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51)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50화(351/377)
< 350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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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중동을 말하자면 전쟁터였다. 이전에도 별다르지 않았지만, 지금은 정말로 중동 전체가 전쟁터였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국가와 국가와의 전쟁이 아닌, 도미노 효과에 의한 독립전쟁이었다.
유럽이 일제히 평화를 부르짖으며 소수민족 탄압을 금지한 사이에 그 소수민족이 힘을 기르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미 힘을 가지고 있었던 소수민족이나 단체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사이에 몇 배로 불어날 수 있었다는 말이 맞았다.
여하간 그나마 평화로운 동네가 21세기식 인종 학살의 본고장인 이스라엘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 한 것 아닌가.
이 중에서 가장 격렬한 전선을 구태여 꼽자면 이란과 쿠르드족의 전선이었다. 둘 다 나름 필사적일 이유가 있었던 탓이었다.
이란의 경우에는 한마디로 국토와 민족을 수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란 정부에서는 온갖 사실과 거짓이 적절히 섞인 유언비어로 국민을 선동하고 있었다. 유언비어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한데, 전쟁이 일어난 마당에 그것이 가능할 턱이 없었다.
그 덕분에 이란은 어느 때보다도 단결할 수 있었다. 단결은 곧 힘이었고, 이란의 경제는 정부가 총력전을 선포하며 완전히 전시체제로 돌아갔다. 소년 청년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징집했고 여자와 노인은 공장으로 내몰았다.
전시체제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본래부터 강성한 나라였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군수공장으로 변해 버린 각종 공장에서는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를 쏟아냈다. 생산하는 속도보다 옮기는 게 더 오래 걸릴 정도였으니 그 위용은 실로 어마 무시한 것이었다.
쿠르드족의 경우에는 일종의 연합체였지만, 하나같이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전쟁이었다면 자신의 부족과 사병을 아끼기 위해서 제각기 살길을 궁리했을 터였지만, 중동이 이렇게 전쟁터가 되고 외부의 개입마저 없어진 경우는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특히 나라마다 제각기 다른 전쟁을 치른 적은 이제껏 한 번도 없었으며, 이렇게나 많은 쿠르드족이 전쟁을 위해 모인 적은 마하바드 공화국이 설립되었던 당시를 제외하면 없었다.
사실 그때는 솔직히 썩 그렇게 전쟁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후견자라고 할 수 있는 소련의 지원은 사실상 끊겼었고,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이웃국도 멸망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원이 달랐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쿠르드 독립군은 약해지기는커녕 새로운 젊은이들이 쿠르드족만의 국가인 쿠르디스탄을 위해 속속들이 입대하면서 전력을 증강하고 있었다.
더불어 몰래 쌓아 놓은 유럽제 무기도 넉넉했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미국이 은연중에 편의를 봐주면서 이것저것 챙겨 준 덕분에 전선도 대부분 교착이면 교착이었지,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속절없이 손도 못 써 보고 밀려나는 경우는 일부 교전 정도면 모를까 전체적인 면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냐면, 드디어 쿠르드족이 목표로 했던 영토까지 밀어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이 영토를 지킬 힘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이란군의 전의 상실과 반전주의 확대를 위한 전쟁이기도 했지만, 추가 영토를 위한 점령전이기도 했다.
그 점령전에서 가장 쿠르드족의 전사가 많이 죽어 나간 장소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앞마당인 우르미아였다.
우르미아는 이란의 동쪽의 우르미아호를 끼고 형성된 도시였는데, 우르미아호는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였지만, 댐 건설로 인해 아랄해처럼 고통받는 바람에 그 영광스러운 지위는 안타깝게도 잃어버린 상태였지만, 수심이 낮아졌어도 여전히 사람이 걸어서 건널 수심은 아니었으며, 수영이나 도강을 해서 건널 수준의 넓이도 아니었다.
호수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가 존재하긴 했으나, 그곳을 점령당할 정도면 이미 우르미아는 포위된 상태라고 봐야 했기에 그것까지는 고려하지 않아도 좋았다.
더불어 호수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박살 난 지 오래였다. 그게 조각배든 단순한 부유물이든 뭐든 간에 모조리 양측 포탄의 제물이 되었다.
그리고 서쪽은 험난한 산지가 이어졌다. 그러나 쿠르드족에게 산지 자체는 썩 그렇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험준한 지형에서 도가 튼 인간들이었던 탓이다.
그리고 이는 이란에 거주하던 쿠르드족에게 염원의 도시였다. 이는 본디 쿠르디스탄. 그러니까 이전 마하바드 공화국의 영토에 포함되지 않는 도시였다. 이곳은 이란의 고토이자 더 나아가면 이전 마하바드 공화국과 같이 소련에 의해 건국된 단 1년 동안 존재했던 국가인 아제르바이잔 인민 정부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전 마하바드 공화국의 국토는 실로 척박하기 짝이 없었다. 수자원도 절대적으로 모자랐고, 식량 자급자족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렇다고 땅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토질 이야기라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형이었다.
지난 마하바드 공화국은 국토의 태반이 황무지 산이었다. 나무는 그나마 약간 있는 수원을 따라서만 존재했고 녹색이 보이는 곳은 그나마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간한 농지였다.
이러한 영토가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의 욕심을 다 채워 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욕심이라고 하면 어감이 좀 그렇긴 하지만, 막말로 이런 허접하기 짝이 없는 황무지에서 나오는 천연자원과 세수로는 이곳에 있는 군대의 반의반도 유지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반의반 정도 되는 군대는 이란군의 보복을 절대로 막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추가적인 영토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리고 우르미아는 영토 확장 전쟁의 첫 번째 도시였다.
“이런 개 시발!”
호수 너머에서 우르미아의 시가지에 정말로 포탄이 쉴 틈 없이 날아왔다. 이란군의 무모한 소모전을 두고 무의미한 낭비라고 비웃던 일도 이젠 까마득한 기억이 되고 말았다.
민간인들을 방패로 내세울 생각이었던 작전도 시가지에 포탄이 무한정 떨어지기 시작할 때부터 모조리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진격하려면 호수를 돌아가야 하는데, 농업지대로 이루어진 개활지를 마주쳐야 했다.
이는 항공 전력과 기갑 전력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쿠르드 독립군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쿠르드족은 험준한 산에서 벌어지는 유격전이면 몰라도 개활지에서는 다소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반대로 만약 기갑 전력이 이란군을 상회했더라도 결과는 똑같았다. 개활지 주위가 호수를 빼면 온통 산맥이었고, 그 산맥은 이란군이 통제하고 있었다. 산맥에서 내려다본 개활지는 표적이 잘 보이는 평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 남은 건 그나마 북쪽 개활지 위에 있는 산맥이었는데, 문제는 그 산맥을 넘으려면 말 그대로 개고생해야 했다. 그나마 개고생해서라도 넘으면 다행인데, 그래 봤자 기다리고 있던 이란군에 당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들키지 않게 소규모로 움직이면 애당초 군을 움직이는 의미가 없잖은가.
정 뭣하면 정말 한 줌 남아 있는 공중 병력으로 시선이라도 붙잡은 다음에 민간이든 군용이든 박박 긁어모은 대규모 헬기 공수로 어떻게 후면이라도 쳐 볼까 싶다가도 이란군이 설치한 촘촘한 대공망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마음도 쏙 들어가게 했다.
그래서 버티기에 들어갔다. 잔뜩 움츠린 채 반격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결국 틈을 보일 터였다. 다소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실제 역사에서는 그런 식으로 이긴 사례가 심심찮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득하게 버틸 뿐이었다. 최악의 경우라도 이 우르미아만이라도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오늘따라 존나게 두들기네.”
그러나 당장 건물 지하에서 포탄의 묵직함을 진동으로나마 느끼고 있는 병사가 같은 감상일 턱이 없었다. 전선을 유지할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산에 주둔하거나 급조한 지하벙커나 건물 지하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군용 랜턴 하나에 의지하여 지하에서 살아가는 게 좋은 기분일 수는 없었다.
“이거 진짜 더럽게 맛없구먼.”
병사들이 먹는 식사는 모조리 해외에서 들여온 통조림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비싼 고체 연료가 있을 턱이 만무했고, 그렇다고 지하에서 불을 피울 수도 없었으므로 미지근한 통조림을 꾸역꾸역 퍼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산에 주둔하고 있는 이들도 사정은 비슷했는데, 연기를 피우면 위치가 발각되는 탓이었다. 그나마 만약 들키더라도 항공 전력을 처리할 수 있는 대공 무기가 남아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마저도 고고도에서 항공 폭탄을 떨어뜨리면 답이 없지만 말이다.
“안 먹을 거면 나 주든가.”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그런데도 별다른 불만이 없는 것은 이들이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탓이었다. 아직 나라가 성립되질 않았으니 애국심이라고 하면 좀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독립 의지로 똘똘 뭉쳐 있었다.
어쨌든 버티는 만큼 간간이 지하가 붕괴하는 바람에 장병들이 무의미하게 죽어 가고 개전 이래 가장 많은 쿠르드인의 피를 머금은 장소가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리어 쿠르드족에게 문제가 되는 곳은 이곳이 아니었다.
바로 동이라크였다. 동이라크는 쿠르드인에게 일찍이 땅을 약속했었다. 정확히는 EU한테 약속한 것이었지만, 결국 땅을 받고 운영할 이들이 쿠르드족이었으니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문제는 EU가 서이라크에서 전쟁을 치르고 서서히 철수하면서 동이라크에 대한 지원이 끊겼다는 것이었다.
동이라크는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기에 땅을 넘길 수 없다고 공표했고, 쿠르드족은 이에 반발하여 또 하나의 전선이 만들어졌다. 이때 이란이 동이라크와 손을 잡고 쿠르드족을 공격했다면 더 효율적이었겠지만, 문제는 이란과 동이라크도 별로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동이라크가 신봉하는 자신들 입맛대로 뜯어고친 이슬람 원리주의는 이란의 시점으로 보면 완전히 정신 나간 사이비 교리였다. 상식적으로 그런 국가와 공동전선을 펼칠 리가 없잖은가?
게다가 이란은 이란 나름대로 자신들의 힘만으로 쿠르드족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여기서 동이라크가 쿠르드족을 갈구는 건 달라지는 건 없으니, 결국에는 손이 부족한 쿠르드족이 수세에 몰렸을 터였지만, 문제는 이 동이라크. 하필 동시기에 쿠웨이트와 시비가 걸리고 말았다.
쿠웨이트는 당시 미국-러시아-사우디 석유 전쟁에서 직격타를 맞아 국방비를 대규모로 감축한 국가 중 하나였는데, 하필 동이라크와 완벽하게 접경해 있었다. 개전 사유는 정말로 그게 전부였다. 태생 자체가 테러리스트들의 소굴이다 보니 ‘성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쟁을 결의할 수 있었다.
군대가 반쯤 해체 당하다시피 한 서이라크는 동이라크를 공격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고 사우디는 동이라크를 견제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쿠웨이트를 도와 전쟁을 할 의지는 없었다.
이를 방관하고 있던 미국은 동이라크의 침략 전쟁을 비난하고 페르시아만에 대기 중이던 항모전단에 명령을 내려 동이라크를 폭격하기에 이르렀다.
실상은 쿠르드족을 통한 이란 견제 및 영향력 깎아 먹기가 1순위였고, 동이라크의 쿠웨이트 침략은 뒷전이었지만, 마침 동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략하면서 동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문제는 그 미국의 대통령이 이라크에 별로 좋은 기억을 지니고 있지 않았던 조지 W. 부시였던 탓에 전쟁의 부담을 어떻게든 줄여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입이 늘어나면 다시 이라크가 개판이 될 것을 우려하여 어떻게든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든 국가를 몇몇 꼽았다.
그중에서 아프가니스탄과 대한민국에 파병 요청을 넣었고, 대한민국 대통령 집무실에서 현원섭이 입에 게거품을 물게 된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