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1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18화(319/377)
< 318편 >
우선 군벌들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그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았다.
중국의 정치판과 군을 지탱하는 것이 ??시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인물들이 출신 성분부터 위와는 별로 연관이 없었던 20~30대라는 젊은 나이 탓에 제대로 된 ??시가 없었다.
따라서 현재 갈라진 군벌끼리 제대로 서로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았다. 이는 서로 간의 견해 차이를 가져왔고, 때때로 서로 손을 잡는 것을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지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서 서로 억지로나마 손을 잡은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면 란저우와 청두. 그리고 난징과 광저우였다.
그렇다고 이 두 경우가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었는데, 란저우와 청두는 호시탐탐 자치구의 독립을 도모하는 인도의 존재로 인해 급격하게 긴밀해져 완벽한 운명 공동체 동맹을 형성하였고, 난징과 광저우의 경우에는 사방이 적이니 어떻게든 체급이라도 불려서 먹히지 않게끔 하기 위함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군벌 주도의 독립에 더불어 이후 미제의 꼭두각시 수구 공산당을 몰아내고 중국을 이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후 결전의 날이 오면 진정한 중국의 지배자를 가려내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단지 막상 그때가 되면 전쟁의 위협과 이제 지금과는 달리 잃을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 지도부가 적절히 협상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여하간 누군가에게 부추겨졌든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든 군벌 지도부의 공통점은 이러했다.
“우리는 우리만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이래라저래라 참견 당하고 참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능히 부패한 수구 공산당의 내정 간섭을 물리치고 다시금 중국을 위대하게 만들어야 할 터!”
아니나 다를까 지금 분열한 상황 자체를 공산당 탓으로 돌렸다. 쉽게 말하면, 통치하고 있었던 공산당이 부덕하여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더는 중국 인민의 운명을 그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갑자기 올라온 이들이 제대로 된 인맥. 그러니까 ??시가 있을 턱이 없었고, 닥치는 대로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재산을 몰수했다.
기존 헌법 등 법 중에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상당 부분 폐기했으며, 지배하는 이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했다.
특히 서민에게 불리해 보이는 법을 일방적으로 폐지했으며, 법이며 경제를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개판으로 만들어 갔지만, 정의라는 일종의 프레임이자 탈을 쓰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저 한심한 군사정권으로만 보았던 시민들의 눈도 달라졌다.
실상은 아둔하기 짝이 없는 독재 정권과 그다지 다를 것도 없었으나, 무언가 바뀌는 게 당장 눈에 들어오니 좋든 싫든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시민들은 부자들이 고통 받는 모습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어중간하게 부패한 졸부들을 뜻했다.
이들은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중국을 빠져나가지 못한 이들이었다. 재산을 처분하기에는 때가 늦었고, 해외로 도망치기에는 가진 재산이 중국에 묶여 해외에서 연고도 없는 빈털터리가 될 자들이었다.
물론 이러한 이들 중에서는 해외에서 새롭게 출발하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게 되는 사람들은 원래 어디 가서든 성공할 아주 소수의 인간일 뿐이었고, 대부분은 이미 가진 것을 포기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폐지된 법 중에는 인구 조절 계획의 일환인 계획생육정책도 포함되어 있었고, 신설된 법 중에는 무호적자를 약간의 금액만 지불하면 아무런 조건 없이 대충 아무렇게나 꾸민 호적을 발급해 주는 법도 있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떨어져 가는 군자금을 보충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지만, 무호적자들에게는 드디어 어둠의 자식이 아니라 당당한 중국의 국민으로 그동안 받아 왔던 모든 제한이 사라진 기분이었을 터였다.
이 이야기는 시골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설득력을 받았다. 정확히는 중국에 한정해서 사람 아닌 것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 아닌 것들이란 바로 무호적자이었다. 요컨대 계획생육정책의 피해자들이었다.
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들은 군벌의 열렬한 지지층이 되었다. 사실 그들의 삶에서 뭔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말이다. 그들은 군벌에 자원입대함으로써 그 지지를 말뿐으로 끝내지 아니하고 현실에 표출했다.
군사 정변이 일어났을 경우, 정권의 처우는 보통 둘 중 하나인데, 첫째가 군사정권이 나라를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이고, 둘째는 군림하되 골치 아픈 정치 따위는 적절한 견제 아래에 기존 정부에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은 전자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번에도 역시 같았다. 전자의 공통점은 결코 정상적으로 돌아간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애당초 경제니 세세한 민생이니 하는 것들까지 신경 쓸 수 있다면, 신분 자체가 군인이 아니라 정치가 혹은 철인이라고 불리는 부류였을 터였다.
어쨌든 중국에 한정되었다곤 하나, 군인들의 세상이 열렸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었다. 게다가 자기들 입맛대로 바꾼 헌법에 공정성 따위가 있을 리도 없었다.
문제는 그것이 생각보다 잘 먹혔다.
군벌들이 주장하는 내부의 적이라는 선동은 지난날의 울분과 분노를 양분 삼아 마약처럼 스며들어 갔다.
“지난날 우리 민족은 세계를 호령하여 중화라는 세계를 만들어 내 4,000년 동안 지배했다! 그러나 언제나 위대한 건 아니었다. 오늘날 중국은 침략에 저항하고 항거한 역사의 부산물이자, 결과물이요, 결정체이다! 중국이 위대하지 않게 되는 날은 오로지 중국 땅을 지배하는 수구들이 시대의 흐름에 뒤처져 부패했을 때뿐이니! 중국은 위대했으며, 앞으로도 위대할 것이다! 우리들의 손에 의해서!”
이러한 자극적인 연설은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 귀에 박혀 들어갔고, 점차 기존 공산당 정권에 호의적이었던 이들조차 점점 등을 돌리게 했다. 어찌 되었든 공산당이 연달아 실수를 범한 건 사실이었고, 주석이 여러 번 바뀐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리커창 자체가 전임자들처럼 인민을 강하게 진압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풀어진 탓도 있었다. 지금도 썩 그렇게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정치판에 대한 욕 정도는 대놓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자유 기조가 가장 팽배한 지방은 홍콩이나 마카오 따위를 제외하면, 단언컨대 그건 지난 군벌이 지배하고 있는 산둥이었다. 그중에서도 도시로는 지난과 칭다오가 가장 선두에 서고 있었다.
지난시의 경우에는 군벌의 임시청사 등이 있는 실상 본거지인지라 그러했고, 칭다오시의 경우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칭다오의 시민들은 만약 전쟁이 벌어지거나 탄압이 시작되더라도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인 미군이 지켜 주리라고 판단했다.
직접적인 무력 충돌이 아니더라도 미국에서 지난 군벌에게 경고를 부여하면 알아서 사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탓인데, 실상 그것이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지난 군벌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든지 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단지 칭다오시에서도 미국의 이미지는 최악이었던 덕분에 칭다오에 주둔한 미군을 일종의 정치적 억제력을 발휘하는 무형의 장치로 생각했지, 그다지 호의적이진 않았다. 미묘하게 미군 주둔 반대 시위를 벌이면서도 그 세가 일정하게 많아지지도 낮아지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반대 시위는 실상 지난 군벌의 지도부와 미국의 합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방적으로 시위대를 탄압하면 분명 반란이 벌어질 텐데, 그리되면 반란을 진압해야 할 것이었고, 당연히 명분이 없어진 미군은 머잖아 칭다오에서 나가게 될 터였다.
그리되면 미국은 기껏 주둔까지 해 놓고서 돈만 허공으로 날리게 된 꼬락서니가 될 터였고, 지난 군벌은 그렇지 않아도 아군이랄 것도 없는 마당에 유일한 아군이자 강력한 외세인 미국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까닭에 보여 주기식 미군 주둔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럼 이중 가장 천하에 가까운 공산당의 경우 어떠했는가?
“생각하곤 다르게 흘러가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으로는 한 3, 4개월 현상 유지를 하고 다시 당의 품으로 돌아오리라고 예상했습니다만.”
공산당이나 리커창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부시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누구도 상정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야 군벌에서 우두머리가 한둘 정도는 바뀌겠다 싶었는데, 아예 전부 바뀌지 않았던가?
이건 확실히 이상 현상이었다. 이것이 부시가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고 싶어 했던 CIA를 적극적으로 움직인 이유였고, 공산당이 가짜 전쟁이나 하려고 했다가 이제 진짜로 전쟁을 치르게 생긴 이유였다.
본디 공산당이 치러야 할 전쟁은 전쟁하는 시늉만 내는 전쟁이었다. 한둘 정도는 진심으로 덤벼 오겠지 싶었기에 열심히 전력을 끌어모으긴 했지만, 이젠 진짜로 공산당이 지배하는 권역 이외에서 사람이 죽고 죽는 대전쟁을 하게 생겼다.
이건 미국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다고 한들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부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야 지난은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이미 먹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나머지는 진짜로 피를 흘리고 국토를 황폐화해야 하지 않은가?
다만 란저우의 경우 인도와 공산당 사이에 끼인 형국이 된 데다가 식량난까지 겹쳐서 공산당에 가장 협조적이고 호의적인 군벌이었다. 열악한 사정 아래에 위협까지 다가오니 점차 이대로는 군벌 독립은커녕 제대로 된 군대조차 유지하지 못하리라는 현실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그렇기에 리커창은 남부에 몰려 있는 청두와 광저우. 그리고 난징 군벌들을 말 그대로 쓸어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정면에서 싸우면 승산이 비등비등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서로 이 전쟁을 대하고 있는 태도도 문제였다.
공산당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중국 땅에 있는 공장이나 인구를 온전하게 보전해서 내전을 끝내는 것이 목적이고, 군벌의 경우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남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군벌은 기반이 사라지는 순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당장 역사적으로 동서고금 할 것 없이 반란죄가 어떻게 다스려지는지만 생각해 봐도 간단했다. 잘하면 총살일 것이고, 신비전에 영원히 중국을 분열하려 했던 천인공노할 반란군의 모습으로 전시될지도 몰랐다. 밀랍 인형 대신 박제품으로써!
정말이지 이보다 끔찍할 수 있겠는가? 어찌 되었든 군벌이 일이 수틀리면 공멸할 전략까지 짜고 있는 반면, 공산당은 군대를 이제는 국경이 되어 버린 군구의 경계에 전진 배치하여 압박하는 한편, 유화책의 일종으로 외교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문제는 하나같이 살려 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공산당이 그들의 적에게 어떻게 대처해 오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던 탓에, 물러나면 박제행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간의 인식이 다르니, 공산당은 외교적 성과는 없이 겉돌고 겉돌았다. 그리고 인도가 란저우와 청두 군구를 완전히 몰아내고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신성한 독립을 선언한 날, 드디어 공산당과 군벌들의 냉전 아닌 냉전이 끝나고, 제대로 된 전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