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21)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20화(321/377)
< 320편 >
“지금 군벌을 정리하기는커녕 미국과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저 미치광이들은?”
그것조차 아니면 그저 광저우의 반군을 처단하기 위해서 지나가는 길이란 말인가? 그럴 리 없었다. 만약 지나가는 길이였다면, 국경 코앞에서 발견될 때까지 아무런 협상이나 요구가 없을 리가 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언질은 해 줬어야 정상이었다. 이건 명명백백한 기습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공산당의 자주포와 로켓이 불을 뿜었으며, 활주로에 주차되어 있던 전투기와 폭격기는 폭발음과 함께 불타올랐다.
그야 이래저래 침략을 대비해서 그나마 만들 수 있는 방어 시설인 벙커니 참호니 만들어 놓긴 했다만, 가진 거라곤 돌격 소총에 민간 트럭 개조한 것이 전부인 아프리카 같은 전장이라면 모를까, 현대 총력전에서 이러한 방어 시설이 적이 진군을 저지해 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도리어 공산군의 진격을 지연되게 만드는 원인은 반군이 열심히 판 벙커나 참호가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 낸 지형지물 그 자체였다.
주둔하고 있던 미군이 공산군을 몰아내거나 혹은 억제력이 되어 주길 기대했지만, 미군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칭다오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미군이 공격받았을 경우’에 참전하겠다고 공언해 버렸다.
그렇기에 미군은 선언했던 그대로 얌전히 칭다오만을 지켰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공산당의 병력과 미군은 서로를 애써 모른 척했다. 칭다오 외곽에서 소요 사태는 존재했으나, 단지 서로 약간의 탐색전만을 펼치고 총알 한 발 날리지 않고 끝이 났다.
파견된 미군도 미군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다. 분명 사전에 충분한 합의를 보고 움직이기로 되어 있었거늘, 이런 식으로 기습 통보 후에 움직이다니!
그야 신속하고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인정하는 바였지만, 적어도 합을 맞추기로 했으면 최소한의 합은 맞춰야 할 것 아닌가? 일방적으로 합을 맞추라고 요구하다니?
이에 대해서 부시가 리커창에게 전달하길.
-너무 급진적이었습니다.
“급한 일이었습니다. 공산당이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대업을 그르치고 싶어서 그런 겁니까? 어차피 우리가 가진 전제 조건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당신의 계획대로 굴러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야말로 뒤틀린 합 그 자체였다. 대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서로 합을 맞추는 것인데, 그 합이 맞질 않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리커창이 말하는 전제 조건이란 싸구려 협박 같은 게 아니었다. 물론 그러한 요소가 정말로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제법 합리적인 말이었다.
그 조건이라고 함은 첫째가 리커창의 공산당일 것이고, 둘째가 어느 시점까지 서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치명타를 날리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이것은 부시와 리커창 사이에서만 오간 밀약이었다. 그야 알고 있는 사람이 이 둘뿐만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밀약은 밀약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 리커창이 물러난다면, 다음 정권을 틀어잡은 인간이 부시의 의지에 발맞출 턱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리커창이 내려와야 하는 일이 있거든, 다음에 당을 휘어잡을 이는 반대파일 것이고 급진적인 인물일 터였고, 어찌 되었든 중국인이니 미국에 영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그것이 그냥 미국도 아니고 중국을 개판으로 만든 조지 W. 부시의 미국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되면 공산당이나 미국이나 똑같이 허탕이었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막연한 신뢰가 아니라 조건과 협정 그리고 이익으로 얽힌 절대적인 믿음 말이다. 공산당은 다시 중국을 지배하길 원했고, 미국은 핵이 유출되거나 발사되질 않길 원했다.
솔직히 사실 두 번째 조건은 반쯤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당장 미국만 해도 서로 믿지 못하고 내부에 잠입한 CIA를 통해서 일부 핵을 매입하는 계획을 짜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 모르긴 모르되 중국은 엄연히 공산당 소굴인 만큼 더 하면 더 했지 미국보다 꾸미는 것이 적지는 않을 터였다.
언제든 뒤에 야구방망이를 숨겨 들고 서로 머리를 두들겨 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신뢰는 얼어 죽을 말이었다. 그렇기에 신뢰가 아닌 믿음이다. 상호 간의 이익이 있으면 적어도 배신은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불리한 것은 공산당이었고, 공산당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최대한 미국에 엿을 먹이면서 일을 진행하는 일뿐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미국도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진상 짓거리 다 어울려 주면서 억지로라도 합을 맞춰 주는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어쨌든 세계의 무관심 속에서 지난 군벌은 널리고 널린 역사의 기록 속으로 사라졌다. 그 실체 또한 별로 다를 게 없었으니, 딱히 왜곡된 기록도 아니리라.
그리고 타이완 해협에서 일전이 끝난 것도 딱 그때쯤이었다.
“공군이 순수 공군력만으로 해군을 이기다니…….”
패전의 원인은 하필 난징 앞마당에서 싸운 것이었다. 활주로에 착륙만 할 수 있으면 거의 무제한으로 보급할 수 있는 공군과는 달리, 해군은 항구에 정박하지 않으면 보급이 불가능했다. 함대는 개전 수 시간 만에 투사할 수 있는 화력이 사라졌고, 탄이 없는 군함은 그저 민간함이나 다를 바 없었다.
공군은 그렇게 무방비해진 함대를 호시탐탐 노렸으나, 이들을 침몰시킨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물론 정말로 순수한 항공 전력과 해상 전력의 싸움이라면 말 그대로 하나의 함선도 빠짐없이 바다에 가라앉았겠지만,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공산당이 아니었다. 군벌의 공군은 베이징에서 날아온 비행 편대와 해안으로부터 날아온 대함미사일을 상대로 필사적으로 전투를 벌여야만 했다.
때아닌 대규모 공중전에 가장 당혹스러워했던 것은 난징 군벌이었다. 난징은 다름 아니라 광저우와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할 경우 적에 대해서 자동적으로 선전포고하게끔 되어 있었다.
문제는 정작 공격을 시작한 게 난징이 아니라 광저우였다는 것이다. 난징과 광저우는 서로 간의 동맹 강화를 위해서 합동 작전이나 합동 훈련 등 짧은 시간임에도 상당히 효율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애당초 아예 다른 국가도 아니었고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같은 나라의 같은 군대였으니,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어쨌든 이번 대치 상태도 합동의 일환이었다. 광저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난징은 솔직히 말하면 공산당과 별로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었다. 어차피 군구 자체가 알음알음 자치권이 보장되는 무언가가 아니던가? 그 시절에서 약간만 더 나아가려고 했을 뿐이었다. 중국에서 반쯤 독립한 홍콩 같은 일국양제의 느낌으로 말이다.
어찌 되었든 전쟁은 시작되었고 난징이 꿈꾸던 독립에 가까운 높은 자치권을 얻어 내기 위해서는 이젠 공산당과 군벌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그게 자신만 아니면 되는 일 아니던가?
그리하여 난징은 전쟁 발발 즉시 지난 쪽으로 육군을 파병했다. 그래서 공산당은 그 난징의 군세를 수월하게 막아 내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절대로 이렇게 죽지 않는다!”
그래도 나름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던 중국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군벌이었지만, 이제는 일개 반군으로 영락한 지난 군벌이 중점으로 뒀던 정책은 어떻게든 중국이라는 정체성에서 멀어지는 것이었다.
다른 군벌이 가깝게는 독립. 멀게는 천하를 꿈꾸고 있을 때, 지난은 중국에서 떨어져 나가 완벽한 독립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 일환이 뒤통수를 친 미군이었지만, 어쨌든 안일했던 국가 안보와는 달리 내부에서는 꽤 많은 것을 실행했다.
예를 들면 가장 쉽고 효과도 빠른 선동이었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평소에 절대로 반동주의자를 살려 두지 않는 공산당의 정책을 이용한 것이었는데, 공산당이 지난을 점령하면 반동을 색출하기 위해서 대학살을 벌일 것이라는 소문을 냈다.
그리고 이것은 반쯤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도 그럴 게 그동안 공산당이 보여 준 행보가 딱 그 꼴이었기 때문이었다. 공산당을 비난하거나 반대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인간은 중국에서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오늘 인민해방군이다! 절대로 방언을 쓰지 마라!”
그리고 영락한 지난 군벌은 그렇게 만들기로 했다.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썰물처럼 밀려들어 온 대병력에 군구의 절반이 하루 만에 점령당했지만, 급하게 점령당한 만큼 병력이 온존해 있었다.
그리고 그 병력은 소문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서 시민을 학살했다. 여기에는 많은 동조도 필요 없었다. 양심을 판 일개 중대면 충분했다. 분대로 나눠진 이들은 민간인들을 무차별로 학살했고, 이들을 또 다른 지난 군벌이 진압 시늉을 하는 것으로 소문의 진위성과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 결과물이었다.
“싸우고 싸우다 죽을지언정 절대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죽지는 않겠다!”
인민해방군은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 적절한 합의 끝에 물러나기로 했던 미군 또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본디 공산당과의 합의 끝에 한두 달 정도 버티다가 나갈 생각이었던 탓이었는데, 저 민간인들이 미국을 몰아내자며 미 해군이 기항하고 있는 항구로 몰려왔다.
그리고 이 꼬락서니를 보고 있던 란저우와 청두는 극히 당황했다. 언젠가는 병력이 움직일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동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란저우와 청두로 하여 초강수를 두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당장 인도를 이길 수도 없고, 이대로 미쳐 날뛰는 자치구를 그냥 가지고 있으니, 그들의 관리 아래에 독립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란저우-청두 동맹은 인도와의 협상에서 각 자치구를, 전시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여 시간과 순차를 두고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대신 인도와의 평화를 약속받고 독립의 대가로써 각 자치구의 인력을 일종의 용병 형태로서 끌어올 수 있게 되었고, 이 용병은 공산당과의 전쟁에 투입되기 위해서 훈련받기 시작했다.
티베트와 위구르 정부는 란저우-청두 동맹. 그리고 인도와 우방 관계를 수립하고 나름 평화적으로 독립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단지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떼어 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격렬한 논쟁이 있었는데, 이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 협상을 보기로 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란저우-청두 동맹과 티베트, 위구르가 비슷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티베트와 위구르는 란저우-청두 동맹이 큰 피해를 보고 나면 협상할 의지가 많이 꺾여 있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반대로 란저우-청두 동맹은 일단 전시가 끝나고 뭔가 좀 수습되어야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던 탓이었다.
중국의 내전은 지금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