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29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298화(299/377)
< 298편 >
***
그리하여 두 지도자는 다시 한번 만났다.
이번에도 비공식 회담이었다. 최근 들어 잦은 비공식 회담에 언론은 의심을 표하고 있지만, 알게 뭔가. 그렇다고 언론에 대고 웃는 낯짝으로 ‘아, 곧 중국에서 제3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열리고 핵전쟁이 시작될지도 모릅니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서론은 집어치우고 본론부터 말합시다. 시답잖은 일이라면 전화 따위로도 말할 수 있겠지. 대관절 이렇게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자리에 앉기도 전에 리커창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도저히 한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곤 상상조차 힘들 정도의 폭언이었다. 비공식이라곤 하지만, 엄연히 통역관을 대동하고 있었다.
부시의 뒤에 있는 통역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가는 것이 보였다. 당연히 통역을들은 부시의 표정은 구태여 표현할 것 없으리라.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리커창은 표면적으로나마 만족하면서도 속으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애당초 반쯤 이 회담 자체를 파투 낼 생각으로 내뱉은 말이며, 목적 자체가 기선 제압이나 모욕 같은 부류가 아니라, 대놓고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뭘 얻어 갈 생각은 하지 마라.’였다.
어쨌든 저 일그러진 표정을 보았으니, 성공이라면 성공이었다. 솔직히 무슨 깡패쯤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언제까지고 끌려 다니는 건 사양이었다.
그리고 침묵이 찾아왔다. 침묵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부시의 표정은 점점 더 험악하게 일그러져 갔다.
이윽고 방 안에 울려 퍼질 정도로 소리 내어 ‘허’라며 깊게 탄식하더니, 이내 표정을 폈다. 아까 깡패가 어떻고 했지만, 양장 입은 거한이 인상 쓰고 있으니 누가 깡패인지 도저히 모를 지경이었다.
“그럼 원하시는 대로 해 드려야지.”
결국에 먼저 굽힌 건 부시였다. 일단은 부시가 급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가장 급한 사람은 다름 아닌 리커창이었지만, 이것도 급하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급한 줄 알 것 아닌가?
“솔직히 말하지. 난 귀국에서 핵전쟁이 벌어지리라 생각하고 있소.”
미합중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무게는 무겁다. 이 말을 들은 순간 누구라도 뇌가 표백될 것이지만, 리커창은 다르다. 그는 현 주석이다. 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제 몸처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말을 듣고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실이 어찌 되었든 저 세상 무서운 것 하나 없는 사내가 유일하게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패가 이제 리커창의 손에 들어왔고.
‘아무리 그래도 중화 인민해방군 편제에 대해서 모르는 건 아닐 터고. 이 중국에서 핵전쟁이라.’
아주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차피 핵이라는 게 코드가 주석에게 쥐어져 있어도, 결국에는 발사만큼은 사람이 정하는 것인지라 확보만 해 두면 최종 병기이자 균형의 수호자로 군림할 터였다. 이토록 매력적인 병기를 확보하지 않을 군벌은 없다.
아니, 군벌이 아니라 이를 포기할 지도자가 없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핵을 포기한 북한을 미국이 직접 해체하는 걸 보기까지 했으니. 하긴 그걸 포기라고 표현하나? 포기 당한 거 아니겠는가?
‘지금 군구가 갈라졌다고 쳤을 때 우두머리일 놈들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곤 생각지 않지만. 어차피 각 군구에서도 지도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몇 번은 바뀔 거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어떤 미친놈이 미국에 핵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아마도 부시가 걱정하고 있는 건 이것이리라. 그래서 일단 생각을 정리한 리커창의 감정은 어떠했느냐면.
실로 불쾌했다.
생각해 보라, 이건 완전히 자업자득 그 자체 아닌가?
작금의 정세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중국이 지금 분열될 처지에 놓인 건 누구 때문인가? 지금 리커창이 권력을 쥐고도 휘둘러보기는커녕 지키는 데에만 급급하게 된 원인이 누구더라?
물론 이 사태를 넘어서고 나면 리커창은 중국에서 그야말로 살아 있는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력한 권력이 손에 쥐어지게 되겠지만, 리커창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권력욕이 없냐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권력욕이 없는 사람이 정치 같은 걸 하겠는가? 복잡한 사연이 있긴 하지만, 주석씩이나 달고 권력욕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단지 주석이면 충분했다. 지상에 강림한 신이 아니라. 고작 주석이면 충분했단 말이다.
‘불쾌해. 몹시 불쾌하군.’
갑과 을에서 을이란 항상 불쾌할 수밖에 없는 자리다. 그걸 뒤집는 게 리커창의 능력이 되겠지만. 어디 그렇게 쉽게 뒤집을 수 있겠는가?
‘잠깐만, 뒤집는다고?’
아니, 도리어 지금은 이쪽이 갑이 아닌가? 이때 리커창의 뇌리를 스쳐 가는 생각은 오로지 하나였다.
‘이건 기회다!’
드디어 미국이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다. 상상해 왔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고, 오히려 약해지고 나서야 두려워하는 꼴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현실이 이러한데 어쩌겠는가. 리커창은 그 빌어먹을 현실을 최대한 이용해 주기로 했다. 너무나도 명백해 보이는 동아줄을 잡지 않을 위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함정? 함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함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중국을 더 괴롭힐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도리어 간섭한다면, 지금이 아니라 분열하고 나서 다른 군구에 따로 접촉하는 게 더 이로웠다.
‘저 사내는 정말로 핵전쟁을 걱정하고 있다. 아니, 중국에서 꼭 나지 않더라도 군구마다 독립한 군벌이 제삼국에 핵미사일을 판매하면, 그렇군. 이건 확실히 지금 미국의 패권에 큰 균열이 될 거야.’
작금의 평화. 그러니까 미국의 평화는 오로지 미국이 가지고 있는 강대한 힘으로서 이루어진 것만이 아니다. 핵으로 인한 상호확증 파괴에 대한 두려움이 만국과 만인을 협박하여 나름의 합의 끝에 내놓은 차선책이었다.
‘어쨌든 결론은 이번에는 중국이 갑이다.’
그렇게 리커창이 고민하고 있을 무렵, 부시는 그 뒤로 다시 찾아온 침묵을 다르게 해석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중국 분열은 예정 사항 아닙니까?”
부시의 말을 들은 리커창의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 핵전쟁 발언에 이어서 분열까지. 드디어 갈피를 잡은 것이다.
“공식적인 입장에서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은 흔들림이 없습니다……만, 대통령께서 솔직히 툭 터놓고 말씀하셨으니 저도 까놓고 말하겠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열되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 이유는 대통령께서 그 누구보다 더 잘 아실 터이니 말을 줄이겠습니다.”
리커창은 자신이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멈출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제안이 뭡니까?”
‘허, 이거 봐라?’
이쯤 되면 리커창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걸 모르는 놈이 더 바보였다. 그래도 어차피 할 말은 바뀌지 않았다.
“그 내전. 여파를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하고 싶습니다. 피차 줄이고 싶을 거 아닙니까?”
부시가 갑자기 온 번뜩이는 영감에서 세세한 부분을 다듬어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일단 여파를 줄이도록 도와주고, 영향력이 침투할 명분을 획득한 다음에 분열해 있는 틈을 타 구상한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었다.
내전은 미적지근하게. 되도록 오래오래 분열되어 있도록.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선 빚. 그러니까 청나라 채권을 일괄적으로 탕감해 드리겠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인도주의적 차원이 되겠지만. 이건 엄연히 어디까지나 거래입니다.”
핵전쟁 발언에도 별 반응이 없었던 리커창에게 이건 정말로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진심인가? 저 양반 요즘 마약 단속한다더니 그 마약 죄다 압수해서 백악관에서 파티라도 벌였나?’
리커창이 생각하기에도 이건 말도 안 되는 파격적인 조건이자 제시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미국은 갑자기 중국이라는 돈줄이 막히면, 당장이라고 무너질 사상누각 그 자체였다. 물론 전부 받아 갔다면 아래의 모래를 시멘트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겠지만.
여하간 지금 이건 정말로 크게 나왔다는 말이었다. 막말로 전쟁이 벌어졌을 경우 세계가 비난하긴 하겠지만, 채무 관계를 빌미 삼아 미군을 투입해서 중국을 잠시나마 장악할 수도 있었다.
“뭘 원하는 거요?”
“아까부터 말하고 있잖습니까. 내전을 좀 축소했으면 한다고.”
“내전이라! 요컨대 앞으로 일어날 내전에 개입하고 싶다는 겁니까?”
“솔직히 나지 않으면 나지 않는 대로 좋습니다. 어쨌든 빚 탕감 건은 선금인 셈 칩시다.”
실상 서론이 끝났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차피 ‘어떤 식’으로냐였다. 그래, 개입하는 건 좋다. 다 좋은데 어떻게?
“우리가 주도해서 분열시킬 겁니다. 외부로부터의 분열이라면, 당신네가 주도해서 다시 합치기가 더 쉬울 거요. 어차피 국민감정 같은 건 100년 이후에나 바뀔 거 같으니 달라질 것도 없겠지.”
오늘 폭언이 둘 나왔다. 하나는 리커창에게서 나온 폭언이고, 하나는 부시에게서 나온 폭언이었다. 리커창의 폭언이 개인에 한정한다면, 부시의 폭언은 중국 인민 전체에게 보내는 스팸 메시지 같은 폭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알고 있잖습니까. 당신이 여기서 거절해도 우리는 할 겁니다. 단지 그렇게 되면 당신이나 나나 좋을 거 없다는 거. 나는 최선을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리커창 주석.”
서론은 길고 본론은 짧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가 기어코 끝났다. 정확히는 여기서 리커창이 내놓는 대답이 이 이 이야기를 끝마치겠지만.
‘곤란하군. 선택지가 없다.’
정말로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이 선택지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보여서 다른 선택지가 눈에 차지도 않는다는 게 문제라는 거다. 당장 빚부터 탕감하면 운신의 폭이 늘어난다. 저치 말마따나 외부로부터의 분열이라면, 이후에 중국을 통일하기도 쉬워진다. 당연한 이야기다.
어쩌면 분열이 1년은커녕 한 달조차 안 갈 수도 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라고 해 봐야 아마 북경 이외의 군구가 쇠퇴하는 것인데, 그럼 지금 이상으로 권력이 기형적일 정도로 중앙에 집중되는 덕분에 이상적인 정치 체계로 재단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허, 대놓고 함정이라고 하시는군. 이걸 받아들이라는 거요 말라는 거요?”
이렇게 달콤한 이야기가 정말로 달달 하기만 하겠는가? 한낱 초콜릿도 너무 달면 혀가 받아들이지 못해서 쓰고 아픈 법인데, 국제사회에서 오가는 밀약이 달달 할 리가?
이렇게까지 판을 깔아 주기까지 하면 상황을 제어할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는 이게 최선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게 중국 분할 밀약이 탄생했다.
이것을 받아들인 결정적인 이유는 조지 부시라는 인간을 분석한 보고서가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되도록 전쟁에는 미적지근했으며, 의회의 반대까지 무릎 쓰고 평화 타령만 한 덕분에, 과거 중동과 아프리카. 그리고 중국과 북한, 파키스탄 등 온 지구촌을 들쑤시고 다닌 덕분에 ‘수틀리면 전쟁!’이라는 이미지에서, 오늘날에 전쟁에는 한없이 유약한 대통령으로 굳었던 탓이다.
그런 주제에 모든 대통령을 통틀어서 무기는 더럽게 많이 휘둘렀지만, 전쟁은 고작 9.11에 선전포고를 받았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정도인지라,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해라.’의 가장 대표 격인 인물로 소개되고 있었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무슨 이중인격이니 프리메이슨 회원이니 온갖 음모론이 민간에서 그치지 않고 각국 정보부에서 논의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 주류는 이중인격이었다.
물론 리커창이 생각하기에, 이딴 음모론의 가치는 ‘조까라’였다. 리커창은 부시를 ‘평화에 너무 집착하는 인간’이라고 규정짓고 있었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맞았다.
어쨌든 리커창은 이 제안에 부시의 노림수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단지 그가 노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리하여 다시 에어포스 원에 탄 부시가 생각하길.
‘물었구먼.’
실로 월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