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6)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5화(36/377)
< 35편 >
한국의 전통 음식은 기본적으로 일제 강점기 전후로 나뉘게 된다. 정확히는 ‘궁중음식’에 한정하는 거지만, 현대 한식의 범주는 궁중음식연구원의 연구에서 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썩 차이는 없으리라.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종과 순종을 모셨던 한희순 상궁의 후계자인 황혜성 선생께서 정립하신 것이 현대 궁중음식의 기틀이다. 다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현대에 정립된 궁중음식이 진짜 궁중음식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의문을 제기하는 측에서 충분한 권위를 가지지 못하여 그다지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국밥은 이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음식이었다. 누구의 손에서부터 태어났는지는 불명이나, 기원이 근대인지라 그 근원이 명백했다. 물론 국에다 밥 만다는 의미에서는 족히 수천 년은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외식 개념을 가지고 탕과 밥을 제공하는 것은 확실히 조선 후기다.
그러니까 요점이 뭐냐면.
‘쯧쯧! 그런 거 생각할 시간에 뜨듯한 국밥 한 번 더 먹지!’
경호원들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양인인지라 아무리 감춰도 눈에 튀기 마련인데, 떡대까지 대동하고 다니니, ‘여러분! 바로 여기에 미합중국의 대통령님께서 있습니다!’라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아웃테리어는 차마 같다곤 할 수 없으나, 인테리어는 몹시 친숙했고. 실내를 가득 채운 국밥 냄새는 향수를 자극했다. 다만 할머니가 18년이나 회춘해서 아주머니가 되어 있는 건 참으로 어색한 일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람 말고는 바뀌는 게 없다고 봐도 좋겠지.
‘전통이라더니, 진짜 바꾼 게 하나도 없네.’
“뭐여, 양놈이여?”
국밥집이 있는 곳이 상당히 후미진 곳인지라, 외국인은 거의 오지 않았다. 다만 2019년에는 이 후미진 골목 바로 근처에 재개발의 열풍이 불어 인구 유동량이 많아졌는데, 이 때문에 종종 입소문을 타고 외국인도 찾아오곤 했다. 여기가 바로 숨겨진 맛집이다. 맛집.
“아주머니 설렁탕 하나요.”
‘이 순간 나는 조지 W. 부시가 아니다. 국밥을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한 마리 고독한 하이에나다.’
그러니까 여기선 한국어 좀 써도 상관없지 않겠는가?
“어이구, 양놈이 뭐 이렇게 우리 말을 잘혀?”
그러나 젊어졌다고 해도 18년, 아주머니라고 칭하지만, 그 나이는 중년의 노련함이 완숙에 닿을 무렵이었다. 아주머니는 짐짓 놀란 듯 투덜거리면서도 손은 솔직하여 제멋대로 설렁탕을 준비하고 있었다.
넓은 집도 아니면서 설렁탕 나오는데 10분 이상 걸리면 그 집은 문제가 있는 집이다. 모든 것이 5분 안에 준비되었고 설렁탕이 담긴 뚝배기와 석박지가 부시의 상 위로 올라왔다. 그는 국밥을 먹을 때 깍두기보다는 석박지를 선호했는데, 깍두기보다 석박지가 아삭하고 씹는 맛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번 생각 없이 좋다고 먹었는데,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건너 만나게 되니 과연 눈처럼 희고 진한 국물이라 하여 설농탕(雪濃湯)이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무작정 뇌에서만 요구하던 것이 위장에서 실질적으로 식사를 요구하고 있었다. 야식이라고 쳐도 괜찮겠지.
‘소금은 3번, 다대기는 뿌리지 않는다.’
무작정 다대기를 뿌리지 않겠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도리어 그는 적극적으로 다대기를 뿌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 집의 설렁탕 국물만큼은 특별했다. 아니! 이 국물은 특별 취급해야만 마땅한 맛이었다!
그는 드디어 그렇게나 고대하던 첫 숟갈을 입에 넣을 수 있었다. 국물이 만들어낸 사골 공식의 정수가 미뢰에 스며들어 전기신호로 변해 온몸으로 나아가 화학반응을 극한으로 끌어냈다.
‘크어어, Fuck Yeah!’
언젠가 인터넷에서 외국인에게 국밥을 만들어줬더니 온갖 국밥용 감탄사를 내뱉었다고 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인터넷 썰이었지만, 부시는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 믿고 있었다.
이 푸짐한 양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가만, 지금이 옛날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푸짐함이 미래영겁 불변한다는 말이 맞겠구나! 가격은 고작 2,000원에 국물부터 고기까지 뭐든지 푸짐했다. 당연하겠지만, 이 가격은 지금 저 아주머니가 건물주라서 나올 수 있는 가격이었다.
‘특히 이 소면! 젓가락으로 휘휘 말아 올려 끊지 않고 단숨에!’
국물과 함께 꿀렁꿀렁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지나가는 길마다 감칠맛으로 맛의 자취를 남겼다. 여운은 시큼 새콤한 석박지가 들어올 때까지 도저히 가시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몇 번 휘휘 저어보았으나, 그 한 번의 젓가락질에 소면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로 슬플 뿐이었다.
“이 양반이 한국어만 유창하고 먹을 줄을 모르네, 설렁탕은 밥하고 같이 먹는 겨!”
‘그래, 맞아!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해! 당연히 밥하고 먹는 거지!’
소면을 음미하는데 완벽히 몰두하는 바람에 잊고 있었다. 마치 그 뿌연 국물을 보고 있자니, 설렁탕에서 ‘뭘 기다리고 있는 거야? 어서 말아줘!’라는 환청이 들려올 정도였다.
밥이 말린 설렁탕은 푸짐하지만, 어딘가 몹시 빈약해 보였다.
‘소면을 아주 약간만이라도 남겨 둘걸! 내가 다 망쳤구나!’
물론 지갑이 얇은 것도 아니었고 그깟 설렁한 한 그릇 더. 아니, 모조리! 사들여버릴까? 아예, 입도 뻥긋 못하게 가게를 사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야 의미가 없었다. 추울 때 먹어야 할 음식이 있으며, 더울 때 먹으면 제격인 음식이 있듯 그는 이렇게 먹어야만 의미가 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속담이 있듯 음식이란 먹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오로지 공깃밥만이 그 지엄하고 장엄한 규칙에서 면책 특권을 가지리라.
“아줌마.”
부시는 배가 고픕니다.
“여기 밥 한 공기만 더 줘요.”
* * *
“허?”
조지 부시의 탈을 쓴 사내가 설렁탕 찬가를 열창하는 동안 장쩌민은 거의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있었다. 북한이 핵실험 준비에 들어갔다는 소식이었다. 이거야 뭐 새롭지 않다. 핵실험 관련은 매번 첩보를 통해서 들려오는 정보였기 때문에 아주 새삼스러운 소식이라 할 수 있었다. 애당초 핵 개발을 도와준 게 중국하고 러시아였으니, 이 통보는 학생이 부모한테 들이미는 성적표 같은 것이었다.
다만 이번만큼은 그 강도가 궤를 달리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핵미사일 개발에 외화를 탈탈 털어 넣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내부까지 싹싹 비워서 핵에 투자할 모양이었다.
‘원자핵이 분열하는 모양에서 광명이라도 찾은 모양이지?’
장쩌민은 내심 김정일을 비웃었다.
김일성은 몰라도 김정일은 중국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중국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었다. 사실 김일성 본인도 중국을 썩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1956년 8월에 대대적인 숙청을 거행, 도서정리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분서갱유를 일으키고 끝끝내 주체사상을 배포하여 북한을 김씨 일가의 왕국임을 선포했다.
숙청에서 친중, 친러 인사들이 대거 사라지긴 했으나, 정말로 다 죽었을 리가 없잖은가. 다 죽었더라도 중국의 덩치가 워낙 커야지. 북한은 대외교역액의 9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설령 지금 당장 중국이 반 토막 난다고 하더라도 북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나라는 언제나 중국이기에 의존도에 변함은 없으리라. 의존도의 변동이 없다는 것은 결국 투사되는 영향력에서도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여전히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
“옳거니! 바로 그것이로구나!”
저 미국의 미친 카우보이 놈이 전투기를 타고 남한으로 날아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렷다! 장쩌민의 머릿속에 낀 안개 사이로 광명에 보이는 듯했다.
그동안 퍼즐 조각이 실체를 갖추지 아니하여 끼워 맞추지조차 못하고 석병팔진에 들어온 육손과도 같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을 반복하며 무의미하게 심력만 소모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황승언이 장쩌민을 향해 미소지으사 해법을 사사하셨다.
“이놈이 바로 내 두통의 원인이렷다!”
기어코 단전으로부터 올라온 뜨거운 화기가 뇌 속에 침투하여 반쯤 돌아버린 장쩌민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 여파로 책상에서 온갖 값비싼 기물이 쏟아져 내렸지만, 장쩌민은 전혀 개의치 아니하였다.
“할 거면 성공할 때까지는 숨기던가! 왜 경거망동하여 이 몸의 편두통을 증가시키느냐 이 미련한 핵쟁이놈아!”
핵을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도리어 북한이 하루라도 빨리 우수한 비대칭 전력을 보유했으면 소원이 없으리라. 그래야만 비로소 이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출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것도 시국을 봐가면서 해야지!’
지금이 어떤 시국인가? 세계의 질서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광증 걸린 대통령이 올라가는 바람에 미쳐 돌아가고 있었고, 중동은 신냉전인지 열전인지 모를 것이 시작되어 러시아와 유럽이 혼돈의 도가니 안으로 사이좋게 고개를 들이밀었으며, 동아시아는 언제나 그렇듯 세계의 화약고의 소임을 다해내고 있었다.
세계의 화약고가 왜 화약고겠는가? 잘못 건들면 터지는 게 화약이라서 화약고라고 부르는 거지. 화약고에 불이 붙지 않으려면 서로 엄청난 행정력과 외교력을 투사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저 정신 나간 카우보이가 화약고에서 불장난을 치고 있었다.
‘쯧, 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예전처럼 중원에 귀속되면 끝날 문제를. 중국에 천명이 있던 시절은 이렇지 않았어. 날뛰는 건 언제나 북쪽 오랑캐 정도였지.’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화로웠던 좋은 시절이 있었다. 물론 중국인한테만 평화로웠던 시절이긴 하다만. 적어도 천하를 중화로 한정하고 그 외의 것들을 오랑캐로 취급하던 시절엔 외교 문제로 끙끙댈 필요가 없었다. 무슨 개소리가 들려오더라도 ‘그래서 뭐?’로 끝낼 수 있었으니까.
그 오만방자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오만은 자격이 있는 오만이었다. 그러다 문뜩 그 모습이 지금의 미국과 묘하게 겹쳐 장쩌민은 속이 절로 씁쓸해짐을 느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어쩐다.”
한껏 푸념을 떨어봤으니 이제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늦추라고 해도 이미 늦었는데. 차라리 가속 시켜볼까?’
그러나 장쩌민은 이를 금세 부정했다. 그랬다가는 정말로 답이 없어진다. 미국이 작정하고 북한을 조지기 시작하면 아직 체급이 한 단계 낮은 중국은 정면에서 승산이 없었다. 물론 중국이 핵보유국인 만큼 정면 싸움은 확실히 피해가겠지만, 무역전쟁 정도는 하겠지.
단기적인 무역전쟁이면 모를까. 장기전으로 들어가면 중국은 최소 10년 전으로 퇴보하리라. 아니면 전혀 나아가질 못하거나 말이다. 차라리 1, 20년 정도 뒤였다면 무역 부분에서도 개겨보기라도 하겠는데. 지금 수준으로는 그게 전혀 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방치를 하자니, 그것 또한 문제란 말이지.’
아이러니하게도 장쩌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의문으로 만들어낸 감옥 속에서 질문만을 되풀이했다. 다만 최초와는 다르게 제대로 된 질문과 명확한 방향성이 있었기 때문에 장쩌민은 결국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는 해답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냥 말뿐만인 비핵화를 지지하면 그만이 아닌가?’
실로 재미있게도 장쩌민이 내놓은 해법은 2019년 당시 중국이 내놓은 해법과 꼭 닮은 것이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들 하지만, 이리도 같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 바로 이거야!”
이 무렵 ‘그’는 국밥에 이어 수육까지 먹방을 찍다가 그만 뒤늦게 찾아온 과식 복통으로 인해 호텔 방에서 소화제를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