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25)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24화(325/377)
< 324편 >
2006년의 중동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개판 그 자체였다.
가장 우선 중동의 새로운 불길, 쿠르드족의 독립전쟁은 이란에서 더는 확대되지 않고 있었다. 이는 무엇보다 중동 전체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던 탓이 컸다. 문제는 그 중동이 이란에 몰린 쿠르드 반군을 더는 신경 쓸 겨를이 없게 되었다는 점 정도였다.
부시가 일찍이 두려워하며 예언했듯이 쿠르드족이 재무장을 통해 독립전쟁을 시작하자, 억압에서 벗어나 종교의 자유와 민족성을 되찾고자 하는 이들이 중동 각지에서 속출했다.
레바논에서는 서이라크 꼴을 본 정부에서 정계로 나오려는 헤즈볼라를 조직의 강령인 테러리즘을 문제시 삼으며 정계 진출을 거부하자, 헤즈볼라는 울분을 식히는 대신 터뜨리기로 했다. 그리하여 레바논에서 내전이 벌어졌다.
한편 시리아에서는 오랜 폐단이 쌓아 올린 업보가 터질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가 마찬가지로 지금이야말로 해외 영향력이 최소화되는 시점이라고 판단하고 반군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구성은 현 정부에 불만을 가진 자들로 따로 하나의 이념으로 결속되지는 아니하였으나 현 정부를 무너뜨리겠다는 일관된 목표는 존재했다.
이집트에서는 이라크가 분단되어 서이라크가 수립된 이후부터 산발적으로 민주화 운동이 잇달아 이어지고 있었다. 단지 서이라크가 붕괴한 이후로 그것이 뜸해지다가, 이 이상은 유지할 수 없을 것을 깨달은 시위대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서 카이로에 집결했었는데. 이것을 보고 지레 겁을 먹은 이라크 대통령 무라바크가 장갑차와 전차를 비롯한 군경을 동원해 진압 명령을 내리면서 시들해졌던 민주화 국민 감정이 대폭발했다.
문제는 이것을 병사들도 제법 통감하고 있는지라, 상관 살해는 기본이고 아예 대세가 무라바크를 떠나갔음을 직감한 고위 장성들이 대놓고 이라크 정부를 이탈하여 시위대에 합류하는 경우까지 벌어졌다. 시위대는 반군이 되었고, 내전의 서막이 되었다.
중동의 스위스라고 칭송받으며 영구히 평화로울 것만 같았던 오만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비록 타국처럼 직접적인 전쟁은 아니었지만, 명백히 오만이 해결할 수 있는 범주를 뛰어넘은 난민을 받게 되었다. 무질서하게 불법 입국한 난민들은 온갖 사회문제를 야기했으며, 술탄이자 총리인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는 깊은 고뇌에 빠져들었다.
아랍에미리트는 미국-러시아-사우디의 석유 전쟁에서 경제적 타격을 심하게 받은 나라 중 하나였다. 국가 수출 구조의 약 50%가 석유 산업에 의존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나머지 50%는 석유와는 관련 없는 다른 산업이라는 소리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국가 수출 사업 절반이 휴지 조각이 된 상태에서 멀쩡할 수는 없었다.
그 휘청거리는 상태에서 마지막 여력을 쥐어 짜내어 각종 산업을 부흥시키고 석유에만 의존하던 수출 구조를 개편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하필 당시 찾아낸 주요 수입처가 중국이었다.
그리고 중국은 분열했고 더는 값싼 중국산 자제를 들여올 수 없게 되자,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사업 확장을 거듭하던 기업들의 공업 능력이 반쯤 증발했다. 그야 군벌의 전신이 군구인 만큼 그들의 허락만 받으면 그만이었지만, 실로 불행스럽게도 군벌은 아랍에미리트와 순순히 협상할 생각이 없었다.
군벌도 머리가 있다면 급한 쪽이 어느 쪽인지 알고 있었고, 아랍에미리트가 주제를 깨닫고 협상 테이블에 앉길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아랍에미리트는 그들 군벌이 제시하는 무거운 과세를 받으면서까지 수출할 이유가 없었다.
그 결과 아랍에미리트는 범죄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점점 아랍에미리트에 소속된 국가와 도시들이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잃어 가자 국가 예산의 한 축을 담당하던 관광 수입마저 줄어들었다.
따라서 국민은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에 가는 길에 만나는 건 자동소총을 든 무장 강도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현관이 박살 나 있는 게 예삿일이었으니 전쟁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아예 석유 사업이 수출 구조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던 쿠웨이트도 비슷한 길을 걸어야만 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아랍에미리트는 손발이라도 써 보고 버둥거리다가 침몰 중이었지, 그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경제가 침몰하고 있었다.
미국-러시아와 직접 전쟁을 치른 사우디아라비아도 비슷한 실정이었다. 단지 그 덩치와 벌어 놓은 돈 덕분에 행정력이 마비되고 군대에 월급을 지급할 수 없으며 거리에 범죄가 만연할 정도로 영락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다시 아랍에미리트로 돌아와서, 정부로서는 천만다행으로 정부에 불만을 품은 국민이 반란을 일으키진 않았다. 정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지금 지구촌이 돌아가는 상황 그 자체가 엿 같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정부 또한 이것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바레인과 카타르 정도가 이 혼란에서 피해 갈 수 있었다. 워낙 개방적이고 평화로운 데다 작은 국가인 것도 있지만, 바레인의 경우 아예 미군의 비호를 받고 있었고 카타르의 경우 중동에 배치된 세 개 항모전단 중 하나가 카타르에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었다.
단지 카타르의 경우는 경제 자체가 완전히 외국인에게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 외국인들이 중동의 혼란을 핑계로 물처럼 빠져나가 버리자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대신 그 자리를 난민들이 차지했지만, 난민들이 제대로 된 일을 할 턱이 없었다.
바레인도 사정은 비슷했지만, 단지 경제가 망하고 있는 이유가 좀 달랐다. 사우디가 개판이 되면서 덩달아 경제가 박살 나고 있었다.
중동에서 가장 혼란스럽기로 으뜸인 국가는 단언컨대 예멘이었다. 남예멘의 망령이 부활했으며, 서방 세계나 중동 연방에서 예멘에 개입할 여력이 없으며, 미군의 이목이 오로지 쿠르드족이 벌인 내전 하나에 묶여 있음을 확인한 후티 반군이 때가 되었다며 들고일어났다.
하다하다 그나마 가장 중동에서 안정적인 곳이 작년까지만 해도 전차와 미사일이 날아다녔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웃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곳은 서로 평화 협상을 체결하긴 했으나, 여전히 난민이 들어오기에는 위험한 장소였고 난민에 한정해서 법적 처분보다는 즉결 처분이 더 가까운 곳이었던 탓이다.
사실 쿠르드족으로 인해서 정세가 어지러운 것은 비단 중동뿐만이 아니었다. 이라크 전쟁 이후로 중동과는 단절되었을 것만 같았던 서방 세계에서도 이러한 영향을 준 곳이 있었다. 본래부터 분리주의가 만연하던 아일랜드섬의 북동부였다.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온건한 시위에 가까웠지만, 이것이 기존 EU 탈퇴 기류와 뒤섞이면서 ‘만약 영국이 EU에서 탈퇴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논제가 급부상했다.
영국의 국민은 병신 짓거리만 골라 해 대는 EU의 탈퇴를 강하게 바라고 있었고, 정부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단지 전문가들이 말하길 영국의 EU 탈퇴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부시가 중국 탓에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위와 같은 보고를 전부 듣고 나서 말하길.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는데 뺄까?”
부시로서는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것이 직접적인 전쟁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간접적으로 지원은 하고 있지만, 돈이 나가고 있는 건 일단 여기저기 주둔하고 있는 게 전부였다.
중동의 주둔도 본격적인 게 아니라 대부분 임시에 불과하니, 예산은 대부분 전부 상정 범위 내였다. 실제로도 그리 많이 나가지도 않았고, 의회에서도 중동 주둔의 실효성에 대해서 의심을 하는 정도지 예산 문제로 멱살을 잡아 올리진 않았다.
쿠르드족 문제를 EU로부터 미국이 인계한다곤 했지만, 그 실체는 쿠르드족이 벌일 내전을 최대한 축소하는 것에 그 의의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란은 나쁘게 말하면 부시가 만들어 낸 계획의 희생자였고, 좋게 말하면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를 다른 방법으로 엿 먹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그냥저냥 멀쩡한 게 중동 전통 강국인 터키인가.”
터키의 경우 문제가 없었다기보다는 그동안 지속해서 문제와 대면하면서 해결 중이었다는 말이 맞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불안정하기 짝이 없음에도 다른 나라처럼 내전이 일어나지 않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비록 쿠르드족 독립이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EU와의 협상에서 EU가 선전하길 가히 ‘기적적인 양보’를 보여 줌으로써 EU의 호의를 샀고 본격적으로 EU 가입에 대해서 의논 중이었다.
‘영국은 EU에서 탈퇴를 고민하고 있는데, 터키는 EU에 가입인가.’
그야말로 한 명이 나가니 한 명이 들어오는 꼴이었다.
‘정말이지 지치는군.’
부시는 도대체 왜 원 역사에서 조지 W. 부시라는 양반이 휴가와 골프를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렇게 쉬는 시간이나 골프 같은 취미라도 없으면 미쳐 돌아가실 지경이었으니 그렇겠지. 게다가 그 양반 자체가 워낙 부하를 잘 믿는 성격인지라 정말로 전부 다 잘 돌아가고 있다고 착각했을 확률이 높고. 그러니 어련히 자기는 이렇게 유능한 부하가 많으니 복 받은 대통령이라며 자화자찬하고 이제 좀 쉬어도 되겠다며 골프를 열심히 쳐 댔겠지.’
이는 결국 거울 보고 욕하고 하늘에 대고 침 뱉는 격인지라, 자꾸만 처지려는 마음을 다잡기에 적절한 자책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나.’
어차피 못 먹는 감 찔러나 본 거였으니 어떠한 답변이 돌아왔더라도 이상할 것 없었다. 그보다 부시의 눈에 들어온 건 아프리카였다. 그중에서도 정확히는 셋으로 분열된 수단과 리비아에 관심이 있었다.
“리비아에서 내전이라.”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는 서이라크 민주 정부 설립으로 인해 일어났었는데, 들고일어나면 어련히 서방 세계가 도와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민주화의 전진기지가 되어 줄 서이라크가 사실상 EU로부터 독립하게 된 게 문제였다.
그리하여 서방 세계의 호응이 없자, 카다피의 재빨리 내건 유화책에 의해 시위는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나 카다피의 권력은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자 마치 사상누각처럼 변해 갔다. 강경 진압이 없었던 시위는 ‘궁지에 몰렸을 경우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시위를 일으키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발전했고, 시간이 지나 그 유화책의 약발이 떨어지자 똑같은 시위가 벌어졌다.
그것이 반복되자 지친 카다피가 강경 진압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고, 리비아의 부족들은 적어도 카다피가 물러날 것을 요구하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오늘날 시위는 내전이 되어 있었다.
‘반군에게 무기 지원 정도는 해도 본격적으로 건들 필요는 없겠지.’
실로 그러했다. 리비아는 약 140여 개의 부족이 있을 정도로 복잡한 국내 사정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이런 곳을 건드린다는 것은 행정적 자살행위 그 자체였다.
‘하지만 수단은 마지막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나라야. 내가 직접 분열시켰으니, 임기가 차기 전까지는 책임을 져야겠지.’
부시의 손에 들린 보고서에는 동수단과 남수단이 전쟁이 나기 일보 직전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