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2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28화(329/377)
< 328편 >
보시라이가 역모를 꾀한 것이 그의 심복의 배신으로 인해 들통나는 바람에 공산당 내부에서 피바람이 일어나려는 그 순간에도 중국은 점점 역사책에서나 볼법한 난세로 치닫고 있었다.
단지 역사책과 다른 점이라고 하면 분열과 동시에 외부로부터의 침략이 시작되었다는 점이 그 첫 번째요. 중국보다 더 거대한 제국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그 의지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두 번째였다.
차라리 대놓고 원군이라도 보내 주면 모를까.
미군은 칭다오에 박혀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차라리 그래서 적당한 연기가 아니라 정말로 대놓고 미군을 몰아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건 실로 요원해 보이는 일이었다.
세계 각국이 모여도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동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었던 탓이다.
일본 열도에 하나, 한반도에 하나, 타이완섬에 하나, 필리핀 제도에 하나, 인도 대륙에 하나. 다소 번외가 되겠지만,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는 이미 미국이 만들어 내고 반영구적으로 고용한 용병이나 다름없었다.
중국이 휘청거리며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적은 중국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포위망을 만들었다.
아니, 이 말에는 조금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만들어 낸 포위망은 완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때 회색에 가깝긴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인 러시아가 있으니 말이다.
여하간 공산당 입장으로만 들으면 미국이 천하의 개새끼가 아닐 수 없으나, 실상은 조금 달랐다.
도리어 미군이 칭다오에 눌러앉아 있기에 중국에 진짜 ‘지옥’이 열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나마 지난 군벌의 지배를 받던 시민들은 칭다오라는 대피소가 있었기에,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 칭다오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대부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정든 고향 땅을 절대로 벗어나지 않겠다!’ 같은 고집 또는 포부를 가지고 있거나, 대부분이 군벌에 순종적인 협력자들이었다.
그렇지 아니한 자들은 전부 죽었거나, 전선에 끌려가 보병으로서 소모되었다.
실상 전장으로조차 쓰이지 못할 험준한 산골짜기를 빼면 모조리 전장으로 쓰이고 있는 판국이니 살길이라곤 박쥐처럼 각 도시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매번 지지 세력을 바꿔 가며 빌붙거나, 아예 처음부터 만나지 않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고향이든 일터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이들은 대부분 후자를 택했고, 그 결과가 미군이 만들어 낸 전쟁으로부터의 대피소, 칭다오였다.
다소 문제가 있다면 가장 가까운 국가인 한국을 경로로 한 대규모 물자 지원과 의료 지원을 통해 서서히 회복하는 태세를 보이곤 있지만,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는 미국에 대한 ‘평판’이었다.
사람이라는 게 원조를 받아쓴다고 원조해 주는 이를 무조건 옹호해 주는 것은 아니듯이, 자신이 받는 무상의 혜택을 그동안의 ‘보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하물며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조차 감추어 버리는 이도 있는데, 악의 제국으로 보던 이들이 지원해 준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평판이 바뀔 것을 기대하는 게 도리어 도둑놈 심보 아니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미군의 목적이 칭다오를 점령하고 이를 중국 침략의 전진기지 삼는 것이 아니다 보니까 현지 협조 따위는 겉치레에 불과했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었다.
애당초 치안은 칭다오 공안이 하고 있었으며, 그 공안조차 미군의 중재 아래 은밀하게 공산당과 연결 중이었다.
그리고 그 공안은 시민들에게는 각지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이 공산당이 아니라 지난 군벌이 벌인 자작극임을 해명함과 동시에 때를 기다리며 공산당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공산당이 시원스레 발을 뺀 배경에는 내부가 점점 개판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도 있었지만, 이미 일종의 전진기지로 삼을 수 있는 멀쩡한 도시를 하나 손에 넣을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가장 좋은 말을 큰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데, 구태여 다른 곳에서 소모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다른 군벌 연합이 난전을 통해 서로 힘을 빼고 있는 동안 차분히 재정비하여 몰아치면 비교적 적의 군세를 수월하게 몰아낼 수 있을 터였다. 어쩌면 옛 국공내전 시절처럼 저 반역자들을 단번에 몰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차라리 지난 전쟁에서 모든 세력이 온 힘을 쏟아붓고, 염전 사상이 만연하고 반전시위에 지친 각 세력이 합의를 보고 반백 년 정도 이 상황이 존속하지 않을까에 대해서 떠들어 대는 외신에 대고 리커창이 말하길.
“고래로부터 중국은 수십 갈래로 갈라지고 합쳐지길 반복했지만, 마지막에 서 있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였다.”
이와 같은 포부를 밝히며 공산당이 몰락할지언정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물러서거나 타협할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다른 나라면 몰라도 이곳은 중국이었다. 필요하다면 인권 따위는 얼마든지 짓밟을 수 있는 나라다. 국외로 도망칠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이 나라에 남은 이들은 당의 명령이라면 최후의 한 사람까지 항거할 수 있는 인간들이었다.
그야 특수한 사정을 가진 이들이 없었을 리가 있나, 그러나 그러한 부류가 소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전선에서 사람이 갈릴 만큼 갈려 나갔으니 그러한 부류가 소수가 될 법도 한데, 여전히 공산당에 충성스러운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온전한 충성이 아니라 기억에 수반한 공포심을 기반으로 한 절대적 권위에 짓눌린 충성이라 할지라도 충성은 충성이었다.
그래서 공산당만 총체적 난국에 접어들었느냐라고 물으면, 군벌도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단지 그것이 표면적으로 문제로 삼았고 지도자를 규탄하고 있느냐, 아니면 알면서도 당당하게 저지르고 아예 조직 단위로 장려하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예를 들어 군벌에서 새롭게 치명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인사행정’은 그래도 기존 공산당이 ??시를 통한 인맥과 그것을 겸한 능력주의를 적절하게 혼합하여 뽑던 것에 비하면, 아주 매관매직 판타지가 따로 없었다.
도시란 도시는 모조리 폐허로 변했고, 도시에 남아 있는 벙커나 대피소조차 미국과 러시아에서 들여온 벙커버스터에 모조리 박살이 났다. 미제는 공산당이 떨어뜨렸고, 러시아제는 군벌들이 떨어뜨렸다.
다른 국가와의 전쟁이 아니라 군부 쿠데타에 의한 내전이기에 서로 대충 어디가 어디인지 훤히 알고 있으니, 적재적소에 폭탄을 떨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폐허만 남은 지난에서 멀쩡한 도시가 딱 하나 남아 있었는데, 그게 바로 칭다오였다.
가장 매력적인 칭다오 진군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군벌들에게 있어서 그림의 떡이었고, 칭다오에 대해서 군벌 지도자들이 입을 모아 대답하길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전면전이라. 참으로 참신한 생각을 하셨군. 핵 공격으로 옐로스톤이라도 터뜨릴까? 그거면 미국도 꽤 큰 타격을 입겠군.”
그렇지 않아도 지금만 해도 버거워 죽을 것 같은데, 세계 최강의 군대와 그 동맹국. 그리고 완성된 포위망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지도부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군벌 연합은 지난만 먹고 나면 공산당과 싸울 생각은 없었다. 군사력이 모든 세력 중 가장 출중하다는 건 많고 많은 이유 중에 하나밖에 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수도 베이징이 공산당이 죽고 사는 도시였다는 점이다.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고 나서 그들이 맞이한 세계는 모든 국가가 각자의 확고한 이념을 가지고 편을 가르던 냉전이었다.
공산당이 제3세계처럼 중립 노선을 택할 수 있는 정권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강령으로 삼고 있는 당이고, 소비에트 연방과 함께 제2세계 공산 진영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제1세계와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 전쟁은 십중팔구 핵전쟁일 터였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공산권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소련과는 전혀 다른 독자노선을 걷게 되면서 만약 소련과 전쟁이 벌어지면 핵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따라서 공산당은 핵전쟁으로부터 당을 지키기 위해서 지하에 거대한 벙커를 건설했다.
그러나 당만 피한다고 해서 그것이 당이 재기할 기회가 돌아오기나 하겠는가? 수뇌부만 살아남는다면, 그건 그저 살아남은 머저리 집단에 불과하지 않은가? 핵에서 살아남는다고 한들, 방호복을 입은 적의 특수부대가 들이치면 그걸로 끝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기반까지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면 그만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10년이라는 대공사 끝에 만들어진 벙커는 이미 벙커라기보다는 지하 도시에 가까웠고, 완성되었을 땐 지하의 만리장성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지하 도시라는 표현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었다.
약 85km에 달하는 면적 안에는 오늘날 베이징의 모든 시민을 수용할 능력이 있었으며, 단순한 대피소가 아니라 도시의 기능을 확보하기 위해 식량과 연료를 한계까지 비축했으며, 장기화가 이뤄질 것을 우려해 원활한 보급을 위한 지하 농장 및 축사와 이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통해 수자원 확보가 되어 있었으며, 공산당원들의 업무를 위한 사무실은 물론, 호텔이나 극장. 심지어는 쇼핑몰까지 있었다.
비록 후자에 거론된 편의 시설은 나중에 대중에 공개되고 나서 만들어진 것이긴 했지만, 이것을 사용해야 할 때가 오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지하 도시로서 기능하리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지금의 공산당을 공략하려면 너무나도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베이징 폭격은 실상 거의 무의미할 것이었고, 상륙작전을 펼쳐 선양을 공략하기에는 반쯤 공동전선을 짜게 된 한국의 견제를 받게 될 터였다.
따라서 공산당은 바닥을 치고 있는 민심 덕분에 지난을 공략하기 가장 힘들었지만, 다른 세력에게 반대로 침략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굳건한 방패와 입지를 전부 가지고 있었다.
차라리 란저우-청두 연합이 몽골을 돌아서 가 볼까 생각을 해 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몽골은 완전히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그야 몽골을 짓밟으면 그만이긴 했지만, 그땐 정말로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여야 할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파멸밖에 없으니 말이다.
다른 나라를 공격하기 위해서 길을 빌리겠답시고 중립국을 짓밟은 국가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역사가 너무나도 잘 말해 주고 있었다.
즉, 현재 공산당을 제거할 역량을 가지기 위해선 적어도 두 연합 중 하나는 몰락해서 하나로 통합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대충 끝났으니, 리커창이 분노하고 있는 주석 집무실로 다시 돌아와서.
“보시라이!”
보시라이라는 심복의 철저한 협조 아래에 그의 죄상이 낱낱이 밝혀졌고, 맥 빠질 정도로 쉽고 빠르게 신속배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