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364)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63화(364/377)
< 363편 >
부시의 마지막 임기를 마치고 2009년으로 가는 길. 그 길은 너무나도 험난했다.
유럽은 인종 갈등의 장이 되었다. 사실 갈등의 장이 되었다기보다는 차라리 그 시절로 회귀했다는 말이 더 맞았다. 다만 예전에는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저급하고 하등에 기원한 혐오감의 표출이었다면, 현재는 완벽하게 자신의 터를 빼앗으러 온 침략자들에게 느끼는 혐오감이 이를 대체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조용히 화약을 비축하고 있었다. 특히 북쪽에서 열심히 비축하고 있었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미국이라는 거인이 자리를 뜨면 그때가 화약에 불이 붙는 순간이다. 물론 그런 순간은 적어도 10년 사이에는 절대 오지 않을 터였다. 이미 아프리카에 이것저것 다방면으로 반석을 세운 미국이 자리를 뜨는 순간은 미국이 무너지는 순간 정도일 테니까 말이다.
동아시아는 고요하고 또 조용하다.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대국들이 있는 지역인 만큼 분쟁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마치 젖은 화약과도 같았다. 이것이 마르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당분간은 당장 지구를 향해서 거대한 운석이 날아오는 사건이 터지지 하지 않는 한 평온할 터였다.
그러나 미국이 바쁘게 돌아가는 것과는 별개로 정작 이 세계를 만들어 낸 장본인인 부시는 본인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한가했다.
‘올라올 만한 보고가 없다인가. 으음…….’
부시는 원 역사에서 그가 망한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인 ‘사람을 보는 눈 없음.’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지만, 이내 그건 아니라고 부정했다. 부시 자신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경험론에 의한 것이었다.
만약 아래에서 대통령의 눈을 가리고 있다면 이것보다는 시끄러워야 정상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적어도 대통령을 조지지 못해서 안달이 난 언론만큼은 묘하다 싶은 꼬투리만 잡아도 세상이 떠나가라 이게 죄다 대통령 때문이라고 합창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더는 구르기 싫어서 웬만한 일은 여기까지 올라오기 전에 빠릿빠릿하게 처리하고 서로 쉬쉬하고 있는 거구먼.’
물론 언론 이미지가 박살이 나 버린 지 오래라서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여하간 하도 심심해서 쓸모없는 서류로 종이비행기라도 접어 볼까 싶었지만, 이내 그만뒀다.
일이라도 만들어 볼까 싶었지만, 이미 해결하지 못할 ‘거대한 시대의 흐름’ 그 자체가 모조리 휩쓸어 버리고 있는 상황에서 뭘 더 만들어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댐으로 막을 생각도 없었다. 막기에는 시간이 모자란 탓도 있지만, 댐이란 게 마구잡이로 지으면 터지는 법이다. 충분한 준비가 없다면 목숨이라도 걸어서 급류를 탈 생각을 해야지 거스르거나 막을 생각을 하면 이야기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부시가 휘두르는 힘과 그 기반이 되는 미국은 강대하다. 이 시대 그 자체이기 때문에 물길을 바꿀 수도 있고 막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거야 뒷감당을 온전히 부시가 질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 않은가. 물길을 함부로 바꾸면 환경이 파괴되는 법이다. 시대의 흐름도 같다. 함부로 바꾸다간 주변이 모조리 파괴될 것이다.
무엇보다 여기서 뭘 더 저질러 놓으면 후임 대통령에게 미안하지 않은가.
‘그럼 내부로 눈을 돌리……자니 좀 그렇군.’
그동안 부시가 내부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미국 내부의 관심과 불만을 외부로 모조리 돌려 버리는 방법으로 해결해 왔을 뿐이었다. 내부까지 본격적으로 손보려고 하면 미국 자체를 한 번 부숴 버리지 않으면 방법이 없기도 했지만, 막상 손을 보려고 해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정말로 아무것도 없냐고 물으면 그게 또 애매한 것이 존재하긴 했다. 정확히는 막판의 막판에 할 수 있는 사업이었고 벼르고 또 벼르고 있었던 게.
‘으음, 단위계라.’
그렇다. 도중에는 정권의 인기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었지만, 이렇게 막판이 되면 못할 것도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는 사고는 전부 치고 내려갈 생각이었다. 후임이 좀 버겁겠지만 이것 하나 감당할 수 없다면 애당초 이 자리에 올라와서는 아니 되었다.
“비서실장.”
“예.”
“내가 단위계를 미터법으로 바꾼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
“어떻긴요. 무수한 반발이 일어날 겁니다. 그야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추진한다고 해도 민간 차원에서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할 겁니다. 자유를 침해한다느니 뭐니 그런 말도 어지간히 나올 거고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다. 바꿔야 할 목록을 최대한 간결하게 가장 작은 폰트로 빽빽하게 깜지를 써도 서류로 두껍디두꺼운 샌드위치 하나를 완성할 수 있다. 그리고 바꿔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대기 시작하면 그렇지 않아도 저 무식한 저 두께에 곱절의 곱절에 곱절을 더해도 모자랄 터였다. 이 거대한 아메리카 땅에 사는 미국 시민 전체가 입이다. 당연히 바꿔야 할 이유보다는 바꾸지 말아야 할 이유가 많을 수밖에 없다.
반면 바꿔야 할 이유는 아주 간결했다. ‘더 정확하다.’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이 정의되었다.
“그런데 진짜로 하실 겁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무리 생각해도 남은 1년 동안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무슨 당연한 말을 하고 있나. 아무리 내가 날고 기어도 1년 사이에 단위계를 바꿔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사실 방법이 딱 하나 있긴 있다. 정말로 그 천문학적인 금액을 어디선가 끌어와서 모조리 바꿔 버리는 거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다. 그 뒷감당이 안 되는 게 문제지. 그렇게 하면 미국 단위계는 미터법으로 통일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감당할 거였다면 했겠지.’
그렇다. 반대로 고스란히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저질렀을 터였다. 이것도 방법이 정말로 없는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부시의 뇌리에 ‘3선’이라는 글자가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무시했다.
정말로 작정하고 종신 대통령이라도 해 보려 했다면 초창기 때부터 열심히 그쪽으로 방향성을 잡아 뒀어야 했다. 물론 만약 그럴 생각이 들었더라도 당시 그 서류들을 탐닉하고 있으면 저절로 ‘절대로 하기 싫다!’라면서 중간에 방향성을 바꿔 버렸을 터였지만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차피 토대 정도야. 나머지는 후임이 알아서 하겠지.”
“왠지 대통령님답지 않은 무책임한 말투군요.”
“나라고 만능이겠는가? 내가 다른 나라에서 대통령 했으면 도중에 쫓겨났을 거야.”
부시가 낄낄거리면서 농담조로 말했지만 이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부시가 초기부터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대통령 권한. 그리고 미국이라는 국가가 유례고 나발이고 동서고금을 모조리 따져 봐도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극초강대국이라는 신개념마저 적용해야 할 정도로 강력한 국가인 덕분이었다.
부시가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도 다른 나라의 대통령이었다면 그 나라의 운명만을 좌우할 수 있었을 뿐 세계 그 자체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을 터였다. 부시의 방식대로라면 다른 나라의 경우 고난이 예상되어 있었을 텐데, 더욱이 국민의 감정을 신경 써야 하는 현대 정치의 특성상 대통령이나 총리라는 자리를 보전하고 있기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까운 난이도를 자랑했을 터였다.
“그래, 단위계. 이게 내가 정한 내 마지막 업적이야. 이걸로 1년 전부 소진할 걸세.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아마 노벨상 하나를 더 받을지도 모르겠군.”
딱히 못 받아도 상관은 없지만. 부시는 그렇게 말을 덧붙이며 커피를 마셔 댔다. 예전에 에스프레소로 몸의 축제를 벌이고 난 이후로 마셔 본 적이 거의 없던 커피였으나, 역시 카페인. 아니나 다를까 몸에 들어가자마자 나이를 모르는 노익장과도 같이 잠들어 있던 생기가 난동을 부렸다.
아니, 노익장이 맞긴 맞았다. 요즘이야 62세면 아슬아슬하게 중년이지만 고대나 중세 기준이면 당장 오늘내일해도 이상하지 않은 노인이다. 사실 요즘으로 쳐도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딱 그런 시기였으니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어디 시작해 보자고.”
부시가 임기 내내 괴롭혀 왔던 단위계를 확실하고 철저하게 박살 내기로 하고 나서 첫 번째로 한 일은 언제나 했던 일인 서류 긁어모으기였다. 더 정확히는 위에서 말한 그 ‘깜지’를 정독하는 일이었다.
이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답잖은 이유부터 중대사까지 나눠 놓긴 했지만, 의외로 시답잖은 이유가 중대한 이유가 될 수도 있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민간에서 사용하는 건 대부분 야드파운드법과 미터법 두 단위계를 이중으로 적어 놨다는 정도였는데, 반대로 말하자면 그게 전부였다.
막말로 어디 촌 동네 농부 스미스가 사는 집에 쓰인 작은 볼트부터 농기구까지 모조리 인치 규격을 사용하고 있으니 이것까지 엎어 버려야만 했다. 이건 단기로 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점차 갈아엎어야 하는 대사업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그 근간이 되는 법부터 바꿔야 했다.
‘그래도 각 주에서 어떻게든 미터법을 사용하려고 발악한 기록은 그대로 남아 있단 말이지.’
예를 들면 대표적으로 의회에서 나온 ‘미터법 전환령’ 같은 게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 강력한 게 필요했다. 예를 들면 모든 표기를 미터법으로만 강제하는 기업을 상대로 한 규제나, 정말로 미국 사회 전반을 전부 갈아엎는 그런 강력한 무언가 말이다.
물론 하나같이 미국에서는 들고일어날 만한 것들이었다. 우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실생활에 불편함이 없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실생활에 고질적인 문제라도 있으면 국민을 설득하는 게 쉬울 텐데, 막상 국민은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없으니 이것이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이 국제를 주도하고 있으니 도리어 다른 나라가 미국을 따라야 하지 않겠냐면서 미터법 반대자들이 설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설득은 더욱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설득이 아니라 강요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미터협약에 가입해 놓고도 국내에서는 야드파운드를 쓴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가장 먼저 밀어붙일 명분은 이것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요즘 한참 뜨거운 감자인 국방 같은 것도 있었다. 사실 국방의 경우에는 이미 미터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무인기 같은 경우에도 철저히 미터법의 가호 아래 제작되었으며 인치 규격을 따르던 미사일의 규격이 미터법으로 바뀌었다.
그렇지 않아도 3선에 나서지 않아 약해질 권력이 더 약해질 터였지만, 알게 뭔가. 부시는 이 빌어먹을 권력이라는 것과 더는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다. 무슨 농장에 텃밭 일구고 살아가는 소소한 삶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대부분 다 할 수 있는 돈이 있었다.
‘뭐 어때. 막판에 화려하게 지고 가지, 뭐.’
원래 뒤가 없는 인간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기반으로 한 축재이자 축제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