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3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38화(339/377)
< 338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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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 그야 이집트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약탈과 방화는 기본에 빈민도 즐비하지만, 그런데도 아프리카는 아이러니하게도 북미를 빼면 가장 평화로운 대륙이었다.
모든 대륙이 각자 자신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탓이다. 작년부터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고 해도 부족 간의 불화로 인해 활이나 창 등을 통한 냉병기로 소극적인 교전이나, 개인의 투쟁 정도가 전부였다.
부족 간의 전쟁에 냉병기를 사용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양측 간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체결된 협약이었는데, 부족 전쟁을 꼭 냉병기를 사용해서 치르는 건 아니었다. 총기도 적극적으로 동원되는 전쟁도 분명 있었지만, 최근에는 좀처럼 사용되질 않았다.
이렇듯 지역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아프리카에는 불안정한 평화가 찾아왔다. 불안정한 평화라도 결국 평화인지라, CIA도 아주 잠깐이지만 전쟁에 대해서만큼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성공이라면 성공이군.”
수단 지부장 크루거는 아프리카 각국에서 올라온 모든 보고서를 훑는 중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첩보 방향성을 무조건 원조에서 ‘무역로 설립’에 더불어 기득권층 이익 나눠 먹기로 전환했던 탓이다.
“잠깐 소강상태일 뿐이에요. 우리가 아무리 활약해 봤자 내년이면 또 전쟁일걸요.”
맞는 말이었다. 내전 정도의 큰 전쟁은 그저 때가 되어 끝났을 뿐이었지만, 그 외의 부족 간의 불화 중재는 완전히 CIA의 활약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잠깐 휴전으로 돌아간 전쟁들이나 터지기 위해서 도화선에 불이 붙은 전쟁들은 CIA가 얼마나 노력하든지 말든지 언젠간 터지게 될 터였다.
어쨌든 부족 개입 건에 대해서 ‘일일이 부족들을 중재하고 개입했느냐?’라고 묻는다면 이 질문에 대해서 ‘예.’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CIA가 벌인 건 냉전 시절을 방불케 하는 사상 초유의 첩보 공세였다. 현 정부의 묵인 아래에 CIA는 해외에서 그 어떤 조직보다 강력한 권력과 예산을 가지고 있었다.
애당초에 CIA가 해외 전담이긴 했지만, 여하간 아프리카에서 모든 국가를 통틀어서 CIA보다 더 강력한 정보조직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상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CIA가 알고 있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는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한 유착 관계와,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보복을 통한 억압에 의한 것이었지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란을 상당히 억제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야 아주 일시적인 데다가 억지로 눌러 담은 미봉책에 불과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피로 강을 만들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그게 어디인가. 물론 이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 원조도 상당한 수준으로 쏟아부어야만 했다.
비포장도로 위에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도로를 만들어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창출하여 임시나마 주민들에게 수입을 만들고 새로운 무역 계약을 통해 값싼 공산품을 공급하여 물가를 내리고, 그 과정에서 반발하려는 이들을 억압하고 각국의 정부군을 움직여 도적들을 소탕했다.
도로에는 새로운 인프라가 생겨났으며, 인프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새로운 일자리는 GDP의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이것마저 없었다면 로비와 뇌물 그리고 CIA에 잡혀 있는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발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이것은 CIA에, 더 나아가서는 미국에 점점 의존하게 되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그야 아예 나라를 팔아먹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경제적으로 얽히고 이념적으로 얽히고 나면 떨어지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더불어 정권이 아예 갈아 치워지지 않는 이상, 원조를 받은 나라가 입 싹 씻고 떨어지기도 힘들다.
원조란 결국 이해관계에 따라서 투자하는 것이지 정말로 완전한 무상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
“솔직히 이 일을 진행하던 무렵에는 우리가 CIA인지 아니면 자원봉사 단체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대충 일이 잘 끝난 것 같아서 다행이군.”
말 그대로였다. 그야 이익이 나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별로 많이 해 먹지도 못했고, 그 돈도 모조리 크루거의 미래를 위해서 투자되었다. 결국에 아프리카 로비에. 즉, 공금으로 쓰였다는 말이다.
“다 좋은데 수단이 문제야.”
“머잖아 다시 전쟁이 벌어질 거예요.”
부시가 CIA를 움직이기로 한 그날 이후로 CIA는 수단에서 벌어지는 내전을 중재하기 위해서 맨발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맨발을 넘어서 아예 사족보행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왼손에는 돈 가방을, 오른손에는 약점이 든 가방을 반드시 들고 다녔다.
그 결과물이 이 잠시간의 평화였다. 서수단은 CIA를 통해 아프리카 내에서 돌아다니는 물자를 공급받을 수 있는 ‘내륙 거점’이 되었고, 이는 척박한 서수단의 밥줄이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안정적인 밥줄이 생긴 서수단은 전쟁에 참여하길 망설였고, 조심스럽게 쟁탈전에서 발을 빼기에 이르렀다.
그야 어떻게든 아비에이에 매장된 원유를 얻을 수 있다면 지금도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서수단이 완전히 독립하고 산유국으로 당당하게 국제사회에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번 전쟁이 실패하면 반쯤 이뤄 낸 독립도, 그동안 기득권이 없는 살림으로 기틀을 닦아 놓은 권력 또한 물거품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적극적으로 국민을 선동하여 전쟁을 부르짖던 정부는 수출입길이 열리자마자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하여 평화를 부르짖었다.
그리하여 대결 구도는 수단과 남수단으로 굳어졌는데, 문제는 누가 먼저 선제공격을 하냐였다. 본디 서수단까지 상대했어야 했으니 실상 현 전장의 2배나 되는지라 수단이나 남수단이나 아슬아슬하게 한계까지 병력을 차출해야만 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 서수단이 빠지면서 그 병력이 남고 나니까 방어선이 이전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더 두꺼워졌다는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약 1.5배 정도 두꺼워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제공격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야 방어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던 시절은 옛날 옛적에 끝냈다지만, 이는 외교의 문제였다.
CIA를 통해 간을 보고 있는 미군을 끌어올 수 있느냐 없느냐가 훗날 개전 시 절대적인 우위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수단이나 남수단이나 개전 자체를 지지부진하게 끌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지치는 것은 당연히 남수단이었다. 우선 첫 번째로 내륙국인데 주변국과도 썩 그렇게 좋은 사이가 아니라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두 번째로는 남수단군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게 문제였다.
독립한 지 얼마 되질 않았고, 대부분 군사 훈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야 반군 출신 정도 되면 폭발물이나 총 다루는 법 그리고 유격전에는 이골이 나 있었지만, 이런 전면전에는 영 익숙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전쟁이 없지. 이 짧은 기간을 아프리카의 평화기라고 부를 거야.”
“누가 그렇게 부르는데요?”
“우리가 그렇게 부르게 만들어야지. 그럼 본토에서 기자가 와서 그걸 적어 갈 거고, 대통령의 콧대는 높아지고, 나는 승진에 더 가까워지는 거지.”
큰 전쟁은 모조리 소강상태라는 말에서 알아볼 수 있듯이 리비아 내전 또한 휴전 중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 카다피가 사고로 인해 중태에 빠진 탓이었다.
사고는 말 그대로 완전히 사고였다. 그 카다피가 설마 자기 방에서 자기가 넘어져 머리가 깨질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카다피 본인은 물론, 경비하고 있던 경호원들까지 그 누구도 이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중태에 빠진 카다피를 대신하여 차남인 사이프 알이슬람 카다피가 진두지휘에 올랐지만, 카다피와 비교하면 새파란 애송이에 불과했다. 모든 교전은 지지부진하게 흘러갔고, 밀지도 밀리지도 않는 상황에서 결국 차남이 개혁을 약속함으로써 휴전에 이르렀다.
혹자는 카다피가 중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기다리기 위한 술책이라고 표현했지만, 마침 시민군도 썩 그렇게 계속 전쟁을 이어 가기에는 물적 자원은 넘쳐나는데 가장 중요한 인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참이었는지라, 그 휴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래 아프리카인이었던가? 이상하게 아프리카가 고향처럼 느껴지는군.”
크루거는 탁자에 펼쳐 놓은 아프리카 전도를 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분명 이제 막 몇 년이 좀 넘으려고 하는 무렵인데,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그런지 마치 이곳에서 나고 자란 것처럼 느껴졌다.
“진심으로요?”
“그리고 내 고향은 심심하면 총성이 울려 퍼지는 슬럼가였지. 깨진 술병과 대마초 꽁초가 즐비하고 경찰은 부패했고 공권력은 우리 집 안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했지. 냉장고에는 식품보다 사회적으로 불온한 물질을 정제하는 데 쓰이는 화학 물질이 더 많았어. 나는 나를 보호해야만 했어. 그리고 이곳도 비슷하지.”
“할렘요?”
“아니, 디트로이트.”
“아, 디트로이트. 이번 정권 덕분에 디트로이트 풍경이 많이 바꿨다고 하는데, 그럼 이제 정말로 여기가 고향 아닌가요? 어차피 돌아가도 그 분위기는 안 날 텐데.”
“듣긴 들었는데, 그 정도인가? 그 소리를 들으니까 한 시라도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군. 나는 어릴 적 꿈이 방탄유리에 철장이 달리지 않은 맥도날드 매장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게 꿈이었어.”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 하나인 디트로이트는 대격변을 겪었다. 치안이 급격히 좋아진 탓이었는데, 이는 경찰의 예산이 늘어나고 인사에 대대적인 물갈이를 벌였던 탓이다. 반발이 없을 턱이 없었지만, 부시는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힘으로 찍어 눌렀다.
공권력이란 대중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며 동시에 대중 또한 썩 신뢰하지 않으나, 막상 급할 때는 의존하게 되는 모순의 존재였다.
그런 경찰을 정부가 부패했다며 낙인을 찍고, 조리돌린 끝에 부패를 청산했다고 선언했으나 국민은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기 전까지는 이를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부는 국민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 범죄도시인 디트로이트를 직접 양팔 걷어붙이고 조지기로 했다.
주지사와 시장을 달달 볶으며 추가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선진적 경찰 교육과 기존 인사를 새로 갈아치우고 테러 대응반 등 강도 높은 대응을 통해 끝끝내 범죄 수치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크루거에겐 실로 안타깝게도 디트로이트에서 철장 정도면 모를까 방탄유리는 일종의 문화로 남게 되었다.
이는 디트로이트가 평화로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필수가 아니라 전통문화로 받아들일 만큼 디트로이트가 그래도 사람이 그럭저럭 살 만한 곳으로 변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 정도 일 처리면 대통령님께서 만족하실 거야. 다들 쉬어도 되겠군. 혹시 휴가 가기 싫은 사람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