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5)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4화(35/377)
< 34편 >
“오.”
헬기의 창문 너머로 2001년의 서울 시내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 오면 어떤 느낌일까 했는데, 별다른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냥 ‘아, 한국 왔구나.’ 정도였는데, 상공에서 본 서울 모습은 자신의 기억과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긴 2001년이면 2019년에 있을 건물도 이미 다 지어져 있는 시절 아닌가?
물론 상공이라서 그런 것도 있긴 했다. 막말로 편의점 브랜드도 완전히 다를 무렵이긴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차량 혹은 건물이나 가게 등. 소소하고 세세한 것이 다를 뿐이었다. 문방구 전성시대였으며, 카페보다는 다방이 주류를 이루었고 햄버거가 외식으로 취급되던 시대.
‘2001년이면 한창 스타 크래프트가 뜰 때인가?’
IT 버블은 이미 터졌지만, PC방과 스타 크래프트는 살아남아 한국 고유의 문화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우스갯소리에 가깝긴 하지만 화투, 윷놀이 등 전통 민속놀이에 괜히 스타 크래프트를 끼워주는 것이 아니었다.
‘뭐, 나랑은 관계없지만.’
대통령씩이나 되는 사람이 남의 나라에 가서 게임이나 하고 있으면 그야말로 꼴불견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니까 자주 가던 40년 전통의 국밥집이 있긴 했지. 거기 맛은 지금도 똑같을까?
무릇 식당이라는 것은 주인장이 바뀌면 맛 또한 바뀌는 법이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러니까 하고픈 말이. 하룻밤이면 괄목상대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동물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엄밀히 말해서 2001년의 주인장하고 2019년의 주인장은 전혀 다른 사람 아닌가? 그렇다면 맛이 과연 똑같을까?
‘오랜만에 거기나 들러서 국밥이나 먹어야겠다.’
“착륙하겠습니다.”
‘저게 용산 기지인가?’
내 눈에 들어온 용산 기지는 생각보다 충실했고 규모도 상당했다. 2019년에 용산 기지는 점점 폐쇄되어가고 있었다. 평택으로 핵심 시설들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이 이전 과정에는 부시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나 말고 진짜 조지 W. 부시 말이다. 그는 서울, 경기 등 미군이 값비싼 지역을 점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정확히는 어떠한 나라의 국민이라도 자국의 수도에 외국의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게 달갑지 않으리라 여겼고, 실제로도 그랬기 때문에. 당시 부시는 주한미군을 갈궈서 인구 밀집 지역이 낮은 곳으로 부대들을 옳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조지 부시는 진짜 착하기는 더럽게 착했다.
“음!”
숨을 깊게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이게 한국 공기인가?
‘당장이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걸!’
백악관 말이다. 젠장. 그립기는 개뿔. 솔직히 그냥 딴 나라 온 것 같구먼. 원래 살던 동네 거리 걸으면 그나마 좀 고향 같은 느낌이 들긴 하려나?
“여기부터는 차량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곳에는 캐딜락 원이 있었다. 본래라면 헬기도 마린 원을 타야 했으나, 헬기까지는 가져올 시간이 없어 어떻게 간당간당하게 전날 캐딜락 원만 한국에 가져올 수 있었다.
“스케줄은?”
“일단 7시 30분에 사전 환담이 있고, 이후 7시 45분에 친교 만찬이 있으십니다. 이후 백제 호텔에서 묵으시고. 내일은 청와대 접견실에서 한미 정상회담. 집현실에서는 확대 회담 겸 오찬, 1시에는 한미 공동 기자회견이….”
“아니, 그런 건 되었고. 오늘 만찬 이후 스케줄이나 비워둬. 잠깐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니까.”
“예?”
역시, 아무리 그래도 일단 한번은 가봐야지.
“어디로 가십니까?”
“국밥집.”
* * *
캐딜락 원에서 내린 조지 부시는 거의 반나절이나 전투기를 타고 왔음에도 전혀 피곤한 표정이 아니었다. 여느 미국 대통령답게 풍채는 당당했고 발걸음 또한, 그 당당한 풍채만큼이나 널찍널찍했다. 그리고 그 보폭만큼 김지훈 대통령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일단은 이 전투기 소동의 당사국의 수장이었던 만큼 김지훈 대통령이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는 본인밖에 모를 거다.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온 것까지는 좋은데, 왜 그러는지는 모르니까 그렇지.
국익에 관련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도 산더미 같았지만,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개인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가장 물어보고 싶은 질문은 이미 조지 부시의 방한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정해져 있었다.
아니, 왜 대체 전투기인데? 기존의 SAM27000도, SAM28000도 아닌 F-18F로 온 이유가 도대체 뭘까! 왜? 도대체 어째서!
엄연히 공사를 구분해야 하는 자리임에도 이 질문하나가 묻고 싶어서 입이 너무나도 근질거리다 못해 환장할 지경이었다.
‘물어볼까? 말까? 아니야, 그래도….’
사람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으면 묻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지는 법이다. 전투기를 타고 오산 공군기지에 내린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아는가? 처음에는 신성한 청와대에서 농지거리를 던지는 줄 알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미 대사관을 통해서 직접 몇 번씩이나 묻기까지 했었다.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기는 했는데, 다른 정보는 다 알려줘도 왜 전투기를 타고 오는지에 대해서 답변이 없어서 더더욱 미칠 것 같았다.
‘그래, 죽더라도 이거 하나는 물어보고 죽는다.’
드디어 결심한 김지훈 대통령이 총대를 메기로 결심했다. 바짝바짝 말라가는 입술을 한번 핥아내 축이고 세상 모든 사람의 의문을 함축한 질문을 혓바닥 위에 일발 장전했다.
“왜 이번 방한에 전투기를 타셨습니까?”
“아, 그건-.”
부시에게는 정해진 답변이 있었다. 정확히는 부시가 생각한 답변이 아니라, 국무부 관료들이 책상과 키보드 위에 대가리를 거듭해 비벼가며 실성한 끝에 부시가 한국에 도착하기 3시간 전에 간신히 만들어낸 답변이었다. 그래서 한국 외교부 측에서 아무리 물어봐도 어물쩍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기회에 북한을 강하게 제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부시는 그 답변이 마음에 쏙 들었다. 사실 부시도 은연중 그런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든 싫든 북한이 할 수 있는 일은 핵, 혹은 그것에 준하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었다. 적어도 2019년까지 핵에 비빌 수 있는 병기는 나온 적 없으니 결국은 핵에 집착하겠지. 지금쯤 열심히 수소탄 실험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인지라, 마침 사정이 딱 맞아들어갔다는 말이었다.
물론 부시는 그냥 전투기가 타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마침 시와 때가 맞아 맛 좋은 변명거리가 탄생했으니 어찌 이보다 좋을 수 있으리오? 부시는 내심 속으로 안심했다. 하긴 이대로 넘기면 외교 문제이긴 했으니 말이다.
다음부터는 조금만 상황을 고려해보고 전투기를 타기로 결심했다. 타지 않는다? 그런 선택지는 김갑환의 몸에 남겨두고 온 지 오래였다.
“북한을요?”
“북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비공식회담에서 다루도록 하시죠.”
그건 그렇고 부시는 이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2번 같은 내용을 듣는 것이 학창 시절 영어 독해 수업을 듣는 기분이었다. 한국어로 한번, 영어로 한번!
이 무슨 대환장 파티란 말인가. 그렇다고 부시가 ‘나 한국어 할 줄 알아! 통역관 저리 꺼져! 히히!’ 이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해봤자 어눌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우~. 감솨합니다아~.’ 정도가 자연스러웠다.
거기다 국가적 위신에도 문제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세계에서 영어 모르는 지도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있을 수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알아도 일부러 영어를 쓰지 않고 자국어를 쓰고 통역관을 두는 이유가 다 있었다.
‘뭐지. 뭔가 마음에 안 드나?’
물론 김지훈 대통령의 마음은 다시 한번 타들어 갔다. 아니, 간신히 화해노선 잡은 게 엊그제 같은데 왜 북한을 제재해? 도대체 왜?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자. 김지훈 대통령 본인도 북한을 썩 믿고 있지는 않으니 도리어 다행이면 다행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 직접 북한 제재를 목적으로 전투기를 타고 왔다는 건 지금까지 쌓아온 화해노선을 어그러뜨릴 만큼의 물증이나 심증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는가?
그거까지도 좋다 이거야. 그런데 왜 한식을 보고 인상을 그렇게까지 찌푸리는지 모르겠다. 혹시 입맛에 안 맞나? 입안에 자꾸자꾸 밀어 넣는 속도를 보면 입에 안 맞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젓가락 속도가 늘어나는 만큼이나 인상이 험악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냐! 이게 아니야!’
만찬에서는 한식이랄 것들이 나오기는 했는데, 맛있긴 하다만 이게 무슨 한식인가. 솔직히 몇몇 익숙한 음식을 제외하고는 별세계 음식이었다. 갈비 같은 것은 친근했지만, 막상 먹어보면 기억에 남아 있던 그 맛이 아니었다.
한식은 한식이었는데, 전통적인 한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캐비어나 송로버섯 연어 같은 게 있었기 때문에 실상 한식보다는 퓨전식에 가까웠다. 부시가 서양권 대통령이라서 그렇게 한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런 모양새로 나오는 건지 통 알 도리가 없었다.
물론 맛이 없다는 건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페퍼로니 피자를 기대하고 갔더니 마치 이탈리아 전통 피자가 나온 느낌이었다. 장르는 비슷하지만, 속이 완전히 딴판이란 말이렷다.
‘뭐, 맛은 있으니까 상관은 없다만.’
마지막 한 점의 고기가 혓바닥 플랫폼에서 줄 없는 번지 점프를 마치자 부시는 그제야 인상을 바르게 폈다. 사실 폈다기보다는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상이 펴진 쪽에 가까웠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예의상 형식적인 말이 오갔고 그날의 만찬은 끝이 났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관료들은 내일 부시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말을 추측하느라 온 신경이나 행동이 ‘추론하기’에 몰려 있었고 김지훈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입에서 북한 제재가 나온 이상 국정원을 갈구기에 바빴다. 덕분에 국정원은 안기부 시절부터 대대로 내려온 유서 깊은 쪼인트 까기 대회가 개최되고 있었다.
일본, 북한, 중국, 대만을 포함하는 동아시아를 넘어서 전 세계를 아우르기까지 모든 첩보, 안보기관은 어떤 방식으로든 9.11 사태 이후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미국이 움직이면 세계도 움직인다. 누군가가 말했던 그 말의 의미가 좋든 싫든 증명되어 가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렇듯 미국이라는 세탁기 안에서 급박히 돌아가고 있는 세탁물이 되어버린 세계만큼이나 부시의 뇌 속에서는 특이한 화학작용이 태풍과도 같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위장은 매사에 긍정적인 기관인지라 뇌가 더 먹고 싶다고 진심으로 바라면, 그 몸을 희생하여 크기를 몇 배로 늘려서 음식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한다. 물론 이 살신성인의 신체 기관은 인류 공통일지니, 조지 W. 부시의 위장 또한 같은 이치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 국밥 먹고 싶다! 소금! 후추! 그리고 MSG 팍팍 뿌린! 뜨끈한 국밥!’
김갑환의 영혼에 새겨진 국밥 DNA가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