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15)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14화(315/377)
< 314편 >
“아니, 그보다 내가 그렇게 전쟁을 내지 않겠답시고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건데. 전쟁이 언제 나냐니? 이건 또 무슨 미친 소리인가?”
부시는 솔직히 말해서 꽤 불쾌했다. 누가 뭐 빠지게 일하고 있는 이유가 그 전쟁 막겠다고 일하고 있는 건데, 대놓고 전쟁이 언제 일어나느냐고 누가 물어보면 기분이 좋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지금 상황에서 전쟁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통령님 정도뿐입니다.”
문제는 전쟁이 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인간은 아주 극소수이며, 전쟁이 벌어지리라고 판단한 게 대다수였다는 점이다. 그 증거로 미군의 대만 주둔 발표가 있고 난 뒤, 몇몇 국가에서 범국가적인 사재기에 들어갔다.
“아무렴. 그러시겠지.”
“대통령님, 너무 밀약만 믿고 있는 건 좋지 않은 일입니다.”
“내가 맺은 건 밀약이지만, 그렇게 쉬이 배신할 수 있는 약속은 아니야. 이건 자네가 잘 알고 있을 터인데?”
다름 아니라 걸려 있는 게 청나라 채권부터 시작해서 중국의 안위와 공산당의 존속 여부가 달린 이른바 빅딜(Big Deal)이 아닌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람은 이성적으로 움직이는 생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만약 현 주석인 리커창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이라도 하면 참으로 유감스럽겠습니다. 그 뒤를 따라 주석에 올라갈 인간은 그리 유화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은 아닐 테니까.”
“그럼 그땐 정말로 전쟁인 거지. 뭘 더 바라는 건가. 나는 할 만큼 했다네.”
말 그대로였다. 할 만큼 했다는 건 더도 덜도 말고 정말로 할 만큼 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질 전쟁도 아니고, 막말로 지더라도 그냥 빠지면 그만이지 뭐가 문제인가? 그럼 그때야말로 밀약은 완전히 공중 분해되고 다시 채권 추수를 시작해야겠지. 중국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닐 거야.”
솔직히 완전히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부시와 리커창이 주고받은 대화의 요점은 이거였다. 미국은 최대한 군대를 중국 주변에 혹은 중국 내에 배치하고, 공산당이 몰아내는 시늉을 할 때마다 적당히 합을 맞춰서 미국이 군대를 빼면 그걸로 끝이다. 그게 전부였다.
“지금이야 야전 천막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늦어도 한 1, 2주 안에 대충 기지 구색은 갖출 것 같습니다.”
“필시 모든 걸 갖추기 전에 일이 벌어지겠지.”
“대통령님의 예상이 옳다면, 아마도 그렇겠죠.”
아니나 다를까, 부시가 예상한 분열이 드디어 찾아왔다. 시작은 쓰촨성의 청두시에서 벌어진 시위로부터였다.
청두시에서 대규모로 벌어진 대만 미군 주둔 반대 시위대에 대한 중앙에서 내려온 군경을 동원한 진압 명령을 군구에서 윤리, 양심상의 이유로 거부함으로써 분열이 성립되었다.
사실, 어떻게 생각해도 그들은 반정부 단체가 아니었다. 도리어 어느 정도는 애국 단체라고 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제2의 천안문이었다. 진정한 애국자는 국가를 위해서 몸을 아낌없이 불사른다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런 인간이 도대체 몇이나 되겠는가?
게다가 21세기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극에 달한 21세기 말이다. 그야 중국은 특유의 국가 기조 덕분에 그런 성향이 덜하다지만, 그건 덜하다는 것이지 없다는 건 아니었다. 호시탐탐 자유의 목소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새어 나왔다.
“우리는 제2의 천안문을 만들지 않는다! 1989년 4월 15일을 기억하라! 민주주의의 들불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들불이여, 민초의 피와 땀을 거름 삼아 중국을 집어삼켜라! 중국을 자유로! 자유를 중국으로!”
중국을 자유로, 자유를 중국으로. 이 구호는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여기에 가장 찬동한 것은 다름 아닌 중국의 소수민족이었다. 특히 티베트가 가장 앞장섰다. 지난날 티베트가 힘없이 자주권을 약탈당한 이유는 말 그대로 힘이 없던 탓이었다. 다른 부분도 어느 정도 모자란 부분이 있긴 했지만,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군사력이 없었던 탓이다. 그렇다면 힘을 기르면 그만 아니겠는가? 그래서 기르기로 했다.
비폭력 원칙에 준거하여 분신자살로 항거하기에는 세계는 너무나도 모질고 가혹했다. 티베트는 언제까지 수탈당하고 약탈당해야 하는가?
그러나 지금 와서 군대를 기르기에는 너무 때가 늦어 있었다. 군대를 기르더라도 어떻게 저항을 해 보려고 할 때면, 한참 늦어 있을 터였다. 중앙이 눈을 돌렸다고 지방이 티베트에 눈을 돌릴 리 없지 않은가?
티베트가 항거하는 순간, 다시금 침략당하리라는 사실은 두말할 것 없이 너무나도 명명백백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종교적인 나라는 언제까지고 종교적일 수밖에 없었다. 좋든 나쁘든 종교적일 수밖에 없단 말이다. 군을 만든다고 한들, 비폭력을 기조로 삼고 있는 티베트군이 강군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덜 가혹한 외세에 기대는 것도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리라. 그러나 이미 티베트는 그 외세로부터 배신당한 전적이 있었다. 배신이라기보다 때가 잘 맞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았지만, 어쨌든 영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철저히 외면당하고 마지막으로 중국을 믿었지만, 그만 합병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러한 전적이 있었다고 자리에 주저앉아서 절망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목에서 손이 튀어나올 정도로 뼈 빠지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또 기다려 온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어찌 이를 놓친다는 말인가?
그렇기에 달라이 라마는 분리를 선언하고 군대를 기를 틈을 벌기 위해 미국에 붙기로 했다. 미국에 붙은 주목한 것이다. 이에 미국은 인도에 중재를 걸어 인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이걸 배려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건 미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물론 중국은 대만 때처럼 반발하긴 했지만, 중국 내부가 들끓기 시작한 지금 티베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여하간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중국은 정확히 여섯으로 나뉘었다.
틈을 타서 우후죽순으로 독립한 티베트를 필두로 한 소수민족을 제외하면 말이다. 기준은 군구였으며, 베이징과 선양 군구는 기존 공산당의 세력권이었다. 이들은 정통 정부를 자처하고 있으며, 그 전통성은 미국을 위시한 사실상 전 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다른 군구는 다 고만고만했지만, 그중에서도 란저우 군구는 독립이라기보단 반쯤 아예 붕 뜬 상태였다. 청두 군구를 도와 티베트의 봉기를 진압하려고 했다가 티베트를 영향권에 편입하기 위해서 파견된 인도군과 국경에서 소요 사태를 벌여야만 했고, 가까스로 멈춰야 했다.
특히 이 군구 자체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편성되어 있다 보니까 민심이 아주 흉흉했던 탓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 내륙인 데다가 작물을 기를 수 있는 토지도 그렇게 썩 넓지도 않다 보니까, 만성적인 식량난에 맞닥뜨릴 예정이었다.
어쨌든 이것 말고도 많은 문제 때문에 움직임 자체가 정적이었다.
가장 먼저 독립을 외쳤을 것 같은 홍콩은 도리어 독립하지 못했다. 정세가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군을 움직일 여건이나 명목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건 홍콩이었다.
시민이 아무리 궐기한다고 한들 광저우 군구에서 전차와 장갑차에 그 시민이 쓸려 버리고 나면 남는 것도 없었다. 따라서 지금 가장 현명한 선택은 최대한 순종하면서 지금 이상의 자치권을 얻어 내는 일이었다. 최종적으로는 평화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그 길은 실로 험난할 터였지만, 자치권 자체가 거세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다른 자치구들은 묘하게 조용했다. 특히 내몽골 자치구의 경우에는 공산당에 매우 협조적이었다. 이는 당장 옆에 붙어 있다는 문제도 있지만, 애당초 자치구라는 이름답지 않게 대부분이 한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탓이다.
대신 내몽골 자치구를 자국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던 몽골이 호시탐탐 넘보고 있었다.
난징 군구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강력한 전력을 지니고 있다 보니까, 중국이 미국에 주먹에 맞고 크게 흔들린 이후부터 평시에도 중국에서 떨어질 미래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 결과 난징 군구는 베이징의 공산당을 제외하면, 단독으로는 가장 강력한 군벌로 거듭날 수 있었다.
청두 군구의 경우 란저우 군구에 열렬한 러브콜을 보냈다. 란저우 군구가 인도와 소요 사태를 벌였지만, 소요 사태를 벌인 것은 비단 란저우 군구만이 아니었다.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청두 군구였다.
애당초 티베트가 속해 있는 군구는 다름 아니라 청두 군구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반대 시위의 시작점은 청두 군구라는 이름에서 보이듯 청두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불안정한 군구였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뭘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져 란저우 군구와 돈독한 동맹 관계를 맺거나, 혹은 현 공산당으로부터 반란한 것도 그렇다고 말을 듣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지난 군구의 경우에는 애당초 힘이 약했다. 게다가 가장 강력한 세력 사이에 끼는 경우, 보통이라면 다른 군구에 빌붙는 것이 최선책으로 삼거나, 그것조차 아니면 마지막까지 항전을 벌이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외세를 끌어들이기로 했다. 시민들은 몰라도, 군은 천하를 쥘 순 없어도 반백 년은 족히 독립된 채로 남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란저우 군벌이 말하길, ‘미군에서 주둔해 줬으면 한다.’인가.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 비서실장?”
“이들을 받아 줄 필요가 있습니까?”
“중국 내에서 뭔가 더 독립하면 독립할수록 좋긴 하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아직 부족해. 이건 실질적인 분열이 아니야. 제대로 된 분열을 일으키려면 우리가 저 군구를 가져와야 하겠지.”
“하지만, 대통령님은 필요 이상으로 분열시킬 생각이 없으시지 않았습니까?”
“정확히는 분열시킨 뒤에 다시 조립할 거야. 내 입맛대로 말이지. 그리고 가장 내 입맛에 맞는 건 현 중국 공산당이었을 뿐이야.”
“그 공산당이 이걸 납득할지가 의문입니다만.”
납득하든 납득하지 못하든 결과는 똑같았다. 미국의 행보는 적어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거래 내용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실질적으로 독립한 것은 티베트와 대만 정도인가.”
부시에게 중국은 조각상이었다. 천재 조각가들에겐 돌 안에 잠들어 있는 조각상이 보인다고들 하던가? 이는 부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부시에겐 이 일이 끝나고 난 뒤의 중국이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그중 조각품에 불필요한 구성물인 티베트와 대만을 쳐 냈다. 티베트는 자력으로 스스로 자신을 구했지만, 대만은 그렇지 못했으니 앞으로 100년은 좋든 싫든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으리라.
“이번처럼 군벌의 요청이 있으면 좀 더 많이 침투시키게. 배고픈 공산당을 위해서 외교적 성과를 늘려 줘야지.”
부시는 아직 배가 고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