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18)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17화(318/377)
< 317편 >
인접국들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된 상태였다.
베트남의 경우 국민 여론이 아예 해방전쟁 및 영토 확장 쪽으로 몰리고 있었고, 인도의 경우 아예 중국과 대전쟁을 치르자는 이야기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중 가장 들끓는 여론은 다름 아닌 대만이었다. 대만의 경우 공산당을 제외하면, 가장 합법적인 정부라고 볼 수 있었으며, 청나라의 계승자라고 자칭할 수 있는 근거를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가장 적합한 것은 미국이 이번 일로 탕감해 줄 때까지 청나라 채권을 고스란히 갚아 가고 있던 공산당이었지만, 어쨌든 갑자기 중국이 오체분시 되었으니 딱히 누가 정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대만의 경우 중국 본토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되찾아야 하는 고토였다. 서민부터 정치인까지 매국노 꼬리표 달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가 바라고 있었고 동시에 이 섬에 내쫓기면서 세운 염원의 지상 목표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못하였다. 당장 지금도 대만 땅에서 군세를 불려 나가고 있는 미군은 대만 방위를 명목으로 이젠 미군에겐 구식이 되어 버린 M109A6 팔라딘 자주포를 비롯한 온갖 구식 군사 장비를 대만군에게 공여하면서 그 대가로 미군이 재빠르게 대만에 주둔할 수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하필 그 미군이 ‘평화’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쉽게 말하면 미국 허락 없이 중국 땅에 외세가 개입할 여지를 거세해 버렸다.
그야 대만이 ‘대만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따른다. 따라서 이것은 내전이다.’라고 주장하면 미국도 할 말은 많겠지만, 비켜 줄 가능성이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름 아닌 이 주장은 그 ‘공산당’이 해 왔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대만군이 중국군에게 이길 확률 그 자체가 낮다는 점이었다.
당장 인도-중국 국경분쟁만 봐도 대만의 운명은 너무나도 확실했다. 란저우와 청두는 인도군을 대처하기 위해서 연합을 이루었다. 만약 대만군이 광저우나 난징 군벌이 지배하고 있는 땅에 상륙이라도 하는 날에는, 그 막대한 군사력이 전부 이 비좁은 타이완섬에 쏟아지리라.
이렇게 침략 전쟁이 되었을 경우, 미군이 막아 줄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게 좋았다. 가장 이상적인 그림은 무슨 이유나 빌미로 본토의 군벌들이 미군을 무시하고 대만을 정벌하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미군을 움직일 수 있었고, 중국 전체를 가져올 수는 없더라도 일부를 가져오는 건 가능했다.
반백 년은커녕 백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얻은 영토는 대만의 중국 탈환의 시발점이자 공산당 몰락의 서막이 되리라.
반면 얌전한 나라도 있었다. 예를 들면 라오스, 태국, 미얀마 등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3국이 서로 붙어 있다는 점뿐만이 아니라 중국과 그다지 사이가 썩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조용히 공산당을 지지했고, 그 이외의 발언은 삼가는 편이었으며, 단지 방위를 위해 국경에 군사를 늘린 정도였다. 다만 무역이 실질적으로 단절되는 바람에 각국의 외교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세안에 소속된 나라들을 발에 땀나도록 뛰면서 영업해야 했다.
단지 다른 나라도 각자 사정이 비슷해서 혼란스러웠을 뿐이었다. 그러나 미국과의 무역이 활발한지라, 당장 밥줄이 끊겨서 허덕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부탄의 경우에는 아예 이 분쟁에서 은연중 인도를 도와주고 있었으며, 인도의 요청이 있으면 반드시 군대를 움직일 것이라는 발언을 정치인들이 공공연하게 할 정도였다.
반면 자국의 사정으로 아예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나라도 있었다. 네팔이었다. 네팔은 국왕이 의원을 임명하는 전근대적인 전제군주제를 폐지하고 왕권이 배제된 완전한 의원내각제로 교체 중인 혼란스러운 시대를 겪고 있었다.
게다가 썩 그렇게 중국과 국민감정이 나쁜 편이 아닌지라, 만약 여건이 되었다고 한들 중국에 군사를 보내거나 적대적으로 움직일 이유는 없었다.
몽골의 경우에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갑자기 밥줄이 끊겼다. 수출이나 수입이나 똑같이 중국에 거의 완전할 정도로 의존하고 있던 탓이었다. 러시아에 열렬한 러브콜을 보낸다고 한들, 러시아가 반응할 턱이 없었다.
중국을 침략하여 영토를 점령하고 물자를 징발하고 싶어도 말과 칼로 대화하던 시대면 모를까, 이미 그런 시대는 지났다. 가장 유목 민족다운 나라는 이미 도시와 농사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말 대신 알루미늄과 강철로 만든 차를 타고 다니며, 나무와 천막으로 만들어진 게르 대신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만들어진 소련식 아파트에서 지내는 생활에 순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몽골군 또한 고대의 천하무적 몽골제국군이 아니었다. 현대의 몽골군은 너무나도 약했다. 그야 몽골군도 규모가 있으니 선전하여 잠시간 점유하는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중국이 안정되면 반격이 시작될 터였다.
어쨌든 몽골은 내부를 안정시키고 새로운 돈벌이를 찾아 러시아를 닦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러시아다.
가장 먼저 군대를 보낼 것 같았던 러시아는 의외로 조용했다. 적어도 내전이 일어났으면 군벌 하나를 잡아다가 내정간섭이라도 할 생각이 있거나, 군대라도 보내서 공산당에게 빚이라도 지어 둘 터였을 텐데. 그렇게 하지도 않았고, 국경의 군사들만 전쟁의 불길이 러시아까지 번질 사태에 대비해서 분주했을 뿐이었다.
키르기스스탄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전쟁 여론을 막고 있었다. 여론 자체는 완전히 전쟁을 위한 전쟁이었다. 일차적으로 무역에 상당한 피해를 받고, 이차적으로는 자영업을 위해 남아 있던 중국인 무리가, 중국의 험담을 하던 키르기스스탄 현지인을 무차별 살해하면서 키르기스스탄 국민의 반중 감정이 폭발했던 탓이다.
그렇지 않아도 원래부터 반중 감정이 어느 정도 있었던지라, 이러한 사건만으로도 쉽게 기폭제 역할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정부는 절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싶지 않아 했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전쟁을 걸겠다는 건가.
그야 전 세계가 중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라도 했으면 모를까, 지금 분쟁 중인 인도도 공식적으로는 독립에 평화는 외치면서 자치구에서만 간만 보고 있는 마당에, 키르기스스탄이 전쟁? 내부도 제대로 안정시키지 못하는 마당에 침략 전쟁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타지키스탄은 끊임없이 군비를 증강하고 있었다. 대통령인 에모말리 라흐몬의 결정이었다. 타지키스탄의 국정은 오로지 이 독재자의 의사에 따라서 움직였다. 그리고 그러한 독재가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군비를 증강하는 이유로 국경의 강화와 내부의 안정. 그리고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내전을 꺼내 들었지만, 그걸 믿을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은 미군의 보조를 맞춰 국경을 강화하고 최대한 중국과의 무역을 엷게 한 정부의 선견지명에 대해서 찬미하고 있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 중에서 가장 피해를 보지 않은 나라였다. 그야 개인 사업자 몇 명이 본 피해는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국가적인 수준에서는 피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시가 눈여겨본 카자흐스탄의 경우.
“‘우리는 중국 공산당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나 원 참. 이런 말을 미국 대통령에게 해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우리는 중국보다는 차라리 EU에 관심이 있으니까요.”
경제적으로는 긴밀해서 좀 속이 쓰리긴 했지만, 중국이 개판이 되든 말든 별로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연평균마다 12%를 찍던 경제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EU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유럽은 아시아와는 달리 안정적인 곳이니 말이다.
단지 당장 가입하려고 하면, EU보다는 유라시아 연합. 그러니까 러시아가 만드는 동유럽-중앙아시아판 유럽연합이었다. 이미 테두리는 구성되어 있었으며, 내용물만 채우면 되는 것이었는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러시아는 이미 반쯤 붕괴 상태에 몰려 있었다.
그렇기에 EU였다. 그렇다고 멀고 먼 EU에 가입할 생각은 없었지만, 작금의 상황에서 제대로 된 비즈니스 상대를 찾으라면 EU라는 거다. 카자흐스탄은 가난한 중앙아시아에 구태여 묶일 생각은 없었다.
그것조차 아니라면 카스피해를 이용하여 중동 쪽 무역을 더 강화하면 그만이지만, 보다시피 중동은 개판 그 자체였다. EU가 개입하고 나서 좀 안정화되나 싶었는데, EU는 보다시피 처참히 실패하고 그렇게 실패한 중동은 미국이 받아 갔다.
이걸 받아 갔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국의 관할구역이 된 건 명명백백한 사실이었다. 그런 미국도 차마 이란은 건드릴 수 없었던 모양인지, 아니면 개입할 생각이 없는 건지 이란의 내전이 되어 버린 쿠르드 독립전쟁은 꽤 치열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어쨌든 중동은 21세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도적이 판치는 땅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들이 스스로 도적이라고 자칭하는 일은 없었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보통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아무런 이념이나 선포한 다음에 반군이니 테러 단체니 딱지를 달고 있었다.
그러나 약탈해서 생계를 이어 간다면, 그건 도적이 아니겠는가?
어찌 되었든 무역이라는 것도 결국 상대편까지 멀쩡히 물건이 제때 도착해야 성립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하면 중동은 그다지 좋은 무역 파트너가 아니었다.
아프가니스탄은 반군이나 테러 단체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변했던 탓이다. 게다가 그런 부류는 더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이 아니었다. 그래도 접점을 구태여 따지자면 이전 뿔뿔이 흩어진 탈레반의 잔당이 다시 들어온 것이었다.
그래봤자 그런 잔챙이들은 미군의 장비와 훈련을 받은 아프가니스탄군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보다는 중동의 다른 곳이 수십 배는 더 약탈하기 쉬웠다. 직장이 고단하면 사람은 직장을 바꾸는 법이다.
테러리스트들도 마찬가지였다. 원활한 활동에 필요한 자원 수급을 위해서 지역을 바꾸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굴러온 돌들은 이미 박혀 있는 돌들과 싸우면서 일종의 작은 내전을 치러야만 했다.
비록 붙어 있는 건 아니지만,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나라를 따지자면, 유럽도 여기에선 빠져나갈 수 없었다. 유럽과 중국은 좋든 싫든 대항해시대 이전부터 긴밀한 무역 상대였다. 세계화 시대인 21세기에 이르러서는 둘은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무역국이 되어 있었다.
값싼 공산품이나 기념품 중 Made in China가 붙어 있지 않은 물건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구태여 찾아본다고 한들, 그래 봤자 동남아시아산에 불과했다.
어쨌든 유럽의 경우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중국의 값싼 인력에 홀려 OEM 생산하고 있는 업체가 대다수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유럽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그리하여 그나마 가장 이 전쟁에 타격을 적게 입은 것은 진즉에 다 쫓겨난 미국이었다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그리고 가장 타격을 적게 입은 그 미국은 드디어 중국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이 19세기 열강들의 뜯어먹기의 일환이 될지, 아니면 정말로 평화를 위해 가는지는 미국의 대통령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