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53)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52화(53/377)
< 52편 >
“1조? 그게 그렇게 불어났을 리가…?”
장쩌민은 자신이 말하려던 인도 이야기도 완전히 잊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표백된 채로 저도 모르게 의문을 중얼거렸다. 사실 중얼거림보다는 신음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치명적인 일이었다.
‘실수했다!’
그냥 모른다고 잡아뗐어야 했는데!
그러나 장쩌민은 결코 머저리는 아니어서, 일단 이미 저지른 실수와는 별개로 뒤처리를 위한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때는 1911년, 청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자랑할 만큼 광대한 토지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그 광활한 토지의 넓이만큼이나 철도의 부지 또한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길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청나라에는 탕산에서 쉬거장, 잔텐유에서 베이징, 다시 베이징에서 장자커우까지 잇는 철도가 있었는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철도 사업이란 막대한 자금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었고 아편 전쟁 이후부터 골이 썩을 대로 썩은 청나라에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따라서 이미 1911년 당시 청나라에는 상환하지 못한 부채가 제법 있는 상태였다.
어쨌거나, 이 상태에서 청나라는 600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융통하는 데 성공한다.
물론 맨땅에서 돈이 솟아날 리는 없으니, 무분별한 국채 발행으로 다시 한번 빚을 만들었다. 국채란 무엇인가? 결국은 나라를 담보로 한 국가 단위의 사채가 아니겠는가? 물론 국채 없이 국가란 게 어떻게 돌아갈 순 없겠지만, 그 정도가 과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탈’이 나는 법이다.
이 ‘탈’은 지금 1조의 채권이 되어 돌아왔다.
정확히는, 청나라도 탈이 나고 싶어서 난 건 아니었다. 그러나 1911년에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청나라는 중화민국이 대체하게 된다. 더불어 중화민국 정부는 차후 차관 유치와 국제적 외교 관계를 고려하여 1939년까지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있었고, 차근차근 갚아나가 영국, 프랑스, 독일은 대부분의 당시 국채를 상환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1939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1939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억이 있지 않은가?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해이다. 중화민국에 있어선 이미 1937년에 중일전쟁이 시작되어, 충칭 대공습이 벌어진 해이기도 하다.
그렇다. 중화민국 당국엔 더는 청나라가 팔아치운 국채를 사거나 이자를 갚을 여력이 없었다. 당장 일본이 중국의 전 국토를 불태울 듯이 진군하며 잔인한 대학살을 펼치고 있는데, 지금 국채 따위가 어찌 눈에 들어온다는 말인가?
소총 한 자루, 탄알 한 발. 심지어는 병사가 먹을 모래 섞인 주먹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돈이었다. 그렇게 중화민국은 어쩔 수 없이 점점 불어나는 이자를 외면하는 대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1945년. 피폐화된 중국의 국토를 재건하는 동안 중국 공산 혁명이 일어나는 바람에 중국에서는 더는 청나라 시절의 국채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질 않았다. 그나마도 기억하고 있는 건 미국에 있는 국채의 소유자 정도로 국한되어갔다.
그렇게 모두가 국채의 존재를 잊어가고 있던 2001년. 드디어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모두에게 잊힌 국채가 어떤 괴물이 되어 돌아왔는지 장쩌민은 기어이 듣고야 말았다.
“말도 안 되는!”
그래, 말도 안 된다. 그딴 처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그럼 못 갚겠다는 거요?”
“당연히…!”
‘못 갚는다! 배 째! 중화민국의 후신은 대만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청나라 채권은 대만이 갚아야 하는 채권 아닌가?’까지 말하려던 장쩌민은 이내 자신이 실언할 뻔했음을 깨닫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얼마나 꽉 눌렀는지, 이빨에서 까드득 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대외적으로 정통 중국 정부를 계승하고 있었다. 저 내용을 그대로 말했으면 말 그대로 더도 덜도 말고 ‘좆’ 될 뻔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타이완섬을 미승인 테러 조직이 멋대로 점거하고 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선 대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국제적으로는 모든 국가가 UN에서 대만이 탈퇴 당할 무렵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을 정통 정부로 치기 시작했으며, 덕분에 영국이 홍콩을 반환할 때 대만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하게 되었다.
물론 뒷사정을 캐보면 꼭 정통 정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대외적인 이유는 청나라와 중화민국을 잇는 ‘중국 정통 정부’에 반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여기서 반발하면 ‘우린 정통 정부가 아니다!’라고 말하게 되는 셈이고. 당장 채권은 무마할 수 있을지언정, 그 뒤에 따라붙을 온갖 부정적 효과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실언이었다며 잡아떼도 그만이었지만, 그것도 협상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갑의 위치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지,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에 비해 몇 단계 떨어지는 중진국에 불과한 중국의 지도자인 장쩌민이 할 수 있는 수법이 아니었다.
“그게….”
그리하여 장쩌민은 연신 신음만을 내뱉었다. 차라리 저 1조 짜리 함정 카드를 외교적으로 오픈했으면 중국 본토에서 ‘조까! 배 째던가!’하고 마는데. 하필 본토에, 그것도 눈앞에 그 채권단의 수괴 되시는 인물이 있으셨다.
“설마 진짜로 못 갚겠다는 거요?”
부시의 표정은 ‘에이, 설마?’에 가까웠다. 그러나 장쩌민은 그 표정이 몹시 과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쉬이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저 빌어먹을 인간이 자신의 곤란한 반응을 즐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친교는 얼어 죽을. 애당초 이거 하나 때문에 온 게 틀림이 없었다. 장쩌민은 속으로 크게 분노했으나, 이 노기가 입 밖으로 나올 수는 없었다. 다만 새어 나오는 것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는데, 그건 바로 장쩌민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새어 나오는 무언의 신음이었다.
“아니, 장쩌민 주석. 왜 신음만 흘리고 계십니까?”
‘아니, 이젠 못 참겠다!’
참긴 뭘 참는단 말인가? 저 깐족거리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주화입마에 걸릴 지경이었다. 장쩌민은 할 말은 하고 죽는 사람이었다. 뭣보다 뭐라도 말해야 했다.
“당신의 더는 무례를 참을 수 없소! 이 무슨 외교적 결례란 말이오!”
“아니, 빌린 돈을 갚으라고 재촉하는 것도 아니고 잊은 거 같아서 그냥 갚으라 말해준 건데 그게 무례요?”
그도 그렇긴 했다. 물론 부시의 껄렁거리는 태도 문제를 일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부시가 그것을 사과한다고 하더라도 중국에 있는 천문학적인 수치의 국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냥 다른 소국이나, 유럽의 국가였으면 그저 드러누우면 그만인데,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라 불리는 국가가 채권자가 된 이상, 진짜 칼로 배를 째 버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드는 메스인 항모 전단과 핵이 있지 않은가.
반면 중국은 핵은 있었지만, 항모 전단은커녕 항모 하나가 없었다. 정확히는 랴오닝이 있긴 있었지만, 지금 랴오닝은 아프리카 희망봉에서 세월아 네월아 시속 11km로 천천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심지어 70%만 완성된 불안정한 상태. 다시 말해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태로 거친 바다 위를 항행하고 있었단 말이다.
갚는다고 하면 중국의 기반을 들어내야 했고, 그렇다고 갚지 않겠다고 하면 미국이 직접 중국의 기반을 쥐고 들어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은 ‘장쩌민의 손으로 중국을 파괴하느냐? 부시의 손으로 중국을 파괴하느냐?’의 택일이었다.
“자, 어서 솔직히 말해보시오. 그래야 내가 도움을 줄 것 아니오?”
‘도움? 도움이라고? 이런 개 같은 새끼!’
대화가 한 번 끊겼다. 중국 측 통역관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새하얗게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당장 갚으라고 하진 않을 터이니.”
그러나 반쯤 넋이 나간 건 미국 측 통역관도 마찬가지였다. 다행인 점은 이 터무니없는 대화에서 우위에 있는 것이 자국이라는 점, 그리고 미리 부시가 언질을 줘두어 그나마 오갈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인 것은 매한가지인지라 부시의 통역관은 더듬거리며 장쩌민에게 부시의 의사를 전달했다.
“솔직히 1조를 한 번에 갚으라 하는 건 비현실적인 일이지.”
사실 1조 달러 자체가 상당히 비현실적인 금액이었지만, 알게 뭔가.
“거기다 지금이라면 하나 더 끼워 팔아드리리다.”
“팔아? 뭘?”
“중국 인민의 삶(Life).”
“생명(Life)?”
부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장쩌민의 머릿속에서 완역되었다.
그 내용은 ‘돈을 내놓으면, 국민의 목숨만은 살려주마!’였다.
‘이, 이 무슨 악랄한! 네놈은 천하에 둘도 없는 악마요! 샤일록이와도 울고 갈 빚쟁이로다!’
장쩌민은 속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하시는 말씀이 마치 시장바닥 장사치 같소.”
“원래 장사라는 건 남에게 안정을 파는 일 아니겠습니까? 집도, 옷도, 식사도. 심지어는 게임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사는 안정으로 귀결되지요. 그렇다면 내가 하는 것도 장사라면 장사겠군요.”
장쩌민은 훗날 이를 반드시 갚아주리라,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아무리 저주하고 속으로 이를 갈아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저 악마에게 자비를 구걸하여 최대한 상환 기간과 이자를 삭감하는 일이었다.
“어디까지 해줄 수 있소.”
“역으로 묻겠습니다.”
“무엇을 말이오?”
“어디까지 가능하십니까?”
그 한마디로 중국은 골수까지 뽑혀 먹힐 운명이 되었다.
* * *
“잘 되셨습니까?”
“그렇소. 대화가 생각보다 잘 돌아갔지. 준비해둔 두 번째 선물이 쓸모없게 되었군. 펜타곤에선 아쉽게 되었어.”
두 번째 선물의 정체는 바로 스트라이커 패키지였다. 정확히는 중국의 삼면에서 돌아다니는 항모 전단의 스트라이커 패키지였지만, 알게 뭔가. 그냥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중국에 있어서 상당한 압박이었다.
“그건 좀 아쉽군요.”
“자네, 좀 호전적으로 변한 거 아닌가?”
“호전적인 누구를 계속 모시느라 말입니다.”
“호전적인 게 아니라 호쾌한 거지.”
비서실장의 입장에서는 호전이나 호쾌나 별로 달라 보일 게 없었지만, 파랑도 빨강으로 만들 수 있는 최고 권력자가 그리 주장하니 그런 거지, 별수 있나?
“청나라 채권단 분류는 끝났나?”
“예, 여유 시간이 무려 4일씩이나 있는 데다. 이베이에도 기념품 개념으로 올라온 채권이 많이 있어 나라에 귀속시켰습니다.”
4일씩이나 있는 게 아니라 4일 밖에 없었지만, 1979년 당시에도 중국 당국에 상환 소송이 있어 그들을 중심으로 조사하니, 금방금방 튀어나왔다. 물론 돈을 싫어할 사람은 없었고, 청나라 국채를 가진 사람들이 금세 모여들었다.
20년 뒤의 중국이라면 또 모를까. 지금의 중국은 미국의 말을 씹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다. 이것이 호재라면 호재였다.
“그런데 솔직히 1조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네만.”
2019년 당시에 1조였다. 즉, 2001년에는 1조까지 가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1조인 이유는 그만큼 2019년에는 소실된 채권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8년의 세월은 채권들이 물리적으로 훼손되거나 국외에 기념품으로 팔리기에 몹시 충분한 시간이었다.
덕분에 미국이 가진 청나라 채권은 김갑환이 기억과 같이 변함없는 1조였다.
“이제 국회에서 예산 없다고 지랄할 일은 없겠군.”
부시는 아스널 쉽. 다시 말해 로망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