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4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48화(49/377)
< 48편 >
자르카위는 평화를 꿈꾸었다.
세속주의로부터 해방되어 만세를 삼창하는 중동의 모습. 만리장성에서 코란을 들고 기도하는 신실한 중국 무슬림들, 에펠탑은 성지의 방향을 가르키는 건축물로 재건되었고 미국인들은 회개하여 스스로 교회를 모스크로 개조하고, 바티칸에선 바이블을 불태우고 대신 코란의 가르침을 따르는 광경을 상상했다.
자르카위가 생각하는 무슬림의 평화란, 그런 것이다. 그리되었어야만 했다.
“이건, 내가 원하던 미래가 아니었는데.”
자르카위는 바위에 몸을 가누었다.
“여기에 우리가 있을 줄은 아무도 모르겠죠.”
그 말대로였다. 그 누구도 자르카위가 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의 국경’ 사이에 있는 산에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 해보리라. 그들은 중동만 죽어라 들쑤시고 있었다. 이 돌과 나무, 흙밖에 없는 오지 산간에서 먹을 것이라곤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야생동물의 고기와 풀뿌리뿐이었지만, 적어도 총 맞아 죽을 일은 없었다는 점 하나만으로 당분간 몸을 피하기에 이보다 알맞은 장소도 없었다.
신장 위구르를 신경 쓰는 건 자국 영토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 정도인데, 중국은 이번 테러와는 영 연이 없었으니 감시 체계가 허술했다. 바로 옆에 아프가니스탄이 붙어 있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었는데, 곧 티베트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네팔을 넘어 방글라데시, 미얀마를 지나 말레이시아에서 배를 타고 최종적으로는 필리핀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본래라면 사우디아라비아로 내려가 예멘에서 배를 타고 갈 생각이었으나, 중동에 있는 항구란 항구는 모조리 감시가 살벌해지는 바람에 전부 포기하고 이쪽으로 오게 되었다. 홍해에 몰려든 함대 사진을 받았는데, 국제 관함식이 따로 없었다.
중동 밀항 사업이 근절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는데, 이유인즉 그들이 무료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내보내는 유조선들을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재정의 90% 이상을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를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있나?
다만 하도 이 이 비좁은 페르시아만에 여러 국적의 군함이 있다 보니까 가끔 아주 사소한 분쟁이 나긴 했으나, 그것이 위협 사격으로 발전하진 않았다. 러시아의 배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이 유럽군과 미군이었다. 덕분에 이집트만 호황이었다.
물론 이집트도 내주고 싶어서 내준 건 아니었지만, 운하에 문제가 생겼을 시 유럽이 전부 손해와 재건 비용을 대주겠다는 협약을 하고 나서야 수에즈 운하의 문이 열릴 수 있었다. 이집트가 안 열어주겠다고 버틴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단순히 적당한 크기의 화물선이라면 모를까, 군함처럼 커다란 배가 지나가다가 사고라도 나는 날엔 운하 자체가 당분간 혹은 반영구적으로 폐쇄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운하를 열어준 이유는 유럽의 압박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집트 경제가 수에즈 운하에서 나오는 통관료와 석유 수출에 크게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저품질이라곤 하나 석유는 석유다. 석유라면 세계 어디에서나 수요는 있는 법.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따위와 같이 제대로 된 사업다운 사업은 거의 80개에 가까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했기에 사업이 쇠퇴할지언정 크지를 못하고 있었다.
“젠장.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이런 미래가….”
자르카위는 화상과 열상으로 흉측한 얼굴로 변해있었다. 자르카위가 원해서 이렇게 한 게 아니었다. 난전 중에 주변에서 터진 포탄인지 미사일인지, 그것도 아니면 가스관이 터졌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무언가 터져서 이렇게 변해버렸다.
그 이후로 붕대로 얼굴을 칭칭 감싸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지금까지 위조된 여권으로 잘도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단순히 산간오지를 숨어다니는 것만으로는 여기까지 해낼 수 없었으리라.
그렇기에 이 화상은 호재이자 악재였다. 덕분에 짐 대부분이 이 화상과 고름을 억제하고 치료하는 의료물품이 되고 말았지만. 자르카위는 사고가 아니라 싸우는 도중에 얻은 훈장으로 이해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자르카위의 부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속으로 날짜를 가늠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딱 11월 1일입니다.”
“벌써 11월인가. 밀항 날짜는 12월 25일이다. 서둘러야겠군.”
“일단 네팔 카트만두부터는 이렇게 산으로 이동할 일은 없습니다.”
구태여 네팔을 카트만두로 이동하는 이유는 그곳 말곤 이 국경 사이에 길이라 할만한 게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에 그 유명한 히말라야산맥이 있었기 때문에 산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자르카위의 전 세계 이슬람화를 향한 모험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11월의 워싱턴 D.C는 쌀쌀한 날씨였다. 물론 캐나다 국경에 붙어 있는 워싱턴주만큼이나 춥진 않겠지만, 추운 건 추운 거다. 그러나 그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풍경은 실로 볼만한 것이었는데, 그것도 가을 중반까지나 그렇지 겨울이 코앞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마침 가을의 말엽인지라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호주로 휴가 갔다.
‘어으. 난 추운 게 싫더라.’
추운 게 싫으면 안 추운 곳으로 가면 그만이지. 호주에는 언제나 기온이 영상인지라 영하라는 개념이 없었다. 부시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호주 서부의 따스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처음에는 시드니나 멜버른을 가볼까도 생각해봤지만, 당장 살아가는 곳이 대도시인 데다 사람 얼굴 안 볼 날이 없었던 나날인지라, 이번에는 정적을 느끼고 싶어 서부로 왔을 뿐이었다.
부시는 최근 몹시 피로에 절어 있었다. 막말로 컨디션의 십자인대가 끊어진 기분이었다. 사실 혼자 다니고 싶었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최소한의 인원만 대동한 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최소한의 인원 안에는 앤드루 카드 비서실장도 있었다.
“비서실장.”
“예, 대통령님.”
“그동안 너무 막 나간 게 아닐까?”
‘뭐지? 드디어 미쳐버린 것인가?’
비서실장은 혀끝까지 나온 말을 간신히 속으로 집어삼키고 최대한 정중한 대답을 고르고 골라 입으로 꺼냈다.
“혹시 드디어 미쳐버리신 겁니까?”
문제는 고르고 고른 말이 처음에 한 생각과 거의 완벽할 정도로 일치해서 그렇지.
“아니, 아무리 막 나가는 나라도 이 시국에 해외여행은 좀 아니지 않을까.”
‘경찰 재편이나 전투기 방문이 아니라?’
“그래도 4일 정도 휴가니까.”
보통 아무리 적어도 일주일, 길게는 17일까지도 가는 것을 상기해봤을 때 부시의 휴가는 몹시 짧은 것이었다. 그러나 4일 휴가면 연휴 급이라고 생각하는 김갑환의 눈엔 자신이 낸 4일의 휴가조차 길어 보였을 뿐이었다.
‘책임감이 있는 건 좋은데.’
다만 주변에서 받아들여지기로는 책임감이 높은 것으로 보였을 뿐이었다. 다만 가족과 함께 오지 않은 건 감점 사안이라고 할만했다.
“오, 저게 바로 그 유명한 헛 라군(Hutt Lagoon)인가?”
부시는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탄성을 내질렀다. 헛 라군은 분홍색 호수로 유명했는데, 계절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섬유 유연제에서나 볼법한 때깔의 분홍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연한 딸기 우유색이었다.
그렇다. 이 인간이 하는 짓이 다 그렇듯 이번에는 헬리콥터로 움직이고 있었다. 자동차로 움직이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이유였다. 부시는 전투 헬기가 아닌 게 아쉬웠지만, 비서실장이 절대 안 된다고 반대를 거의 성질 부리듯 하여 그만두었다.
실제로 부시는 국내면 반드시 코만치로 움직일 예정이었다. 대충 검열 나가서 직접 성능을 확인해보겠다고 하면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그것을 빠르게 눈치챈 비서실장이 부시에게 해외로의 휴가를 종용하지 않았다면, 그 꼴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덕분에 비서실장은 인도에 이어서 한 건 더 해냈다며 속으로 뿌듯해하고 있었지만, 정작 부시는 조만간 자주포와 전차를 직접 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실로 불행하게도 아직 비서실장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캠핑갈 거야. 사냥도 좋고, 바비큐 파티도 좋지. 뭐든지 좋아. 암! 그렇고말고.’
이 부분은 부시로서의 부분이었다. 김갑환은 캠핑 같은 야외 활동보단 방구석에서 뉴스 검색하는 걸 더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부시의 몸에 새겨진 아메리카 프런티어 정신이 엽총 사냥을 요구하고 있었다. 부시는 먹물만큼이나 화약 냄새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사냥 면허증 같은 건 어떻게 되고 있나?”
“호주 정부에서 편의를 봐줄 겁니다.”
부시가 ‘호주에는 토끼가 그렇게 많다는데, 한 번 토끼 고기 원 없이 먹어볼까?’라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비서실장의 주머니에서 아주 익숙한 휴대전화 벨이 흘러나온 건.
부시는 제발 아내만은 아니길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뭐야?”
빌고 빈 부시의 염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다행히 부시의 아내는 아니었다. 다만 발신처가 백악관이었는데, 백악관에서 전화가 왔다는 건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하늘에 있는 신께서는 참으로 균형 맞추길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내가 대통령 각하께 알아서 잘 말씀드리지.”
“무슨 일이지?”
“일이 터졌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
“파키스탄이 상하이 협력기구에 가입했다고 합니다. 이란은 회원국 신청을 했고요.”
상하이 협력기구는 툭 까놓고 말하면 반미 국가들이 똘똘 뭉친 상하이 파이브를 전신으로 하는 국제기구였다. 최초에는 단순히 국경 지대의 분쟁을 해결하고 서로 간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군사적 목적의 국제기구였으나, 우즈베키스탄이 2001년 6월 15일에 가입하면서 이름을 상하이 협력기구로 고치고 정치 혹은 경제나 문화 등 좀 더 폭넓고 다양한 영향력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상하이 협력기구의 존재 의의는 서방세계. 즉, NATO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반미보다는 친중, 친러 국가가 반 NATO를 하는 거에 가까웠다. 물론 NATO군 구성의 대부분이 미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현실을 무시하면 그렇다.
여하간 ‘반NATO=반미’는 아니지만 적어도 ‘반미=상하이 협력기구’의 성립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상하이 협력기구의 기치를 내걸 때 테러리즘, 분리주의, 극단주의 근절을 내세웠는데, 분리주의는 하나의 중국을 표어로 내걸고 있는 중국의 입맛에 딱 맞는 것이었다.
“그런데 파키스탄?”
파키스탄은 아마 인도에 대한 대항 심리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파키스탄은 원래 2017년 즈음에 인도하고 같이 가입하지 않던가?’
한국에는 일본이 있다면 인도에는 파키스탄이 있었다. 요컨대 역사가 만들어준 골 깊은 원수지간이라는 거다. 그렇기에 하나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파키스탄의 경우에는 본래 중국을 형제국으로 생각할 만큼 친중 국가인 데다 당장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였던 탓이었고. 인도의 경우에는 중국에 코가 꿰여 끌려갔다는 편이 맞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인도는 ‘일대일로 참여국’이었다.
이 이상 말이 필요가 있는가? 이것이 바로 인도와 파키스탄이 상하이 협력기구 안에서 오월동주하고 있는 이유였다.
하긴 파키스탄의 입장에서 보면 기겁할 만도 했다. 세계 최강국이 당장 오른쪽 동네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중이라고 하는데, 기겁할 일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북쪽 동네인 아프가니스탄도 친미 정책을 펼치고 있는 판이니 어떻게든 해야 했으리라.
“그런데 이란?”
이란만큼은 몹시 의외였다. 이란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제아무리 부시라도 당최 이란은 감이 오질 않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10분, 20분. 사색에 잠겼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부시의 입이 열렸다.
“뭐해!”
아주, 짧은 휴가가 끝났다.
“헬기 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