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41)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40화(41/377)
< 40편 >
판문점. 냉전의 유산이자, 유물인 군사 분계선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DMZ. 그곳에서 상시 남북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바로 이 판문점이다. 정식명칭은 공동경비구역. 혹은 줄여서 JSA라고도 한다.
군 장교에게 있어서 이곳이 출세 가도 1번지라는 사실이나, 중립국 감독 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생활하는 서방 세계 육군을 이곳에서 근무하면 한 번쯤 다 볼 수 있다는 점. 남북 민간인 전부 이곳을 관광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히 서술할 법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서술에 한마디를 덧붙여야 할 일이 생겼다. 세기의 즉석 미팅이 바로 이 판문점에서 이뤄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판문점은 처음 와보는군.’
판문점에 와볼 일이 있어야 와보지. 전역하고 나서 북쪽으로 올라오는 건 일 때문에 지방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일밖엔 없었다.
‘인생 다시 살고 볼 일이군.’
정말이지 말이다. 다만 부시는 정말로 인생을 다시 살고 있었지만.
“하하,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네다.”
이윽고 남북 분계선 한가운데에서 김지훈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눈이 맞았다. 김정일의 얼굴은 좋은 사람처럼 웃고 있었지만, 눈은 잘 벼려진 한 자루 단검과도 같이 예리했다. 그러나 곧 그 기세도 수그러졌는데, 오늘 기 싸움 상대는 김지훈 대통령이 아니라 조지 부시였다.
‘저리 멀리 떨어져 있라우! 이 남조선 개간나 새끼! 내 오늘 미제 수괴놈과 담판을 짓갔어!’
‘이 시대착오적인 독재자 새끼만 없으면 통일인데! 이 어찌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단 말이냐! 저 돼지 새끼를 잠시라도 믿었던 내가 멍청했다!’
가벼운 악수가 끝나자 이번에는 김정일과 부시의 차례였다. 김정일은 드디어 자신의 적과 마주 보게 되었다. 쳐다볼 수조차 없었던 미제의 수뇌를 말이다.
“이 김정일이를 그렇게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정일의 말에는 ‘내가 찾아온 게 아니라, 네가 날 찾은 거다.’라는 정치적 압박이 끼워져 있었다. 통역관이 어미까지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남는 기록이 중요한 거다. 기록이.
‘허, 이놈 봐라?’
인터넷이나, 뉴스로 자주 보긴 했지만. 그의 실물을 코앞에서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지 않아도 대외활동을 최소한으로 하던 인간이었다.
“아, 물론입니다. 사실 올해 안에나 회답이 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바쁘신 와중에도 단박에 달려오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이 한반도에 벌써 평화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하하하!”
물론 부시가 그 유치한 말싸움을 못 알아들은 사람도 아니었고 지고 사는 성미도 아니었던지라 바로 말꼬투리를 잡았다. 요컨대 ‘응. 아니야. 네가 쫄려서 온 거야.’라는 뜻이었다.
다만 이건 김정일로서 항변할 여지가 남아 있는 부분이었는데, 그냥 항모 전단도 아니고 바로 아프가니스탄을 조져버린 대통령이 이끄는 항모 전단 3개가 한반도로 배치되고 있는데 쫄리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놈이었다.
“고저, 그렇지 않아도 제네바 합의 때문에 내 할 말이 많기는 했다우.”
“아, 경수로 사업 말이군요?”
이 부분은 미국에게 아프다면 아픈 부분이었고, 어쩌면 간지럽지조차 않은 부분이기도 했다. 북미 제네바 합의는 1994년 9월 23일에 체결된 합의문인데, 한 줄로 요약하면 ‘북한! 핵무기 안 쓴다! 안 쏜다! 대신 미국 원자로 설치해 준다! 석유도 준다! 무료로 해준다!’였다.
툭 까놓고 말해서 미국이 완전 손해 보는 장사였지만, 1994년은 한창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시기였다. 이보다 매력적인 선택지는 없었으리라. 다만 문제는 북한이 뒤로는 계속 핵 개발을 진행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야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북한 수뇌부의 제1 목표는 잘 먹고 잘사는 북한이 아니라 당과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이자, 혁명적 주체사상 미래의 태양이신 김씨 일가의 영구적 통치 존립이었으니 말이다.
김정일의 정치기반은 비유할 것 없이 북한 그 자체였다.
북한은 겉으로는 열심히 나는 괜찮다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부터는 점점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물론 무너지는 것은 인민이었고, 자기합리화로 파티를 벌이고 있는 건 수뇌부였다.
현대든, 고대든 일단 지지기반이 흔들리면 큰일 나는 거 아니냐? 라고 해도 지지기반이 평양과 당과 군 간부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상 인민이 아무리 죽어도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콘크리트는 지지층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고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김정일 등짝 한 번만 보자면서 칼침 낼 놈들이 널리고 널려 있는 곳이 바로 북한이었다.
그렇기에 김정일은 해외 원정을 매우 꺼렸다. 만약 해외에 나가 있는데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이번 회담도 김정일 본인의 영향력이 확실하게 미치는 판문점이었기에 과감하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이지, 만약 미국이나 어디 멀리 동남아에서 보자고 했으면 그 자랑의 북한식 욕 폭탄을 투하하고 말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즉, 이번에 김정일이 이 회담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정치 사정이 겹친 탓이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초 합의대로 국제원자력 기구의 사찰만 주기적으로 받으신다면 공사는 바로 재개될 겁니다!”
‘못 받지? 못 받을 거야. 넌 결코 핵을 포기할 수 없잖아. 하하, 진짜로 받을 거면 받아보던가? 그럼 나야 좋지!’
‘아, 종간나새끼 말하는 꼬락서니가 신명이 나다 못해 설레발로 아리랑 춤을 추고 있구먼, 기래? 중유(中油)나 꼬박꼬박 제때제때 바치라우!’
“하하하! 내래 이번에 말이 잘 통하는 대통령이 나와서 아주 좋아 죽겠구먼!”
“하하하! 저도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해서 좋습니다!”
보도에는 대충 「조지 W. 부시와 김정일의 회담! 한반도의 비둘기는 날아오르는가?」 정도로 나가겠지만, 대북 분석가들은 이 남자들의 유치한 대화를 일일이 해체하고 음미하며 온갖 음해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경수로 사업. 그러니까 KEDO 운영에는 한국의 협력이 필수 불가결입니다. 김지훈 대통령도 잘 부탁드립니다.”
KEDO(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는 제네바 합의 이후 경수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미국, 한국, 일본이 참여한 국제 컨소시엄이었다. 컨소시엄은 국제차관단을 뜻하는데, 보통은 개발도상국에 경제원조를 해주기 위해 선진국끼리 조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입니다. 귀국과 북한이 뜻을 함께하면 한반도 평화는 당장 올해라도 이뤄질 겁니다.”
좀 다른 의미의 평화긴 했다. 눈깔 돌아간 람보가 M60 들고 칼 든 양아치랑 총 든 범생이 대려다가 멱살 잡고 억지로 화해하라고 윽박지르는 게 가장 가까운 표현이었다. 그렇다고 김지훈 대통령이 무력에 의한 평화를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본래부터 그는 전쟁을 막고 싶거든 전쟁을 대비하라는 명언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다만 칼보단 펜에 더 관심이 많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북한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군요. 북한 노래가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 그렇습네까?”
이 부분은 김정일로서도 너무 의외인 발언이라서, 솔직히 몹시 당황하고 말았다. 뭐 한 곡 정도 까짓거 못 불러 줄 것도 없지. 김정일은 머릿속으로 부를만한 게 있나, 이것저것 가늠하며 선곡해가던 참이었다.
“하나 듣기는 들었었는데. 그게 대홍단 감자던가?”
부시는 들어본 적 없었지만, 김갑환은 들어 본 적이 있긴 있었다.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보긴 한 건데, 그게 하필 ‘대홍단 감자’였을 뿐이었다. 그 노래는 가사에도 문제가 없었다. 대충 ‘나는 감자가 너무너무 좋아!’라는 내용의 노래였다. 문제는 그게 3살배기 애들이나 듣는 ‘동요’여서 그렇지.
‘이런 골통에 있는 상식을 효자손으로 싹싹 긁어버린 개간나를 봤나? 이 애미나이가 지금 나를 놀리는 기야?’
“고저, 그럼 언제 남조선으로 한 번 평양 학생 소년 예술단을 보내갔습네다.”
차마 미국으로 보내겠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아 남한으로 타협했다. 당장 가슴에 차곡차곡 적립되어가는 울분 탓에 스팀이 새 나오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화(火)라는 것은, 화기이기 때문에, 식힌다고 하더라도 마음 어딘가엔 화상이라는 형태로서 흉터가 되어 남게 된다. 무릇 마음이란 외부 환경으로부터 들어온 자극으로 인해 변형되고 성장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이 화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사람은 성장하고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언젠가 제 화를 못 가눠 스스로를 상처입힌다. 지금은 물러서지만, 훗날에는 이 성장이 역천이 되어 관계가 역으로 돌아갈지니!
이를 다 함축하여 전문용어로 표현하길 ‘두고 보자!’가 되시겠고, 자매품이 되시는 ‘정신승리’와도 일맥상통하는 묘리가 있었다.
기자들 앞에서 하는 회담은 그렇게 짧게 끝이 났다. 이후는 삼자회담이 진행되었는데, 통역관 둘이 남아 있었기에 실질적으로는 5명으로 진행되었다.
‘흠, 이상한데. 슬슬 뭔가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할 때가 된 거 같은데.’
부시가 아무런 생각 없이 이 자리에 선 건 아니었다. 2018년 당시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만나자고 한 이유는 지금 북한의 지도자가 김정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김정은이면 만나지도 않았을 터였다.
‘아직은 낙관론이 대세니까. 의회에서 별말 못하겠지?’
평소에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움직이는 인간인지라, 수습은 항상 뒷전이었다. 다만 정말로 감성에 근거한 판단을 내리는 건 아니었고 이성적인 부분은 부시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게 제동을 걸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당장 지금만 해도 기분 나쁘다고 선전포고는 안 했잖은가. 본래 성격이었으면 웃으면서 ‘지구 방위대 USA 출동! 폭격기 발진!’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성격이었다. 물론 거기에 제동을 걸고 있는 건 그로 인해서 생길 인명피해와 자산피해. 그리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양심이었다.
어쨌거나 부시의 행동에는 ‘의회도 조용할 거고, 평화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동안 부시가 내린 명령 중에 9.11을 제외하면 대부분 명령은 평화적인 행정 명령이었다. 그러나 과정까지 평화롭지는 않았다. 연설에서 감탄사긴 하지만 욕설을 날리고 전투기 타고 남의 나라 가는 게 잘도 평화롭겠다.
덕분에 의회도 공화당, 민주당 가리지 않고 지지하고 있다고 부시는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애매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치인들이 말년에 가장 신경 쓰는 게 업적 쌓기 아닌가? 제아무리 잘 나가는 대통령이라도. 아니, 잘 나가는 대통령이기에 여론에 신경 써야만 했다.
그런데 그건 ‘정상적인 정치인’의 사정이었다. 만약 그럼 비정상은 어떻게 하느냐?
“내 알기로 경수로 사업 완공이 2003년으로 압니다. 그런데 아직 첫 삽도 못 떴다죠?”
“길티요?”
김정일의 표정은 반쯤 썩어 있었다. 생각보다 사태가 불리함을 깨달은 탓이다. 처음부터 불리할 줄은 알고 나온 자리지만, 지금부터 뭘 요구받을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본래 김정일은 ‘참는다.’라는 행위와 썩 친한 성격이 아니었던 탓이다.
“이렇게 합시다. 2003년까지 내가 그거 전부 해결해주겠소.”
범인은 감히 범접조차 할 수 없는 발상에 김정일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반쯤 벌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