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55)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54화(55/377)
< 54편 >
“좋지 않군.”
토니 블레어는 속으로 몇 번이나 곱씹었다.
‘지금이라도 빠지는 게 맞지 않을까?’
토니의 영민한 두뇌는 유럽 통합군이 구성된 순간부터 이라크 자유 해방 작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손실에 대해서 이미 주판을 튕긴 다음이었다. 전쟁이 삽시간에 끝나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예상대로인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이라크가 동서로 분단되리란 사실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U가 이라크를 친 것은 일단 테러에 대한 보복성 전쟁이기도 했지만, 중동에 민주주의를 심어주겠다는 목적이 있었다. 문제는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이라크에 유럽 통합군이 민주주의가 심어질 때까지 반영구적으로 주둔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토니는 항상 군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유럽의 모든 군대가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당장 눈에 보이는 적. 즉, 소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련은 무너졌고, 그나마 그동안 유구한 전통과 함께 박 터지게 싸워왔던 유럽은 EU로 묶여 있게 되었다.
그럼 적이라고 할만한 게 중동 소속 국가와 중국 정도인데, 중국은 너무 먼데다 당장 미국과 세력권이 겹치니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중국에 가지는 위기감이 희석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위기감이 오는 곳은 가까운 중동이었는데, 이라크라는 좁은 국가에 너무 나라가 많았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유럽 통합군이라는 깃발 아래에 전부 하나로 묶여 있기에 하나의 나라라고 해도 무방했지만, 말이 유럽 통합군이지 이제 막 긴급하게 출범시킨 군대가 뭘 하겠다는 말인가?
그나마 NATO 규격이 있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어쨌거나, 토니 블레어는 군축을 원했다. 군대는 언제나 예산 잡아먹는 괴물이었으니, 그 예산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영국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으로 빌어먹게도 영국의 의회를 비롯한 각국의 지도부는 군축을 원하지 않았다. 저 비좁은 땅에서 더 많은 이권을, 다시 말해 석유를 원하고 있었다.
물론 이라크에 주둔한 유럽 통합군만으로도 중동에 미칠 수 있는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에 국제 외교로 간섭할지언정 ‘민주주의 배달왔습니다!’하고 선전포고를 하진 않겠지만, 앞으로 국제 정세에서 중동에서 영향력을 투사하고 그 지분을 끌어들이고자 한다면 이역만리 중동 땅에 얼마나 많은 군대를 주둔하고 있느냐가 발언의 강도를 결정하는 주원인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토니 블레어는 조국의 혈세를 판돈 삼아 저 빌어먹을 치킨 레이스에 참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중동은 보물이 가라앉은 늪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기운이 넘쳐 늪 밑바닥에 떨어져 있는 금화를 몇 개 정도 건져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번, 3번. 그렇게 계속 줍다 보면 어느새 금화의 무게 때문에 늪 밖으로 올라올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이윽고 늦었음을 자각했을 땐 금화를 버리지도, 늪 밖으로 나올 수도 없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리라.
금화는 석유였고, 욕심은 매몰 비용을 메꾸고자 하는 욕심이었다.
물론 피만 보고 물러나는 건 토니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으나, 이대로 있다간 밑천까지 털릴 것 같은데 어찌한단 말인가?
통합군이 긴급하게 구성된 만큼, 일개 국가가 이 통합군 작전에서 국내 정치 핑계를 대며 빠지고자 하면 얼마든지 빠질 수 있었다. 다만 그리하면 영국이 흘려야 할 피의 이름이 국방 예산에서 정치적 탄핵으로 바뀔 뿐이었다.
서이라크 주둔이 가져올 결과가 어떻든, 결국엔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고 그건 토니 블레어 본인이 되겠지. 그리고 토니는 자신이 사임해서 내려올지언정, 국민의 손으로 이 자리에서 내려가는 것만은 사양이었다.
그는 정치에 있어서만큼은 지독하리만치 현실주의자였다. 아직 벌어진 일은 아니었고, 앞으로 벌어질 일일지도 확실하진 않지만. 김갑환이 알고 있던 미래에서 토니는 ‘부시의 푸들’이라 불렸고, ‘토니 블러(Tony Blur)’라는 멸칭으로도 불리기 일쑤였다. 영국인들은 토니의 집권기를 암흑기라 생각했으며, 가장 나약한 지도자라고 평하곤 했다.
그가 이끄는 영국은 외척 세력. 특히 미국에 끌려다니다시피 했던 영국이었다. 토니는 국익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편을 선택한 것이지만, 자존심이라고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영국인들은 토니의 방식을 혐오했다.
당장 18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존심 문제로 포클랜드 전쟁까지 벌였던 영국이었다.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는 포클랜드를 점거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영국 정부가 전쟁을 외치기보다는 비교적 온건한 외교적 협상에 나설 것으로 생각했지만, 영국인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다소 의견이 분분하긴 했지만, 영국인이 가진 생각은 ‘영국은 아직 죽지 않았다!’로 귀결되었고 포클랜드 전쟁이 막을 올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포클랜드 전쟁으로 하여금 영국인이라는 족속들이 자존심이 걸렸을 때 얼마나 호전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당시 영국은 경제난이라 할만한 상황이었음에도 주저 없이 거금을 들여 군을 파견했다. 얼마나 눈이 돌아가 있었느냐면, 병력을 수송할 배가 모자라자 있는 살림 없는 살림 다 털어서 민간 상선부터 호화 여객선까지 징발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똑같이 해야 하느냐? 라고 물으면 토니의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에는 그 목적과 목표가 명확했지만, 이번에는 모호했다.
물론 자르카위를 검거하겠다는 2차 목표가 있긴 했지만, 그것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중동에 민주주의 전파? 어디까지 전파할 건데? 테러와의 전쟁은 어디에서 언제까지 할 건데? 이번에는 다행히 이라크라는 알기 쉬운 목표가 있었지만, 다음에도 그럴 것이란 보장이 없었다.
전쟁이란 술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1, 2차까지는 무리하지 않게 소화해낼 수 있지만, 그것이 3차 4차를 넘으면 몸을 가누지 못한다. 이 경우에는 국가가 재정난에 지쳐 쓰러진다는 말이 맞으리라.
중동에서 빠지면 절벽이었고, 빠지지 않으면 밑도 끝도 없이 가라앉는 늪이었다.
“총리님.”
이 소식이 들려온 것은, 뾰족한 수가 마땅찮아 토니가 머리를 감싸고 있을 무렵이었다.
“미국으로부터 또 브렌트유 증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또?”
이 무렵은 앞으로 날아오를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부시가 끊임없이 브렌트유의 생산량을 높이고 시장에 공급할 걸 영국에 요청하던 시기였다. 말이 요청이지 풀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긴 했다만, 미국과의 충돌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토니는 미국의 요청을 기꺼이 들어줬다.
어제까지는.
“다음에는 석유를 내놓으라고 협박이라도 하겠군!”
사실 지금도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적어도 헐값에 강탈해가는 건 아니잖나.
“이젠 힘들다고 하게.”
증산이라 함은 결국 시설 규모를 늘리는 것이었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심해 유전인 북해 유전에서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지금까지는 다른 원유를 끌어오거나 재고를 푸는 것으로 임시변통을 할 수 있었지만, 단지 외교적인 이유만으로 본격적으로 증산 결정을 하라는 것은 무리수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영국이 정면에서 ‘싫어! 안 해! 감자나 먹어라!’ 할 순 없는 노릇이니 무언가 핑계가 필요했다. 일단은 NATO든, UN이든, 영국과 관계되어있는 모든 국제 관계에서 갑은 미국이었으니 말이다.
“이번까지는 어떻게든 해본다고 하게. 그러나 다음부터는-. 젠장.”
그렇게 말하던 도중 토니는 너무나도 강렬한 유혹과 맞닥뜨렸다.
방법이 있었다. 미국의 요구와 영국 의회의 요구 그리고 국민의 요구까지 완벽히 부합할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아니, 신의 한 수보다는 악마의 유혹이라는 말이 맞았다.
“오! 하느님!”
토니 블레어가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중동에서 그 답의 실마리가 희끗거리며 보이는 듯했다. 다만 그 흔들리고 있는 실마리가 영국이 감당할 수 없는 포악한 호랑이의 꼬리일지, 아니면 탐스러운 여우의 꼬리일지 판단이 가질 않았다.
이 둘의 공통점은 둘 다 잡는 데 성공하면 만만찮은 값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두바이유는 그런 존재였다.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를 전부 가진 영국이라!
‘그게 가능할 리가 없겠지.’
두바이유는 갈기갈기 찢길 것이다. 겉은 멀쩡할지언정 EU에게 쪽쪽 빨려 껍데기만 남을 예정이었다. 아랍에서 많은 테러가 감지되고 있었다. 아직까진 자르카위와의 술래잡기에 눈이 팔려 본격적인 이권 다툼에는 큰 마찰이 없었지만, 앞으로 2, 3개월만 지나도 자르카위의 체포 여부와는 상관없이 테러를 막겠다는 명목으로 본격적인 세력 투사를 실시하리라.
그리고 EU의 수많은 국가가 작은 파이를 조각조각 해체하리라.
문제는 이 쥐꼬리만 한 파이 조각이야말로 토니를 제외한 모든 세력이 만족할 수 있는 답이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군.”
욕을 지금 잡수실지, 훗날 잡수실지 고르라니!
“이런 빌어먹을!”
오늘따라 영미전쟁 때처럼 백악관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 * *
“에, 앗-취이-!!!”
백악관이 떠나가라 커다랗게 기침을 한 부시는 귀를 후벼팠다.
“비서실장. 요즘 귀가 자주 간지러워. 누군가가 나를 욕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간단 말이야.”
비서실장은 개소리 말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보고를 진행했다. 부시와 대화를 하다 보면 삶에 대한 의지가 팍팍 거세되어 가는 느낌인지라 어서 끝내고 싶었다.
“브렌트유는 일단 동결했습니다. 그런데 이대로 계속 억누르면 추후에 반동이 클 것 같습니다만.”
“상관없어. 어차피 몇 년 뒤에는 저유가 시대가 도래할 거니까. 고작 몇 년만 막아주면 그만이야.”
‘이왕이면 2년이면 더 좋고.’라는 단서를 덧붙인 부시는 다시 눈을 서류로 돌려버렸다. 즉, 2년 안에 해낼 수 있게 예산을 좀 더 쥐여주고 늘어난 예산만큼 갈구라는 소리였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확신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뿐이었지만, 어련히 다 생각이 있어서 저러는 것이라 자기 합리화를 끝낸 비서실장은 머리를 비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자리는 버틸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유능한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외부 환경을 자신에게 맞게끔 변형한다는데, 비서실장은 지구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유능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재해와도 같은 외부 환경에 의해 비서실장이 변형되었다.
그리고 자연재해는 당연히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아스널 쉽은 내가 퇴임할 때 즈음엔 볼 순 있나?”
“사실, 아스널 쉽의 구성 자체는 비교적 간단하니 예산안만 통과되면 임기 안에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미사일 만능주의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물론 순항미사일만 쏠 건 아니라서 자위를 위한 기총을 달아놓을 예정이지만, 일단 데이터가 필요했기에, 항모 전단과 함께 운용하여 추이를 보고 미사일 전함을 더 늘리든지 말든지 할 예정이었다.
“UAV는 어떻게 되고 있지?”
“보고서를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리고 슬슬 한 번 순회를 돌긴 해야겠으니 헬기나 준비시키게.”
“…어떤 헬기 말씀입니까?”
일반적인 대통령이라면 어딜 순회할 건지부터 물어야 정상이지만, 부시가 가자고 하니 자연스레 헬기 종류부터 물어보게 되는 비서실장이었다.
“당연히 마린 원이지. 뭘 준비시켜? 비서실장 오늘따라 왜 그래?”
그 말을 들은 비서실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지? 그 표정은?”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연하겠지만, 비서실장의 안도는 부시가 순순히 마린 원을 타고 가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번처럼 코만치를 요구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슬슬 자중하나 싶어 기쁘기까지 했다.
“조만간 마린 원도 바꿔야겠어.”
“오, 이런.”
이젠 하나도 안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