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03)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02화(303/377)
< 302편 >
부시는 여느 때처럼 연단에 섰다. 다만 이번에는 뉴올리언스에서 연설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고 아직 여파가 남아 있으며 혼잡하다는 상황을 고려해서 백악관 내부에서 연설이 이뤄졌다.
연단에 선 대통령은 여전히 근육으로 무장하여 거구를 자랑하고 있었고, 경호원과 구분하기 힘든 행색이었다. 취임 초 부드러웠던 인상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그리고 이 거구는 연설에서 청중을 압도하기에 너무나도 유용한 도구였다.
“오늘은 슬픈 날입니다.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난 시위는 인종 평등에 대한 시위도, 사회적 불만에 대한 시위도 아니었습니다.”
첫마디는 심심찮은 위로와 동시에 이 시위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이렇게 말한 순간부터 그린피스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 이들이 벌인 시위는 더는 환경 보호 시위가 아니라, 일개 반정부 시위로 규정되었다.
“그들은 단지 그들만의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서 뉴올리언스의 재건을 방해하고, 중장비를 파괴하여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는 한편, 기업들에 막대한 경제적 손해를 입혔습니다. 이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이를 환경 보호 시위가 아니라 폭동이라고 인식하고 있던 차였다. 부시가 한 일은 사람들의 편견에 말뚝 박기에 지나지 않았다.
“뉴올리언스 재건은 시민들의 염원과 노력. 그리고 간절함이 만들어 낸 성과였습니다. 인부들이 흘린 땀은 단순한 노동이 아닙니다. 시민들의 안락함과 편의를 위해서 희생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잠시 머뭇거렸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연설에서 공적으로 꺼내도 될지 판단이 서질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고민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고작 한 호흡 사이였지만, 결단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위기는 기회다. 지금의 부시를 만들어 낸 격언이었다.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손해만 보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지금껏 부시는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을 발판 삼아 반드시 다른 곳에서라도 이익을 이끌어 왔다. 그것의 반복일 뿐이었다.
“우리는 이번 시위로 하여 자유와 방임의 차이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위에서 사망한 ‘18명’은 희생자입니다. 경찰관과 시위대를 구분하지 않고 전부 희생자입니다. 이를 희생이라고 말한 까닭은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시위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뉴올리언스 시장의 판단과 청장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과잉 진압으로 돌아섰을 것이고.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터입니다.”
그 시장님이 명령하길. 진압을 하필 다리 한가운데서 진행했던 탓에 예상보다 더 많은 부상자가 나오긴 했지만, 연설이란 본디 교묘하게 몇몇 진실을 가리고서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몇몇 명령 덕분에 과잉 진압에서 멀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최루탄과 고무탄을 동반한 과잉 진압은 당장 시위를 해산시킬 수 있을지 모르나, 저토록 고조된 상황에서는 악수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더 폭력적으로 돌아올 것이고, 그때는 더 많은 부상자와 사상자가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사실이었다. 만일 다리 위에서 이러한 진압용 무기를 사용했다면, 지금과는 비교조차 불허하는 인원이 호수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을 터였다. 최루탄을 맞은 사람은 물을 찾기 마련이고, 사방이 물인 환경에서 그곳에 뛰어들지 않을 이유는 더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막을 권한이나 권리가 없습니다. 무릇 시위는 시민의 당연한 권리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시는 연단 양쪽을 두 손으로 틀어잡았다. 그러자 연단에서 와자작거리며 연단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소리가 마이크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다만 기자들은 눈치껏 연단이 박살 났음을 깨달았다. 신문에 끼적일 기삿거리가 하나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 시위가 옳았다는 것 또한 아닙니다! 무려 18명이나 되는 생명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스러졌습니다. 시위대의 논리는 정연하지 못했고, 도시 경찰에게는 충분한 장구류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막을 수 있었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단지 정부는 예방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길었지만, 결국 정부를 위한 변명이었다. 다만 그 변명에서 부시는 쏙 빠져 있었다. 당연히 빠질 수밖에 없었다.
불과 며칠 전에 부시가 태풍이 지나간 빈민가에서 뭐라고 말했던가?
“그러니 이것은 일찍이 제가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저의 책임이라고 공언했던 만큼,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난 시위는 온전히 저의 책임일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통령은 연단에서 몸을 돌렸고, 그것은 연설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그들의 심정은 하나같이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뭔데?’였다. 분명 하나하나가 좋은 문구들임은 틀림없지만, 그게 전부였다. 요컨대 겉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다는 말이었다.
이 장광설에 구태여 의의를 두자면 그린피스의 무분별한 시위를 규탄하고, 이 시위에서 다친 경찰관들에게 심심찮은 위로를 표했다는 거다.
그래서 대통령으로서 대책은? 이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지겠다? 어떻게 책임을 질 건데? 그보다 무슨 ‘책임’ 말인가? 이 사건의 요지는 복잡한 가지를 다 쳐 내고 나면 결국 ‘그린피스가 행진하면서 모조리 때려 부수었다.’ 그게 전부 아닌가?
도대체 이 연설로 하여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기자들은 이 연설에 대해서 어떤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차라리 평소에도 이런 화법을 즐겨 했으면 대충 꾸며 내거나 규탄하고 말지, 그래도 나름 역대 대통령 중에서 지금까지 한 행동을 보아 왔을 때 그럭저럭 현명한 인간이 아니던가?
그동안 금세기 최고 엘리트들이 머리를 굴리면서 짜 놓은 대본을 정면에서 무시하는 즉석연설이 이 대통령의 특기이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동안의 즉석연설은 일단 기본적으로 그 길이가 상당히 짧았다. 그만큼 알기 쉽게 직설적이었단 말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기사를 어떻게 써 내야 할지도 감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결론이 도대체?’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대통령이 생각났다는 듯 ‘아, 그렇지.’라며 다시 연단으로 몸을 돌렸다.
“복구 예정 기간은 그대로일 것이며, 이에 따른 추가 비용은 제 개인 재산에서 기부 형태로 사회 환원될 것입니다.”
***
“대충 수습되었군.”
연설을 듣고 있던 모두가 마지막에 한 말에 집중했지만, 정작 핵심은 ‘자유와 방임’이었다. 이를 실속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기자들이나 이를 듣는 의원들이나 언제나 되풀이되는 상투적인 립 서비스라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게다가 대통령이 책임을 지겠다는 장면이 신문이나 뉴스에 싣기에는 더 드라마틱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국민은, 아니, 뉴스 시청자나 신문 독자들은 복잡한 정치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유명인의 사생활을 더 좋아하는 법이다.
그리고 부시는 그 유명인이라는 조건에 너무나도 적합한 인물이었으며, 동시에 정치인이기까지 했다. 시청자 확보와 신문팔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물이었고, 그에 적합한 행동이었다.
“수습입니까?”
그야 연설문을 휘갈기고 있을 때 같이 옆에서 지켜보던 비서실장이야 뭐가 핵심이고 뭐가 눈가림인지 알고 있었지만,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서실장이 생각하기에 도저히 이건 수습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건 수습이라고 불릴 만한 게 아닙니다.”
도대체 무엇이 수습되었단 말인가? 이건 그저 또 다른 분쟁에 불을 댕긴 것이 아닌가? 당장이야 대통령이 친히 지갑을 열어서 일찍이 자신이 했던 발언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에 집중되겠지만, 머잖아 인류의 문명이 태동한 순간부터 끊임없이 논쟁되어 왔던 자유와 방임이 뜨거운 감자로 올라올 터였다.
그럼 이번에는 그것을 주제로 격렬한 시위가 시작될 터였다. 기껏 시위가 만든 여파를 수습하고 또 다른 시위를 만든다니? 이게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수습이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으로 수습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그놈의 자유와 방임 말입니다. 조금 있으면 국가 안보와 개인의 자유로 번질 겁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건 더는 서민들 시위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 공화당의…….”
“알고 있으니 그만하게. 그리고 이건 시류의 흐름이야. 내가 일찍이 막아 놓았던 둑을 서서히 푸는 것에 불과하다네. 그리고 급진적인 것보다는 한참 더 낫지.”
9.11 테러로 인해서 테러대책법. 그러니까 ‘애국자법’이라는 본디 세상에 나타나야 했을 것이 있었다. 이는 헌법과 인권. 그리고 자유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국민 감시법이다. 부시는 이를 외국인과 영주권자에 한정했지만, 이건 논란을 종결짓는 게 아니라 두고두고 이야깃거리를 쌓는 원인이 되었다.
언론에서는 이 법을 두고 대놓고 2006년의 ‘빅 브라더’라고 이야기하고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1984는 때아닌 인기에 재판되기까지 했다.
의회에서는 이를 두고 아예 감시 범위를 자국민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둥 이야기가 많았다. 이 법의 성과가 크지 않은 이유는 충분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더 많은 데이터. 다시 말해 자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검사할 수 있다면 법은 지금처럼 있으나 마나 한 효력 없는 법률이 아니라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 믿었으며, 이를 두고 어떤 정치인은 ‘숨길 게 없다면,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라고 발언했다.
요컨대 모범 시민이라면, 이 법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한마디가 기억 저편으로 잊힐 법을 기어코 의회에서 나불거리게 했다. 그리고 그 정치인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부통령. 리처드 브루스 체니. 일명 딕 체니였다.
물론 부시는 이 법이 자국민으로 확대되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설령 자국민에서 만족하지 않고 정말로 1984에 나온 것처럼 집이며 방마다 사방으로 CCTV를 깔아 놓더라도 마찬가지다.
결국에 이를 감시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은 두 개고, 의식도 하나다. 정말로 전 국민이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더라도 이런 법으로는 테러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여하간 이 건은 이미 내 손을 한참 벗어난 문제야. 더는 거론하지 말게.”
여하간 비서실장은 이것이 못마땅했다. 그렇지 않아도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법 자체를 가지고 의회에서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영 아니꼬운데, 대통령까지 합세해서 아예 판을 벌여 버리니 답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렇게 나오면, 오로지 묵묵히 보좌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서실장의 입에서 나올 말은 단 하나였다.
“알겠습니다.”
그것이 앤드루 카드가 생각하는 비서실장으로서의 미덕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