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07)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06화(307/377)
< 306편 >
부통령과의 밀담 후 부시는 한 가지 연설을 했다. ‘진정으로 옳은 선택은 국민에 의해서 일어난 선택’이라고 말이다. 어찌 보면 국민에게 책임을 미루는 행위였고 이를 지적하는 이들도 적잖아 나왔으나, 그렇다고 부시를 규탄하거나 욕하는 목소리가 그렇게 크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적법한 절차와 공정한 절차를 통해 국민 투표가 진행되었다.
부정 투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위에서 적절히 감시하고 있으면 제대로 손을 쓰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손을 쓰더라도 아주 일부만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투표율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느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리고 반전은 없었다.
대세는 애국자법 확대 반대였고, 미국은 자유주의 기조를 이 이상 헤치고 싶지 않아 하는 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애당초 부시 행정부는 언론 탄압이라든가, 알게 모르게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든가 하는 방식 덕분에 미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여러 부분에서 자유가 무뎌지고 헤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체감하던 차였다.
그런 와중에 시민 주도의 투표를 통해 이 나라가 다시 한번 자유의 나라임을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공화당을 비롯한 찬성 측은 적잖아 당황했지만, 그보다 더 당황한 건 아프간과 이스라엘이었다. 부통령과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찬성 측으로 대세가 기울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던 이스라엘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아프간에서는 미국에서 나오는 법들을 어느 정도 본받을 생각이었다. 사실 본받는다기보다는 대세에 물 타려는 속셈이었지만, 이것 자체가 아프간 대통령이 오늘내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프간 대통령이자 전직 국왕인 모하마드 자히르 샤는 미국을 끌어들인 장본인임과 동시에 미국을 어떻게든 국가 영향력에서 배척하려는 생각을 지닌 반미 인사였다. 하긴 사실 반미 인사라고 하기 뭣하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미라기보다는 ‘지나친 미국의 개입을 걱정하고 있다.’에 가까웠다. 서이라크 꼴을 보고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었고, 자신이 뽑은 인선이 자신이 물러난 이후에 미국의 푸들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인간은 자고로 더 큰 힘에 이끌리는 법이고, 미국은 아프간의 최대 물주였다. 그게 원조적인 의미로든, 무역적인 의미로든 똑같았다.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민주주의 공화국이 아프간인들의 손으로 만든 나라던가?
미국이 탈레반 정권 무너뜨려서 제 손으로 세우고 모하마드에게 넘겨준 나라지. 물론 세세한 건 모하마드의 손으로 직접 일궈 내었다지만, 그것에 쓰인 도구와 자본은 결국 미국에서 건너온 것들이었다.
석유 시추 및 정제는 물론, 1차부터 3차까지 산업을 위한 초기 자본은 하나도 빠짐없이 미국에서 온 원조에 기대야 했고, 자국의 얼마 되지 않는 젖줄인 중서부 소금 호수에서 나오는 리튬은 모조리 미국의 차지였다. 세계 최대 매장량이라고 불리는 소금 호수에서 나오는 리튬을 제법 헐값에 넘기고 있었단 말이다.
아주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지만, 원조의 대가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나중이면 몰라도 지금 당장은 리튬을 제값에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것보다. 미국에서 들어온 원조가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금액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광장에 설치되어 있는 미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동상을 보고 있노라면, 심장 한구석이 아려왔다. 저 양반 덕택에 여기까지 온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나라를 미국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정도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 생에 미국의 말을 정면에서 거스르는 장면을 보는 건 불가능할 듯하군.’
모하마드가 생각하기에 ‘영토를 팔라.’ 혹은 ‘국민을 내놔라.’ 말도 안 되는 요구 정도까지는 어떻게 무마할 수 있어도 참전 요구나 이런 불공정 무역 같은 요구는 묵묵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사실 참전 요구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썩어도 미국의 우호국이자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에 영향력을 투사할 챔피언으로 기르고 있지 않은가? 특히 군대라고 하면 아프간군은 중동에서는 1, 2위를 다툴 만큼 성장해 있었다.
군대가 생겨난 지 10년조차 되지 않는 국가에서 이게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막대한 원조 덕분이었다. 전차부터 개인화기에 이르기까지 전부 미국에서 면허 생산한 자국산이었다. 그 모두가 최신예인 건 아니었지만, 애당초 원조국에서 쥐여 주는 대로 무장해야 했던 군대가 하나의 무장으로 일원화되었다는 것만으로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였다.
무역에 이르러서는 일방적으로 미국에서 아프간 제품을 사들이고 있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부시 정권이 기존 아프간 정권인 탈레반을 뿌리 뽑아 친미 정권을 수립하고 미국의 영향력 아래 둔 사건을 대대적인 선전한 덕분이었다.
미국에서는 아프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생겼고 갑자기 손님이 생긴 공장에서는 이래저래 물건을 뽑아서 그나마 풀칠이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최소 3년은 이런 양상이 이어지리라.
어쨌든 이것까지는 상관없는데, 국민 층에서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겼다는 게 문제였다. 미국이 아프간을 직접 통치하거나 다른 사람을 내세우지 않고 모하마드를 대리인으로 세웠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긴 했다.
모하마드는 미국을 멀리하고 싶어 하면서 차마 그럴 수 없는 인물이었다. 다른 인물이라면 어떻게든 미국에서 헤어 나오고자 자충수 따위를 두면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늪에서 어떻게든 헤집고 나올지도 모르나, 모하마드는 그럴 수 없단 말이다.
옛 수구파의 수호자이자 전 국왕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달고 있지만, 정작 모하마드 본인은 국민 생활양식이나 국민 기조. 즉, 전통 따위가 바뀌더라도 국가 부흥이 우선이었다. 전통이란 본디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바뀌는 것이 아니던가?
미국산 제품을 쓰고 미국산 소고기를 먹는 거야 예상했지만, 점점 할랄 푸드를 넘어 돼지고기 따위에도 손을 대며 이슬람 영향에서 벗어나 완벽한 세속화를 이루고 있는 자국민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과연 정말로 옳은 일인지 가끔 자문자답하게 했다.
여하간 미국물을 어떻게든 빼려고 해도 뺄 수는 없는 단계이니 어쩔 수 없이 더 받아들여 미국적으로 바뀌는 것도 썩 그렇게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당연히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개방은커녕 정권 유지를 위한 억압과 뒤틀린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탈레반 치세에서 자라온 이들이다.
이러한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반기는 이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서이라크처럼 전토가 다시 잿더미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외세를 밀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류였다. 잿더미에서 태어나는 피닉스처럼 그리하여 미국을 두고 아프간 국민이 말하기를.
“대국은 대국인 이유가 있지.”
라며 떠받들고 있으니 이게 좀 문제이긴 했다. 외세에 기대는 것만큼 머저리 같은 일이 없거늘, 마치 미국을 칭찬하는 게 유행처럼 아프간을 휩쓸고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진심으로 적잖아 당황하고 있었다. 특히 이스라엘 총리가 자신의 거의 도박 수를 던진 만큼 치명타도 크게 들어왔고, 정치 기반 자체가 크게 흔들리면서 아리엘 샤론은 발작을 일으켰다.
비유적인 게 아니라, 2006년 11월 21일 오랜 지병인 고혈압으로 인해 쓰러진 것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쓰러지면서 고혈압으로 인해 허혈성 뇌졸중이 겹치는 바람에 말 그대로 몸져누웠다. 사이즈가 맞는 방탄조끼조차 없을 정도로 비명을 내지르는 신체를 학대하면서까지 각종 고나트륨 고칼로리 식품과 도수 높은 술을 필요 이상으로 과다 섭취한 결과였다.
그 말을 전해 듣고 부시는 ‘역사보다 거의 1년 더 오래갔구먼.’이라며 독백했다. 여하간 쓰러진 아리엘 샤론 대신 에후드 올메르트가 대행으로 집권하게 되었으며, 샤론이 더는 집무 수행이 불가능할 지경임이 밝혀지자 실상 16대 총리로 자리매김했고, 머잖아 대리인 총리직을 그대로 물려받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당연히 대세 아닌 대세를 따라올 줄 알았던 유럽도 상당히 당혹스럽기 그지없어 했다. 애당초 EU의 각국이 제정한 테러대책법은 미국의 애국자법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그 법안들을 크게 확대해서 각국의 실정에 맞게끔 수정한 것들이었다.
그중 가장 당황한 것은 영국이었는데, 아예 토니 블레어가 직접 조지 W. 부시와 대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토니 블레어는 미국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 갈구했다. 그러나 토니 블레어가 부시와의 대화에서 얻을 수 있었던 대답은 오로지 ‘국민이 원하지 않는 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대답뿐이었다.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국민이 매일 1억씩 받는 법안을 원한다고 해서 정부가 덜컥 제정할 수 있는 게 법이던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서 현실의 실정에 맞게끔 조정하는 것이 정부의 일 아니던가?
그 누구보다도 강한 정부를 사랑하던 그 양반이 맞긴 하단 말인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직감적으로 둘 다 이 자리에서 내려온 다음, 직접 폐쇄된 환경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면 이 의문을 푸는 건 평생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깨닫고 국내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에 큰 문제가 있긴 있었다. 어차피 지금 거론되고 있는 감시니 도청이니 하는 것들의 원조는 바로 영국이 아니던가. 첩보의 나라를 떠올리라면 단언컨대 영국이란 말이다.
게다가 거리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수많은 CCTV는 또 어떻고? 괜히 1984의 원산지가 영국이 아니다. 영국은 점진적으로 확실히 조금씩 자유를 거세해 나아가고 있었다.
문제는 이게 북아일랜드에서는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위가 밥 먹듯이 하루에서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벌어지고 있었고 대부분 그들은 아일랜드 민족주의들이었다.
그러니까 요점은 ‘이런 법안이 마음에 안 드니 고쳐 달라!’가 아니라 ‘우리는 이러한 법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독립하겠다!’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영국에서는 이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연합주의자들을 지원해서 시위를 막을 생각을 하지 그걸 왜 들어준단 말인가?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북아일랜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영연방 연합주의자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가 치고받는 소요 사태가 벌어졌다.
그 와중에 EU가 중동에서 큰 타격을 입자 EU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것들을 어떻게든 이끌어 나가야 하는 총리인 토니 블레어는 돌아 버리다 못해 환장할 노릇이었다.
토니 블레어는 언론을 진정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한편으로는 EU에서 어떠한 조치를 해 주길 간절히 바랐지만, EU의 관심은 오로지 중동에 쏠려 있었다.
정확히는 그중에서도 EU가 반드시 독립을 약속했던 쿠르드족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