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2)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1화(32/377)
< 31편 >
해안가 파도처럼 일렁이는 촛불을 배경으로 백포도주를 따른 와인잔이 살포시 부딪치며 소리로 축하를 표현했다. 온 가족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영락없는 정다운 가정의 모습이었다.
‘아, 시발.’
그 자리에서 반쯤 환장할 것 같은 조지 부시만 빼면 말이다. 조지 부시. 아니, 노가다 김 씨는 이런 일 자체에 면역이 없었다. 아니, 면역이고 나발이고 군대 전역하고 나서 가족하고는 절연한 지 좀 되었고 여자는 만나본 게 대학 시절이 전부인데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여보. 고마워.”
“단순히 약속을 지켰을 뿐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난 또 일 때문에 당신이 완전히 잊은 줄 알았지 뭐야?”
“하하하! 국가만큼 중요한 게 가족 아니겠어?”
“맞는 말이야 아빠.”
그래 ‘가족’이 있었다. ‘가족’이.
단순히 조지 부시와 로라 부시만 있는 자리가 아니라 자녀인 제나 부시나 바바라 부시도 있었다. 잽 부시 같은 형제자매는 이 자리에 없는 게 다행이었다. 그들마저 있었으면 조지 부시는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어느 시점에서 무너져내렸을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아들아.”
‘그런데 당신은 왜 계십니까.’
조지 하버트 워커 부시. 원조 부시! 일명 아버지 부시! 내정은 제대로 못 다뤘을지언정 외교만큼은 그 누구보다 우수한 혜안과 통찰력으로 가지고 놀았던 대통령이었다. 심지어 그는 뛰어난 선구안의 소유자인지라 이라크전이 발발하면 어떻게 끝날지 완벽하게 예측했던 인물이었다. 그것도 10년 전에 말이다!
“그런데 성격이 많이 옛날로 돌아간 것 같더구나.”
그래, 이거 하나는 다행이었다. 나이 좀 먹고 철이 들어서 그렇지 조지 부시는 원래부터 점잖기보다는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장난기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인식 자체는 ‘개버릇 남 못 준다더니, 부인이랑 떨어지니까 옛날 성격 나왔네.’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 장난기가 이제 개인의 영역에서 그치지 않고 ‘월드 클래스’로 돌아간다는 거지.
‘대통령이 생각보다 몸이 잘 맞았던 모양이지.’
아버지 부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일단은 아들 부시에게 무어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들 부시는 엄연히 자유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기까지 한 사내였다. 초기에는 좀 불안정했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9.11 사태 이후 미쳐 날뛰는 두 마리 말의 고삐를 완벽하게 움켜쥐는 데 성공했다.
한 마리는 외교였고, 한 마리는 내정이었다. 다만 외교에 한에서는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자기가 짠 판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후자는 아니길 빌었다. 국가의 수장으로서 자국을 우선시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도가 너무 심하면 외교를 말아먹는 법이다. 외교란 적절히 고삐를 풀어주는 것이 관건이었다. 너무 조여들면 주인을 내팽개치고 도망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요컨대 초강대국 하나가 너무 강권만 휘두르면 자연스레 초강대국을 밀어내고자 하는 반 연합이 생긴다는 이야기였다. ‘미국은 세계와 혼자서 싸울 수 있다!’라고 항상 큰 소리 떵떵 치기야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면 세계가 아니라 인류가 멸망 수순을 밟는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활용하는 이들만이 외교에서 승자가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동을 몰아넣으면 단기적으로는 이득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았다. 당장 오늘만 해도 유가가 전날보다 점점 올라가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러시아는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러시아가 천연자원을 팔고 있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지. 이대로 유가가 점점 오르면 그땐 이미 늦었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전역에 강력한 세력권을 구축하고 소비에트 연합 시절의 회귀를 부르짖을지도 몰랐다. 막말로 러시아가 ‘밸브 잠가!’라면서 송유관과 가스 밸브를 잠가버리면 그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국가가 유라시아 대륙에는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아버지 부시는 입이 근질거렸다. 아버지와 아들보다는 남자 대 남자로서. 둘 다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었던 몸으로서 묻고 싶은 대화가 너무나도 많았다. ‘이건 어떻게 할 건데? 오호! 그렇다면 이건!?’ 마치 체스처럼 서로 가지고 있는 패와 수를 나누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도 간절했다.
아들의 성장을 확인하고 싶은 아버지 앞에서는 그 체스판이 세계 최강국인 미합중국이라는 사실은 아주 사소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까지도 보좌관이나 여론에 끌려다니리라 생각할 정도로 우유부단했던 아들이 드디어 홀로서기 시작했다. 거기에 초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런 질문은 아들이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았다.
“아, 그게. 생각보다 이 일이 제 몸에 잘 맞았다고 해야 하나.”
“뭐, 그래. 마음대로 해 보거라.”
‘허, 몸에 잘 맞는다.’인가. 그래도 아들이다. 아비가 믿어주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믿어준다는 말인가? 아버지 부시는 일단은 아들을 믿기로 하고 당장 눈앞에 놓인 두툼한 스테이크를 써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여보?”
그래, ‘아버지 부시’는 말이지.
“응?”
로라 부시가 갑자기 다가오더니, 갑자기 몸을 밀착해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 이따 밤에….”
부시는 차마 거부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거절하면 모두가 이상한 눈으로 볼 것이 틀림없었다. 더 나아가면 외도나 정이 떨어졌다고 생각하거나 심하게는 성 정체성까지 의심할지도 몰랐다. 실로 진퇴양난이로다.
‘어허!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부시가 어쩔 줄 몰라서 버벅거리고 있는 차에 시기적절하게도 전화벨이 울려줬다. 로라에게 있어서는 가정의 화목을 방해하는 성가신 전화벨이었겠지만, 부시에게 있어서는 구원의 뿔피리였다.
“받고 와.”
“고마워.”
「대통령님. 오붓한 가족 식사 도중에 정말로 죄송합니다만, 대통령님께서 결정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바로 연락하라고 하셨기에….」
“말해보게.”
차마 입에서 ‘아니야! 잘했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부시의 심정 자체는 저것이었다. 눈앞에 산해진미가 있으면 뭐하나, 그게 코에 들어가는지 입에 들어가는지 구분이 되질 않는데. 당장이라도 이 장소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로라의 눈길은 부담스러웠고 아버지 부시의 왠지 모르게 반짝이는 듯한 눈길은 더더욱 그러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두 김 씨가 이 몸으로 들어온 탓이라 생각하니 반쯤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를 마주 보고자 한다면 좀 더 기나긴 시간과 여유가 필요했다.
다만, 언제까지고 이대로 피할 수만은 없었다. 그럴 생각도 없었고 말이다. 노가다 판에서 일하던 인간이 갑자기 미국의 대통령이자, 석유 부자이자, 백만장자가 되었는데. 고작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이 크나큰 행운을 놓아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부시는 감내하기로 했다. 아니면 익숙해지던가.
「일본과 한국. 전부 일정이 잡혔습니다. 대통령님의 말씀대로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말입니다. 일본이 내일이고 각국에서 이틀간의 여정을….」
“한국.”
「예?」
“한국! 무조건 한국부터 간다!”
‘내 아무리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희박해졌다지만, 적어도 일본에 좋은 일을 해줄 수는 없지. 무조건! 무조건으로 한국이다! 다 집어치우고 한국부터 간다!’
왜 사람들이 보통 외국에 나가면 없는 애국심도 절로 생겨난다고 하지 않던가? 뭐 사실 그것보다는 스포츠에 종종 있는 ‘일본만 이기면 돼!’ 사상의 연장 선상이라 생각해도 좋았다.
한국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특혜를 몰아준다는 건 한국의 입지나 의회의 반발을 생각해보았을 때도 논외였지만, 이런 사소한 외교적 권한은 전부 대통령에게 있었던 탓에 부시는 충분히 한국행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뭐, 그렇다고 일본은 배척하겠다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외교적으로 봤을 땐 한국의 우선순위가 좀 올라갔을 뿐이었다.
「대통령님. 일본이 좀 더 외교 전략적으로-.」
“한국!”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이번에는 F-18을 타고 갈 거라네.”
「예? F-18이요?」
F-18은 함재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항모에서 타고 날아가겠다는 소리인가? 즉, 그 말은 항모 전단을 움직이겠다는 말인가? 아니지, 아니야. F-18의 페리 항속거리는 충분했다. 본토에서도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잠깐만, 항모가 안 따라가도 문제 아닌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진짜로 무슨 일이 생기면 누가 책임질 수 있는데?
「설마 항모 전단을 움직이시겠다는 소리는….」
“그럼 나 혼자 가겠나?”
그러니까 이 양반이 또! 또 기어코 전투기를 타야 성이 풀이겠다 그 말인가? 비서실장은 절로 입에서 나오는 ‘뭐? 이 미친놈아?’라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반문을 목구녕 속으로 꾸역꾸역 집어삼키곤 이 망나니 같은 대통령 각하를 최대한 설득해보기로 했다.
「영부인께서 아시면 성치 못하실 겁니다.」
‘크, 크흡!’
비서실장이라는 놈이 이렇게 아픈 곳만 찔러도 되는 건가? 대체 이 자식은 누구 편이란 말인가? 부시는 잠시 힐끗 창문 너머로 가족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녀도 다 이해해 줄 것이라 믿네.”
정말이었다. 그녀는 일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그러니까 1달 정도 집에 안 들어가도 다 이해해줄 수 있었지. 참으로 좋은 배필이었다. 정작 그 남편 되시는 조지 부시는 몹시 부담스러워 했지만.
뭐, 사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보에 가깝기는 했다.
「격추라도 되는 날에는 세계 대전입니다.」
“아무리 막 나가는 국가라도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싶은….”
‘있네, 미국.’
정확히는 대통령을 잃고 슬픔에 미쳐 날뛰는 미국을 조종하는 딕 체니 정부다. 부시가 죽으면 부통령인 딕 체니가 그대로 대통령으로 올라가니까 말이다. 딕 체니는 그 누구보다 전쟁을 좋아했다. 바로 붉은 핵미사일 버튼에 대고 손가락으로 탭댄스를 춰도 이상하지 않을 놈이란 말이다.
“…나라는 없을 걸세.”
뭐, 아무리 그래도 설마 중동도 아니고 동아시아에서. 그것도 항모 전단이 있는 곳에서 격추당하지는 않겠지. 격추하고 싶은 정부도 없고. 만약 격추당하더라도 어떤 나라가 격추했을진 당장은 알 수 없으나 격추한 나라는 정말로 석기시대로 돌아가리라.
‘아, 진짜 좀!’
“무엇이지? 무슨 불만이라도 있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카드 비서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자기만 바빠질 게 아니라 모두가 바빠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살다, 살다 별의 별꼴 다 보겠다. 남의 나라를 가는데 전투기를 타고 싶다고 항모 전단을 끌고 가려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아, 젠장 여기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