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43)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42화(43/377)
< 42편 >
‘결국엔 받긴 받는군.’
어느 쪽이라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았지만, 결국 김정일은 일단 협력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연신 닦아내며 점점 말을 더듬는 정도가 늘어나는 꼴이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고 보면 흥분하면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유명하긴 했지.’
횡설수설하는 거야 정치인들 기본 탑재 기능이긴 했지만, 김정일은 그 도가 지나쳤다. 한 줄도 아니고 한마디로 충분한 것을 200자짜리 원고지 한 장이 넘어가도록 말을 이어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귓전에 소리가 들릴 정도로 열심히 짱구를 돌려 봤자 결국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방법이 있을 성싶은가? 적어도 한미 연합군과의 전쟁을 상정하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일단 노동자부터 파견해볼까.’
다짜고짜 국제 원자력 기구의 감찰부터 보내면, 북한 측에서 ‘아, 이거 못 믿겠네!’라고 하면서 전부 쫓아낼 명분을 줄 위험성이 있었다. 일단 평화적으로 접근하기로 한 이상 여기부터는 실상 명분 싸움이었다. 노동자를 보낸 다음에는 점점 그들을 호위할 군을 늘리고 결국에는 군이 주둔할 땅을 뜯어낼 수 있으리라.
물론 북한이 명분이고 나발이고 막 나가는 국가라는 건 사실이지만, 그들이 코앞까지 다가온 총구를 보지 못할 정도로 ‘분노 조절 장애’는 아니었다. 도리어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차라리 ‘분노 조절 잘해’가 맞는 말이었다.
“자자, 이 정도면 충분히 한 것 같습니다.”
하도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오가고 있었기도 했고, 특히 김정일의 두서없는 말 폭풍 탓에 반쯤 영혼이 빠져 기계적으로 번역하고 있던 통역관들이 드디어 끝이 났다며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몰래 내쉬었다.
특히나 김정일의 말에는 아예 문장으로서 성립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어 부시 담당의 통역관은 거의 수학 공식 풀이 수준의 난처함을 느껴야 했다.
“나머지는 세세한 부분은 휘하 공무원에게 맡기도록 하죠.”
쉽게 말하면 짬 때리겠다는 소리다. 물론 뼈대를 만드는 일은 부시가 하겠지만, 뼈대에 살붙이기에 해당하는 세세한 서류 작업이나 현장 작업 같은 부분은 부시의 영역이 아니었다.
“경수로 사업을 잘 부탁드리겠습네다.”
화전양면(和戰兩面)이라는 말이 이보다 어울리는 상황이 있을까? 김정일은 속으로 이를 갈고 또 갈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제 독재를 지키기에는 힘이 없는걸. 칼을 아무리 갈아도 칼은 칼이었다. 칼을 휘둘러 봤자 닿는 곳은 제 팔 범위 안인데, 한반도라는 범위 밖으로 나가면 칼이 닿질 않았다.
그렇다고 화가 난답시고 주한미군에 칼을 휘두르자니 돌아올 핵 펀치가 두려웠다.
‘내래 언젠가 보복해주갔어.’
핵탄두만이라면 곧 만들 수 있었고, 핵탄두를 운반할 미사일의 경우 우주 개발이라는 좋은 핑곗거리가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만약에 수틀리면 핵이 아니어도 좋았다. 피해만이라면 핵에 버금가는 온갖 생화학 병기가 지하 무기고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아?’
문제가 있다면, 부시는 그 생각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국정원도 CIA도 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국제 원자력 기구가 자꾸 개입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감찰 기구도 움직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점점 열리다 보면 결국은 북한 정권은 해체되리라.
낙관론이라고? 그럴 리가. 이미 한 번 연 문을 닫으려 한다면 미국이 가만두겠는가? 그럼 그때야말로 철권을 휘두를 때다. 전쟁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것으로 인해서 나갈 미국의 전비, 한국이 입을 피해 등을 고려했을 땐 가장 피해야 하는 선택이기도 했다.
‘저 동네는 아프간이나 이라크와는 차원이 다르니까.’
미국이나 한국이나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될 거다. 아니면 미국이 휘청일 정도로 많은 정말 전비를 써야 하던가. 그럼 이라크전을 피해 간 게 말짱 도루묵 아닌가. 부시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어쨌거나 이 경수로 사업은 겉으로는 북한에 호구 잡힌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미국이 북한의 목전에 칼을 들이댄 것이었다.
이 상황을 ‘체크메이트’라고 부르던가?
‘내 임기 내에서 철저히 농락해주마.’
* * *
‘아, 전투기 타고 싶다! F-15! F-18! F-22!’
하지만 이 짓도 한두 번이지, 계속해서 이러고 다니면 국민한테 정신병 생길 정도로 욕 폭탄을 맞을 걸 알고 있으니 더더욱 아쉬웠다. 차라리 몰랐으면 그냥 걱정 없이 타고 다니다가 욕먹고 마는데. 부시가 제아무리 막 나간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탄핵 먹고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부시의 사고방식이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부류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대통령님. 지루해 보이시는군요.”
부시의 옆에는 카드 비서실장이 서 있었다. 당연히 지루하긴 지루했다. 물론 정말로 ‘지루하지?’라고 물어보는 건 아니었고 ‘지금 나는 누구 덕분에 지루할 틈도 없는데, 참 팔자 좋다?’라고 비꼬는 것이었다.
하긴 부시가 저질러 놓으면 그걸 수습하는 건 온전히 부시 휘하 관료들 몫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걸 곧이곧대로 들어줄 부시는 더더욱 아니어서 속뜻은 무시해버리고 문장만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서실장. 내리면 곧 지루하지 않게 될 거야.”
‘네 걱정이 많으니, 걱정할 틈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바빠지게 내 친히 일거리를 늘려 주겠다!’라는 말이었다.
“그것참…. 걱정되는군요. 그렇지 않아도 곧 내리게 되실 겁니다.”
비서실장에게 힘이 있으면 무슨 힘이 있다는 말인가. 까라면 까야지.
‘쯧, 저 정도면 다음 임기에는 사임하겠다고 땡강 부릴지도 모르겠군. 세종대왕님과 황희의 사례라도 본받아야 봐야 하나.’
본인이 바뀔 생각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을 잡아둘 생각부터 하다니, 부시는 실로 포악하고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사임은 윤허하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일본의 공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은 정말이지 가까웠다. 쪽잠은커녕 하늘 구경이 지루해졌다 싶을 때면 이미 일본 열도 상공이니 말이다.
이윽고 에어 포스 원이 완전히 멈추고 문이 열렸을 때 부시의 눈에 들어온 건 기자들과 환영 인파였다. 기자나 환영 인파가 있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으나, 그 도가 지나칠 정도로 너무나 많았다.
“와아아!!!”
“이게 뭔.”
매사에 환영받고 튀기 좋아하는 부시의 입에서 당혹감이 튀어나올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고 봐도 좋았다. 무슨 국민 영웅 개선문도 아니고. 인파만으로 공항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이 환영 인사가 싫다는 건 아니었는데, 예를 들어서 햄버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쳐도 당장 10개나 100씩 먹으라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예로부터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았던가. 평소라면 ‘과유불급 조까!’라고 하던 부시였지만, 너무 눈에 보이니까 살짝 거북함이 들었다.
‘그래도 최대한 성의를 보이고자 이렇게 한 거겠지?’
어차피 물어봐도 대충 아메리카의 대통령을 한 번이라도 보고자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나왔다던가 그런 이야기가 꾸며져 있겠지만, 일단 일본 정부가 보여주는 성의라는 거 아닌가. 이 인파를 동원하는 데 돈이 들어갔을 터이니.
‘그럼 즐겨야지.’
부시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내가 이 정도로 가치 있는 사람이다! 어쨌거나 좋든 싫든 부시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 아닌가. 그럼 마땅히 환대에 응하는 게 맞으리라. 지금의 김갑환은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조지 부시. 아니, 그 안에 들어 있는 영혼이 일본 문화를 혐오하거나 싫어한다는 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이들이 일본 문화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당장 어린 시절 보던 만화나 애니메이션만 해도 정부와 방송사의 온갖 대패질로 로컬라이징이 되었다지만, 결국은 일본의 문화였다. 일본은 한국 바로 옆 동네다 보니까 좋든 싫든 경제, 문화적으로 긴밀히 얽히고설켜 있었다.
2019년엔 한국은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대규모 불매 운동이 벌어지긴 하지만, 마지막을 보진 못하고 부시가 되었으니 그 결과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일본 여행을 갔을 때가 아마 딱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기 전이었지?’
그가 마지막으로 갔던 지역은 아키타였다. 이유는 친척이 아키타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이 터진 이후로 친척마저도 한국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그 이후로는 인터넷으로만 소식을 접했다.
‘가만, 2019년에 왔으면 후쿠시마산 물 먹방부터 찍었겠네.’
내 몸 아니라며 막 굴리는 부시도 막상 ‘방사능 원샷 해볼래?’라고 하면 대통령 암살모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길길이 날뛸 거다. 방사능적인 의미에서 몹시 다행이라 생각하던 부시는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역설적으로 방사능이 없는 일본산 해산물을 먹을 기회는 지금뿐이라는 거 아닌가?’
일본 측에서 만찬으로 뭘 내올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방사능 젖어 있는 음식은 아니겠지.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총리가 버선발로 뛰어나올 줄은 몰랐는데.’
물론 미래의 아베 총리처럼 정말로 100M 달리기 마냥 뛰어서 온 건 아니었지만, 직접 공항에 나올 정도로 부시의 방일에 관심이 있다는 소리 아닌가.
부시와 고이즈미의 악수가 진행되자 산발적으로 터지고 있던 플래시가 동시에 터졌다.
‘한국부터 가서 위기감이 좀 왔나 보지?’
그 규모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세세한 것 따질 시간에 즐기면 그만이긴 했다. 다만 도대체 왜 일본 돈 먹은 사람들이 딱 봐도 아닌 것 같은 발언으로 일본 편을 들어주는지 알 것 같긴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고 하지만, 돈은 사람도 춤추게 만든다.
제아무리 병신이 아닌 이상에야 그런 발언을 마구잡이로 할 수 있을 리가 있나. 다 그런 발언도 빽이 있고 대본이 있어서 할 수 있는 말 아니겠는가. 세상만사 이유 없는 말이 어디 있겠는가. 합리적 자본으로 만들어진 비합리적인 망언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 정도면 딱 봐도 원하는 게 뭔지 보이는군.’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의 대통령이 ‘Great japan!’ 정도 발언이면 일본인이 다 껌뻑 죽어 나가리란 계산 아니겠는가. 수 자체는 너무 얄팍했지만, 선전적인 의미에서 효과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부시가 무심결에 들은 내용이지만, 일본의 매스컴은 한국 먼저 간 부시를 욕하고 있었다. 원색적인 욕이 아니라 돌려 까기에 가까운 그것이었지만, 몇몇은 현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작은 불씨에 가까운 불이겠지만, 되도록 큰불로 진화하기 전에 끄고 싶었으리라.
고이즈미 총리는 2001년 4월 26일. 즉, 올해 중순에 권력을 막 잡기 시작한 인물인 만큼 당장 체제가 흔들리는 고이즈미로서는 이 상황이 절대 바람직하지 않으리라.
‘뜯어 먹을 수 있는 게 많다는 거군.’
그럼 얼마나 벗겨 먹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