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73)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72화(73/377)
< 72편 >
2000년대는 누가 무어라 해도 ‘웰빙’의 시대였다. 1990년대 유럽과 미국의 웰빙 트렌드 정착을 시작으로 한국, 일본 등과 같은 아시아 전역에 퍼진 건 2000년 이후다. 본래는 90년대 이전 여성건강 복지 증진과 사회 대안 운동 확산에 기원을 두고 있다.
어쨌거나, 의도 자체는 ‘건강한 몸을 만들자!’라는 취지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렇게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단어를 안 써먹을 리가 있나. 어느 순간 웰빙은 건강한 식품이라는 이미지로 고착되고 말았다.
이렇게 맛깔나는 단어인 웰빙을 적극적으로 확산, 활용하기 위한 마케팅에 모두가 적극적이었고, 이는 한국에서 가장 극성이었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공기 청정기에도 웰빙이라는 꼬리표가 붙자 1070억 수준의 공기 청정기 시장이 고작 3년 만에 3배인 3200억까지 늘어났을 정도였다.
자, 그래서 여기서 그 웰빙이 왜 나오냐?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요가’가 주가 되어 있던 웰빙이 ‘헬스’로 이동하고 있다면 믿어지겠는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현상은 대통령님이 만들어낸 현상이 다름없습니다. 정확히는 신문 기사들 때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통령님이 갑자기 헬스를 하니 그렇게 되죠.”
실제로도 그랬다. 아주 단기간이었지만, 당대 최고의 트레이너들이 만들어낸 식단과 운동량을 적절히 지켜 점점 몸의 윤곽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원래부터 근육이 어느 정도 붙어 있었던 탓에 금세 변화가 생긴 것이다.
‘대통령이 아니라 연예인이라도 된 기분이군.’
뭐, 하긴 곰곰이 생각해보면 연예인이었다가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 반대라고 안 될 이유도 없긴 했다.
‘그렇다고 은퇴하고 연예계에 뛰어들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은퇴하시면 헬스 쪽으로 나가셔도 되겠군요.”
부 비서실장은 부시의 표정을 보더니, 이내 실실 쪼갰다. 사실 부시한테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인물은 부 비서실장이 유일했다.
“그놈의 헬스 타령은 그만하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미일 뿐이니까. 뭣보다 이제 슬슬 질린단 말이야.”
정확히는 언론이나, 타인이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게 지쳤다는 말이 맞았지만, 어쨌거나 일단은 신문에서 나오는 건 몰라도 일터에서까지 들을 생각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가둬놓으면 뭐가 나오긴 합니까?”
오랫동안 쓰인 방이라 그런가, 문짝의 장식도 살짝 너덜너덜한 게 얼핏 중세 지하 감옥의 문처럼 보였다. 비명까지 간간이 새어 나오는 게 감방 옆에 끔찍한 각종 도구가 걸려 있는 고문실도 달려 있음이 확실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문 안에 있는 건 단순한 도청 방지용 회의실이니 부 비서실장의 상상에 불과했지만, 말만으로 중세 고문에서나 나올 법한 반응을 낼 수 있다는 게 퍽 대단해 보였다.
“저기서 나오고 싶으면 뭐라도 나오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먹은 만큼 일해야지 않겠나? 그러라고 월급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뿌리는 건데.”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모르나?”
“스파이더맨?”
“용케도 알아듣는군.”
스파이더맨 만화책에서도 있던 대사였지만, 이 대사가 갑자기 유명해진 건 어디까지나 영화에서 나온 명대사이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올해 즉, 2002년에 나올 예정인 영화였다.
“제가 속세에 관심이 워낙 많아야죠. 정작 큰 힘에는 큰 무책임이 따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지만 말입니다.”
부 비서실장은 이것을 돌려 깠다. 부 비서실장도. 아니, 가진 권한이 만만찮기에 도리어 더더욱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으로서 이보다 어처구니없는 말도 없었다.
‘흠, 저것도 어디서 들은 대사인데. 뭐 아무렴 어때.’
부시는 이제 거미 인간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로 했다.
“이쯤 되면 슬슬 눈치챘으리라 믿네만, 여기 부른 이유는 자네에게도 시킬 게 있기 때문이야.”
그 소리를 들은 부 비서실장은 드디어 올 게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으로 표정이 솔직한 남자였다.
“일 끝나면 집에 갈 수만 있으면 됩니다.”
부 비서실장은 보좌관과 비서실장이 통째로 통조림 된 방을 흘낏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 건물의 시설들이 노후화하였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 말이 맞았다. 방음까지 뚫고 나오는 비명성이 끝내줬다. 모르긴 모르되 저 고독과도 같은 항아리에서 나올 수 있는 답이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하리라는 점은 능히 짐작할만했다.
부 비서실장이 등 뒤의 방을 신경 쓰고 있음을 깨달은 부시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래서 비서실장을 남겨둔 거 아닌가?”
“아. 과연.”
“그리고 자네 질문에 대답하자면, 당연하지. 일이 끝나면 집에 가도 좋네. 나는 맺고 끊음이 확실한 사람이니까.”
부시의 말을 들은 부 비서실장이 안심했는지, 표정에 서려 있던 긴장이 풀렸다. 그러나 대통령 앞에서. 그것도 조지 부시 앞에서 그런 반응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아직 덜 당해봤다는 소리였다. 만약 비서실장이었다면,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 두 가지는 생각해 냈다.
“그래서 그 일이란 게 뭡니까?”
“해외 출장.”
“네?”
“일만 끝나면, 바로 퇴근해도 좋네.”
‘일’이 끝나면 말이지.
“암. 그렇고말고.”
* * *
“생각보다 괜찮은데.”
본래 퇴근하면 영화나 볼 생각이었지만, 비행기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일단 긍정적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세상이 거지 같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런 사고방식을 만들어내서 최대한 운용하고 있는 거였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참기 힘든 엿 같은 세상인데 어쩌겠는가.
이런 자리에 앉아있어도 칼 로브 본인이 혐오하는 것들 대부분은 자신의 주도적으로 바꿀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대통령님을 내가 좋아하는 거지만.’
부시 대통령의 눈에 거슬리면 지워버리는 거침 없는 모습은 자신의 이상향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함에 기반한 이성적인 정치를 싫어했다는 건 아니지만, 칼 로브는 답답한 로맨스 영화보다는 다 때려 부수는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취미 또한 영화였다. 본래라면 영화라도 보면서 여가를 즐길 생각이었으나, 무슨 긴급 출장마냥 인도네시아로 가게 되었다. 왜냐면 아세안의 수장국이 인도네시아였으며, 본부 또한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최대 도시였으나, 2050년 즈음에는 도시의 일부 지역에 물에 잠길 운명을 타고난 비운의 도시였다. 2050년 즈음 되면 메가 플로트에 해상도시를 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현재는 입지가 영 좋지 않은 도시임은 틀림없었다.
‘내가 단순한 여행객은 아니어서 참으로 다행이구먼.’
인도네시아가 동남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라임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진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건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전체 10%의 인구가 살고 있다는 강점이 치안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하여 법의 심판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경우가 빈번했고, 소매치기는 어딜 가나 극성이었다. 자카르타의 치안은 칼 로브에게 있어서 미국의 슬럼가를 연상하게 했다.
‘바꿀 수 있겠지?’
미국의 치안 또한 점차 바뀌어 개선되어 가고 있었다. 부시가 새로 뽑은 인사들은 예산을 극한까지 활용하고 있었고, 뇌물을 받은 이들이 직접 보직해임과 동시에 감방으로 가는 걸 본 여타 경찰관들의 사고방식을 뿌리부터 흔들어 바꾸고 있었다.
사람의 본성은 바꾸기 힘들지만, 행동은 바뀔 수 있었다. 걸리면 엿 된다는 인식을 경찰관들의 머릿속에 단단하게 각인시킨 이상 그들이 취하는 행동은 보통 둘이었다. 정말로 손을 털거나, 더 깊은 심연으로 잠수하거나.
전자의 경우 그냥 넘어갔지만, 후자의 경우 용서 없이 최대 형량이 부과되었다. 다만 이 방법은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는데, 이게 교도소에서 새로운 갱 조직이 생기고 말았다. 말이 갱이긴 한데, 실질적으로는 전(前) 주 경찰 향우회 같은 거였다. 조직의 이름도 규모도 제각각이었지만, 이 현상은 전국의 교도소에서 알음알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그냥 갱도 아니고 명색의 전직 경찰인 만큼 다른 수감자들의 표적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맞기만 하다가, 어느새 세가 불자 교도소를 점점 장악해갔다. 원래 범죄자랑 붙어먹을 줄 아는 이들이어서 그런지 그렇지 않아도 폐쇄적인 환경에서 전직 경찰들은 감옥 가장 높은 곳에 군림하고 있었다.
이게 안 먹히는 감옥이 유일하게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감옥’이라 불리는 별명이 붙어 있는 최고등급 교도소인 ADX 플로렌스 교도소였다. 이곳에서는 모든 방이 독실이었기 때문에 파벌 형성 같은 일이 생기지 않았다. 사실 오사마 빈 라덴도 부시의 행정 명령이 아니었으면 이 ADX에서 평생 가둬둘 예정이었다.
“저기가 자카르타인가?”
어쨌거나 다시 자카르타 이야기로 돌아와서. 칼 로브는 비행기 창밖으로 자카르타의 야경이 보였다. 9.11 테러 이후로 갑자기 출장이 많아진 것 같지만, 필시 기분 탓이리라. 하긴 어딜 가더라도 아프가니스탄 군사 고문단보다는 나았다.
사실 처음에는 좌천이라도 한 줄 알았으니까. 부시 대통령이 매일 한 번씩 연락을 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아프가니스탄이 심적으로 편하긴 했어도, 지내기 영 좋은 곳은 아니었다. 사실 영화관과 서브웨이만 있었어도 지낼만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자카르타에는 그게 다 있으니까.”
거기다 이번 출장은 저번처럼 장기는 아니니까. 빨리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눕고 싶었다. 한 10년만 젊었어도 매사에 열정적이었겠지만, 이 나이를 먹고 나니 뭘 해도 하나를 해내고 나면 힘이 빠졌다. 예전에는 하나를 하고 나면 다음으로 넘어갈 기력 정도는 남아 있었음을 상기해내면 참으로 슬픈 현실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 칼 로브가 가장 먼저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습해!’
습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습했다. 겨울인데 이렇게 습한 나라가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습도를 나눌 때 6단계로 나누는데, 각각 ‘건조, 쾌적, 습기, 후덥지근, 굉장하게 더움, 구질구질함’으로 나눈다.
자카르타는, 기본이 5단계로 8월에 잠깐 4단계로 내려오는 기적과도 같은 날씨를 체감할 수 있는 나라였다. 한국으로 치면 1년 내내 한여름 날씨 그 이상이었다. 아프리카인들이 타국의 높은 습도를 가지고 줄곧 아프리카가 차라리 시원하다고 하는데, 이는 아프리카는 기온은 높지만, 습도는 낮은 탓에 공기 자체에 습도가 없어 그늘에만 들어가도 시원한 탓이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아프가니스탄보다 나쁜 곳은 없을 것이라 장담했거늘 어찌 이런 습도의 지옥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부 비서실장님. 자카르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국 대사관에서 사람이 나와 있었는데, 그 사람도 영 자카르타의 날씨에 익숙한 모양은 아닌지 연신 온몸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여기 왜 왔는지는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아세안과의 협정이 틀어진 탓이죠?”
다만 아세안에서는 ‘필요 없으니까 지랄하지 말지어다!’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는 표면적인 체면치레에 불과했고 2002년의 동남아시아는 달러에 누구보다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특히 그 직후 필리핀이 미국 자본 투자 유치를 위해서 먼저 접선해 오기 전까지는 미국 정부 내에서도 체면 탓에 내빼는 철면피라고 확정 지은 부시를 빼고 의견이 분분했다.
사실 아세안에 미국이라는 그림자를 붙이는 게 아세안 회원국에게 있어서도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 그리하면 필요 이상으로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서 그만둔 거지. 사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친미 성향이 흔들리고 결국에는 미국에 전면 협조라는 형태로 모조리 열 확률이 더 높았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었지만, 이러한 방법은 미국에 있어서도, 아세안에게 있어서도 미래 전략에 도움이 되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걸 협정하기 위한 자카르타행이시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직접 오실 줄 알았습니다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너무 엉덩이가 가벼워도 안 되니까.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뭔가요?”
“에어컨은 어디 있지?”