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71)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70화(71/377)
< 70편 >
드디어 2002년의 새해가 밝았다.
철 지난 2001년 달력이 쓰레기장에 수백 톤이 쌓였고 2002년 달력은 그만큼 팔려나갔다. 성탄절 우편이 이제는 새해를 기념하는 우편으로 바뀌어 있었고, TV에서는 한결 재미없어진 새해 특집과 기사가 흘러나왔다.
EU는 2001년을 가장 충격적인 해로 기억했다. 테러로 많은 희생자가 나왔고, 그날을 아예 추모 기념일로 지정하게 되었다. 동시에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고 말았으니 당연히 이를 복구하기 위해 EU 차원에서 움직임을 보여줬는데, 이 프로젝트에 수십억 단위의 기부금이 모이면서 유럽은 이를 ‘기부 혁명’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러시아는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머잖아 군사 동맹을 맺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던 중국은 개털이 되었다. 이라크의 절반을 먹긴 했지만, 러시아가 목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필요한 건 경공업 등 기반이 될 시설들이나 외화 유치였지 원유가 아니었다. 석유가 나오지 않는 나라가 들으면 혈압 상승으로 우화등선할 지경이었지만, 여하튼 러시아는 직접적인 손해는 없다며 애써 자위했다.
중국은 그나마 암암리에 하고 있었던 소수민족 탄압이 부쩍 늘어났다. 좀 더 공고히 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으며, 세금이 알게 모르게 늘어나고 있었고 어떻게든 축소되어가는 영향력을 갈무리하기 위해서 행정력에 대한 투자가 늘어났다. 더불어 본인들이 청나라 대금을 갚고 있으니, 본인들이 진정한 정통 정부라며 과감하게 대만을 압박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 미국은 너무나도 많은 게 급속도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9.11테러 이후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그들의 대통령이 많은 것을 해냈고, 또 많은 것을 추진시켰기 때문이다. 하는 짓이 공화당에서 나온 대통령인지, 민주당에서 나온 대통령인지 헷갈릴 정도로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성향을 보이는 통에 연방 의회나 주 정부나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저기 튀는 고무공 같은 인간 때문에 다들 고생 좀깨나 하고 있다. 가장 질이 나쁜 건 그걸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그러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면 그 대통령인 조지 부시의 기분이 매우 나쁘다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나쁜 소식 둘이랑, 좋은 소식 하나가 있다고?”
비서실장은 오늘따라 멋쩍은 듯했다. 아마 3일 만에 봐서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아 그럴지도 몰랐고, 아니면 그동안 밀렸던 휴가를 다녀와서 긴장이 풀려 그런 걸지도 몰랐다.
그것조차 아니면 그 ‘나쁜 소식’을 전하고 나서 일어날 파급력이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몰랐다.
“끝내주는군.”
“어떤 것부터 들으시겠습니까?”
“좋은 소식부터 듣지.”
그 소리를 들은 비서실장이 묵묵히 신문 한 장과 종이 한 장을 책상 위로 들이밀었다.
신문에는 부시가 추진하고 있는 아스널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대부분이 예산 낭비라는 아주 부정적인 견해였는데, 하나하나 꼬집어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는 점이 가장 뼈아팠다.
군사 전문가들이 아스널쉽에 대해서 많은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았지만, 자본치료를 당한 해군은 묵묵부답이었다. 거기다 일단 1대만 시범 도입하는 것이기도 했고, 오로지 아스널쉽 개발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술력 축적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부시에게도 드디어 변명거리가 생겼다.
종이에 있는 건 요청서였는데, 첫 문단부터 아스널 쉽에 대한 찬사와 함께 러브 콜을 보내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워터마크에는 화력 하나에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전통의 화력 강국인 한국 국방부의 마크가 찍혀 있었다.
“한국에서 아스널쉽을 도입하길 원하고 있다고?”
“예.”
비서실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는데, 그 모습이 흡사 개선문을 통과하는 상승장군과도 같이 위풍당당했다. 이 소식을 접한 백악관의 주인께서 기뻐할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식에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인 부시는 기쁘다기보다는 의아해졌다.
“애들 아스널쉽을 살 돈은 있데?”
가만히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국이 미국 군수 사업의 콘크리트급 충성 고객층은 맞는데, 한국이 제값 주고 뭘 구매해갔던 경우가 없었던 것 같았다. 대부분 가격을 후려치든 덤을 과할 정도로 후려치든 했지.
“정확히는 자금 투자를 대가로 기술협력을 원하고 있습니다. 미사일 발사관을 약 100개 정도로 줄여서 소형으로 운용하길 검토 중이라더군요.”
‘목표는 합동화력함인가.’
한국에서는 마치 한국형 항공모함 도입처럼 예전부터 심심찮게 이야기는 있었지만, 진지하게 거론되기 시작한 건 2017년이었다. 왜냐면 딱 그때 즈음이 한국군의 미사일 유지보관 능력에 한계가 오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창고가 다 차버린 건데, 이건 옛날부터 예견된 이야기였고 그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한국 국방부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참이었다.
그러니 일단 ‘기술’만 어떻게든 확보해두겠다는 국방부의 의지임이 분명했다.
‘기술만 있으면 건조는 충분히 할 수 있겠지.’
대한민국이 선박 건조능력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다. 도리어 선박 제조 능력 하나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선진 강국이었지.
그런데 그게 군함에까지 적용되느냐면 역시나 고개를 한 번 즈음은 갸웃거리게 된다. 그러나 현역으로서의 기억을 곰곰이 따져보면, 아마도 능력이 떨어져 보이는 이유가 전부 ‘국방 비리’ 때문이었던 것도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지.’
거기다 중국에서도 300개의 발사관을 가진 아스널쉽 도입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던 무렵이었다. 어디까지나 신문 기사에서 다루던 찌라시 수준의 이야기에 불과했지만, 반대로 중국이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기도 했다.
“군사 동맹국인데 값만 제대로 치러준다면 못 해줄 것도 없지.”
‘한국해군의 합동화력함 도입은 한국의 해상 전력이 늘어난다고 북한에서 지랄발광할 수도 있겠는데.’
뭐 그땐 정말로 석기시대로 돌아가는 거 아니겠는가?
모든 게 부시의 뜻대로 돌아가는 그야말로 신바람 나는 상황이었지만, 인생이란 무릇 굴곡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었다.
세상만사 이리도 잘 풀리면 재미가 있겠는가?
“다른 소식은?”
이젠 나쁜 소식이었다.
“아세안에서 저희가 보낸 구체적인 안에 대해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자마자 부시의 표정이 이상하리만치 일그러졌다. 비서실장이 말꼬리를 흐리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한 일이었고. 그리고 십중팔구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시사하는 표식이나 다름없는 습관이었다.
“아세안 체제에 직접적인 관여는 허가 못 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럼 투자도 거부한 건가?”
그럴 수도 있지. 체제 자체에 개입하는 건 너무 과한 처사긴 했다. 이럴 때 일하라고 있는 게 행정부 아니겠는가? 부시가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굴리면 그만이었다. 외교라는 게 원래 국가 간 의견 차이를 극한까지 좁혀가는 과정 아니겠는가?
“그건 또 해달랍니다.”
“뭐?”
‘이 새끼들 역지사지 모르나?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 안 해본 건가?’
예를 들어 피자집에 가서 피자를 샀는데 ‘아, 고객님 피자는 구매하셨지만 먹을 권리는 없습니다!’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별로 와닿지 않는다고? 그럼 약간 어차피 반은 한국인, 반은 미국인이니 어디 한 번 ‘반국인’ 감성으로 맛깔나게 로컬라이징 해보자.
‘아, 고객님 김치는 기본 반찬에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잘 익은 배추김치 한 그릇이 단돈 3000원! 에잇! 사장님! 기분이다! 이쑤시개는 대출혈 서비스로 반값! 단 1000원!’이라고 하면 지랄 발광할 것들이 참으로 말도 많았다는 거다.
투자를 했으면 당연히 그에 따른 이득이 따라와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당연히 돌아올 서비스가 없는데? 뭐, 사실 저것보다는 국밥을 시켰는데 돈만 가져가고 국밥은 안 주는 것에 가깝긴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논리인지 이해가 전혀 가질 않아 탈수를 돌리는 드럼 세탁기처럼 덜커덩거리던 부시의 뇌가 드디어 명확한 결론을 도출해냈다.
“쟤들 죽고 싶데?”
그건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답이었다. 어쩌면 문명의 발전과 비례하는 환경 오염에 염증을 느껴서 석기시대가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서 딴 신선한 과일과 갓 잡은 고기로 살아가는 자연인 생활 말이다. 마침 2002년이면 한참 웰빙 열풍이 불 시점 아닌가?
감정을 우선시한 다음에 계산이 들어가는 부시치고는 굉장히 놀랍게도 최대한 사실과 증거에 입각하여 내린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안타깝게도 그건 아닌 모양인지 비서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본인들 미래가 걸린 일이니, 최대한 밀고 당기려는 것 같습니다만.”
어쩌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나 밀고 당김이란 ‘간’을 본다는 건데, 지금 그들이 상황이 적어도 간을 보고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성장동력에 필요한 연료란 결국에는 외화인데, 그 외화 보유량은 물론이거니와 외화를 돌릴 내수까지 개작살이 났으니 어떻게든 외화를 끌어들여서 동남아시아 금융 위기의 여파를 어떻게든 완화 시켜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설령 그 대가로 어떤 출혈을 강요당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인도네시아를 위시한 아세안-5는 20년 뒤에도 경기가 여전히 침체 되어 있는 체였다. 그들의 뒤에는 항상 자산가격 급락 위기설이라는 꼬리표가 달라붙어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지금 그 누구보다도 달러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불빛이라는 가로등이 어슴푸레 점등하는 몰락의 골목길 안에서 구원의 손전등을 마다하고 있었다.
‘뭐지? 2002년에는 목에 칼이 들어온 상태에서 간을 보는 게 유행이었나?’
부시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정말로 그런 유행이 있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무렵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차라리 아세안이 아니라, 그 안에 속해있는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를 밀어주는 것도 썩 나쁜 선택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차라리 못 먹을 감을 찔러보기보다는 감나무 자체를 찍어버리자는 소리였다. 풀어 말해서 수장국인 인도네시아를 조종하면, 자연스럽게 아세안도 조종하게 될 거라는 뜻이었다.
“썩 나쁜 생각은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냥 그 나라의 군사력이 강해질 뿐이잖나. 부시가 원하는 건 중국을 사방에서 조일 수 있는 완벽한 올가미였다. 호랑이의 이빨은 빼놨는데 날카로운 발톱은 그대로니, 그 발톱도 어떻게 깎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 아세안 회원국을 상대로 국채라도 받아오면 어떨까요?”
국채란 타국의 목줄을 잡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단적인 예로 당장 미국만 해도 그렇게 중국의 목줄을 잡고 열심히 흔들고 있었으니까.
“국채? 못 갚을 정도로 불어나면 어차피 나중에 파산하고 책임 소재 가지고 돌림 노래할 거 아냐.”
그러나 아세안 회원국의 국채라고 해봤자, 참으로 모호한 물건이었다. 막말로 갑자기 ‘아세안 끝! 여러분 수고했습니다!’라고 한 다음에 국기에 국명까지 바꾸고 ‘우린 계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책임이 없소!’라고 하면 답이 없잖은가.
물론 중국처럼 지적이고 교양있는 대화를 통해 마지못해 갚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아시아 전략’이 파탄 났다. 미국이 거둘 과실 중 하나인 ‘경제적 효과’는 주가 아니라, 아시아 전략에서 따라올 ‘부수적 수입’에 불과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객전도가 될 순 없어.’
“아세안은 기본적으로 냉전 시절 반공 국가가 뭉친 형태입니다. 그들이 흩어지지 않는 한 친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제 생각이지만, 아세안-5을 중심으로 자주적인 체계를 가지기 위해서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려는 게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건 이해가 갔다. 슬슬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이해가 안 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도, 달러 투자를 받고 싶은 것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해했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나름 아세안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나 미국과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적은 서류와 더불어 해결해야 할 안건을 보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가 나왔어야 했는데, 나온 결과물이 슈뢰딩거의 아세안이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그러니까, 쟤들은 우리 투자가 받기 싫다 이거지?”
부시가 입꼬리를 올렸다. 저 미소가 비서실장의 불안감을 이상하리만치 고조시켰다.
“지금까지 태도만 보고 추측하면, 받기 싫은 것 자체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왜 이리도 불안감은 잘 맞아들어가는지.
“그럼 투자를 회수하면 되겠네.”
“아니, 죄송한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 그런 미친 소리가 나오는 겁니까? 저희 지금 ‘아시아 대전략’에 대해서 거론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인도네시아도 안돼. 필리핀도 안돼. 그럼 베트남이라도 키워주든가 해야지.”
“베트남을요?”
‘세상에! 휴가가 끝나기 전에 마약이라도 빨고 오셨나?’라며 비서실장이 혹시 헬스를 하시다 머리를 다치신 건 아닌지 걱정할 무렵 부시가 듣는 내내 실실 쪼개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니, 거긴 지금도 공산국가입니다. 심지어 베트남전도 고작 약 30년 전에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 아닌가?”
“예!?”
“누구든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렇지?”
거기까지 말하고 나자 비서실장의 안에서 충격이 가시자 비서실장의 우수한 두뇌는 딱히 인지하고 갈구지 않아도 제멋대로 정황과 논리를 퍼즐 조각처럼 이리저리 맞춰보다가 하나의 답을 내놓았다.
“…설마 이걸로 아세안을 압박하실 생각입니까?”
“당연하지. 그럼 뭐가 목적이겠나?”
투자가 필요 없으면 투자가 필요하도록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그때도 안 움직이면요?”
부시는 거의 폭소 일보 직전의 모습을 보이더니, 갑자기 정색했다.
“그럼 그땐 정말로 베트남에 투자하면 그만이지.”
‘이런 미친.’
비서실장이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래, 젠장. 이 맛이지. 이 맛에 비서실장을 하지. 하와이에서의 3일간의 아름다운 휴가여, 영원하여라!’라며 비서실장이 휴가를 그리워했지만, 이젠 추억으로만 남아 그의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다음.”
“예?”
“다음 말일세 다음.”
부시는 마지막 나쁜 소식을 촉구했다.
“아…. 다음은 북한입니다.”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이 느낌이 이상하리만치 익숙했다. 이제야 좀 ‘조지 부시의 비서실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북한? 설마 경수로 사업에 차질이 생긴 건 아니겠지?”
“정말로 안타깝게도. 대답은 ‘예.’입니다. 북한 측 건설 현장 근처에 대규모의 반대 시위가 생겼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시위라고? 남한이 아니라?”
“예.”
비서실장은 오늘따라 ‘예?’만 반복하는 거 같았다.
대충 공사현장에서 들어온 내용이란, 북한이 경수로 사업을 뒤엎고는 싶은데 실질적인 무력행사를 하기엔 뒷감당이 안 되니까. 인민들을 시켜서 대규모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북한 정부는 인민 스스로 들고 일어났으니, 인민의 목소리가 근본이자 근간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서 인민의 목소리를 탄압할 수 없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심증은 여럿 있었지만, 가장 확신할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촛불 시위라는’이라는 점이었는데, 북한에서 촛불은 남한과는 달리 아주 비싼 소비재에 해당한다는 점이었다.
남한에서는 지폐 한 장이면 향까지 들어간 제품을 상자로 구할 수 있었지만, 북한에서는 아니었다.
‘국에다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고 기름기 생겼다고 좋아하는 공화국에서, 그 귀한 양초로 촛불 시위를 하고 있다는 걸 나더러 믿으라는 건가?’
“비서실장. 요즘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하기가 유행인가?”
에라 모르겠다.
“그런가 봅니다.”
비서실장은 심연을 이해하기 위해서 심연을 들여다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