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44)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43화(44/377)
< 43편 >
‘벗겨 먹는 게 아니라 진짜로 먹을 게 참으로 많네.’
일본이 서비스 직종의 정석이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부시는 그 의미를 철저히 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물론 모든 게 서비스 스마일이라고 생각하면 좀 깨긴 했지만,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지구에서 서비스 스마일이 없는 곳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 환대 이후로 접객은 계속되었다. 부시가 잠시지만 정말로 황제라도 된 기분이었으니까 말이다. 부자들이 왜 자꾸 팁으로 억대 돈을 뿌리는지 알 것만 같은 호화로움이었다.
‘재롱을 어디까지 떠나 보자고.’
도대체 이 호화 접대의 대가로 뭘 요구할지 모르겠지만, 당장 테러 방지 노하우 이전을 제외하고 상상할 수 있는 요구는 ‘월드컵 단독 개최’나 ‘납북 일본인 반환’ 협조. 어쩌면 ‘헌법 9조 개헌’을 요구할지도 모르겠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따로따로 산재해 있는 묵은 문제들에 불과했지만, 합쳐보면 이것들은 일본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대전략을 위한 발판이었다. 일본의 대전략은 동북아시아 조정자의 위치를 견고히 만드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동아시아 패권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국가적 위신이 필수였는데, 이 국가적 위신 상승에는 결정적으로 두 가지가 필요했다.
위에서 거론된 문제들을 해결할 것, 지구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인정을 받을 것.
전자의 경우 어떻게든 해낼 수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엔 좋든 싫든 미국의 인정이 필요했고 미국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건 미국의 대통령. 즉, 조지 W. 부시의 인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일본의 최종적인 목적이 무엇이냐?
‘잃어버린 10년 전으로의 위상 복권.’
1980년대는 세계 제일은 아주 잠시뿐이지만,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물론 경제적이라는 의미긴 하지만, 당장 그 미국조차도 TV를 사면 일본산이었고, 미국인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일본산 워크맨이었다. 기업 시가총액 순위 상위권은 1위부터 아래로 쭉 일본이 차지하고 있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경제 규모만이라면 2001년인 지금조차 세계 2위였다.
좋았던 시절. 즉 황금기로 돌아가고 싶은 건 모든 국가, 민족을 따지지 않는다. 당장 중국의 한족만 해도 명나라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개인 차원으로 봐도 나이를 먹으면 젊은 시절을 갈망하기 마련이다. 빚더미에 앉아 있는 기업인은 사업이 잘나가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법.
그러니 일본의 대전략이 저 모양이 날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우경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겠지. 우익은 국민이 원했을 때 진행되는 거니까.
그렇기에 고이즈미 총리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는 너무나도 의외였다.
“경수로 사업?”
경수로 사업의 주체는 미국, 한국, 일본이니 어찌 보면 거론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예상한 것에 비해서 너무나도 가벼운 잽이었다. 스트레이트가 들어올 줄 알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나오는 게 고작 경수로 사업이니 단순히 ‘잘 됐다.’를 넘어 진짜 ‘이거라고?’라고 반문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정도로 부시는 당황했다.
“그 비용. 다시 말해 지분을 늘리고 싶습니다.”
경수로 사업은 기본적으로 한국이 총비용의 70%, 일본이 20%. 의외로 EU가 10%를 부담하였다. 미국은 KEDO가 지속하기 위한 비용과 북한에 지원할 중유를 부담한다. 예상 비용이긴 했지만, 총액이 56억 8천만 달러에 이르는 대사업이었다.
‘대신 무슨 일이 있어도 가져가고 싶은 게 있단 소리군. 아니면 그 늘어난 지분으로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는 건가?’
“일단 말해보시오. 그게 전부는 아닐 텐데?”
부시가 묘하게 경계하기 시작했음을 깨달은 고이즈미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국제 정치적으로 몹시 현명한 인간이었다.
“납북 일본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
‘그걸 위한 비용 증액인가? 묘하게 꺼림칙한데. 일단 일이 커져 버렸으니, 한국에 대한 견제도 어느 정도 실려 있는 것 같고. 북한에 커넥션을 만들어 봤자 김정일이 꺼지라고 하면 그대로 다 잠수해 버릴 효용 없는 연줄인데.’
“흠.”
부시는 눈을 즐겁게 하는 색색 다과를 씹어 삼켰다. 단순히 단맛뿐만이 아니라 온갖 맛이 느껴지는 최고급 다과는 부시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부시가 제아무리 지 꼴리는 데로 움직이는 인물이라곤 하나 일단 그 꼴림의 중심에는 언제나 미국이 있었다. 막 부시가 되었던 당시의 김갑환이면 모를까, 김갑환과 부시가 적절히 섞여 새롭게 태어난 조지 부시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기 심성에 거슬리면 국익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겠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납북 일본인 문제 정도는 해결해줄 수 있지.’
부시 안에 최소한으로 남아 있는 인륜에도 반하지 않고 미국의 이익과도 어느 정도 부합되며 피해 볼 사람이라곤 김정일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얼핏 생각했을 때 일본은 언제나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의 가장 큰 핵심이었다. 따라서 제삼자가 봤을 땐 일본을 밀어주는 게 바르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이후 차차 이뤄질 일본의 우경화를 생각한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실제로 오마바 정부 또한 중국이 없었으면 우경화에 대해서 충분한 경고를 했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이 일본의 우경화보다 급한 사안임을 확정 짓고 일본의 우경화를 묵인했다. 결과는 우경화를 통한 9조 헌법 개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을 무작정 밀어주기엔 많은 무리가 있었다. 물론 부시의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일본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향에 불과했다.
그것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위와 같은 이유로 이성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일본을 무작정 밀어주는 것은 옳지 않았다. 미국이 추구하는 건 한미일 동맹을 통한 동아시아 ‘평화’였으니 말이다. 전쟁 말고 평화 말이다. 평화!
“그것 말곤 더 없소?”
“약속해주신 테러 노하우 이전을 제외하면 지금 당장은 없습니다.”
부시가 고이즈미의 인간상을 알고 있음에도 지극히 찰나뿐이라지만, 고이즈미를 매우 겸손하고 착한 호구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말로 그것뿐일 리가 없지.
납북 일본인 문제가 일본 국내 정치적 의미로 따졌을 때 큰 건이긴 했지만, 억대 비용을 들여서까지 할 정도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이즈미는 아무런 이유 없이 미국에 순종할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새끼 아무리 생각해도 꿍꿍이가 더 있는 거 같은데. 평소에 조용한 놈이 가장 위험하다더니, 니미럴.’
차라리 야심에 들떠 있는 정치인이라면 목적을 알기 쉬웠다. 그런데 이렇게 숨기려고만 하면 전혀 모르겠단 말이지. 아주 후기면 또 모를까. 고이즈미 담화까지 내놓을 정도로 유화책을 책정하던 정치적 행보를 떠올리면 딱히 생각 나는 게 없단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부시는 떡밥을 던져보기로 했다.
“그럼 이건 어떻소? 내가 평소에 원전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이 많이 노후화되어 있더군요. 동아시아 환경을 위해서 신축 혹은 개축 건은 어떠십니까? 그 노후화 된 원전은 아주 위험합니다. 터졌을 경우 미 서부가 타격받을 수 있다는 보고서가 올라왔소. 그것을 내 임기 안에 해결해줬으면 좋겠소.”
강수라면 강수였고. 안 받을 거 뻔히 알면서 한 말이기도 했다. 명백히 내정 간섭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더군다나 교토 의정서를 탈퇴한 미국의 대통령이 할 말은 더더욱 아니었다.
“허허, 안될 거 없죠. 그 사안은 미국의 안보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본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것 봐라? 명백히 내정 간섭인데 이걸 받는다고?’
보고서가 올라온 건 사실이었지만,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이 터졌을 때 미 서부까진 닿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고 난 뒤 후쿠시마에 체르노빌이 겹쳐 보인 미국은 반쯤 패닉 상태에 빠져들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군용기인 글로벌 호크 운용을 통한 대기 분석을 비롯한 온갖 방법으로 분석했는데, 그중 ‘첨단’이 들어가지 않는 방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첨단 기술과 돈을 갈아 넣어 만들어진 동위원소 분석 보고서가 내린 결론은 미 서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영향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구태여 부시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크게 둘이었다.
하나는 매번 맹활약 중인 부시의 내면에 남아 있는 양심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을 테니까.
그러나 또 다른 하나. 이 말이 가져올 판별의 기능이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떡밥인고? 하면 ‘도대체 미국의 말을 어디까지 들어줄 것이냐?’는 가늠의 척도 되시겠다.
차라리 ‘이건 내정 간섭입니다!’라고 소리라도 질렀거나. ‘아, 이건 좀.’이라는 반응을 보였으면 ‘그건 내가 미안했다.’하고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걸 바로 받아들이니 부시로서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제대로 된 수확도 없이 그저 기분이 좀 많이 찝찝해진 부시가 애꿎은 다과를 부수었다.
물론 정치적 수확이 없는 거지. 양심적인 수확은 있었다만.
부시의 장기는 고지식하고 억센 성격의 소유자를 정면에서 부수는 일이었다. 딕 체니나, 김정일처럼 절대 굽히지 않는 강철과도 같은 성격을 가진 인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굽히고 들어가는 고이즈미는 어떤 의미에서 부시의 천적이라 할 수 있으리라.
‘검사만 하라고 해도 날림으로 하거나 우린 그딴 거 없다면서 버틸 놈들인데. 이상하다. 고이즈미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이 새끼들 뭔가 진짜 큰 거 한방 조용히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부시가 점점 해괴한 생각을 하는 동안 그 고이즈미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 더 말해봐라! 정말로 무리한 것만 아니면 일단 뭐든지 들어주마. 대신 미래를 가져가 주겠다!’
고이즈미가 보기엔 다음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부시의 압승을 보고 있었다. 감이 절반이었고 절반은 그동안 부시의 행보였다. 외교적으로 막 나가긴 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전후처리가 깨끗했다. 더군다나 북한을 압박하는 과감한. 아니, 과격한 솜씨를 배견하고 나니 확실해졌다.
지금은 미국의 시대였다. 찰나의 굴욕을 감수하고 차후 7~8년을 얻어가겠다는 전략을 새웠다. 더군다나 아직까진 무례한 요구라면 몰라도 무리한 요구가 나오고 있지 않은 탓도 있었다.
물론 전후처리가 깨끗한 건 부시가 굴리는 관료들이 미친 듯이 움직인 탓도 있었지만, 부시를 제지할 수 있는 족쇄가 아직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탓도 컸다. 부시 스스로 만들어낸 자문단은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고 대통령이 저지른 짓들을 수습하느라 비명을 지르느라 엄한 생각도 못 할 정도로 구르고 있었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어쨌거나, 다른 건 몰라도 원전 노후화 문제야 못 들어줄 것도 아니었다. 이른바 ‘고이즈미의 연줄 전략’이었다. 아주 단순했지만, 현 대통령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자인 사람과 친해지는 것만큼 효과적인 전략이 어디 또 있을까?
더불어 본래부터 본디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미국의 발언에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지금 와서 이런다고 이상할 것도 없겠지. 그런 의미에서 고이즈미가 가고 있는 길은 동아시아 국제 외교의 왕도라고 해도 좋았다.
문제가 있다면 정작 그 연줄이 되어줘야 할 사람이 고이즈미를 몹시 미심쩍어하고 있다는 점이었지만 말이다.
“그거 잘 되었소. 언제나 그랬듯 미일 동맹은 굳건할 거요.”
결국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부시는 묘한 눈으로 통역관을 바라보았다. ‘저놈이 말을 이상하게 번역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아무리 그래도 게임이나 소설 번역도 아닌데, 국가 중대사에 번역으로 장난치는 놈을 데려다 놨을 리가 있나.
‘고이즈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CIA라도 굴려봐? 아니, 아무리 그래도 CIA가 만능도 아닌데. 이미 시킨 것도 많이 있고. CIA에 예산을 더 주자니, 의회 눈치가 보이는데.’
‘이 정도까지 해줬으면 네놈이 사람 새끼인 이상 콩고물이라도 내주겠지. 지금은 단기간의 이익보단 멀리 내다 보는 게 중요하다.’
그날의 단독 회담은 한 명은 미심쩍은 채로, 한 명은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