퍼져 나갈 것이었다. 그럼 알아서들 잘 듣겠지.
때가 되었다. 한편으로나마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특수부대원들은 늦은 모양이거나, 예상치 못한 위험을 만나서 몰살이나 와해라도 당한 모양이었다.
그는 밑도 끝도 없이 시커먼. 그러나 곧이어 그 안에 빛과 힘으로 가득 차게 될 구멍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 어디서 봤는데.’
그는 자신의 길고도 험난했던 삶을 끝낼 도구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갑작스레 불현듯이 깨닫고야 말았다.
‘아하! 그렇구나! 바로 저것이 대령의 눈이로구나!’
아직 서이라크가 이라크이던 시절, 그동안 봐 온 혁명가들의 눈은 깊고도 심오했다. 얕더라도 그 깊은 곳에서는 제각각의 불씨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사회 운동이란 일말의 의지라도 있기에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야 진짜배기를 제외하면 대단한 신념은커녕 십중팔구는 그 뒤에 따라붙는 이득이나, 떡고물 따위에 신경이 팔린 이들이 대다수지만, 적어도 ‘이익에 팔린 의지’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 운동에 동참하거나 달성하려는 것이다.
독립, 혁명 등 사회 운동은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현실에 대해서 비판하려는 건 아니었다. 이는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자 민낯이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로 위에 설 수도 없고 서서도 안 된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은.
“총구로구나! 총구였어! 네놈의 눈은 총구야!”
“그것도 유언이오?”
총구였다. 그래, 바로 총구였다. 이제야 조금 알 거 같았다. 잡혔던 그때 대령의 눈을 보고 느꼈던 감정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지금까지 느껴 왔던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의 안에서 여전히 대령은 서이라크의 평화를 깬 악당이고, 군부독재 정권으로 회귀하려는 천하의 몹쓸 놈이었다. 그렇다. 회귀다. 저 눈은 전에도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단지 하나를 깨달았을 따름이다.
“이보게! 대령 자네는 진실로 이것이 ‘혁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 말을 들은 대령의 눈가가 꿈틀하더니, 잠시 형의 집행을 멈추라는 손짓을 보였다.
“오! 아니겠지. 아니야. 네가 원하는 게 혁명일 리가 없어. 이 악마보다도 간악한 자식!”
그가 노리는 것이 고작 혁명일 리가 없었다. 대령이 국민을 위한다는 것만은 진짜일 터다. 단지 문제는 그 ‘국민의 자격’이다.
모를 리가 없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호샹이 왜 혁명을 이루려고 했던가? 국민에게 온전히 국민의 자격이 없었던 탓이다. 후세인 정권에 국민은 세금 짜는 기계 취급받으며, 탄압받고 억압받으며 고문받고 그렇게 죽어 나갔던 탓이다.
“흠.”
그래. 바로 그 눈이다. 사담 후세인에게서 본 그 눈깔이었다. 국민을 국민 취급하지 않는 그 눈깔. 국민을 오로지 자신의 친위대만으로 규정했던 그 눈깔이었다.
온갖 모진 고문을 당하고 일방적인 재판을 치르는 와중에도 묘하게 담담하고 얌전했던 건, 정신이 혼미해서가 아니었다. 그래도 은연중에 자신과는 견해의 차이가 좀 있을 뿐. 대령이 국민을 위하며 일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탓이었다.
“국민을 또 노예처럼 부릴 생각인가! 외국인들의 공장에서 혹사당하는 국민에 대해서 논하지 않았던가? 적어도 외국인이 아니라 자국민의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뜻이 그깟……!”
“우리 사이에 사소한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전 대통령 각하.”
“뭐야?”
“나는 그들도 국민이라고 생각하오. 단지 다소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거지. 저기 서방 놈들이 두는 차등을 법으로 좀 더 명확히 하는 것에 불과하오.”
사람 목숨에도 값어치가 있다. 그리고 그 값어치는 전부 다르다. 법에서는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당장 대테러작전만 해도 VIP는 따로 구분한다. 이를 정하는 것은 자본과 권력이다. 더 나아가서는 한 사람이 가진 능력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가치는 직간접적인 능력에 의해서 구분된다. 현대의 모든 국가는 대부분 암묵적인 테두리 안에서 혹은 법적으로 그 가치를 가늠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소리요. 사실 그 이야기에는 뒷이야기가 좀 더 있지. 그 공장 노동자는 아주 현명한 자였소. 바그다드 대학을 졸업했으며, 단지 말 몇 마디로 공장의 효율을 개선할 수 있을 정도로 현명했지. 그런데 공장장의 눈 밖에 났다는 이유만으로 홀대를 받고 있었소. 공구는 만질 줄 알아도 정치는 할 줄 몰랐거든.”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는 연기를 내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글쎄. 현실과의 괴리에 고민하며 밀어붙이다가, 끝끝내 공장에서 해고되자 목을 매달고 죽었더군. 실로 어처구니없지 않나?”
“그 노동자가 당신 동생이라도 되는 거요?”
“설마, 나는 독자일세. 경찰이 아니라 군이 치안을 담당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알게 되는 법이오. 그렇지. 당신이 그렇게 신봉하는 서구식으로 따지자면 나는 엘리트주의자쯤 되겠군.”
“엘리트주의? 선민사상이겠지.”
“그렇군. 배운 거라곤 총질밖에 없고 무식해서 차마 세세한 구분법까지는 몰랐소.”
다시 창문 너머로 저 멀리 또 다른 제3무기고가 있는 곳에서 두 번째 버섯구름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보다는 작았으나, 그 타격은 그리 작지 않았다. 그곳은 온갖 보병 장비를 모아 놓은 세 번째로 가장 큰 제3무기고였다. 그것으로 대령의 인내심이 고갈되었다.
“더 들어 줄 것 없다.”
대령은 처형 집행의 신호를 보내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탱고다운(Tango down)!”
그러나 떨어진 것은 대령의 손이 아니라 대령 그 자체였다. 어딘지 확실치 않으나, 분명 머리를 맞고 속절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진입! 진입! 진입!”
한낱 소대장이나 중대장급도 아니고 아예 지도자가 쓰러졌으니 당황할 법도 했지만, 대령은 어중이떠중이들에게 재판소의 경비를 맡길 정도로 허술하지 않았다.
그 대령이 고르고 고른 정예 중의 정예들인 데다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상정하고 있었기에, 바로 예측 응사했고 무리하게 작전을 강행한 SAS 대원 몇 명을 재판소에 진입하기도 전에 벌집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작전도 마찬가지였다. 부대장 취급받던 짬 낮은 대령 하나가 무전기를 들고 얼빠진 통신병을 대신하여 작전을 하달했다.
“전군에 하달한다. 상황이 발생했다. 현 시간부로 12사단과 37사단은 작전대로 이행한다.”
그러나 SAS는 SAS였다. 이라크에서 가려냈다고 한들,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특수부대에서 가리고 가려서 뽑은 최정예 대원들을 상대하기에는 명백하게 역부족이었다.
재판소 로비에서 손에 총을 들고 있는 자들은 대부분 불귀의 객이 되었으며, 그사이에 SAS의 가장 주된 목적인 서이라크 대통령은 SAS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항공 지원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고, 그나마 상정에 없던 거대한 폭발을 기회 삼아 어떻게든 임무나마 성공해 보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제2의 도주로로 낙점한 게 지상 도주였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입구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레오파르트2 전차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역시 최정예 특수부대. 전차를 은밀히 노획했으며, 폭발에 눈이 팔린 사이에 이를 로비 근처로 빼돌렸다.
대통령이 SAS의 손에 들어오고 나서 고작 20초. 대령에게 분개하고 있던 대통령은 화가 식기도 전에 이미 전차에 본인의 의사와는 일절 상관없이 처넣어졌고 처넣어지기 전부터 전차는 움직이고 있었다.
나머지 SAS 대원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야 했지만, 개인 단위로 전쟁통에 은밀하게 이동하는 것이라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접선 지역이 그리 멀지도 않았다.
적측 수뇌부까지 마비시켰고, 인질까지 구출했다. 아직 탈출하지 못했으니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반절의 성공이었다. 만약 대통령을 구출하지 못한다고 한들 적측 지도자를 전사시켰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대장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일단은 죽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두 번째 폭발과 급박히 돌아가는 상황이 겹치는 바람에 ‘확인 사살’을 하지 못했다.
“아니! 보고는 나중에 듣겠다. 매거트! 밟아! 뒤에서 추격당하고 있다!”
반드시 했어야만 했던 대원의 보고는 적 전차의 포격으로 인해 반응 장갑이 터지면서 일어난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물론 그들이 지금 확인 사살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한들, 어떻게 조치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