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34)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33화(334/377)
< 333편 >
중동과 중국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전화에 휩싸여 불타는 동안 EU는 점진적으로 분위기가 이상해져 갔다. 다만 이것이 EU가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도리어 지금이 ‘안정기’라고 할 수 있었다.
각국은 그동안 서이라크에 투자했던 손실액의 계산이 끝났고, 이는 군축으로 이어졌다. 중동에 개입하던 회원국들이 애당초 국력 자체가 썩 그렇게 나약한 편은 아닌지라 손해액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중동에서 벗어난 것에 자축하고 있었고, 동시에 내부의 문제를 드디어 해결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합법이든 불법이든 독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난 난민 문제 말이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독일에는 난민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략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었고, 독일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그 침략에 맞서고 있었다. 사실 실상 그동안 열강들이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유럽인들의 보편적인 시선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단지 다른 점은 그 ‘과격함’의 차이였다. 혁명의 본산지답게 주먹은 물론 야구 방망이를 넘어 화염병 등 온갖 것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실로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듯했다.
이미 프랑스는 준전시 태세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안정기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는 난민들이 프랑스인의 적극적인 반대 시위의 포악함에 견디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점점 밀려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노한 프랑스 시민들의 눈에는 법이고 나발이고 눈에 들어오는 게 없으니, 난민과 시민 사이에 직접적인 무력 충돌이 이어졌고 그 무력 충돌은 상당한 사상자를 내었다. 여하간 난민들은 죽고 싶지는 않고 대안은 여전히 많으니 도망쳐야만 했다.
물론 독일과 함께 최대 난민 수용국이었던 프랑스에서 난민을 토해 내고 있으니, 다른 나라들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실제로 군경을 동원하여 국경에서 억지로 막아 내고 있으니, 그 국경에서 난민촌이 생겨나고 갖은 문제를 벌이고 있었다.
그 국경은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서로 밀어내기 바빴고, 심지어는 난민을 합법적으로 추방할 수 있는 법을 입안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어쨌든 난민도 난민이지만, 안정기라고 해서 민주주의 전파와 인권이라는 모호한 목적으로 중동에 손을 댔던 업보를 아무런 대가 없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결국에 가장 많은 예산을 잡아먹는 군을 축소 시켜야만 했는데, 각국의 이러한 결정은 한참 통합 단계에 접어든 유럽 통합군에 큰 차질을 주었다.
통합의 전진기지이자 상징이었던 서이라크의 합동 부대가 서이라크 반군에 의해서 철저히 박살 난 이후로 본토에서는 그 손실과 격차를 메우기 위해서 열심히 장병들을 닦달하고 있었지만, 어디 사람 관계라는 게 그렇게 쉽겠는가?
하물며 이웃 친구도 아니고 입고 먹는 것부터 완전히 다른 외국인이니 같이 살면서 합까지 맞추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차라리 친구였으면 서로 이해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지내면 그만이지만, 군대란 그런 곳이 아니었다. 군대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든 원수지간이든 억지로 묶어 놓고 두들겨 패서라도 합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었다.
생활 방식부터가 차이가 난다는 건 과장이 아니었다. 위생 관념은 물론 빨래하는 법부터 식단에 설거지하는 방식까지 철저하게 다른 인종들은 하루마다 적게는 수백 건에서 많게는 수만 건에 달하는 불협화음을 내곤 했다.
식단만 해도 상당한 곤란함이 있었다. 명색의 짬이라지만, 적어도 인권은 챙겨 줘야 하니 일정 이상은 만족시켜야만 했는데, 도저히 답이 없어서 주방은 그나마 민영화를 통해 민간에 일을 주게 되었다.
이 결정으로 상당한 일자리를 창출하여 정치판에서는 아주 잔치판이 났었다.
그들은 작게는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을 위한 할랄 푸드부터 시작해서, 알레르기로 인해 유제품을 못 먹는다든가, 특정 향신료가 강해서 먹지 못한다든가, 붉은 육류는 개인의 신념으로 인해서 먹을 수 없다든가 이런 것들이 주방에 산재한 문제들이었다.
그야 이런 문제는 식단을 점진적으로 바꿔 가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하다못해 마약까지 해서 눈까지 시뻘게진 인간이 후추를 1kg이나 넣은 수프를 조리하는 바람에 쫓겨난다든가 같은 문제들은 민영화의 약점인지라 손쓸 도리가 없었다.
주방에서도 온갖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통합군에서 가장 평화롭고 조화로운 곳을 꼽으라고 하면, 주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이렇다 보니 하다하다 아예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상태는 심각했지만, 위에서는 언제나 유럽 통합군은 화합과 통합의 상징이라며 찬미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공용어 문제도 있었다. 기존의 구시대적 협력 체제에서 벗어나 통합군으로 재편하면서 장차 통합군에서 사용할 공용어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 셋으로 지정했는데, 반대로 말하자면, 유럽 통합군에 소속된 군인은 반드시 이 셋을 전부 숙지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나마 이 셋 모두 제2외국어나 자국 공용어였던 탓에 그렇게 죽어라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실상 독일과 프랑스가 군비로 가장 많은 지출을 하고 있었던 덕분이었는데, 이 두 나라 전부 제2외국어로 가장 인기 있었던 외국어가 영어였다.
그렇기에 현장에서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기야 전쟁이 벌어진 것도 아닌 데다 보디랭귀지만 있어도 일단 문명사회면 살아가는 것에는 불편함이 없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야 문서를 다뤄야 할 땐 확실히 문제가 되겠지만, 아는 인간이 번역하면 그만이다. 도리어 문제는 정치적인 부분에서 벌어졌다.
현재 EU의 공용어는 24개다. 회원국마다 공용어를 하나씩은 제출했던 탓이다. 물론 건의하지 않은 국가도 있었지만, 시켜 준다는데 하지 않을 국가는 거의 없었고 그 다양성을 보장한 결과가 바로 24개의 공용어였다.
지출하는 게 오로지 이 세 나라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아닌 데다가, 심지어 영국의 경우 미국의 영향을 받아 군비 지출에 소극적이었는 데도 공용어로 쓰이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도 EU는 오늘도 평화로웠다. 문제가 산재하고 있는 거야 언제나 그러했고, 통합군의 경우에는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인간이 무슨 물과 기름도 아니고 섞이고 섞이면 언젠가는 하나가 될 터이니 말이다.
넉넉잡아 한 반백 년에서 백 년이면 완전히 한 몸이 되리라 자부했다. 물론 이것에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 사이에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대전쟁이 벌어져서 대거 신병이라도 받아야만 하는 날이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물론 정말로 그런 전쟁이 벌어지면 더는 통합군의 불협화음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위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구태여 통합군이 아니라 EU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지금이 안정기라는 건 확실했다. 이따금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EU 탈퇴 요구 시위’야 영국 정부가 짓밟으면 그만이었다.
물론 자국 내의 문제를 어떻게든 외부에서 들여온 이익으로 서이라크에 국가 단위로 상당히 많은 자본을 투자했던 ‘그리스’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자라날 암 덩어리가 조용히 수십 배로 불어나고 있었지만, 아직은 그저 폭풍전야에 불과했다.
다만 중동을 유럽이 미국에 인수인계를 마치고 손에서 놓아주었으니, 그만큼 테러는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무려 2개월 동안 폭탄이 터지지 않았다면서 대서특필할 정도면 말 다 하지 않았는가. 다른 것도 아니고 폭탄이 터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축제 분위기라니, 참으로 슬프면서도 웃긴 일이었다.
테러의 초점은 점차 대서양 너머 미국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단지 테러의 주체가 중동 인종이 아닌, 중국인이었을 뿐이었다. 테러범 대부분이 소속이 모호한 민간인들이었다. 그들은 각종 테러를 저질렀으며, 그중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은 ‘총기 난사’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에서 무식한 자들에 의해 외국인 판매 금지 시위가 잇달았다. 왜 무식하냐면, 애당초 이민자가 아닌 중국인이 총기를 합법적으로 구매한다는 상황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왜냐면 이미 법적으로 시민권자나 이민자가 아닌 사람이 미국에서 총기를 구매하는 건 불법이었던 탓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여행객 자격으로 온 중국인이 어떻게 총기를 구했느냐?’라고 묻기에는 미국에는 너무나도 많은 총기가 풀려 있었다.
총기 등록제고 나발이고 강이나 호수만 뒤져도 잃어버린 총기를 찾을 수 있었으며, 철없는 미성년자를 통해서도 액세서리가 주렁주렁 달린 권총 등을 구할 수 있었다.
이렇듯 미국에서는 갓난아이라도 다소 사적인 루트로 약간의 ‘돈’을 지불하기만 하면 마치 군용소총처럼 개조된 돌격소총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총기 난사 사고가 끊이질 않는 거다.
그리고 다음으로 많이 난 테러는 생화학 테러였다. 예전 유럽에서 일어났던 전염병 테러의 연장선이었는데, 여전히 여행 목적으로 방문한 중동 계열 외국인을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방역 기술의 발달과 치료제의 등장으로 그다지 큰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폭탄 테러가 있었는데, 가장 쉽고 확실한 효과를 가지고 있음에도 생각만큼 자주 일어나지는 않았다. 일어나더라도 십중팔구는 실제로 벌어지기 전에 저지되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미친 듯이 불어난 예산과 함께 경찰의 경계 수준이 사상 최고였던 탓이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은 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한 폭탄 테러보다는 중국에서 미국이 놓친 ‘핵탄두’가 미국으로 반입되어 핵폭탄 테러가 벌어질까 두려워 오랜만에 의회나 대통령이나 의기투합하여 이뤄 낸 결과였다.
여하간 늘어난 예산과 외국인으로 좁혀진 시선은 미리 예방하고 검거하는 데 확실하게 도움이 되었고, 쇠락한 네오콘에 더 큰 힘을 얻었다. 정확히는 네오콘이 주장하고 있는 전 국민 감시 시스템인 ‘애국자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본래라면 총기 협회가 나서서 돈을 뿌려 언론을 움직여 사건 자체를 은폐하려 들었겠지만, 언론들의 움직임은 실로 영 시원찮았다.
뉴스거리가 없는 거야 원래 아무 말이나 채워 놓으면 그만이지만, 언론사들이 정권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정권에 정면으로는 대항하고 싶어 하지 않은 탓이 컸다.
그래서 총기 난사 사건은 비교적 사람들의 입방에 자주 오르락내리락했고,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예전보다 더 자주 올라오고 있었다.
총기의 나라인 미국이었지만, 썩 그렇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나라에서 작정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좋든 말든 무언가 바뀌긴 할 터이니 말이다.
게다가 대통령과 총기 협회는 그 어떤 정권보다 사이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자금이 러시아로 흘러가고 있음을 지적당하고 일종의 협박을 당한 ‘그날’ 이후 직접 압박을 가한 것은 없었지만, 대통령이 총기 협회에 대해 모종의 조치를 하리라는 건 반쯤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