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40)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39화(40/377)
< 39편 >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의 제안을 관대히 받아들여 우리 민족의 평화를 위해 판문점으로 직접 내려간다고 말씀하시었다.」
북측에서 뉴스가 나온 건 방송이 나가고 채 1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물론 정식 성명 자체는 뉴스보다 10분 먼저 들어왔지만. 북한이 다른 건 몰라도 대응 하나는 빠른 동네 아닌가?
북한이 다른 국가보다 결정을 빠르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전제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을 들으면 우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며 길길이 날뛰겠지만, 찬반투표도 아니고 찬성투표를 하는 곳을 공화정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게 선거군주제지 어디가 공화정이란 말인가? 하물며 선거군주제는 진짜 찬반투표라도 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김정일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아무리 보좌진이 어르고 달래도 ‘조까!’가 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따라서 이건 기적이었다. 강철과 폭탄으로 협박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기적이었지만, 알게 뭔가. 총 든 사람이 기적이라는데. 기적이라면 기적이지.
그래서 그 기적의 삼자 회담을 이뤄낸 조지 W. 부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 하면.
‘이 새끼가?’
한국에서의 일정은 1박 2일이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2박 3일. 일본도 본래는 1박 2일이었으나, 일본 측에서 강하게 나왔다. 일본 로비스트 영향이 썩 낮은 편도 아니라서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까, 자연스레 2박 3일로 일정이 잡히고 말았다.
덕분에 한국에서 더는 없던 일정을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본래라면 2시 즈음에 에어 포스 원을 타고 일본으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전투기 말고 SAM 27000말이다.
말을 부시가 먼저 꺼낸 이상, 내일 내려온다고 하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이제 일본 일정이 밀린다. 일본에 영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부시였지만, 일단은 국가적 약속을 깬다는 건 아무리 부시라고 해도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대를 위해서 소가 희생해야지. 한반도 평화만 이룩해도 국방비나 행정력을 크게 아낄 수 있었다.
물론 동아시아에는 여전히 중국이나 러시아가 있었기 때문에,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을 철수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북한은 덜 신경 쓸 수 있지 않겠는가? 당장 핵 때문에 북한에 돌리고 있는 군사 위성만 몇 개인데?
‘통일을 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건 무리겠지.’
적어도 남북통일은 부시 생전에 벌어질 일이 아니었다. 북한이나 남한. 둘 중 하나의 체제가 완벽하게 개작살 난다면 또 모를까. 두 체제가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 이상 부시 생전에 평화통일은 요원한 일이었다.
“오늘은 그럼 자대나 한 번 가볼까?”
자대. 즉, 김갑환이 전역한 그 부대를 말함이다. 김갑환이 2002년에 입대했으니, 그 부대에 있는 사람들은 김갑환과 청춘을 함께 했던 선임들과 중대장. 그리고 소대장이 아닌가?
아마 나비 효과로 바뀐 게 없다면 부대도 기억에 남아 있는 그대로겠지. DMZ는 김갑환의 20대 초반을 묻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올드보이 흉내 낸답시고 황금마차에서 만두만 배 터지게 먹이던 개말년, 단독군장에 위장크림 바르고 시키고 중대 전체 잡초 뽑게 시켰던 중대장에, 허구한 날 단체 기합 주던 소대장이 있는 부대가 있단 말이지?
물론 하나하나 건들면 내정간섭이지만, DMZ 시찰 정도는 미국 대통령 누구나 하는 거 아닌가?
‘응? 그렇지?’
양병장. 아니, 양이병. 비질 한 번 조빠지게 해보라지.
* * *
“이런 니미. 도대체 재들 뭘 하길래 저래 흙먼지 날리도록 날래날래 움직이네, 그래?”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나? 그렇지 않아도 총체적 전투 의지네 뭐네 하면서 요즘 배급이 더 줄어들었는데.”
‘미친 척하고 저기로 뛰어 가볼까?’라는 말은 목구멍 뒤로 삼켰다. 최전방 유일한 장점이 배급량이 그나마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었는데. 고난의 행군을 기점으로 점점 줄더니, 이젠 무도 없이 밥만 먹으란다. 그냥 밥도 아니고 강냉이가 절반이요, 옥수수가 절반이었다.
강냉이가 옥수수 낱알을 뜻하는 단어 아니냐고? 맞다. 그러니까 옥수수만 먹는다 이거다. 그래도 이쪽은 사정이 좀 나아서 감자밭을 만들어 실탄으로 무장한 하전사들이 지키곤 있었지만, 그래도 훔치러 오는 주민이나 야생동물을 다 막을 수가 없었다.
하긴 야생동물이면 그나마 났긴 했다. 그래도 고기가 아닌가? 간부들이 다 처먹어서 그렇지 남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비록 그것이 뼈에 달라붙은 실금만 한 살코기라고 하더라도 고기는 고기였다. 그 뼈로 육수를 끓여서 마실 수도 있었고 말이다.
물론 옥수수만 먹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최전방에도 쌀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거의 자체 보급하던 걸 이젠 정말로 자체 보급하게 되었을 뿐이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최전방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확실히 해두지만, 평양을 제외하면 최전방은 언제나 최우선 보급이 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최전방이 강냉이만 죽어라 퍼먹고 있다면 다른 곳에서는 먹고 있는 게 강냉이일지 길바닥 잡초에 달린 풀뿌리일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이는 ‘핵무기! 절대 다시 핵무기!’라면서 김정일의 눈이 돌아간 탓에 생긴 일이었지만, 그들이 알 턱이 없었다.
“밥이라도 양껏 주면 백날 서 있는 거 문제도 아니디.”
“거, 9년 전에 그나마 백김치에 조밥 나올 때도 근무 중에 건들거리던 아새끼가 어딜 아가리를 터니? 지랄이 염원이 되어 하늘에 닿겠다. 야.”
그 말을 들은 사내가 화를 낼까 하다. 이내 힘이 빠졌다. 화도 먹은 게 있어야 열량이 몸에 돌아 화를 내지.
“고저, 근데 저 아새끼들 진짜 뭐하는 거람?”
* * *
“염병, 대통령도 그냥 대통령이 아니라, 쌍봉 대통령이여.”
선진병영도 아닌 시절에 당장 내일 전역하는 (진) 민간인까지 작업에 끌려 나왔다는 건, 정말로 부대에 그냥 비상도 아니고 초가 몇 개가 붙어도 모자란 미증유의 비상경보가 걸렸다는 말이었다.
부대에 주어진 시간은 단 4시간! 옆 부대까지 빌려서 잡초란 잡초, 낙엽이라는 낙엽은 싹 쓸어버리고, 그동안 애매하다고 미루었던 가지는 죄다 쳐버렸다. 당연히 군화는 얼굴이 비치도록 닦았고, 부대 창고 안에서 앞으로 근 20년은 나올 일 없을 것만 같았던 새 장비들이 보급되었다.
DMZ가 북한에 바로 접경해 있는 만큼 새로운 장비들이 팍팍 보급되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군대인데 하자가 전혀 없을 리가 없었다. A급도 아니라 아예 새것으로 바뀐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 시찰이 지나가면 다시 빛도 안 들어오는 보급 창고로 돌아가리란 사실은 안 봐도 뻔했다.
“시발! 시발! 야! 김지훈! 개새끼야! 너 때문이잖아!”
덕분에 애꿎은 동명이인 상꺽만 더럽게 까였다. 물론 마음이야 ‘아니, 시발. 김뱀! 그게 대체 왜 저 때문입니까!’라면서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당장 내일 전역해야 하는 사람 머리가 신병만도 못한 빡빡머리로 변한 걸 보고 있자니 도저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 시바알! 시발! 시발! 시발! 김지훈 개새끼! 부시 개새끼!”
저 멀리서 신 병장의 시발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지만, 아무도 제지할 생각이 없었다. 광기에 물들어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신 병장에게 큰 화를 입을까 두려운 탓도 있었지만, 그럴 시간에 잡초 한 번 더 뽑고 삽질 한 번 더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발 존나 시끄럽네. 야! 저 새끼 저거 왜 저러냐?”
“신 병장 오늘 휴가였잖습니까. 원래 오늘 여자친구랑 데이트였답니다. 아마 이번에 못 나가면 깨진다고 씩씩거렸잖습니까. 그래서 저번에 기껏 교대로 내려갔는데, 지금 다시 올라온 거 아닙니까.”
아, 그렇구나. 하고 김 말년은 입을 다물었다.
“시발. 야, GOP에 이렇게 사람 많은 적 있었냐?”
“아마 6.25 이후로는 없을 검다.”
여기저기서 차출된 병사들이 무슨 중공군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잡초를 제거하고 있었다. 계급도 이병부터 병장. 병종도 헌병부터 PX병까지 아주 다종다양했는데, 그보다 더 다양한 건 병사의 상태였다.
의무대에 누워 있어야 할 놈까지 동원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물론 팔다리 부러진 사람은 아니었고 가벼운 감기나, 급체 등 속이 안 좋은 병사들이었다. 물론 서너 시간짜리 작업이라서 일단 되는대로 인력을 끌어모으고 본 것이리라.
본래라면 이렇게까지 호들갑 떨 일은 결단코 아니었다. 그냥 전날부터 철저히 하면 그만이니까. GP나 GOP야 하도 높으신 분이 자주 오시니까, 간부 사이에는 따로 전용 매뉴얼이 있을 지경이었다.
문제는 없던 일정이 갑자기 연옥에서 기어 올라와서 그렇지.
“이야, 시발 군대가 참으로 신기한 곳 아니냐. 어떻게 시발! 입에서 시발이! 안 떠나가냐!”
“와, 김뱀 저거 보십쇼. 대대장이 삽질하는 거 처음 봅니다.”
“허허, 이런 시발. 내가 전역하기 전에 별꼴을 다 보는구나.”
김 말년의 입에선 마지막 작업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시발이 빠지지 않았다.
* * *
‘추억이군.’
다 태워버리고 싶은 불꽃 같은 추억 말이다.
경사 높아서 조까치 타기 힘들었고 선임 때문에 더욱 개 같았던 고지. 그 좆같은 고지의 능선을 따라 서 있는 철책. 그 철책마다 걸려 있던 순찰패에는 GOP 병사의 얼이 담겨 있었다.
순찰패라 함은 한 면은 붉은색이오, 한 면은 흰색이라 밤에는 흰색으로 뒤집고 낮에는 빨간색으로 뒤집는 패인데. 공식적으로는 철장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용도요, 실상은 병사들이 뺑끼를 쳤느냐 안 쳤느냐 확인하는 용도였다. 이등병은 뒤집는 것만으로 한세월이 걸리지만, 상병장은 지나가면 이미 뒤집혀 있는 물건이다.
그러나 뺑끼를 까도 열 받는 건 대대장이지 병사가 아닌지라, CCTV로 다 보고 있음에도 묵인하곤 했다.
‘정말로 바뀐 게 하나도 없군!’
아예 바뀌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고, 세세한 곳에서 틀리기는 했다. 물론 황당할 정도로 깔끔하다는 점은 주목할 법했다. 부시는 이 맛에 잡초 뽑으라 하는 모양이라며 몹시 만족했다.
‘오늘따라 별이 참 많군.’
물론 해가 중천이었는데 어찌 별이 보이느냐 했냐면, 주변에 별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성, 이성 건너뛰고 삼성부터 시작했는데. 그중 정점은 손가락질만으로 산이 아니라 산맥 허리도 끊어놓을 수 있는 4개짜리 별이었다.
“허허, 참으로 훌륭합니다.”
김지훈 대통령이 말문을 텄다. 뭐가 훌륭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깔끔한 GOP는 훌륭한 게 맞았다. 문제는 이 훌륭함에 갈려 나간 병사들이었지. 사실 장병이라는 표현이 옳았다. 병사만 갈린 게 아니라 장교도 갈려 나갔으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반면 부시는 무덤덤했다. 군대를 전역한 이후로는 북쪽은 다시 보지도 않기로 굳세게 결심하고 살아왔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형태로 돌아오니 해탈할 것 같았다. 본인이 찾아오긴 했다지만, 청춘의 일부를 강제로 바쳐야 했던 곳이니 더더욱 그러했다.
부시는 고지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입에서 김갑환 현역 시절처럼 시발이 나오려는 것을 참아야 했다. 남들은 힘들어 욕도 안 나온다고 하지만, 나올 사람은 나오는 법이다. 물론 선임 앞에서는 자제했지만.
쌍안경을 들어 북한 측을 보았는데, 이럴 수가. 이제 보니까 북쪽은 더욱더 익숙했다. 한 번도 디뎌본 적 없는 북쪽이 왜 익숙 하느냐 하면, 사람이 그대로지 않은가.
‘허허, 저 아저씨는 그대로네.’
얼굴은 몰랐지만, 태도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적의 수괴가 보고 있다고 뻣뻣하게 서 있었지만, 저 숨길 수 없는 건들거리는 태도는 그 껄렁거리는 북한군 아저씨가 확실했다. 김갑환도 자주 본 건 아니었고 어쩌다가 손에 소대장이 들고 다니는 쌍안경에 들어와서 재미 삼아 본 게 전부였다. 심지어 그 쌍안경은 사제였는데, 소대장이 자비로 구매해서 들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그땐 쟤보단 빨리 전역한다면서 자조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니 잠깐만. 염병, 지금 시대의 김갑환은 아직 입대도 안 했네?’
아니, 애당초 김갑환이 존재는 하나?
명령만 하면 순식간에 알아볼 수 있으리라. 그런데도 일부러 알아보지 않은 것은 아직 그러한 결심이나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피할 수는 없는 법.
‘더는 못 피하겠군. 알아봐야겠어.’
이젠 부딪힐 때가 왔다.
다른 별들이나 미군 장교들이 뭐라 뭐라 하는 것이 들렸지만, 부시는 귓등으로 다 흘려버렸다.
‘흥.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구먼. 뭘. 만약 전쟁 터지면 여기부터 다 터질걸.’
잘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 몇 고지에 몇 면적당 몇 개의 포탄이 떨어지고 몇 명이 조져진다는 등. 흉흉한 말이 많았다. 거기다 실제로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았다. 다른 곳은 몰라도 GP랑 GOP는 확실했다.
“판문점은 어느 쪽인가?”
그 소리를 들은 군인들이 눈치를 보더니 이내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르켰다. 물론 부시는 당연히 어느 쪽에 있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저쪽입니다.”
21세기 번개팅 모임 장소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